서너 걸음 걷다가 멈추고 다시 서너 걸음 걷다가 멈춘다고 할지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물러설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그와 같은 순간은 꽤나 빈번하게 찾아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개개인의 삶이 다 같은 것은 아니어서 걷고 싶을 때 걷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평생 동안 더없이 편안한 삶을 사는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마는 무작위로 뽑히는 각자의 삶에서 로또와 다름없는 그와 같은 행운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분명 아닐 테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삶에서도 갈등이나 고민이 없는, 꽃길처럼 순탄한 길만 걸을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가 길게 이어진 바람에 한여름을 방불케 하던 늦더위는 한풀 꺾인 듯합니다. 요 며칠 맑은 하늘을 볼 수 없던 까닭에 해가 짧아진 것도 미처 알지 못했던 듯합니다. 내가 아침 운동을 나서는 새벽 5시 30분만 하더라도 이제는 제법 캄캄한 어둠에 휩싸여 손전등 없이는 등산로의 장애물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불과 달포쯤 전만 하더라도 대낮처럼 환하던 길이 이제는 캄캄한 어둠 속에 있다는 게 신기한 일이지만 12월 22일의 동지까지 밤은 계속하여 조금씩 길어질 테지요. 얼마 전에 읽었던 데니스 존슨의 소설집 <예수의 아들>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합니다.
"베벌리 요양 병원에서는 매주 목요일에 최고령 환자들을 모아 구내식당 의자에 앉혀 놓고 우유가 담긴 종이컵과 쿠키가 담긴 종이 접시를 앞에 놓아주었다. 그들은 '기억해'라는 놀이를 했다. 그들의 정신이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리기 전에 삶의 소소한 것들을 붙잡게 하는 놀이였다. 모두가 각자 그날 아침에 있었던 일과 지난주에 있었던 일, 몇 분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p.180 '베벌리 요양 병원' 중에서)
생각하기 나름이겠습니다만 무척이나 쓸쓸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마지막이 절대 그와 같은 처량한 모습은 아닐 것이라고 자신을 수시로 다독이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언론에서는 치매 치료제도 개발되었고, 암 백신도 개발되어 그동안 불치병으로 여겼던 병들이 하나둘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는 듯 보도하지만 그것이 우리와 같은 서민들에게도 혜택이 미치려면 하세월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끄물끄물하던 하늘은 활짝 개지 않고 여전히 어둡습니다. 밖에 나가면 비닐 우의를 걸친 듯 탁한 습기가 온몸을 감싸고 돕니다. 낮아진 기온만큼 끈적끈적한 습도도 조금 낮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책은 손에서 점점 멀어져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