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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플러스 원 - 가족이라는 기적
조조 모예스 지음, 오정아 옮김 / 살림 / 2014년 11월
평점 :
소설의 순기능 중 하나는 소설 속 주인공이 누리는 행운을 잠시나마 그대로 믿게 된다는 데 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똑같은 행운이 내게도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말이다. 그렇게 현실의 허기와 고통을 잊게 하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소설 속에 존재하는 상상의 세계로 순간이동을 한 까닭이지만 그것은 마치 모르핀보다 강력한 상상의 진통제를 맞고 시간의 가시밭길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 적어도 책을 읽는 시간 동안은 누구나 시나브로 '행복'에 가까워지는 법이다.
조조 모예스의 소설 『미 비포 유』를 워낙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신작 『원 플러스 원: 가족이라는 기적』을 구매하는 데는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무모한 용기 뒤에는 항상 후유증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뭔가 2% 부족한 듯한 약간의 아쉬움과 가슴을 치는 후회가 복잡한 머릿속을 한동안 헤짚고 다닌다. 『미 비포 유』를 읽었을 때 상업적 소설이라는 느낌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안락사라는 묵직한 이슈와 달콤한 러브 라인,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적인 스토리 등 소설의 부정적인 면을 감추고도 남을 만한 여러 요소가 있었지만 이 책『원 플러스 원』에서는 이렇다 할 장점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왔던 흔한 이야기, <콩쥐팥쥐>나 <신데렐라> 류의 뻔한 스토리로 여겨졌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 외에는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시시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이런저런 역경을 겪게 되지만 결국에는 꼬였던 일이 다 잘 풀리고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된다는, 학창시절 내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고진감래'나 '권선징악'의 구조가 이런 것인가 싶은 느낌마저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생각할 거리가 전혀 없었던 형편없는 책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빈부격차의 문제나 가족의 해체 등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보편적 이슈를 소설의 전반에 펼쳐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엄마가 아이를 꼭 안아주지 않으면, 네가 바로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는 말을 해주지 않으면, 심지어 집에 있다는 사실 조차 눈치 채지 못하면,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제스는 잘 알았다. 마음속의 작은 부분이 단단히 봉인된다. 엄마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러고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한 채 기다린다. 누군가 가까이 다가왔다가 자신에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발견하게 되기를, 처음에는 보지 못한 뭔가를 발견하고 점점 차갑게 변해가다 그들 역시 사라져버리기를. 바다 안개처럼. 자신을 낳아준 엄마조차 진정으로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으니까. 그렇지 않은가?" (p.257)
여주인공 제스는 싱글맘이다. 그녀에게는 열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낳았던 초등학생 딸 탠지와 10대 소년 니키가 있다. 탠지의 오빠인 니키는 그녀가 낳은 친아들이 아니다. 지금은 별거 중인 남편 마티가 전 여자친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지만 제스가 거두어 같이 살고 있다. 그녀는 낮에는 청소부로, 밤에는 바텐더로 일하면서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지만 늘 돈에 쪼들린다. 아들 니키는 또래 아이들로부터 지속적인 폭력과 괴롭힘에 시달리고 마리화나 없이는 잠을 잘 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게임 중독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녀로서는 달리 대안이 없다. 오직 별거 중인 남편이 하루 빨리 정신을 차려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수학에 천재적 재능이 있는 탠지에게 어느 날 기쁜 소식이 전해진다. 탠지의 수학 재능을 알아본 명문학교 세인트 앤에서 탠지에게 장학금을 줄 테니 입학하라는 권유를 해 온 것이다. 하지만 90%의 장학금을 받더라도 세인트 앤의 학비는 제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액수였다. 탠지가 세인트 앤에 입학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수학 올림피아드에 참가하여 수상 상금을 받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제스는 그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어 스코틀랜드행을 결심한다.
남편이 떠나고 몇 년째 방치되었던 롤스로이스에 아이들을 태우고 과감하게 출발했지만 얼마 가지 못하여 자동차는 경찰에 압류되고 스코틀랜드행은 좌절될 위기에 처한다. 마침 이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에드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잘 나가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에드는 한때 상당한 재산을 모았었다. 그러나 모델이었던 전처와 이혼한 후 대학 시절 짝사랑하던 여자친구와 재회함으로써 그의 인생은 엉뚱한 길로 들어선다. 여자친구의 딱한 사정을 듣고 건네 준 수표와 호재가 될 만한 사내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그는 내부자 거래 혐의를 받게 된다.
머리도 식힐 겸 가볍게 출발했던 여행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게 됨으로써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 자그마한 소형 승용차 안에 제스와 탠지, 니키, 에드, 그리고 덩치 큰 개 노먼이 구겨 타고 영국의 남북을 종단하는 긴 여정 속에서 그 다섯의 동행인들은 끊임없이 간섭하고 부딪치고 끌리고 튕겨나가곤 한다. 그리고 조금씩 서로를 변화시킨다. 이유도 없이 괴롭힘을 당해온 니키를 보며 에드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되고 니키에게 자신의 노트북을 선물하는가 하면 자신이 가진 컴퓨터 기술을 활용해 가해 학생에게 인터넷상에서 망신을 주기도 한다. 안경 없이는 글씨를 읽을 수 없는 탠지를 위해 여러 도수의 안경을 한아름 사들고 가는 따뜻한 심성의 에드. 혹시 구속될지도 모르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임종을 앞둔 아버지를 만나러 와줄 것을 요구하는 누나의 부탁도 거절하던 에드는 결국 제스와 함께 병원을 찾아 자신의 처지를 가족들에게 알린다.
수상을 하지 못하고 실망한 탠지를 위해 제스는 남편과 아이들의 만남을 주선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혼 상태인 남편 마티는 이미 다른 여자와 동거를 하는 상태였고 그녀가 생각하던 것만큼 가난하지도 않았다. 그것도 모른 채 남편을 동정만 했던 자신에게 화가 났고, 그런 감정을 에드에게 솔직하게 내보인다. 둘 사이의 거리는 급격하게 좁혀진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있었던 일로 작은 오해를 하게 된 에드는 헤어질 결심을 한다. 그러나 결국 오해도 풀리고 에드는 재판에서 집행유예 처분을 받음으로써 제스 곁으로 돌아온다. 에드는 제스에게 이렇게 청혼한다.
"우리가 함께 하면 어떤 모습이 될지 보고 싶어요, 제시카 레이 토머스. 우리 모두 함께 하면요. 어떻게 생각해요?" (p.547)
각기 다른 상처를 안고 만났던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면서 가족이라는 하나의 작은 울타리 속으로 모여드는 과정은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서로 상반되는 경제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합쳐진다는 설정이 약간 억지스러운 점도 없진 않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경제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한두 가지의 고민을 떠안고 살아가는 게 우리 삶이고, 그것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게 사랑이며, 사랑의 공동체인 가족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