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개나리를 비롯한 여러 봄꽃이 피어나는 것은 물론 버드나무 가지에도 연녹색 물이 들고 있는 걸 보게 됩니다. 한낮 기온이 20도를 넘나들다 보니 과거에는 차례대로 피던 봄꽃이 최근에는 한꺼번에 우르르 피었다 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컨대 과거에는 산수유가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리고 나면 제 순서에 맞춰 차례로 개나리, 목련, 매화, 벚꽃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입니다. 지구온난화 탓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갑자기 여러 꽃들이 한꺼번에 피고 지다 보니 왠지 정신이 없고 계절을 즐길 만한 여유도 차츰 사라지는 게 아닌지 조금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어제는 아들의 군대 생활에서 쓰던 짐을 옮기느라 아침 일찍 운전을 하여 군부대에 갔었습니다. 아들을 둔 부모의 난제, 이를테면 대학 입시, 병역, 취업, 결혼 등 시기에 따라 마주쳐야 할 어려운 문제들 중 하나인 '병역'을 무사히 해결한 듯합니다. 내일이면 전역을 하는 아들은 공군으로 입대하여 21개월의 결코 짧지 않은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친 듯합니다. 전역에 앞서 외출을 나온 아들의 양손 가득 들린 짐을 받아 차에 싣는 감회가 뭐라 설명할 수 없이 묘하기만 했습니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인데'라거나 '요즘 군대를 어디 군대라고 말할 수 있나?' 하면서 군 생활의 노고를 폄훼하거나 깎아내리려는 사람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사실 혈기왕성한 그 시기의 젊은이들에게 있어 18개월이나 21개월은 결코 짧다고 말할 수 없는 황금과도 같은 시간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아들의 전역을 손꼽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도 그러할 테고 말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소담출판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합니다.
"어느 초봄의 밤, 나는 우리가 점령한 농가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맥 빠진 바람이 변덕스레 방향을 바꾸며 불어왔다. 플랑드르의 높은 하늘에는 구름이 군대처럼 몰려다닌다. 그 구름 뒤 어딘가에 달이 빛나겠지. 하루 종일 나는 불안에 시달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걱정이 나를 괴롭혔다. 어두운 초소에서 경비를 서며 나는 간절하게 지금까지 살면서 품었던 형상들을, 에바 부인을, 데미안을 생각했다. 미루나무에 기대어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구름의 전쟁터를 올려다보았다. 한밤중 하늘에서 움찔대는 별의 빛이 점점 커다란 그림, 솟아오르는 그림의 연속을 연출했다. 나는 맥박이 이상할 정도로 희박해졌음에서, 그동안 비바람에 시달리며 무뎌진 피부에서, 내면에서 반짝이는 빛에서 어떤 인도자가 나를 굽어보고 있음을 느꼈다." (p.266)
내일 전역을 하는 아들은 4월 9일부터 5월 14일까지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오겠다고 합니다. 모든 게 불안하고 의문투성이인 요즘이지만 나는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 개개인의 특별한 경험들이 더욱 소중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이나 가상현실에서의 경험이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직접 부딪혀서 체득한 경험이야말로 인공지능시대를 현명하게 대처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