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첫 문학과지성 시인선 345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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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없는 감정은 팽팽한 압력이 된다. 감당할 수 없는 큰 슬픔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수분의 압력이 되는 것처럼 커다란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는 열기의 압력이 된다. 그러므로 감당할 수 없이 큰 기쁨이나 슬픔, 분노나 그리움 등은 오롯이 감정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차라리 질병에 가깝다. 밖으로 분출되거나 스스로 용해되지 않은 감정은 자신의 몸 곳곳으로 고스란히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감정에 가장 솔직한 이는 시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인은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몸에 오롯이 받아 한 줄 시를 통해 분출한다. 한 시인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한 줄 '시(詩)'로 읊지 못한다면 이 서러운 세상을 어찌 건널 수 있으랴. 나는 이따금 시에서 분출하는 시인의 슬픔을, 분노를, 차마 담지 못한 그리움을, 웃음기마저 지워버린 기쁨을 시인을 대신하여 갈무리한다. 이렇게 나누는 감정의 품앗이가 없었다면 뉜들 세상살이가 그저 쉽기만 할까.


감기


당신이 들여다보는 흑백 사진 속에 내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마주 보았다


당신의 사진 속은 늘 추웠다

기침나무들이 강을 따라 콜록거리며 서 있었다


눈을 뜨면 언제나 설산 오르는 길이었다


간신히 모퉁이를 돌아서도 희디흰 눈발

날카로운 절벽 아래로 툭 떨어지는 가없는 벼랑이었다


얼어붙은 하늘처럼 크게 뜬 당신의 눈을 내다보는 저녁


동네에 열병을 옮기는 귀신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지고

굴뚝마다 연기들이 우왕좌왕 몸을 떨었다


당신은 내 몸에 없는 거야 내가 다 내쫓았거든


내 가슴에 눈사태가 나서 한 시간 이상 떨었다


기침나무들이 몸을 부르르 떨며 눈 뭉치를 떨구자

벌어진 계곡에서 날 선 얼음들이 튕겨져 나왔다


맨얼굴로 바람을 맞으며, 입술을 떨며

나는 얼어붙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당신이 들여다보는 여기에서 나가고 싶었다


김혜순 시인의 시집 <당신의 첫>을 읽었다. 시집을 읽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어서 폐부를 찌르는 시인의 감정이 때로는 나의 심장을 겨누기도 하고, 노을을 바라보던 시인의 시선은 줄곧 빈 허공을 맴돌기도 하였다. 김 시인에게 '시란 불행을 더 불행답게, 슬픔을 더 슬픔답게, 파괴를 더 파괴답게 하는 존재'라고는 하지만 이따금 등장하는 젊은 여자와 늙은(혹은 나이 든) 여자가 사는 이곳은, 발가벗고, 때리고, 엉키고, 뒹굴던 메아리나라. '내가 풍경을 바라보는 줄 알았는데/풍경이 날 째려보고 있었다는 걸 안 순간 질겁했습니다'라고 했던 당신의 고백.


시를 읽는다는 건 허공에 걸린 자신의 조각상을 향해 칼을 겨누는 일이다. 차갑게 식은 그 몸뚱어리에서 뜨거운 피가 솟구칠 리는 없지만 한나절 그렇게 난자하다 보면 어느새 내 눈물이 붉은 피로 변해 흐르고, 내 이웃이 흘린 눈물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삶의 시간들이 뜨거운 숨결의 연속이어야 한다는 것을 시구 한 자 한 자를 되짚으며 깨닫게 된다.


태풍 송다가 비껴가는 일요일 오후. 옷이 비에 젖어 후줄근할지라도 마음만은 언제나 뽀송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손에 잡았던 김혜순 시인의 시집. 장마철인데 나는 마치 황폐한 사막에 다다른 듯 모래바람이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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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신호는 일상에서 수시로 겪는 일이지만 그중 하나는 신체에 대한 감각이 점차 둔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강이를 부딪혀 약간의 찰과상을 입어도, 어깨나 가슴을 부딪혀 가볍게 멍이 들어도 아픔에 대한 감각이 없으니 옷을 벗고 샤워를 하기 전까지는 제 몸에 난 상처를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어린 시절 이곳저곳에 멍이 든 어머니를 보며 "좀 조심하시지..." 하면서 타박 아닌 타박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저도 이제 그 나이에 가까워지면서 생각지도 못한 상처를 몸에 달고 사는 걸 보면 괜스레 쓴웃음이 나곤 합니다.


온몸의 신경 세포가 아주 예민하게 작동하던 젊은 시절에는 우리 일상에서 아픔이 없다면 얼마나 편할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발끝을 문에 부딪혀 발을 동동 구르거나 책장을 넘기다가 날카로운 종이 모서리에 슬쩍 베여 종일 쓰라리거나 할 때면 이런 사소한 아픔쯤은 차라리 느끼지 못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배부른 투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는 뜨겁다, 차갑다, 아프다 등의 피부감각을 지니지 못한 채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통증' 혹은 '통각 상실증'이라는 선천성 질환이지요. 이 질환을 가진 사람은 항상 생명의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통증을 못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 피부에 있는 통점, 냉점, 온점에서 오는 감각을 느끼지 못해서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철에도 땀을 흘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체온 조절이 되지 않고 이로 인하여 이 질환을 앓는 환자의 절반 정도가 3세 이전에 열사병으로 사망한다고 합니다. 물론 다른 환자들도 25세 이전에 대부분 사망한다고 하니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새삼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더구나 자신이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대한민국의 지도부는 마치 정신적 '무통증'을 앓고 있는 듯합니다. 취임한 지 3개월도 안 된 대통령의 지지율이 30%에도 이르지 못한다면 크게 반성하고 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건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무통증' 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그러나 '무통증'을 앓는 환자들이 자신의 통증을 감지하지 못해 위험에 처하는 것처럼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 고위직 인사들이 지금 당장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은 좋을지 몰라도 조기에 사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듯합니다.


우리는 지금 '정신적 무통증'을 앓는 정부 관리들의 삿된 소견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겪지 않아도 될 열사병을 대신 앓고 있는 듯합니다. 한두 달만 지나면 계절이 바뀌고 더위도 물러가겠지만 우리는 어쩌면 새로 개장하는 광화문 광장에서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삿된 소견을 가진 공무원들을 몰아내고 청정한 대한민국을 세우는 길은 지금의 더위만큼이나 길고 힘겨운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주변을 둘러보아도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극우 유튜버와 그 구독자들 그리고 70세 이상의 노인분들이 전부인 듯합니다. '정신적 무통증'을 앓는 사람들이 이런 실정을 알 리는 없겠지요. 알고 싶지도 않을 테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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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7-30 11: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제 뉴스에서 보니 긍정평가가 이제 20%라고 하네요. 권씨와 주고받은 카톡 때문에 더 떨어졌겠죠. 옳고 그름을 알면서 극우 지지자들만 믿고 모르는 척하는건지 꼼쥐님 말씀처럼 정말 모르는건지 답답한 노릇입니다. 지금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 10프로로 떨어져도 원인이 뭔지 모를것 같습니다.

꼼쥐 2022-07-31 14:09   좋아요 1 | URL
평생 남을 윽박지르고 죄를 자백하라고 겁이나 주던 몸이니 지지율이 10% 아니 한자릿수가 된다고 해도 자존심상 사과는 하지 않을 듯합니다. 여전히 지지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겠죠. 혼자 있을 때는 겁에 질려서 어찌할 줄 모르겠지만...

오후즈음 2022-07-30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지율은 신경 안 쓰고 국민만 보고 간다는데 20프로에 해당하는 국민만 보고 간다는 얘긴지 정말 답답하네요.

꼼쥐 2022-07-31 14:10   좋아요 2 | URL
20% 국민만 바라보고 꿋꿋이 가겠다는 말이겠죠. 그러다가 더 떨어지면 가족과 친인척들, 일부 검사들만 바라보고 간다고 할 테고 말이죠.

잉크냄새 2022-07-31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無羞惡之心 非人也(무수오지심 비인야)
맹자의 이 말씀이 이렇게 딱 맞아 떨어지는 경우도 없는 것 같아요.
한 마디로 인간 아니라는 거죠.

꼼쥐 2022-07-31 14:15   좋아요 1 | URL
정말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인 듯합니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니 인간도 아닌 셈이지요. 앞으로도 아마 반성이란 건 있을 수 없을 듯합니다. 악어의 눈물이지만 MB도 사과의 말은 있었는데 말입니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촛불 행렬을 보면서 자책했다고...
 
걷기의 세계 - 뇌과학자가 전하는 가장 단순한 운동의 경이로움
셰인 오마라 지음, 구희성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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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에 대한 찬사와 유용성에 대한 글은 꽤나 많이 읽었던 듯하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을 비롯하여 <느리게 걷는 즐거움>, 리베카 솔닛이 쓴 <걷기의 인문학>, 아널드 홀테인이 쓴 <어느 인문학자의 걷기 예찬>, 안젤름 그륀 신부님의 <길 위에서> 등 걷기와 관련된 책의 대부분을 읽어보았다. 그것은 단지 '읽어보았'을 뿐 집중하여 읽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내용에 공감하며 깊이 빠져들었던 책은 많지 않았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나는 사실 걷기와 연관되는 책이라면 일단 구매하거나 대여하는 습관이 있다. 읽고 읽지 않고는 차후의 문제이다. 그런 까닭에 표지만 한 번 넘겨보고 곧장 헌책방으로 팔려나간 책도 더러 있을 것이다. 이런 집착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나로서도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하지만...


"이 책에서 우리는 걷기의 기원과 어떻게 두뇌와 신체가 기계적이고 마술 같은 걷기를 실행하게 되었는지 알아보고, 걷기가 가져온 사고의 자유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또한 포볼 골프와 시골길 산책 또는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행진 등 많은 형태의 걷기에 대해 알아본다. 이 과정에서 걷기의 배울점과 개인과 사회가 걷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로운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p.8 '들어가며' 중에서)


그러나 책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이 책의 성격은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것과는 다소 결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내가 읽어 온 책들은 문학적 색채가 짙은 반면 걷기의 기원과 같은 과학적 접근이 필요한 부분은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었다. 전에도 물론 이과적 접근 방식이 필요한 이와 같은 종류의 책을 전혀 접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몇 페이지 넘기기도 전에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그런 책들은 대개 책의 제목마저 함께 기억에서 지워지곤 했다.


"땅 위에서든 해저에서든 걷기는 척수 신경 세포들의 제어 하에 리드미컬한 패턴으로 근육들이 순서대로 교차하며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는 일련의 동작들이다. 포유류에게 걷기란 신근과 굴근의 조합을 통해 팔다리를 이완하고 수축하는 과정이다."  (p.48)


그렇다고 이 책의 구성 전체가 그와 같이 딱딱하고 난해한 설명이나 과학적 이론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1. 걷기, 왜 좋은가 2. 걷기의 기원 3. 걷기의 메커니즘 4. 뇌 안의 GPS 5. 도시를 걷다 6. 몸과 뇌를 위한 치유 7. 창의적 걷기 8. 사회적 걷기'의 목차에서 보는 바와 같이 걷기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 함께 걷기의 인문학적 이로움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걷기에 대한 과학적, 인문학적 접근 방식을 모두 아우르는, 걷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고도로 숙련된 전문 워커Walkers들이다. 걷기는 몰입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수단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걷기는 다른 두 가지 정신의 상태를 오가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마음을 비우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집중해야 할 특별한 생각이 없는 상태로 걸을 때 기억과 의미를 처리하는 뇌 영역 전반에 거쳐 독특하면서도 창의적인 연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p.209~p.210)


뇌과학자이자 아일랜드에서 가장 유서 깊은 더블린트리니티대학의 교수인 셰인 오마라가 들려주는 <걷기의 세계>. 이 책에서 저자는 걷기의 인문학·사회학·과학에 대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며 현대인이 간과하고 있었던 '걷기의 세계'로 안내한다. 사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걸을 수 있지만 생각과 실천 사이의 간극은 남극과 북극만큼이나 멀고 멀어서 걷기의 장점과 신체에 미치는 이로움을 아무리 장황하게 설명한다 할지라도 다만 생각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뇌과학자 오마라가 들려주는 <걷기의 세계>와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을 함께 읽는다면 내일 아침 당장 집 주변 등산로에 선 당신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뻐꾸기 울음소리에 발을 맞춰 걷고 있는 당신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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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도 않은 능력을 당장 내놓으라며 윽박지르거나 강요할 수는 없다. 물론 그렇게도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우리는 종종 마주치게 된다. 아무리 좋은 자리에 앉아도 개인의 역량이 따라주지 못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을 수도 있고, 아무리 나쁜 자리에 앉아도 모든 악조건을 딛고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여 칭찬을 듣게 되는 경우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말하자면 주어진 환경이라는 건 때에 따라 단순한 핑계일 수도 있고, 개인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는 하나의 액세서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대통령의 지지율을 두고 말이 많다. 없는 능력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급하게 꿔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당사자인 대통령은 오죽이나 답답할까마는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 또한 인내심에 한계가 있는지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불과 두 달 전의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이 저질렀던 만행을 되돌릴 방법도 전무한 까닭에 답답함은 그저 일시적인 감정으로 그치지 않고 치료가 필요한 정신병의 수준으로 높아지는 것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연일 하락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방면에서 그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전임 검찰총장으로서 없는 죄도 만들어 내는 능력도 출중하고, 공약으로 내세운 연금 개혁을 이전 정부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능력이야 검사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하는 능력이니 제쳐두고, 새로운 연금 개혁 방식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자.


그동안 보여온 대통령의 신박한 연금 개혁 대안에 대해 나도 역시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그 1탄으로 내놓은 발암물질 범벅인 용산 공원의 개장(https://blog.aladin.co.kr/760404134/13670952)으로 가뜩이나 병약한 노인분들을 일찍 보낼 계획을 세웠는가 하면, 2탄으로 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의 안전은 신경 쓰지 말라는 지침을 내려 인근에 사는 노인분들을 편안히 보낼 방법을 세우기도 하였고(https://blog.aladin.co.kr/760404134/13709215), 최근에는 코로나 재확산을 방치함으로써 이를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정부는 다만 화장장 운영을 원활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노령연금이나 국민연금의 부족분을 일거에 해결하고 부족한 세수에 따른 복지예산의 부족분도 메울 수 있을 테니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우리 속담에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다방면에 능력이 없는 듯 보이지만 없는 죄를 만들어 내는 유능한 검사로서의 능력과 그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연금 개혁만큼은 자신의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과연 기재(奇才)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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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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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나 자기계발서보다 소설을 좋아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물론 그 이유 중 하나는 책을 읽는 재미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위에 서는 이유는 내가 삶에서 배워야 하는 여러 가르침들 중에서 소설은 단 한 가지만 제시한다는 점이다. 머리가 나쁜 나로서는 한 번에 여러 가르침을 설명도 없이 제시하였을 때,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할뿐더러 여러 가르침들 중 단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철학이나 자기계발서를 소설처럼 후루룩 읽었을 때는 그야말로 시간낭비일 뿐 유익한 독서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그동안의 독서 경험에서 얻은 나의 판단이었다. 예컨대 열 개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철학책이라면 열 번을 반복해서 읽는다 하더라도 그 속뜻을 완전히 깨우치기 어렵다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철학이나 인문서는 소설처럼 실제적인 설명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의 가르침이 철학처럼 명확하지 않을 때가 더러 있긴 하지만...


"인간은 애초에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키스를 했어도 잠자리를 함께했어도 알 수 없는 부분은 남는다. 다시 말해 인간이 인간이라는 유별난 생물이 된 이래로, 전달될 게 전달되지 않게 됐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말은 머릿속에서 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내고 터무니없는 것을 상상하게 하고, 엉뚱한 해석을 하게 한다."  (P.244)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을 읽은 소감은 한마디로 '사람은 결국 죽음과 허무에 이끌린다'는 것이었다. 이런 느낌은 전적으로 나만의 주관적인 견해이거나 소설 전체를 흐르는 분위기나 주제에도 부합하지 않는 지나친 편견일 수도 있다. 게다가 소설의 전반적인 서사나 작가의 의도 역시 나와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이것은 나만의 주관적인 느낌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 이미 없어진 슈퍼마켓을 그리워하며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조용한 공간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노인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연약한 게 흡사 환상처럼 보였다."  (P.146)


소설은 주인공인 오카다 씨가 아내로부터 이혼을 요구받고 십오 년 넘게 살았던 집에서 맨몸으로 쫓겨나게 된 장면으로 시작한다. 40대 후반의 남성, 출판사에 다니고 스무 살 넘은 아들은 미국에 유학을 가 있다. 아내와 합의를 본 기한은 두 달.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기에는 빠듯한 시간이지만 오카다 씨가 원하는 조건은 두 가지, 근처에 자연림이 남아 있는 공원이 있을 것과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할 수 있는 오래된 단독주택일 것. 부동산을 열 군데 이상 돈 끝에 결국 포기하려는 순간 지인의 소개로 두 조건을 만족하는 집을 구하게 된다. 집주인인 소노다 씨는 미국에 사는 아들 부부가 불러서 이주를 하게 되었지만 오랫동안 살았던 집을 그대로 남겨두고 싶기도 하고 집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세를 주겠다는 생각으로 부동산에 내놓지 않았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이사를 하고 오카다 씨는 집과 직장을 오가며 낡은 집을 수리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소노다 씨가 두고 간 고양이 후미를 돌보며 낡은 집을 수리하는 데 무료한 시간을 쓰고 있는 오카다 씨. 그러다 우연히 들른 집 근처의 어느 식당에서 열세 살이나 어린 옛 애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아내와의 결혼을 이어가던 시절에 5년 동안이나 만났던 그녀의 이름은 가나. 말하자면 내연녀였던 가나 씨는 미래가 없는 오카다 씨와 헤어져 연락을 하지 않던 사이였다. 몸이 아픈 아버지를 돌보며 살아가고 있는 가나 씨의 집은 오카다 씨의 집과 아주 가까웠다.


"하늘이 높다. 트레이에 질서 정연하게 늘어놓여 오븐에 넣어지기를 기다리는 버터롤처럼 조개구름이 떠 있다. 공기도 건조하고 얼굴에 닿는 바람도 시원하다. 요 근래 좋은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자전거를 달리다 보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P.144)


다시 만난 두 사람이 결국 그렇고 그런 관계로 발전하는 뻔한 로맨스 소설을 연상하겠지만 소설의 결말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2년을 약정하고 떠났던 소노다 씨가 귀국하고, 그렇게 공을 들였던 오카다 씨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비워주게 된다. 그리고 근처에 매물로 나온 땅을 계약하고 미래에 자신이 들어가 살 집을 새롭게 구상하게 되는데...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로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작가는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에서 시종일관 기름기를 싹 걷어낸 건조한 문체를 선보이고 있다.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읽는 이들은 이러한 문체로 인해 삶의 허무에 쉽게 젖어들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의 영혼이 일시적으로 머무는 육체를 맹목적으로 가꾸는 것처럼 영원하지 않은 어떤 대상(예컨대 집과 같은)을 가꾸는 데 필요 이상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남들로부터 '우아하다'는 평을 들었다 한들 그게 과연 우리가 지불한 돈과 시간에 대한 적정한 보답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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