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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은 마음도 몸도 늘 바쁘다.

일년 중 가장 날수가 적은 달이기에 마음 단단히 먹고 알차게 보내야지 다짐하지만 언제나 빈 결심으로만 끝날 뿐 무엇 하나 제대로 끝을 맺었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  그저 '벌써 3월이야?' 하는 놀람의 말로 지난 2월을 아수워했을 뿐이다.  올해는 숫제 게획도 세우지 않았다.  흐르는 대로 두고 보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3월을 맞을 셈이다.  다만 2월이 다 가기 전에 좋은 에세이 두어 권 읽었으면 싶다.

 

 

 

내가 헤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편견없는 '책사랑' 때문이다.  평생에 걸쳐 책을 좋아했던 그의 한결같음은 문장 곳곳에 깊은 여운으로 남아있다.  평생 기교로 책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마음으로 책을 쓰는 사람이 있다.  헤세는 흔들림 없는 마음을 자신의 영혼에 담아 아무리 우려내어도 마르지 않을 깊은 울림의 글을 남겼다.

 

 

 

 

 

 

 

 

교육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본의 대표 작가이자 교육 실천가인 하이타니 겐지로를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작가가 40대 무렵에 쓴 산문을 모았다는 이 책이 나의 시선을 끌었던 이유는 '상냥함'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전국민이 분노 조절 장애를 앓고 있는 듯한 요즘의 우리에게 상냥하다는 말은 너무나 멀어진 느낌이 든다.

 

 

 

 

 

 

 

 

'TED'에서 강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밋밋한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과 함께 없던 힘도 짜내어 주먹을 불끈 쥐게 되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스(moth)'는 처음 들었다.  테드만큼이나 유명한 스토리텔링 이벤트라는데 말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내가 강제윤 시인을 알게 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허균의 <숨어사는 즐거움>을 읽으려 했는데 나는 그만 강제윤의 <숨어사는 즐거움>을 읽고 말았다.  저자가 다른 같은 제목의 책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말이다.  물론 책이 맘에 들지 않았으면 단박에 던져버렸겠지만 처음 접한 그의 글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그 후로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더 오래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아 그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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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 출간되었나 봅니다.  보지는 못했지만 80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라는군요.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낮잠을 자기 위한 용도로 알맞은 두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피곤한 국민들이 그 책을 베고 누워 잠깐의 오수를 즐겼으면, 바라는 대통령의 애민정신(?)이 숨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책의 정가가 28,000원이고 10%를 할인받는다 해도 25,200원이니 목침 가격으로는 결코 싸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단 하나 좋은 점은 양장본이라 잠을 자다가 나도 모르게 침을 흘려도 크게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출판사에 따르면 1쇄로 찍은 1만 5000부가 모두 팔려 2쇄를 준비하고 있다 하니 그만한 가격에 목침을 준비하기도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나는 이러한 기현상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성인 중에 목침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읽은 책 중에 회고록은 많지 않았던 듯합니다.  아리엘 도르프만의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가 먼저 떠오르는군요.  그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회고록이라고 늘 생각해오던 책입니다.  아, 이런!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봄에 나는 없었다>의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엉뚱한 이야기로 서두가 길어지고 말았네요.  서로 관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한 사람이 살아온 과거의 흔적들을 속속들이 밝혀낸다 한들 그 사람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나는 이따금 의문이 듭니다.  나의 결론은 언제나 부정적이었지만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은 마음과 다르게 행동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서 그 사람의 행위만으로는 이렇다 저렇다 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고록을 쓴 전직 대통령만 하더라도 자신은 누구보다도 국민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믿었을 것이며, 자신이 믿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고 행동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 중에 그렇게 믿었던 분은 몇이나 될까요?  대부분의 가정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부모는 자식들의 마음이나 습관을 잘 안다고 믿지만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그와 반대 되는 대답이 나오곤 하지요.  우리는 결국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대를 이해할 뿐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조앤은 자식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로드니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알지는 못했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참된 진실보다는 유쾌하고 편안한 것들을 사실이라고 믿는 편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그래야 자신이 아프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몰랐다." (p.201~p.202)

 

<봄에 나는 없었다>는 추리작가로서 명망이 높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전혀 다른 색깔의 책입니다.  추리소설이 아닌 심리소설의 범주에 속할 법한 그런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단순한 구조로 쓰여진 이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한 중년 여성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세 명의 자녀를 둔 엄마로서 뒤돌아볼 겨를 없이 바쁘게 살았던 조앤 스쿠다모어는 자신의 삶이 무난하고 만족스러운 것이었다고 믿는 여인입니다.

 

비록 시골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지만 자상하고 유능한 변호사 남편, 다들 장성하여 일가를 이룬 아이들을 생각할 때 조앤은 자신의 인생이 행복했다고 자평합니다.  딸의 병간호를 마치고 바그다드에서 런던으로 돌아오던 길에 여고 동창 블란치를 만납니다.  고교 시절 예쁘고 똑똑했던 그녀는 몇 번의 이혼과 재혼으로 이제는 천박하고 추레한 모습으로 변해있었습니다.  그렇게 변한 그녀가 안됐다고 생각하는 조앤은 속으로 우쭐한 마음마저 듭니다.  폭우로 교통이 끊기는 바람에 조앤은 사막의 기차역 숙소에서 발이 묶입니다.  읽을 책도 없고 대화할 상대도 없는 기차역 숙소에서 조앤은 무덤 같은 숙소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을 걷는 것 말고는 아무 할 일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조앤은 이 며칠을 그동안 바라던 온전한 자기만의 휴식 시간으로 삼기로 마음먹지만 블란치가 던진 몇 마디 말이 불씨가 되어 과거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기 시작합니다.

 

"조앤은 - 남들이 며칠 지나면서 그랬듯이 - 환상을 보았다. 자신이라는 환상이었다. 그래서 여행의 사사로운 부분에 신경쓰는 평범한 영국인 여행자로 보였겠지만, 그녀의 마음과 정신은 사막의 고요와 태양 아래서 밀려왔던 치욕스러운 자책감에 휩싸여 있었다." (p.222)

 

농장을 가꾸며 농부의 삶을 살고자 했던 남편 로드니, 주관이 뚜렷했던 맏딸 에이버릴,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채 아프리카로 떠난 아들 토니, 서둘러 결혼하여 바그다드에 정착한 막내 바버라, 조앤은 그들 모두가 자신의 고집과 욕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그동안 자신은 부인으로서, 엄마로서 약간의 강제성이 개입되었다 할지라도 현명한 조언을 했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가정을 별 탈 없이 지켜왔다고 믿었는데 하나하나 되짚어 갈수록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로드니는 에이버릴에게 "인간은 하고 싶은 일 - 타고난 일 - 을 하지 못하면 반쪽짜리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했다. 바로 그것이 조앤이 로드니에게 한 짓이었다...... 조앤은 새로 알게 된 이러한 사실들을 초조하게, 열을 내며 변명하려 했다." (p.217)

 

조앤이 쌓아올린 지금까지의 삶이란 게 부유하고 윤택하며 남들이 보기에 행복한 모습으로 비춰졌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시선으로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을 때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고 후회스러운 일들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볼 때도 언제나 타인의 눈을 통해서 본다."고 했던 니체의 말이 떠오릅니다.

 

"맞아. 남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언제나 그러는 건 아니야. 시골의 변호사는 인간관계의 약한 면들을 누구보다도 많이 보는 사람이야 - 의사를 제외하면 말이지. 그래서 이 일을 하다보면 인간에 대한 연민이 깊어지는 것 같아. 인간이란 원래 나약하고, 두려움과 의심과 탐욕에 약한 존재지. 그런데 가끔은 예기치 않게 이타적이고 용감한 인간을 보게 돼. 어쩌면 변호사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보상은 폭넓은 동정심을 갖게 되는 건지도 몰라." (p.136)

 

바쁜 일상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끝끝내 모른 채 생을 마감할 수도 있는 게 우리네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때, 나의 관점이 아닌 상대방의 관점에서 그를 이해하고자 노력할 때 삶의 지평은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자기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일은 아닌가 봅니다.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까닭도 거기 있는 듯합니다.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느 것 하나 잘못된 게 있을라구요.  모든 게 옳고 모든 게 칭찬받을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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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플러스 원 - 가족이라는 기적
조조 모예스 지음, 오정아 옮김 / 살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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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순기능 중 하나는 소설 속 주인공이 누리는 행운을 잠시나마 그대로 믿게 된다는 데 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똑같은 행운이 내게도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말이다.  그렇게 현실의 허기와 고통을 잊게 하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소설 속에 존재하는 상상의 세계로 순간이동을 한 까닭이지만 그것은 마치 모르핀보다 강력한 상상의 진통제를 맞고 시간의 가시밭길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  적어도 책을 읽는 시간 동안은 누구나 시나브로 '행복'에 가까워지는 법이다.

 

조조 모예스의 소설 『미 비포 유』를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신작 『원 플러스 원: 가족이라는 기적』을 구매하는 데는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무모한 용기 뒤에는 항상 후유증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뭔가 2% 부족한 듯한 약간의 아쉬움과 가슴을 치는 후회가 복잡한 머릿속을 한동안 헤짚고 다닌다.  『미 비포 유』를 읽었을 때 상업적 소설이라는 느낌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안락사라는 묵직한 이슈와 달콤한 러브 라인,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적인 스토리 등 소설의 부정적인 면을 감추고도 남을 만한 여러 요소가 있었지만 이 책『원 플러스 원』에서는 이렇다 할 장점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왔던 흔한 이야기, <콩쥐팥쥐>나 <신데렐라> 류의 뻔한 스토리로 여겨졌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 외에는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시시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이런저런 역경을 겪게 되지만 결국에는 꼬였던 일이 다 잘 풀리고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된다는, 학창시절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고진감래'나 '권선징악'의 구조가 이런 것인가 싶은 느낌마저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생각할 거리가 전혀 없었던 형편없는 책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빈부격차의 문제나 가족의 해체 등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보편적 이슈를 소설의 전반에 펼쳐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엄마가 아이를 꼭 안아주지 않으면, 네가 바로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는 말을 해주지 않으면, 심지어 집에 있다는 사실 조차 눈치 채지 못하면,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제스는 잘 알았다.  마음속의 작은 부분이 단단히 봉인된다.  엄마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러고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한 채 기다린다.  누군가 가까이 다가왔다가 자신에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발견하게 되기를, 처음에는 보지 못한 뭔가를 발견하고 점점 차갑게 변해가다 그들 역시 사라져버리기를.  바다 안개처럼.  자신을 낳아준 엄마조차 진정으로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으니까.  그렇지 않은가?"    (p.257)

 

여주인공 제스는 싱글맘이다.  그녀에게는 열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낳았던 초등학생 딸 탠지와 10대 소년 니키가 있다.  탠지의 오빠인 니키는 그녀가 낳은 친아들이 아니다.  지금은 별거 중인 남편 마티가 전 여자친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지만 제스가 거두어 같이 살고 있다.  그녀는 낮에는 청소부로, 밤에는 바텐더로 일하면서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지만 늘 돈에 쪼들린다.  아들 니키는 또래 아이들로부터 지속적인 폭력과 괴롭힘에 시달리고 마리화나 없이는 잠을 잘 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게임 중독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녀로서는 달리 대안이 없다.  오직 별거 중인 남편이 하루 빨리 정신을 차려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수학에 천재적 재능이 있는 탠지에게 어느 날 기쁜 소식이 전해진다.  탠지의 수학 재능을 알아본 명문학교 세인트 앤에서 탠지에게 장학금을 줄 테니 입학하라는 권유를 해 온 것이다. 하지만 90%의 장학금을 받더라도 세인트 앤의 학비는 제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액수였다. 탠지가 세인트 앤에 입학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수학 올림피아드에 참가하여 수상 상금을 받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제스는 그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어 스코틀랜드행을 결심한다.

 

남편이 떠나고 몇 년째 방치되었던 롤스로이스에 아이들을 태우고 과감하게 출발했지만 얼마 가지 못하여 자동차는 경찰에 압류되고 스코틀랜드행은 좌절될 위기에 처한다.  마침 이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에드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잘 나가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에드는 한때 상당한 재산을 모았었다.  그러나 모델이었던 전처와 이혼한 후 대학 시절 짝사랑하던 여자친구와 재회함으로써 그의 인생은 엉뚱한 길로 들어선다.  여자친구의 딱한 사정을 듣고 건네 준 수표와 호재가 될 만한 사내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그는 내부자 거래 혐의를 받게 된다.

 

머리도 식힐 겸 가볍게 출발했던 여행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게 됨으로써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  자그마한 소형 승용차 안에 제스와 탠지, 니키, 에드, 그리고 덩치 큰 개 노먼이 구겨 타고 영국의 남북을 종단하는 긴 여정 속에서 그 다섯의 동행인들은 끊임없이 간섭하고 부딪치고 끌리고 튕겨나가곤 한다. 그리고 조금씩 서로를 변화시킨다.  이유도 없이 괴롭힘을 당해온 니키를 보며 에드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되고 니키에게 자신의 노트북을 선물하는가 하면 자신이 가진 컴퓨터 기술을 활용해 가해 학생에게 인터넷상에서 망신을 주기도 한다.  안경 없이는 글씨를 읽을 수 없는 탠지를 위해 여러 도수의 안경을 한아름 사들고 가는 따뜻한 심성의 에드.  혹시 구속될지도 모르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임종을 앞둔 아버지를 만나러 와줄 것을 요구하는 누나의 부탁도 거절하던 에드는 결국 제스와 함께 병원을 찾아 자신의 처지를 가족들에게 알린다.

 

수상을 하지 못하고 실망한 탠지를 위해 제스는 남편과 아이들의 만남을 주선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혼 상태인 남편 마티는 이미 다른 여자와 동거를 하는 상태였고 그녀가 생각하던 것만큼 가난하지도 않았다.  그것도 모른 채 남편을 동정만 했던 자신에게 화가 났고, 그런 감정을 에드에게 솔직하게 내보인다.  둘 사이의 거리는 급격하게 좁혀진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있었던 일로 작은 오해를 하게 된 에드는 헤어질 결심을 한다.  그러나 결국 오해도 풀리고 에드는 재판에서 집행유예 처분을 받음으로써 제스 곁으로 돌아온다.  에드는 제스에게 이렇게 청혼한다.

 

"우리가 함께 하면 어떤 모습이 될지 보고 싶어요, 제시카 레이 토머스.  우리 모두 함께 하면요.  어떻게 생각해요?"    (p.547)

 

각기 다른 상처를 안고 만났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면서 가족이라는 하나의 작은 울타리 속으로 모여드는 과정은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서로 상반되는 경제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합쳐진다는 설정이 약간 억지스러운 점도 없진 않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경제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한두 가지의 고민을 떠안고 살아가는 게 우리 삶이고, 그것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게 사랑이며, 사랑의 공동체인 가족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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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주제로든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조금 바빴던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글 쓰는 일은 관심 밖이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 내게 금전적으로 어떤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한가지 일에 골몰하느라 여타의 다른 일에 일절 손을 놓고 지낸다는 것은 보기 좋지도, 그렇다고 바람직해 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런 핑계가 자칫 나를 무관심이나 게으름의 어떤 영역으로 끌고 가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했다.

 

매일은 어렵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 또는 그 이상을 목표로 삼아야겠다는 생각과 적어도 읽었던 책의 리뷰는 빠뜨리지 않고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5년의 1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습관처럼 먹고, 씻고, 잠들었던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다. 여전히 담배는 피우지 않고 있지만 시시때때로 담배 생각이 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낮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기사가 생각난다.

국회 국방위원회의 군대 내 성폭행 관련 발언에서 새누리당 송모 의원이 했던 말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었다. 임모 대령이 여군 하사를 성폭행했던 까닭이 외출, 외박을 못해서라니... 부하 여군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된 육군 여단장을 두고 "들리는 얘기론 (해당 여단장이) 지난해에 거의 외박을 안 나갔다. 가족도 거의 면회를 안 들어왔다"며 "나이가 40대 중반인데, 이 사람 성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측면을 우리가 한 번 들여다봐야 한다"고 언급했단다.

 

이 사람 주장에 따르자면 외박을 나가지도 못하고 나이도 20대인 일반 사병들은 누구나 부대 내에서 성적인 문제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 아닌가. 그래서 해결책으로 군대 내 위안부라도 두자는 말로 들린다. 이런 썩어빠진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국회의원이 되었는지. 더구나 '하사 아가씨' 발언까지. 구제불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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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담은 배 - 제129회 나오키상 수상작
무라야마 유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사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16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아, 그래요 사랑은 영원한 상징,/폭풍우를 굽어보면서도 흔들리지 않지요

사랑은 모든 방황하는 배를 이끄는 별이니 /그 높이는 알아도 그 가치는 알지 못하죠(O no! It is an ever fixed mark/That looks on tempests and is never shaken;/It is the star to every wadering bark,/Whose worth's Unknown, although his height be taken)"

 

셰익스피어는 이 시에서 사랑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사랑은 영원한 것이며 흔들리지 않는 밤하늘 별자리와 같다고 말이다. 순간 아름다워 보이는 사랑은 시간이 흐르며 퇴색되어가지만 진실된 사랑은 시간에 영원하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언제나 본질로서의 사랑이 아닌 현상으로서의 사랑인 것을 어쩌랴. 사랑의 주체와 객체에 따라, 혹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볼품없이 흔들리는 그런 사랑 말이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병원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키스를 할 때 가슴이 뛰는, 소위 느낌이 있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고 한다. 그렇게나 길어? 하고 되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무라야마 유카의 장편소설 <별을 담은 배>를 읽고 있노라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16번이 생각나곤 한다. 책의 제목이 하필이면 왜 '배를 이끄는 별'이 아닌 '별을 담은 배'였을까. 흔들리는 배에 담긴 저마다의 별, 저마다의 사랑이 작가에게 왜 그토록 중요했던 것인지 생각하곤 한다. 읽는 사람에 따라 근친상간을 다룬 그닥 건전하지 못한 소설이라고 평할 수도 있겠으나 저자는 오히려 독자들을 향해 ‘비정상적이고 일방적으로 치부되는 사랑은 거짓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제 손으로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는 무기력한 현실에서 사랑은 그들에게 유일한 탈출구이자 삶의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랑은 그만큼 절실하며 아프게 읽힌다.

 

"만약에. 오래도록 사에는 그 말을 떠올리는 것조차 금기로 삼았다. '만약에'라는 꿀로 포장된 과거는 달콤하지만, 그 달콤함은 마치 마약과도 같아서 빠지면 빠질수록 독이 되어 마음에 쌓인다. 사에는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견제했던 것이다." (p.188 ~ p.189)

 

무라야마 유카에게 나오키상을 안겨준 이 책은 사실 여섯 편의 에피소드가 서로 인과성 없이 연결된 연작소설로서 ‘미즈시마 가(家)’의 비밀스러운 가족사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스토리는 시게유키의 둘째 아들 ‘아키라’가 어머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오래도록 등지고 살았던 고향으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자신을 직접 낳지는 않았지만 친자식보다 더 아끼고 사랑해 주었던 인정 많은 새엄마 시즈코의 죽음보다는 오히려 그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이복 여동생 '사에'가 아키라는 더 신경 쓰인다. 아버지 '시게유키'가 가정부였던 '시즈코'와 재혼함으로써 시즈코와 그녀의 딸 '사에'는 '미즈시마' 가문에 새로이 편입되었다. 장남 미쓰구와 둘째 아들 아키라, 이복 여동생 사에와 막내 여동생 미키.

 

아키라는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사에를 사랑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만남을 적극 권유했던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돌아온 사에를 위로하며 아키라와 사에는 비로소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되고 연인으로 발전한다. 피가 섞이지 않은 남남인 줄 알았던 사에가 아버지의 친자식임을 알게된 아키라는 결국 집을 나가고 대학도 포기한 채 떠돌다가 한 사업가의 딸과 결혼하여 정착한다. 한동안 방황하던 사에는 결국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사업을 돕게되고 소꿉친구였던 남자와 결혼을 약속한다.

 

시즈코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만난 사에와 아키라. 결국 사에는 남자친구와 결별하고 위태롭게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아키라마저 이혼한다. 독립하여 살면서 유부남과 인스턴트 사랑만 고집하는 막내 여동생 미키와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껴 시골 생활을 동경하는 장남 미쓰구의 가벼운 불륜. 그리고 아내를 잃은 아버지 시게유키의 회상과 젊은 시절의 사랑. 비록 본질적인 사랑은 같을지라도 사랑을 인식하는 주체의 나이에 따라, 그리고 사랑의 대상인 객체가 누구냐에 따라 그 모습은 한 가족 내에서도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 말을 순순히 믿고 좋아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만큼 성품이 좋은 것도 아니고 순정파도 아니다. 그럴 용기도 자신감도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부담을 지거나 상처를 입을 만한 위험이 있다 싶으면 미리부터 피하는 기술에만 숙달된다." (p.227)

 

장년에 이른 미쓰구의 생각이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여인을 애인으로 두고 있는 그는 아내와 고등학생 딸을 둔 평범한 직장인이다. 권태로운 일상과 정년 이후의 불안, 외로움 등에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오십 대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왜 나는, 나일까>에서 장남 미쓰구의 모습은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이 시대의 중년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은퇴 이후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과거 자신 안에 있었던 그 폭발적인 에너지는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가령 증발한 물이 돌고 돌아 비로 내리듯, 지금이라도 잘하면 되살릴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새삼스레 그런 에너지가 되살아난다 한들 벅차기만 할 듯한 기분도 든다. 그토록 절박했던 방황과 후회와 나중에 생각해보면 자의식의 이면에 불과했던 격렬한 자기혐오, 그런 모든 것을 감당할 만한 힘이 지금의 내게는 이미 없다. 쥐어짜 내도 나올 것이 없다." (p.243~p.244)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진실할수록 위험해지는 관계에 놓인 아키라와 사에, 미키와 미쓰구. 다만 사랑의 모습은 서로 제각각이다. 아직은 어린 막내 여동생 미키의 대책없는 사랑과 열정이 식은 미쓰구의 사랑이 대비된다.

 

표제작인 <별을 담은 배>는 이 소설의 마지막 이야기이다. 아버지 시게유키의 이야기로, 미즈시마 가(家)의 비밀스런 사건과 갈등, 고통의 출발점이자 그것들이 마무리되는 종착점이기도 하다. 일제의 침략 전쟁에 징집되어 전쟁의 공포와 잔인성, 인간의 광기와 상실감을 직접 겪은 그는 전쟁이 남긴 고통스러운 기억과 상처로 인해 고집스럽고 폭력적인 사람으로 변하였다. 자신으로 인해 가족이 해체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통해 전후세대와의 화해를 도모한다. 그것은 어쩌면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사랑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둘째 아들 아키라의 말이 인상적이다.

 

"시게유키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 안 나세요? 그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셨어요. '아픔은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한 번도 위험에 부닥치지 않고 어떻게 위험하다는 것을 알겠느냐'고 말이죠." 목소리는 낮고 볼은 일그러져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명랑한 투였다. "그 말, 지금도 아버지 일생일대의 명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묘를 바라보면서 아키라는 말했다." (p.449)

 

키르케고르의 분류에 따르면 문학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랑은 제1단계인 심미적 단계가 주류를 이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사랑, 즉 종교적 단계의 사랑은 찾기 어렵다. 현상으로서의 사랑, 보여지는 사랑은 끝없이 흔들린다. 사랑을 하는 그 남자와 그여자를 통하여 사랑은 순간순간 '다시 발명되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랭보의 시구처럼 말이다. 사랑은 다시 발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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