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진드기' 때문이었을까요?

오늘 아침에는 산을 찾는 사람이 크게 줄었더군요.

강원도 춘천에서는 살인 진드기 바이러스 감염으로 숨진

사람이 있었다지요?

언론의 보도가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했나 봅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중국에서는 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 소식이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토네이도로 인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그리고 미국 남부에서는 미친 개미의 공격 소식이...

 

우리가 사는 지구는 그 크기 때문에

인간의 눈에는 국지적이고 미약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변화의 속도는 놀랍도록 빠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수십억년을 살았다는 지구의 나이를 생각할 때

어느 정도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아주 작은 잘못들이

70억 지구인들의 커다란 잘못으로 확대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잊곤 합니다.

 

5월의 숲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화하고 달콤한 향기가 가슴까지 시원하게 하는

아카시아 꽃이,

노랗게 흐드러진 애기똥풀이

그리고 푸르름을 더하는 신록들이

아침마다 나를 반깁니다.

 

나는 인간에게서 이런 변함없는 환대를 받아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이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 손으로 파괴하고

자연의 역습을 피해

집 안에서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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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우울 - 최영미의 유럽 일기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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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에 대한 저 나름의 버릇이 한두 가지쯤 있게 마련이지만 내게도 그런 게 있다.  그 중에서도 좀 유별나다 싶은 것은 유명 작가의 신간이 나왔을 때, 신간을 읽기보다는 오히려 오래 전에 나왔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찾아 읽는 버릇이 바로 그것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일약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최영미 시인은 적어도 1년에 한두 권의 책을 꾸준히 내왔던 듯하다.  그런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대다수 독자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그동안 시에는 무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인이 시집만 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고집스런 나의 편견은 시인의 작품마저 멀리하게 만들었었나 보다.

 

1994년에 출판된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베스트 셀러가 되었을 때만 해도 시인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24살의 젊은 나이에 이혼한 그녀의 이력도 그랬고, 시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솔직함 - 예컨대 '자위 끝의 허망한 한 모금 니코틴의 깊은 맛을'<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마지막 섹스의 추억>, 사람들은 내가 이혼한 줄만 알지/몇번 했는지 모른다'<어떤 사기>, 녀석과 간음할 생각으로/뱃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어떤 게릴라>, '아아 컴-퓨-터와 (X)할 수 있다면'-때문에 '도발적'이라거나 '트러블메이커'라는 세간의 비아냥이 줄곧 이어졌다.  게다가 시인의 이름이 알려질수록 회자되는 스캔들도 끊이지 않았다.

 

작가의 산문집 <시대의 우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의 이미지와는 도통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책이다.  차분하고 편안한 문체와 여행지에서의 풀어진 모습과 자유로운 생각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최영미 시인이 이런 사람이었어?'하는 의문이 절로 들게 할 정도이다.  '최영미의 유럽 일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작가가 두 차례에 걸친 유럽 여행-1995년 11월~12월, 그리고 1996년 4월~7월-을 하면서 틈틈이 쓴 일기를 정리해 도시별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한 작가답게 유럽의 미술관과 작품 감상이 주를 이루지만 흐린 날 언뜻언뜻 비치는 파란 하늘처럼 가벼운 일상들이 무늬를 더한다.

 

"기차를 타고 미지의 도시에 다가갈 때의 느낌은 서투른 연애의 메커니즘과 비슷한 데가 있다.  우리가 어느 한 장소의 혹은 한 사람의 본질을 가장 잘 깨닫게 되는 것은 그 속에 머물 때보다는 오히려 그것에 다가갈 때, 혹은 그것을 떠날 때인지도 모른다.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경험할 것인가, 아니면 환멸을 맛볼 것인가는 어느 정도 변덕스런 날씨나 그때그때 당신의 컨디션과 같은 우연의 폭력에 의해 좌우된다."    (p.149)

 

책을 읽고 이따금 블로그에 리뷰를 쓸 때마다 나는 '실패한 독자(讀者)'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읽은 작품의 문체가 화려하면 나도 그에 따라 화려해지고, 소박하고 정겨우면 또 그렇게 따라하고, 슬프고 외로우면 비슷한 감정으로 리뷰를 쓰기 때문이다.  독자의 감정이나 문체마저 작가의 그것을 따르게 한다면 작가의 입장에서는 일단 성공했다고 평해도 무방하겠지만 책을 읽는 내 입장에서는 오롯이 내 의견을 고집하지 못하는 '실패한 독자'로 남게 마련이다.  책을 읽고 자신의 것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약간의 우울함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만큼 책이 내 맘에 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실패한 독자'가 되기를 꿈꿀 뿐 아니라 그런 책에 매료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빈다.  그날 그 뮌헨의 숲에서 날 소스라치게 했던 빗방울처럼 나 또한 누군가의 현재에 툭, 내려앉기를.  어느날 문득 기억의 숲에서 솟아올라 그를 깨우기를......"    (p.144)

 

어쩌면 우리는 내가 저지른 지난 잘못을 참회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내게 용서를 비는 마음 밑바닥의 나를 대면하고 한바탕 울음과 함께 서로의 등을 토닥이고 나면 비로소 허기진 마음 한 곁에 희망의 싹이 움트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실패한 독자(讀者)'로 남아 작가를 닮은 리뷰 한 편을 끄적이겠지만 내일 또 다른 실패를 꿈꾸게 될지도 모른다.  실패한 독자로서.

 

"곧 나는 지리한 일상을 되찾았다.  이곳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잠시 맛보았던 새 세상, '거기'의 추억과 냄새도 차츰 희미해져갔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내가 앞으로도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리라는 것을.  내 속의 우울을 들여다보며 이 시대의 우울을 통과하기 위해서."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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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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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웠다.  시골의 작은 마을이 책을 매개로 전 세계의 관광객들과 연결된다는 것이.  그것은 어쩌면 책 하나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잘 보존된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후대에 와서 책과 함께 꽃을 피우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의 변방이었던 우리 나라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기에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부러움과 약간의 시기심을 느껴야만 했다.

 

우리 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기는 하다.  파주 출판단지가 그것인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책마을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 또한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람 삼아 파주 출판단지를 가보았겠지만 그곳에는 몇몇 출판사가 들어서 있고, 각 출판사가 운영하는 북아울렛과 갤러리, 그리고 외지인들을 유혹하는 북카페가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특색 있는 현대식 건물들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역사의 숨결과 오래된 책에서 풍기는 쾨쾨한 곰팡이 냄새는 맡을 수 없다.  결국 파주 출판단지는 출판사가 밀집한 소도시에 불과한 것이다.  하기에 역사와 문화 유산을 배경으로 전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유럽의 책마을에 비하면 파주 출판단지는 다른 나라의 관광객을 유혹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뜻있는 작가들이 모여 강정마을에 책마을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제주 해군기지를 짓겠다는 바로 그 마을이다.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극한 대립을 펼치고 있는 강정마을에 대규모 책마을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의 피폐해진 마음을 위로하겠다는 취지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유럽의 책마을과는 성격도 다르고 모양도 다를 것임에 분명하다.  아무튼 우리가 책을 통하여 다른 나라의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어떤 획기적인 유인책이 있어야만 하고 지금으로서는 요원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마을 주민 전체가 중심이 되어 책마을 잔치를 여는 스위스의 생 피에르 드 클라주를 시작으로 유럽 곳곳에 위치한 24곳의 책마을을 돌며 저자가 만난 책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의 세파에 밀려났던 중고, 중소 서적상들이 책이 설 자리를 되찾으려는 이런 현상은 지방문화의 활력을 도모하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내는 사회운동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우리 유년기의 기억을 가장 강렬한 냄새로 물들인다.  아마 엄마 젖 냄새 다음으로 강렬하지 않을까.  본능을 자극하는 달콤하고 야만적인 젖 냄새가 가장 깊은 자연의 냄새라고 한다면, 책은 가장 해묵은 문명의 냄새를 풍긴다.  엄마 품에서 떨어져, 아니면 엄마 품 안에서도, 처음 책장을 넘길 때 고약하게 우리의 콧구멍을 파고들던 그 종이와 잉크 냄새......"    (p.9)

 

책마을을 소개하는 글은 가족 모두가 산보를 나온 듯 가볍고 경쾌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스위스 마스 다주네에서 우리도 남과 북이 매년 단 하루라도 모여 책마을 잔치라도 벌일 수 있기를 소망기도 하고, 독일의 뷘스도르프에서는 아픈 전쟁의 기억을 떠올리며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1962년 세계 최초의 책마을을 선언하고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여온 영국의 헤이 온 와이에서 저자는 이제는 책을 주제로 한 관광촌의 전형이 된 헤이 온 와이를 아쉬워 하기도 한다.

 

"어쨌든 출판 관광으로 완전히 자족하는 이 마을에서 보낸 하루는 아주 잘 짜인 한 편의 '트릭' 속에 빠진 날이었다.  마주치던 노인은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맞잡으며, "헤이 온 와이를 즐기고 가시게"라고 덕담을 던지곤 했다.  제법 그럴싸한 책을 진열장에 내세운 '더 북 숍' 앞에서 입맛을 다시며 어정대고 있자니 점심을 차려준 식당 아주머니가 지나가다가 한마디 던졌다.  그런데 그 말이 참 걸작이었다.  "아니, 여기서 돈 다 쓰고 갈 참이구려!""    (p.289)

 

저자는 책마을을 돌며 시골의 그 작은 마을에서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에 감동하며 우리의 현실을 시시때때로 생각하곤 한다.  한번은 '윌슨 런'이라는 16킬로미터 달리기 경주를 하는 한 무리의 소녀들을 보며 '밤늦도록 학원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아무리 눈을 반짝여도 풀이 죽을 수밖에 없는, 입시 지옥의 가마솥 속에서 젊음을 불사르는 우리 딸들의 안쓰러운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2007년 봄에서 2008년 초 겨울까지 유럽의 책마을을 돌며 책과 더불어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했던 저자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현실을 생각할 때, 저자가 느꼈을 마지막 소회는 역시 진한 아쉬움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책이 잘되자면, 우선 책을 다루는 사람이 잘되어야 한다.  책을 쓰는 사람뿐 아니라, 만들고 전하는 모든 사람이 중시되어야 한다.  엘리트도 적지 않게 투입된 요즘의 출판계에도, 일반이 생각하기에 책은 필자와 독자만 있고, 그 사이에 있는 편집자는 있는 듯 없는 듯하다.  그런 날이 언제일까.  중매쟁이들이 어느 출판사 다니는 총각이나 색싯감을 잡으려고 난리를 피우고, "책 만드는 놈한테 딸을 보내야 할 텐데......"라든가, "아무개 서점 아들 없소?"하면서 수소문하는 부모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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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시공 -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
정수복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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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학창시절 시험을 코앞에 둔 학생이 공부할 양은 많고, 시간은 넉넉하지 않을 때 밑줄을 그으며 읽었던 '요점 정리'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저자도 그랬으리라.  책의 내용을 알차게 꾸미겠다는 욕심에 준비한 것은 많은데 지면은 한정되어 있고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꼭 넣겠다 생각했던 것을 뺄 수도 없는 처지이고...  이쯤 되면 저자도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결국 저자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인용글을 과감히 삭제할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겠다고 생각한다.  책은 저자가 처음에 의도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간다.  책이 인쇄되고 제본된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저자가 느꼈을 실망감과 아쉬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책이다.

 

"원고의 양은 계속 늘어났다.  욕심을 줄이고 초심을 되찾아야 했다.  그래서 원래 생각했던 대로 일단 가장 산뜻하고 기분 좋고 경쾌하고 재미있는 글들을 가려 뽑아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로 했다.  그렇게 추려지고 모인 글들이 이 책을 이루고 있다.  책을 쓰는 몇 년 동안 파리에서 찍은 책 읽는 사람과 책이 있는 장소의 사진들을 글과 함께 배치했다.  사진이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면 좋겠다."    (p.23) 

 

책을 읽는 시간과 공간, 책을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의 제목은 그래서 <책인시공 冊人時空>이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제1부 책을 읽는 시간, 제2부 집 안에서 책을 읽다, 제3부 집 밖에서 책을 읽다이고 책을 읽는 사람들은 사진으로서 책의 배경 역할을 한다.  본문에 앞서 "독자 권리 장전"이란 제목으로 쓴 17개의 항목은 재미있다.  제1부는 '책이란 무엇인가'라는 소제목으로 시작된다.  책에 대한 저자의 주관이 드러나는 대목이니 빼먹을 수 없겠다.

 

"책의 면은 선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다.  글자와 글자 사이, 행과 행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다.  면의 가장자리에도 빈자리가 남아 있다.  종이 면 위에 인쇄된 글자가 목소리라면 행간과 가장자리의 여백은 침묵이다.  그렇다면 책의 본문 편집은 단순히 글자를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고용함, 채움과 비움을 조합하여 책을 읽는 사람의 느낌과 생각이 물결처럼 순조롭게 흐르게 하는 고귀한 예술이다."    (p.31)

 

조금 딱딱한 인상을 주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이런 종류의 책은 늘 분주하게 움직이는 청소년들이나 대학생들에게는 딱이겠다 싶었다.  시간에 쫓기고 공부해야 할 양은 많으니 학생들은 대부분 간략하게 줄인 '요점 정리'를 선호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길들여진 습관은 독서에서도 나타나는 듯하다.  비유와 은유가 포함된, 그러면서도 길게 이어지는 문학보다는 해야 할 말만 씌어있는 설명문이나 논설문을,  다 읽고도 한참을 생각해야 하는 '시'보다는 산문을, 그도 저도 아니면 아무 생각없이 읽을 수 있는 만화나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체가 짧은 단락만으로 꾸며진 이런 종류의 책이 좋을 때가 있다.  진득하니 앉아 책을 읽지 못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독서를 나로서는 내용이 길게 이어지는 소설이나, 깊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철학서의 경우에 앞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다시 넘어가야 하는 경우가 하도 많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물론 그 횟수에 비례하여 시간도 많이 걸린다.  반면에 이런 책은 책장을 앞으로 되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앞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뒷부분을 읽는 데 하등의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그것도 종이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책에 관련된 신간 도서가 나올 때마다 읽고 싶은 유혹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살 때마다 모조리 다 읽고 넘어가는 것도 아니다.  어떤 때는 아직 읽지도 않은 새책이 여기 저기 굴러다니다 괜히 방만 어지럽히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는 책과 관련된 책을 궁금해 한다.  그리고 저자도 그렇지만 나도 간혹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된다.  그 행복한 풍경을 놓치기 싫어서이다.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을 바라보며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 피어나는 생각들을 상상해본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옆이나 앞에 앉은 사람이 책을 읽을 때 슬쩍 그 책의 제목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해본다.  그 순간 책 읽는 사람은 나에게 말을 거는 풍경이 되고 풍경화와 초상화 사이의 거리가 없어진다."    (p.292)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지금도 책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이 책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하지 않던가.  많은 내용을 한 권의 책에 담으려 했던 저자의 욕심으로 인해 책의 내용은 오히려 빈약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덩달아 가독력도 떨어진다.  오히려 책을 읽는 시간이면 시간, 공간이면 공간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책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저자도 약간의 여유로운 마음으로 책을 완성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마음에 하는 얘기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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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 - 나를 달뜨게 했던 그날의, 티베트 여행 에세이
박동식 글.사진 / 북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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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공직자가 벌인 부적절한 행동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어찌 보면 이런 일쯤이야 미리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뭔 말이냐고?  어설픈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는 개인의 도덕성은 안중에도 없고 그닥 큰 차이도 없는 능력만을 하느님처럼 맹신하는 까닭에 벌어진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선진국일수록 도덕성의 잣대는 냉정하고 엄한 법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 있느냐'는 식으로 탈법과 도덕의 문제 만큼은 유독 관대한 편이다.  알다시피 현 정부의 임명직 관리들도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기 어렵다.  그런 사람들을 최고 공직자의 자리에 앉혀놓고도 나라가 편안하기를 바랬다면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이다.

 

속에서 열불이 나는 것을 가라앉히려 박동식의 <나를 달뜨게 했던 그날의 열병>을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데에는 울화를 삭이려는 목적 말고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면 마땅히 우리 주변국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사연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비록 그들을 직접적으로 돕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생각만으로라도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님의 나라를 염려한다고 비웃을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게만 따질 문제도 아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제 욕심만 차리려다 나라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런 연유로 나는 티베트 관련 서적을 두 권이나 샀다.  읽어야 할 책이 여전히 밀려있는데 또 욕심을 부린 꼴이다.  아무튼 중국의 통치에 반대하는 티베트인들은 2009년 이래 110명 이상이 분신하였고 그들 대부분이 죽었다고 한다.  우리의 관심에서는 아주 멀리 있지만 지금도 티베트인들은 독립을 갈망하며 분신을 기도하고 있다.

 

"노인을 만나기 전에는 티베트의 독립은 외국인에게나 주목받는 정치적 쟁점일 뿐, 정작 티베트인들은 무관심하거나 체념한 사안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독립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티베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언론과 종교,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 극단적으로 제한을 받는 그들에게 독립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에 가까운 이야기일 것이다.  입 밖으로 내뱉는 것 자체가 때로 자신의 신변을 위협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p.202)

 

일반적인 여행기와는 달리 티베트를 다녀온 사람들의 글은 어떤 범접하지 못할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설산을 가까이 둔 지형적 특성도 그렇거니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때묻지 않은 순박함이 독자들로 하여금 막연한 추측을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른다.   책은 1부. '라싸를 향하여'와 2부. '카일라스를 향하여로 이루어져 있다.  특이하게도 1부의 시작은 실종된 친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카트만두의 한 숙소에서 만났던 동갑내기 친구는 무스탕으로, 저자는 티베트로 향할 때 먼저 돌아오는 사람이 서로에게 메일을 보내기로 약속했지만 그에게 보내는 메일은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서울로 돌아온 후 녀석의 가족을 만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답답한 일이었다.  전산 시설이 낙후된 네팔에서 그의 흔적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확인된 사항에 의하면 비자를 연장한 흔적도, 국경을 출국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찾아보지 못한 어딘가에 그의 출국 기록이 숨겨져 있기를 바라야 했다."    (p.19)  

 

1부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는 조장(鳥葬)을 목도하고 쓴 글이었다.  척박하고 황량하여 시신을 태울 나무도 구하기 어려운 곳 티베트, 시신의 살점을 모두 독수리의 먹이로 던져주고 남겨진 뼈만 수습하는 그들의 풍습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분명히 보여주는 듯했다.

 

"언덕을 내려오기 전 뒤를 돌아보았다.  포식을 마친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에 원을 그리며 선회하고 있었다.  결코 풀리지 않는,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를 독수리는 알고 있는 것일까.  이제 됐어, 산을 내려가자.  우리 중에 몇이 또 그렇게 떠났고 여전히 나는 남았으니 삶은 아직 나의 편.  사는 것이 구차해도 얼마나 좋은가.  여전히 나에게는 보장되지 않은 내일이 있으니 오늘을 휴치처럼 구겨도 죄 없음."    (p.146)

 

2부 '카일라스를 향하여'에서 저자는 자신이 겪은 소소한 일상과 카일라스 순례길을 동행했던 사람들, 그리고 저자를 감동시킨 현지인들과 그곳 풍광들의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1부에 비하면 이야기의 대부분이 밝고 가볍다.  사진으로 만나는 그곳의 풍경도 한결 밝아진 듯하다.

 

"이제 나의 여행은 서서히 이별 준비가 필요했다.  그리워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별은 차라리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 나은 일이겠지만 헤어질 날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이루지 못할 꿈이 없는 것처럼, 견디지 못할 이별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아쉬움과 미련은 어디에든 남는 것.  어디에서 멈추든 여행자의 길은 늘 아련하고 서글픈 것이다.  라싸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그만큼 이별도 가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p.354)

 

명상을 하듯 시작된 나의 독서도 이렇게 끝을 맺었다.  어떤 시각, 어떤 장소에서든 내 마음이 지옥이면 그곳 또한 지옥이 아니겠는가.  세상은 점점 이기심과 탐욕으로 굳어가는데 자신 혼자만 도덕을 강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항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유혹에 편승하여 나마저 그 마음을 놓는다면 세상은 내가 놓은 그 마음만큼 더 더럽혀지지 않겠는가.  한 사람의 잘못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사회의 모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잠시 잊혀질 뿐이다.  하기에 우리 모두는 이번 일의 공범이며 저마다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겨야 할 죄인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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