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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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 넘게 피워오던 담배를 2015년 1월 1일부로 과감히 끊었다. 이제 금연 사 일째. 아직은 성공이다 실패다 논할 단계가 아니지만 나는 금연에 도움을 주는 어떤 약물이나 보조제 없이 순전히 내 의지만으로 흡연 욕구를 억제하고 있다. 그 정도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면 금연 보조제의 도움을 받는다 할지라도 여전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흡연 욕구는 생각보다 강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내 몸을 지배했던 담배는 내 의지에 굴복하여 선선히 물러날 수 없다는 듯 수시로 나를 유혹 속에 빠져들게 한다. 가장 참기 힘든 시간은 잠자리에 들기 직전이다. 몇 년째 주말부부로 지내는 나는 숙소에서 홀로 보내는 평일 저녁의 고즈넉한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책에 빠져들거나, 이따금 스케치북을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리거나, 베란다에 서서 달을 구경하거나, 또는 책을 빌리러 온 아이들과 차를 마시며 나누는 일상적이지 않은 대화의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늦은 시각까지 그렇게 소일하다가 마지막에는 으레 담배 한 개비를 느긋하게 태우곤 하였다.

 

늦은밤에 피우는 담배는 금세 폐 깊숙이 스며들어 온 몸을 나른하게 만든다. 담배가 가져다준 적당한 피로 덕분에 나는 뒤척임 없이 이내 잠들곤 했었다. 그러나 담배를 끊고 나자 감당할 수 없는 헛헛한 느낌과, 밤이 늦도록 말똥말똥한 의식과, 하룻저녁에도 몇 번씩 침대에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미련한 짓거리가 나를 괴롭혔다. 마치 내가 수용소나 교도소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이다. 나는 종종 내 의지를 믿지 못하는 순간에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책을 읽는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충격에 휩싸인다. 같은 인간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굶주리고 생명을 담보할 수 없는 인간이 얼마나 무뎌지고 하찮은 존재로 추락할 수 있는지... 보통의 삶에서 중시되던 도덕률이나 양심도 극한의 환경에 떨어진 인간에게 그것들은 얼마나 가치없고 헛된 것인지. 그러고 보면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동물인지 깨닫게 된다. 문화와 도덕으로 치장한 인간의 본성은 얼마나 쉽게 변질될 수 있는 것인지.

 

"우리는 명백하고 손쉬운 추론을 믿지 않는다. 모든 문명적 상부구조가 제거되면 인간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우둔하다는 추론 말이다. 이러한 추론에 따르면 '해프틀링'은 거리낌이 없는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생각에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궁핍과 지속적인 육체적 고통 앞에서 수많은 사회적 습관과 본능이 침묵에 빠진다는 것뿐이다." (p.132)

 

<이것이 인간인가>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함께 2차대전 당시 아우슈비치 수용소에서 생존한 사람들에 의해 씌어진 증언문학의 고전에 속하는 책이다. 저자는 191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세파라딤 유대인이다. 토리노 대학 화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파시스트에 저항하는 민병대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포솔리 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1944년 2월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1945년 1월 '붉은 군대'에 의해 구출되기까지 저자는 약 11개월 간의 수용소 생활을 겪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록은 히틀러와 그를 추종했던 일부 세력들에 대한 분노가 드러나게 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경험했던 것만을 사실적이고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들의 인간성은 땅에 묻혔다. 혹은 그들 스스로, 모욕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줌으로써 그것을 땅에 묻어버렸다. 사악하고 어리석은 SS 대원들, 카포들, 정치범들, 범죄자들, 크고 작은 일을 맡은 특권층들, 서로 구별되지 않으며 노예와도 같은 해프틀링까지, 독일인들이 만든 광적인 위계질서의 모든 단계들은 역설적이게도 균등한 내적 황폐감에 의해 연결되어 있었다." (p.187)

 

잠재된 인간 정신의 밑바닥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저자가 지적하듯 인간성이 파괴된 극한의 환경인 수용소는 인간 영혼의 추락을 목격할 수 있는 실험장이다. 희망과 미래가 거세된 수인들에게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미래는 장벽처럼 그들 앞에 서 있다. 오히려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이 미래보다 가깝다. 증오로 무장된 지배자와 영혼과 자유를 빼앗긴 피지배자가 공존하는 수용소의 삶은 황폐하다.

 

"오늘도 우리는, 아침에는 영원처럼 까마득해 보였던 하루의 분초를 통과했다. 이제 오늘 하루는 끝이 났고 곧 잊혀진다. 이제 그것은 더 이상 하루가 아니며 그 누구의 기억 속에도 남아 있지 않으리라. 우리는 내일도 오늘과 같으리라는 것을 안다.(...중략...)기억이란 희미한 도구다. 수용소에 있는 동안 아주 오래 전 내 친구가 내게 써줬던 시 두 구절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느 날, '내일'이라고 말하는 게/

아무 의미를 갖지 않을 때까지

이곳이 바로 그렇다. 수용소의 은어들 중 결코 사용하지 않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내일 아침이다." (p.204)

 

육체 노동에 익숙하지 않았던 저자가 극한의 추위 속에서 영원처럼 더디게 흐르는 분초를 견딘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 화학자였던 그가 수용소에서의 삶을 글로 옮기게 된 것도 어쩌면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와 같은 인간간에 대한 집단적 광기는 히틀러 한 사람에 의해 자행된 것이 아니요, 저항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수많은 독일인들의 묵인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도 그런 일은 수도 없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박정희를 신처럼 떠받드는 수많은 동조자뿐만 아니라 불의에 눈 감았던 다수의 국민들도 군부 독재의 당사자들이었음을 시인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과 다른 도구로,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력을 앞세워 우리를 설득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판단과 우리의 의지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가할 필요가 있다. 진짜 선각자와 가짜 선각자를 구별하기란 어렵기 때문에 모든 선각자를 의심의 눈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들의 주장을 일단 거부하는 것이 좋다. 그것의 단순성과 눈부심이 우리를 들뜨게 한다 해도. 무상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하다고 생각되더라도." (p.303~p.304)

 

프리모 레비는 이 책에서 히틀러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라고 썼다. 그것이 좋은 의미였든 나쁜 의미였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박정희도, 전두환도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였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추종하거나 동조했던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 인간성 파괴의 현장은 히틀러와 그의 추종 세력이 했던 짓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지금 나를 지배하던 담배의 유혹과 싸우면서 '까마득해 보였던 하루의 분초를 통과'하고 있고, 내일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는 걸 안다. ''내일'이라고 말하는 게 아무 의미를 갖지 않을 때까지'는 아닐지라도 당분간 나는 나를 괴롭히는 유혹과 맞서 싸우기 위해 하루의 분초를 통과하는 경험을 수없이 반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본디 나약한 동물이라고 말한다면 조금쯤 위안이 될까? 나처럼 금연을 결심한 사람들 모두가 '중독의 수용소'에 있는 이 순간을 무사히 벗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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