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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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하고 노력하면 더러 좋은 일도 생기는 게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삶이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지는 않는 듯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네 앞에 좋은 일은 절대 생기지 않을 테니 아예 꿈 깨시라', 하늘의 계시가 떨어진 것만 같습니다.  그게 다 돈 때문이라면 듣는 '돈'은 기분 나쁠까요?  아무튼 요즘 담뱃값 인상이다, 연말정산이다 나라가 온통 돈 얘기로 뒤숭숭합니다.  증세다, 아니다 말도 많구요.

 

지난해 추석이었나 봅니다.  다들 뭐가 그리 바쁜지 명절에나 간신히 얼굴을 보게 되는 동서들과 처가에서 만났을 때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손윗동서 왈, '경제학을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는 느낌이 들어.' 하는 게 아닙니까.  참고로 손윗동서는 모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대학 시절에 경제학을 전공했던 나도 형님(동서)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 짠하지 않나요?  영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이제는 고국인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열정을 불사르는(?) 분이, 게다가 주전공이 경제학이면서 자신의 전공마저 부정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읽으며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아무튼 나는 책을 읽는 내내 형님(동서)을 생각했었습니다.  눈물이 나려는 걸 꾹꾹 눌러 참으면서 말이지요.  저자도 책의 1부 1장에서 경제학자들의 허무맹랑한 행태에 대해 지적하고 있더군요.  경제학자입네 하고 떠벌리면서 지금까지 제대로 된 해결책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자기 분야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마당에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과대망상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타당해 보입니다.  아, 저자도 형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싶어서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나는 사실 인류의 보편성을 끄집어 내는 학문(예컨대 경제학이나 심리학 등과 같은)을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보편적이라는 것은 개별적인 인간 단 한 명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어떤 심리학 책에서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라고 전제했을 때, 누군가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인가 하면 다른 누군가는 마더 테레사처럼 완전히 이타적인 사람이기도 한 것이기에 그 전제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는 인간이 아주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며 효율성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가정했을 때 그 가정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누구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책의 구성은 프롤로그와 1부 '경제학에 익숙해지기', 2부 '경제학 사용하기', 에필로그 및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친절하게도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법'에 대하여 책의 첫머리에 기술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이 책에 10분을 투자할 수 있는 독자와 반나절을 투자할 수 있는 독자가 있을 때 그들 독자가 이렇게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저자의 기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경제학의 특별한 방식(숫자와 미분 방정식이 난무하는)으로 쓰여진 책은 아닙니다.  경제학의 역사나 다양한 접근법을 일반인도 알기 쉽게 정리하였으며 여러 학파의 장단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2부에서 말하는 '경제학 사용하기'는 경제학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경제 현실을 파악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세계화 시대를 사는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경제 현실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경제학 안내서라고나 할까요.

 

저자는 이 책에서 고차원적인 경제 수학 대신 행동 재무학, 진화 경제학 등 제반 경제 이론이 거둔 성과와 경험은 물론이고 심리학, 영화 등 누구에게나 친숙한 사례를 활용함으로써 경제를 전혀 모르는 독자라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 부분에서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2008년 굴로벌 금융 위기는 더 이상 경제를 전문 경제학자와 '기술 관료'에게 맡겨 둘 수 없다는 사실을 처참하게 깨닫게 해 주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능동적인 경제 시민이 되어 경제의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    (p.444)

 

사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딱딱하고 배우기도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이 책의 리뷰를 시작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경제학에 관심을 갖고 즐겁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저자뿐만 아니라 많은 경제학자들의 고민일 것입니다.  경제를 떠나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현대의 삶에서 경제에 대한 이해나 학습의 필요성은 누구나 절감하지만 실제로 시간을 내어 공부를 한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1400조에 이르는 대규모 양적완화를 실행하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년에 금리 인상을 결정한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런 문제에 관심을 끄고 산다고 지금의 삶이 크게 달라질 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연말정산에서 내가 냈던 세금이 얼마나 환급될지 그게 더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제는 참으로 멀고도 가까운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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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나무의철학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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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여류작가 무라야마 유카의 소설 <별을 담은 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막내인 미키가 베란다에서 달을 구경하고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말합니다.  오늘 달님이 정말 예쁘다고.  그러자 언니인 사에가 다가와 '무슨 슬픈 일이라도 있느냐' 묻습니다.  미키는 아니라며 시치미를 떼고 사에는 혼잣말처럼 말합니다.  자신은 슬픈 일이 있을 때면 달이나 별, 꽃 같은 게 유난히 예뻐 보인다고 말이죠.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인데 저는 이 대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작가가 쓴 이 대목의 글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없이 기쁜 일 앞에서는 세상에 오직 나만 보이고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게 되는가 봅니다.  내 주위의 자연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러나 금방이라도 가슴 속에서 푸른 물이 울컥울컥 배어날 것 같은 슬픈 일을 당하면 나란 존재는 금세 잊혀지게 마련이고 주변만 도드라져 보이게 되는 법이죠.  나란 존재가 먼지보다 더 작게 느껴질 때, 세상을 향해 뻗어 있는 마지막 밧줄마저 놓아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 때, 그런 쓸쓸하고 우울한 기분을 달래는 데에는 역시 주변에 있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말없는 자연의 품이 더 낫지 않을까 싶어요.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 역시 모든 것을 잃고 방황하던 저자가 자연의 품에서 서서히 회복되는 과정을 솔직하게 기록한 책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대로 인한 부모님의 이혼과 엄마의 재혼, 그리고 짧지만 행복했던 가족들과의 추억.  그러나 엄마의 말기 암 판정에 이은 갑작스러운 죽음은 언니와 남동생, 양부와의 결별로 이어졌습니다.  절망에 빠진 저자는 열아홉 살에 혼인하여 무난한 결혼 생활을 유지했던 남편과도 이혼하고 삶의 나락으로 끝없이 추락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멕시코 국경에서부터 캐나다 국경 너머에 이르는, 4,000킬로미터가 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the Pacific Crest Trail : PCT)’을 홀로 걷겠다고 결심합니다.  장거리 도보 여행의 초보자였던 그녀가 PCT를 홀로 걷겠다고 결심한 것은 단순한 우연에서 비롯된 충동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을 삶의 벼랑 끝으로 몰고갑니다.

 

"엄마는 죽었다. 편협한 성격에 혼자서만 과하게 낙천적이고 딸의 대학 진학도 신경써주지 않는 사람. 때로는 자녀들을 방치하고 마리화나나 피우는 사람. 나무숟가락으로 우리를 때리고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불러도 상관없다던 사람. 엄마는 실패했다. 엄마는 실패했다. 나를 제대로 키우는 데 실패했다." (p.471)

 

9개의 산맥과 사막과 황무지, 인디언 부족들의 땅으로 이루어진 그곳으로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떠난 그녀는 온갖 시련과 고통, 두려움, 외로움과 싸우면서 지나온 자기 삶을 반추하고 그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것들을 하나하나 회복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의 마지막 끝에 선 그녀는 그 혹독했던 경험을 통하여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회복하고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새로운 삶과 조우하게 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이나 스스로에게 저질렀던 후회스러운 일이나 다른 사람이 내게 저지른 후회스러울 행동들도 다 상관없었다.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지만 이것 한 가지만은 굳게 믿었다. 이 황야의 순수함이 나를 구해줄 거라는 것." (p.255)

 

책의 표지에는 제목과 함께 ‘4285㎞,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저자가 걸었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은 4,285킬로미터로 캘리포니아 주, 오리건 주, 워싱턴 주 전체에 해당하는 거리를 가로지르고 이 길에는 국립공원과 사막과 황무지와 시에라네바다 산맥과 열대우림까지 포함되어 있는 험한 길이었습니다.  일단 코스에 들어서면 1주일분의 식량과 갈아 입을 옷가지와 텐트며 침낭 등을 짊어진 채 걸어야 하고, 어떤 코스는 1주일치 식수를 챙겨야 하기도 했었죠.  저자는 스물여섯 살이었던 1995년에 이 길을 90일 간 걸었습니다.  등과 어깨가 짓무르고 발에 물집이 잡혀 피부가 벗겨지는 걸 감내하면서, 그리고 발톱이 여섯 개나 빠지면서 말입니다.

 

저자는 그 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각기 다른 목적으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걷는 많은 사람들, 그들로부터 물심양면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성추행을 당할 뻔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무도 없는 길을 걸으며 외로움에 몸부림치기도 하고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자신을 스쳐 앞질러 간 어느 여행자가 뒤따라올 저자를 위해 일부러 음식물을 남겨 놓기도 하고, 야영지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하룻밤의 짜릿한 추억을 만들기도 합니다.

 

"PCT의 여정이 어렵고 고달파도, 이렇게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잇는 여러 종류의 선물을 만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날은 드물었다. 마치 마법 같다고나 할까.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그리고 이렇게 달콤한 일들이 PCT에서 겪는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p.411)

 

1926년 한 여교사에 의해 탄생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은 미국 서부를 관통하는 험난한 길입니다.  보급품을 제때에 조달받지 못해 위험에 처할 수도 있고, 방울뱀이나 곰과 같은 야생동물들로부터 습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저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문 산악인도 아닌 저자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돌아가신 엄마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마음대로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단다." 말기 암 판정을 받고 며칠이 지난 후 엄마가 울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만 살아왔어. 언제나 누구의 딸, 엄마, 그리고 아내였지. 나는 나 자신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 (p.482)

 

텐트 속에서 그녀는 홀로 책을 읽고, 자연의 침묵 속에서 생각을 하고, 고통 속에서 그녀는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녀는 결국 목표했던 코스를 완주했고 기적처럼 살아 돌아왔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매순간 삶으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는 어느 젊은 여성의 치열했던 삶의 기록이자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안타까운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으로 읽힙니다.  그녀를 옭아맸던 과거의 실수와 응어리는 대장정의 고통 속에 풀어졌던 것입니다.

 

"나는 강으로 가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씻었다. 여름도 다 가서 그런 걸까. 물길은 좁고 얕아서 그냥 강이 아니라 시냇물 수준이었다. 지금쯤 우리 엄마는 어디 있을까? 나는 엄마가 보고 싶었다. 오랫동안 엄마를 버리지 못했고 그 무게를 지고 비틀거리며 살아왔다. 엄마는 저 강 건너편에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순간, 내 마음속 어떤 것이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p.540)

 

셰릴은 말합니다. "방법이 하나뿐이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언제나 그랬다. 그냥 계속해서 길을 걷는 것뿐."이라고.  영혼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은 자연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셰릴이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계획한 것도 어쩌면 본능에 이끌린 그녀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육체의 고통은 다만 영혼의 고통을 잊게 하는 마취제일 뿐이겠지요.  나는 이 책 <와일드>를 읽으며 <별을 담은 배>의 주인공 사에를 생각했습니다.  슬픈 일이 있을 때면 달이나 별, 꽃 같은 게 유난히 예뻐 보인다는 그녀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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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 책을 쓰는 사람이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
임승수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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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면 다른 블로거들과 이렇게 저렇게 이웃을 맺고 친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친하다는 게 실제로 너나들이를 할 정도로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서로의 블로그를 이따금 방문하여 한두 마디 댓글을 다는 게 고작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내가 생각하는 온라인상의 친함이란 도무지 뜬구름 같고 실체가 없는 그 무엇으로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나도 어느새 블로그를 시작한 지 몇 년쯤 지나고 보니 이래저래 알게 된 이웃 블로거들이 여럿 되더군요. 그분들 중 어느 누구와도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만나본 적은 단 한 차레도 없었지만 이따금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신년 인사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이렇듯 가벼운 만남에도 한 해 두 해 세월이 더해지면 도타운 온기가 조금쯤 생겨나는 듯도 합니다. 그렇게 약간의 친분이 쌓인 이웃 블로거가 어느 날 느닷없이 책을 내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접하였을 때의 내 느낌은 참으로 묘합니다. 부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도 있고, 평등한 일반 블로거에서 작가와 아마추어의 구분이 확연해진 듯하여 조금쯤 주눅 들기도 하고 아무튼 뭐라 단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에 한동안 휩싸이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작가가 된 이웃 블로거의 글에 이제는 함부로 댓글을 달아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도 들어서 전에는 한두 마디 시시한 댓글을 달았음직한 글에도 그냥 읽어만 보고 슬몃 빠져나오게 됩니다. 왠지 서먹하고 멀어진 느낌이 문득 드는 건 어찌할 수 없더군요.

 

그런가 하면 책을 낸 작가인 줄도 모른 채 한동안 지내다가 그 분이 낸 책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오히려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옛친구를 만난 기분이랄까요? 블로그 이웃으로 지낼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그분의 이력을 책을 통하여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지요. 웬만하면 나는 작가 소개를 꼼꼼히 읽는 편이지만 이웃 블로거의 경우에는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출생지나 나이 학력 등 간단하게 소개된 그분의 이력을 통하여 나는 온갖 상상을 하기도 하고, 결국에는 '아, 책을 쓸 만큼 충분한 삶을 살아냈구나.' 내 나름의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글은 '살아지는' 삶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해라." (p.53)

 

임승수 작가의 저서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는 작가를 꿈꾸는 블로거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책을 쓰는 일이 도대체 밥벌이로서 가능한 일인지 따져보는 것에서부터 출판사와 계약서를 쓰는 것에 이르기까지 책 쓰기의 실제와 출판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게 하는 기존의 글쓰기 교본과는 확연히 다른, 저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 쓰기 'A to Z'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전자공학 석사 출신으로서 연구원 생활을 하던 저자가 모든 걸 팽개치고 책을 쓰는 삶을 선택했다는 그의 이력이 말해주는 것처럼 그는 어쩌면 작가로서의 삶과는 무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치 공학도에서 전문작가로의 변신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기에 작가를 꿈꾸는 예비 작가들에게 그의 경험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경험을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어렵게 책을 낸 다른 저자들의 인터뷰도 담고 있습니다. 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은수연(가명) 씨나 수학 전공자로 역사서를 쓴 김상태 씨, 세계일주 경험을 책으로 쓴 고은초 씨, 호기심 때문에 남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았던 박신영 씨 등은 모두 남과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아낸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쓴 책이란 결국 저자 자신의 삶의 기록이겠지요.

 

"저는 책을 쓰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글을 쓰라고 하고 싶어요. 나 이제부터 책 써야지, 이러면 부담감 때문에 글이 제대로 나오지 않거든요.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나의 삶을 정리하고 그냥 계속 글을 쓰다 보면 그 글이 묶여 책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사실 이렇게 써야 글이 살아 있을 수 있어요. '책'이라는 형식은 자본과 함께할 수밖에 없거든요." (p74)

 

저자는 독자들에게 꾸준히 써보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완성해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써서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한 글을 들고 출판사의 문을 두드려보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창피도 당하고 모욕도 받아보라고 말합니다. 나는 비록 그럴 자신도 없고, 그럴 만한 재능도 없지만 이 책을 읽은 어느 블로거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도 책을 출판했노라 내게 알려올 때가 있을 거라고 믿게 됩니다.

 

"목표를 정확하게 설정하고, 자신의 역량을 명확하게 판단하고, 완성시키고, 그다음에 책으로 안 나오면 그냥 원고를 베개로 베고 자는 겁니다. 기꺼이 모욕당하고 모욕당하는 것을 즐겨야죠. 출판사에 보낼 떄 이메일로 보내는데 돈도 안 들잖아요? 막 보내요. 그래도 끝까지 연락이 안 오면, 뭐 딴 거 쓰는 거죠. 하하하. 자신감이 있어야 돼요. 깡다구 말이에요. 뭐 안 되면 그만이잖아요."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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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새해가 밝은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세월 참 빠르지요? 저도 지난 연말부터 지금껏 꽤나 바쁜 일정을 보낸 듯합니다. 그러나 2015년이 시작된 후 제가 체감하는 하루 하루는 굼벵이처럼 더디게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명절이나 주말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니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몸이 바쁜 시간에는 그럭저럭 견딜 만한데 한가해진 낮시간이나 늦은 밤 홀로 있을 때 시간은 그야말로 멈춰 있는 것만 같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말하길 체감하는 세월은 40대는 40km, 50대는 50km의 속도로 흐른다는데 저는 마치 없는 시간을 훔쳐오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하루가 느릿느릿 흐르던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느낍입니다.

 

부럽다구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만의 그 비밀스런 방법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세월이 천천히 흐르게 하는 비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중독이 될 만한 대상(담배, 술, 마약, 도박, 섹스 등) 하나를 콕 집어 고른다. 중독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좋다.

2. 자신이 선택한 대상(예컨대 저는 담배를 선택했었죠)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가급적이면 십 년 이상의 중독 상태를 유지한다.

3. 어느 날 갑자기 중독 상태를 해제한다. 시시각각 자신의 중독성을 실감하며 꿋꿋이 참고 버틴다.

 

이해가 되나요? 2015년의 시작과 함께 금연을 한 저는 하루가 이토록 길다는 걸 처음 느꼈습니다.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되는 흡연의 욕구는 잠들기 전까지 계속됩니다. 오죽하면 저는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날 요량으로 그토록 열심이던 아침운동도 그만둘까 생각했을까요. 저보다 먼저 금연을 실천했던 분들이라면 지금의 제 상태를 백번 이해하고도 남겠지요.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지요. "담배 끊는 게 제일 쉽다. 나는 100번도 넘게 끊었다. (Quitting smoking is the easiest thing. I’ve done it hundreds of times.) 그는 한때 그런 말도 했습니다. 건강이 나빠진 최후의 순간을 위해서 나쁜 습관 한두 가지를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예컨대 그의 주장은 이런 뜻이었죠. 배가 가라앉을 때 바다에 버릴 짐이 있어야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는 것처럼 건강이 나빠졌을 때를 대비하여 건강에 해로운 어떤 습관(이를테면 흡연이나 음주, 마약 등)중에 무엇인가 버릴 게 있어야 자신의 건강이 좋아지리라는 희망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마크 트웨인의 일화 중에는 재미있는 게 많은데 그가 말하길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행동은 침대에 누워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죽은 사람 중의 80%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조금 썰렁한가요? 아무튼 그도 침대에 누워 있다가 7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저는 요즘 담배 생각이 날 만한 일은 가급적 삼가하고 있습니다. 글을 쓴다거나, 커피를 마신다거나, 과식을 한다거나... 낮동안에도 아무 생각도 없이 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금연한 지 고작 여드레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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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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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 넘게 피워오던 담배를 2015년 1월 1일부로 과감히 끊었다. 이제 금연 사 일째. 아직은 성공이다 실패다 논할 단계가 아니지만 나는 금연에 도움을 주는 어떤 약물이나 보조제 없이 순전히 내 의지만으로 흡연 욕구를 억제하고 있다. 그 정도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면 금연 보조제의 도움을 받는다 할지라도 여전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흡연 욕구는 생각보다 강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내 몸을 지배했던 담배는 내 의지에 굴복하여 선선히 물러날 수 없다는 듯 수시로 나를 유혹 속에 빠져들게 한다. 가장 참기 힘든 시간은 잠자리에 들기 직전이다. 몇 년째 주말부부로 지내는 나는 숙소에서 홀로 보내는 평일 저녁의 고즈넉한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책에 빠져들거나, 이따금 스케치북을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리거나, 베란다에 서서 달을 구경하거나, 또는 책을 빌리러 온 아이들과 차를 마시며 나누는 일상적이지 않은 대화의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늦은 시각까지 그렇게 소일하다가 마지막에는 으레 담배 한 개비를 느긋하게 태우곤 하였다.

 

늦은밤에 피우는 담배는 금세 폐 깊숙이 스며들어 온 몸을 나른하게 만든다. 담배가 가져다준 적당한 피로 덕분에 나는 뒤척임 없이 이내 잠들곤 했었다. 그러나 담배를 끊고 나자 감당할 수 없는 헛헛한 느낌과, 밤이 늦도록 말똥말똥한 의식과, 하룻저녁에도 몇 번씩 침대에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미련한 짓거리가 나를 괴롭혔다. 마치 내가 수용소나 교도소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이다. 나는 종종 내 의지를 믿지 못하는 순간에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책을 읽는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충격에 휩싸인다. 같은 인간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굶주리고 생명을 담보할 수 없는 인간이 얼마나 무뎌지고 하찮은 존재로 추락할 수 있는지... 보통의 삶에서 중시되던 도덕률이나 양심도 극한의 환경에 떨어진 인간에게 그것들은 얼마나 가치없고 헛된 것인지. 그러고 보면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동물인지 깨닫게 된다. 문화와 도덕으로 치장한 인간의 본성은 얼마나 쉽게 변질될 수 있는 것인지.

 

"우리는 명백하고 손쉬운 추론을 믿지 않는다. 모든 문명적 상부구조가 제거되면 인간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우둔하다는 추론 말이다. 이러한 추론에 따르면 '해프틀링'은 거리낌이 없는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생각에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궁핍과 지속적인 육체적 고통 앞에서 수많은 사회적 습관과 본능이 침묵에 빠진다는 것뿐이다." (p.132)

 

<이것이 인간인가>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함께 2차대전 당시 아우슈비치 수용소에서 생존한 사람들에 의해 씌어진 증언문학의 고전에 속하는 책이다. 저자는 191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세파라딤 유대인이다. 토리노 대학 화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파시스트에 저항하는 민병대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포솔리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1944년 2월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1945년 1월 '붉은 군대'에 의해 구출되기까지 저자는 약 11개월 간의 수용소 생활을 겪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록은 히틀러와 그를 추종했던 일부 세력들에 대한 분노가 드러나게 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경험했던 것만을 사실적이고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들의 인간성은 땅에 묻혔다. 혹은 그들 스스로, 모욕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줌으로써 그것을 땅에 묻어버렸다. 사악하고 어리석은 SS 대원들, 카포들, 정치범들, 범죄자들, 크고 작은 일을 맡은 특권층들, 서로 구별되지 않으며 노예와도 같은 해프틀링까지, 독일인들이 만든 광적인 위계질서의 모든 단계들은 역설적이게도 균등한 내적 황폐감에 의해 연결되어 있었다." (p.187)

 

잠재된 인간 정신의 밑바닥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저자가 지적하듯 인간성이 파괴된 극한의 환경인 수용소는 인간 영혼의 추락을 목격할 수 있는 실험장이다. 희망과 미래가 거세된 수인들에게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미래는 장벽처럼 그들 앞에 서 있다. 오히려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이 미래보다 가깝다. 증오로 무장된 지배자와 영혼과 자유를 빼앗긴 피지배자가 공존하는 수용소의 삶은 황폐하다.

 

"오늘도 우리는, 아침에는 영원처럼 까마득해 보였던 하루의 분초를 통과했다. 이제 오늘 하루는 끝이 났고 곧 잊혀진다. 이제 그것은 더 이상 하루가 아니며 그 누구의 기억 속에도 남아 있지 않으리라. 우리는 내일도 오늘과 같으리라는 것을 안다.(...중략...)기억이란 희미한 도구다. 수용소에 있는 동안 아주 오래 전 내 친구가 내게 써줬던 시 두 구절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느 날, '내일'이라고 말하는 게/

아무 의미를 갖지 않을 때까지

이곳이 바로 그렇다. 수용소의 은어들 중 결코 사용하지 않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내일 아침이다." (p.204)

 

육체 노동에 익숙하지 않았던 저자가 극한의 추위 속에서 영원처럼 더디게 흐르는 분초를 견딘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 화학자였던 그가 수용소에서의 삶을 글로 옮기게 된 것도 어쩌면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와 같은 인간간에 대한 집단적 광기는 히틀러 한 사람에 의해 자행된 것이 아니요, 저항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수많은 독일인들의 묵인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도 그런 일은 수도 없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박정희를 신처럼 떠받드는 수많은 동조자뿐만 아니라 불의에 눈 감았던 다수의 국민들도 군부 독재의 당사자들이었음을 시인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과 다른 도구로,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력을 앞세워 우리를 설득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판단과 우리의 의지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가할 필요가 있다. 진짜 선각자와 가짜 선각자를 구별하기란 어렵기 때문에 모든 선각자를 의심의 눈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들의 주장을 일단 거부하는 것이 좋다. 그것의 단순성과 눈부심이 우리를 들뜨게 한다 해도. 무상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하다고 생각되더라도." (p.303~p.304)

 

프리모 레비는 이 책에서 히틀러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라고 썼다. 그것이 좋은 의미였든 나쁜 의미였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박정희도, 전두환도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였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추종하거나 동조했던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 인간성 파괴의 현장은 히틀러와 그의 추종 세력이 했던 짓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지금 나를 지배하던 담배의 유혹과 싸우면서 '까마득해 보였던 하루의 분초를 통과'하고 있고, 내일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는 걸 안다. ''내일'이라고 말하는 게 아무 의미를 갖지 않을 때까지'는 아닐지라도 당분간 나는 나를 괴롭히는 유혹과 맞서 싸우기 위해 하루의 분초를 통과하는 경험을 수없이 반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본디 나약한 동물이라고 말한다면 조금쯤 위안이 될까? 나처럼 금연을 결심한 사람들 모두가 '중독의 수용소'에 있는 이 순간을 무사히 벗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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