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심하고 노력하면 더러 좋은 일도 생기는 게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삶이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지는 않는 듯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네 앞에 좋은 일은 절대 생기지 않을 테니 아예 꿈 깨시라', 하늘의 계시가 떨어진 것만 같습니다.  그게 다 돈 때문이라면 듣는 '돈'은 기분 나쁠까요?  아무튼 요즘 담뱃값 인상이다, 연말정산이다 나라가 온통 돈 얘기로 뒤숭숭합니다.  증세다, 아니다 말도 많구요.

 

지난해 추석이었나 봅니다.  다들 뭐가 그리 바쁜지 명절에나 간신히 얼굴을 보게 되는 동서들과 처가에서 만났을 때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손윗동서 왈, '경제학을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는 느낌이 들어.' 하는 게 아닙니까.  참고로 손윗동서는 모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대학 시절에 경제학을 전공했던 나도 형님(동서)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 짠하지 않나요?  영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이제는 고국인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열정을 불사르는(?) 분이, 게다가 주전공이 경제학이면서 자신의 전공마저 부정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읽으며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아무튼 나는 책을 읽는 내내 형님(동서)을 생각했었습니다.  눈물이 나려는 걸 꾹꾹 눌러 참으면서 말이지요.  저자도 책의 1부 1장에서 경제학자들의 허무맹랑한 행태에 대해 지적하고 있더군요.  경제학자입네 하고 떠벌리면서 지금까지 제대로 된 해결책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자기 분야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마당에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과대망상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타당해 보입니다.  아, 저자도 형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싶어서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나는 사실 인류의 보편성을 끄집어 내는 학문(예컨대 경제학이나 심리학 등과 같은)을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보편적이라는 것은 개별적인 인간 단 한 명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어떤 심리학 책에서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라고 전제했을 때, 누군가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인가 하면 다른 누군가는 마더 테레사처럼 완전히 이타적인 사람이기도 한 것이기에 그 전제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는 인간이 아주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며 효율성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가정했을 때 그 가정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누구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책의 구성은 프롤로그와 1부 '경제학에 익숙해지기', 2부 '경제학 사용하기', 에필로그 및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친절하게도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법'에 대하여 책의 첫머리에 기술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이 책에 10분을 투자할 수 있는 독자와 반나절을 투자할 수 있는 독자가 있을 때 그들 독자가 이렇게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저자의 기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경제학의 특별한 방식(숫자와 미분 방정식이 난무하는)으로 쓰여진 책은 아닙니다.  경제학의 역사나 다양한 접근법을 일반인도 알기 쉽게 정리하였으며 여러 학파의 장단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2부에서 말하는 '경제학 사용하기'는 경제학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경제 현실을 파악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세계화 시대를 사는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경제 현실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경제학 안내서라고나 할까요.

 

저자는 이 책에서 고차원적인 경제 수학 대신 행동 재무학, 진화 경제학 등 제반 경제 이론이 거둔 성과와 경험은 물론이고 심리학, 영화 등 누구에게나 친숙한 사례를 활용함으로써 경제를 전혀 모르는 독자라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 부분에서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2008년 굴로벌 금융 위기는 더 이상 경제를 전문 경제학자와 '기술 관료'에게 맡겨 둘 수 없다는 사실을 처참하게 깨닫게 해 주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능동적인 경제 시민이 되어 경제의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    (p.444)

 

사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딱딱하고 배우기도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이 책의 리뷰를 시작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경제학에 관심을 갖고 즐겁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저자뿐만 아니라 많은 경제학자들의 고민일 것입니다.  경제를 떠나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현대의 삶에서 경제에 대한 이해나 학습의 필요성은 누구나 절감하지만 실제로 시간을 내어 공부를 한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1400조에 이르는 대규모 양적완화를 실행하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년에 금리 인상을 결정한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런 문제에 관심을 끄고 산다고 지금의 삶이 크게 달라질 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연말정산에서 내가 냈던 세금이 얼마나 환급될지 그게 더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제는 참으로 멀고도 가까운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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