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신호는 일상에서 수시로 겪는 일이지만 그중 하나는 신체에 대한 감각이 점차 둔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강이를 부딪혀 약간의 찰과상을 입어도, 어깨나 가슴을 부딪혀 가볍게 멍이 들어도 아픔에 대한 감각이 없으니 옷을 벗고 샤워를 하기 전까지는 제 몸에 난 상처를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어린 시절 이곳저곳에 멍이 든 어머니를 보며 "좀 조심하시지..." 하면서 타박 아닌 타박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저도 이제 그 나이에 가까워지면서 생각지도 못한 상처를 몸에 달고 사는 걸 보면 괜스레 쓴웃음이 나곤 합니다.
온몸의 신경 세포가 아주 예민하게 작동하던 젊은 시절에는 우리 일상에서 아픔이 없다면 얼마나 편할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발끝을 문에 부딪혀 발을 동동 구르거나 책장을 넘기다가 날카로운 종이 모서리에 슬쩍 베여 종일 쓰라리거나 할 때면 이런 사소한 아픔쯤은 차라리 느끼지 못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배부른 투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는 뜨겁다, 차갑다, 아프다 등의 피부감각을 지니지 못한 채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통증' 혹은 '통각 상실증'이라는 선천성 질환이지요. 이 질환을 가진 사람은 항상 생명의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통증을 못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 피부에 있는 통점, 냉점, 온점에서 오는 감각을 느끼지 못해서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철에도 땀을 흘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체온 조절이 되지 않고 이로 인하여 이 질환을 앓는 환자의 절반 정도가 3세 이전에 열사병으로 사망한다고 합니다. 물론 다른 환자들도 25세 이전에 대부분 사망한다고 하니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새삼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더구나 자신이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대한민국의 지도부는 마치 정신적 '무통증'을 앓고 있는 듯합니다. 취임한 지 3개월도 안 된 대통령의 지지율이 30%에도 이르지 못한다면 크게 반성하고 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건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무통증' 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그러나 '무통증'을 앓는 환자들이 자신의 통증을 감지하지 못해 위험에 처하는 것처럼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 고위직 인사들이 지금 당장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은 좋을지 몰라도 조기에 사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듯합니다.
우리는 지금 '정신적 무통증'을 앓는 정부 관리들의 삿된 소견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겪지 않아도 될 열사병을 대신 앓고 있는 듯합니다. 한두 달만 지나면 계절이 바뀌고 더위도 물러가겠지만 우리는 어쩌면 새로 개장하는 광화문 광장에서 다시 촛불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삿된 소견을 가진 공무원들을 몰아내고 청정한 대한민국을 세우는 길은 지금의 더위만큼이나 길고 힘겨운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주변을 둘러보아도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극우 유튜버와 그 구독자들 그리고 70세 이상의 노인분들이 전부인 듯합니다. '정신적 무통증'을 앓는 사람들이 이런 실정을 알 리는 없겠지요. 알고 싶지도 않을 테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