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 - 나를 달뜨게 했던 그날의, 티베트 여행 에세이
박동식 글.사진 / 북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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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공직자가 벌인 부적절한 행동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어찌 보면 이런 일쯤이야 미리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뭔 말이냐고?  어설픈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는 개인의 도덕성은 안중에도 없고 그닥 큰 차이도 없는 능력만을 하느님처럼 맹신하는 까닭에 벌어진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선진국일수록 도덕성의 잣대는 냉정하고 엄한 법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 있느냐'는 식으로 탈법과 도덕의 문제 만큼은 유독 관대한 편이다.  알다시피 현 정부의 임명직 관리들도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기 어렵다.  그런 사람들을 최고 공직자의 자리에 앉혀놓고도 나라가 편안하기를 바랬다면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이다.

 

속에서 열불이 나는 것을 가라앉히려 박동식의 <나를 달뜨게 했던 그날의 열병>을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데에는 울화를 삭이려는 목적 말고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면 마땅히 우리 주변국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사연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비록 그들을 직접적으로 돕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생각만으로라도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님의 나라를 염려한다고 비웃을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게만 따질 문제도 아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제 욕심만 차리려다 나라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런 연유로 나는 티베트 관련 서적을 두 권이나 샀다.  읽어야 할 책이 여전히 밀려있는데 또 욕심을 부린 꼴이다.  아무튼 중국의 통치에 반대하는 티베트인들은 2009년 이래 110명 이상이 분신하였고 그들 대부분이 죽었다고 한다.  우리의 관심에서는 아주 멀리 있지만 지금도 티베트인들은 독립을 갈망하며 분신을 기도하고 있다.

 

"노인을 만나기 전에는 티베트의 독립은 외국인에게나 주목받는 정치적 쟁점일 뿐, 정작 티베트인들은 무관심하거나 체념한 사안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독립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티베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언론과 종교,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 극단적으로 제한을 받는 그들에게 독립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에 가까운 이야기일 것이다.  입 밖으로 내뱉는 것 자체가 때로 자신의 신변을 위협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p.202)

 

일반적인 여행기와는 달리 티베트를 다녀온 사람들의 글은 어떤 범접하지 못할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설산을 가까이 둔 지형적 특성도 그렇거니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때묻지 않은 순박함이 독자들로 하여금 막연한 추측을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른다.   책은 1부. '라싸를 향하여'와 2부. '카일라스를 향하여로 이루어져 있다.  특이하게도 1부의 시작은 실종된 친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카트만두의 한 숙소에서 만났던 동갑내기 친구는 무스탕으로, 저자는 티베트로 향할 때 먼저 돌아오는 사람이 서로에게 메일을 보내기로 약속했지만 그에게 보내는 메일은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서울로 돌아온 후 녀석의 가족을 만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답답한 일이었다.  전산 시설이 낙후된 네팔에서 그의 흔적을 찾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확인된 사항에 의하면 비자를 연장한 흔적도, 국경을 출국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찾아보지 못한 어딘가에 그의 출국 기록이 숨겨져 있기를 바라야 했다."    (p.19)  

 

1부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는 조장(鳥葬)을 목도하고 쓴 글이었다.  척박하고 황량하여 시신을 태울 나무도 구하기 어려운 곳 티베트, 시신의 살점을 모두 독수리의 먹이로 던져주고 남겨진 뼈만 수습하는 그들의 풍습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분명히 보여주는 듯했다.

 

"언덕을 내려오기 전 뒤를 돌아보았다.  포식을 마친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에 원을 그리며 선회하고 있었다.  결코 풀리지 않는,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를 독수리는 알고 있는 것일까.  이제 됐어, 산을 내려가자.  우리 중에 몇이 또 그렇게 떠났고 여전히 나는 남았으니 삶은 아직 나의 편.  사는 것이 구차해도 얼마나 좋은가.  여전히 나에게는 보장되지 않은 내일이 있으니 오늘을 휴치처럼 구겨도 죄 없음."    (p.146)

 

2부 '카일라스를 향하여'에서 저자는 자신이 겪은 소소한 일상과 카일라스 순례길을 동행했던 사람들, 그리고 저자를 감동시킨 현지인들과 그곳 풍광들의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1부에 비하면 이야기의 대부분이 밝고 가볍다.  사진으로 만나는 그곳의 풍경도 한결 밝아진 듯하다.

 

"이제 나의 여행은 서서히 이별 준비가 필요했다.  그리워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별은 차라리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 나은 일이겠지만 헤어질 날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이루지 못할 꿈이 없는 것처럼, 견디지 못할 이별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아쉬움과 미련은 어디에든 남는 것.  어디에서 멈추든 여행자의 길은 늘 아련하고 서글픈 것이다.  라싸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그만큼 이별도 가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p.354)

 

명상을 하듯 시작된 나의 독서도 이렇게 끝을 맺었다.  어떤 시각, 어떤 장소에서든 내 마음이 지옥이면 그곳 또한 지옥이 아니겠는가.  세상은 점점 이기심과 탐욕으로 굳어가는데 자신 혼자만 도덕을 강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항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유혹에 편승하여 나마저 그 마음을 놓는다면 세상은 내가 놓은 그 마음만큼 더 더럽혀지지 않겠는가.  한 사람의 잘못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사회의 모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잠시 잊혀질 뿐이다.  하기에 우리 모두는 이번 일의 공범이며 저마다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겨야 할 죄인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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