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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담은 배 - 제129회 나오키상 수상작
무라야마 유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사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16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아, 그래요 사랑은 영원한 상징,/폭풍우를 굽어보면서도 흔들리지 않지요
사랑은 모든 방황하는 배를 이끄는 별이니 /그 높이는 알아도 그 가치는 알지 못하죠(O no! It is an ever fixed mark/That looks on tempests and is never shaken;/It is the star to every wadering bark,/Whose worth's Unknown, although his height be taken)"
셰익스피어는 이 시에서 사랑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사랑은 영원한 것이며 흔들리지 않는 밤하늘 별자리와 같다고 말이다. 순간 아름다워 보이는 사랑은 시간이 흐르며 퇴색되어가지만 진실된 사랑은 시간에 영원하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언제나 본질로서의 사랑이 아닌 현상으로서의 사랑인 것을 어쩌랴. 사랑의 주체와 객체에 따라, 혹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볼품없이 흔들리는 그런 사랑 말이다. 미국의 어느 유명한 병원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키스를 할 때 가슴이 뛰는, 소위 느낌이 있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고 한다. 그렇게나 길어? 하고 되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무라야마 유카의 장편소설 <별을 담은 배>를 읽고 있노라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16번이 생각나곤 한다. 책의 제목이 하필이면 왜 '배를 이끄는 별'이 아닌 '별을 담은 배'였을까. 흔들리는 배에 담긴 저마다의 별, 저마다의 사랑이 작가에게 왜 그토록 중요했던 것인지 생각하곤 한다. 읽는 사람에 따라 근친상간을 다룬 그닥 건전하지 못한 소설이라고 평할 수도 있겠으나 저자는 오히려 독자들을 향해 ‘비정상적이고 일방적으로 치부되는 사랑은 거짓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제 손으로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는 무기력한 현실에서 사랑은 그들에게 유일한 탈출구이자 삶의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랑은 그만큼 절실하며 아프게 읽힌다.
"만약에. 오래도록 사에는 그 말을 떠올리는 것조차 금기로 삼았다. '만약에'라는 꿀로 포장된 과거는 달콤하지만, 그 달콤함은 마치 마약과도 같아서 빠지면 빠질수록 독이 되어 마음에 쌓인다. 사에는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견제했던 것이다." (p.188 ~ p.189)
무라야마 유카에게 나오키상을 안겨준 이 책은 사실 여섯 편의 에피소드가 서로 인과성 없이 연결된 연작소설로서 ‘미즈시마 가(家)’의 비밀스러운 가족사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스토리는 시게유키의 둘째 아들 ‘아키라’가 어머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오래도록 등지고 살았던 고향으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자신을 직접 낳지는 않았지만 친자식보다 더 아끼고 사랑해 주었던 인정 많은 새엄마 시즈코의 죽음보다는 오히려 그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이복 여동생 '사에'가 아키라는 더 신경 쓰인다. 아버지 '시게유키'가 가정부였던 '시즈코'와 재혼함으로써 시즈코와 그녀의 딸 '사에'는 '미즈시마' 가문에 새로이 편입되었다. 장남 미쓰구와 둘째 아들 아키라, 이복 여동생 사에와 막내 여동생 미키.
아키라는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사에를 사랑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만남을 적극 권유했던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돌아온 사에를 위로하며 아키라와 사에는 비로소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되고 연인으로 발전한다. 피가 섞이지 않은 남남인 줄 알았던 사에가 아버지의 친자식임을 알게된 아키라는 결국 집을 나가고 대학도 포기한 채 떠돌다가 한 사업가의 딸과 결혼하여 정착한다. 한동안 방황하던 사에는 결국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사업을 돕게되고 소꿉친구였던 남자와 결혼을 약속한다.
시즈코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만난 사에와 아키라. 결국 사에는 남자친구와 결별하고 위태롭게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아키라마저 이혼한다. 독립하여 살면서 유부남과 인스턴트 사랑만 고집하는 막내 여동생 미키와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껴 시골 생활을 동경하는 장남 미쓰구의 가벼운 불륜. 그리고 아내를 잃은 아버지 시게유키의 회상과 젊은 시절의 사랑. 비록 본질적인 사랑은 같을지라도 사랑을 인식하는 주체의 나이에 따라, 그리고 사랑의 대상인 객체가 누구냐에 따라 그 모습은 한 가족 내에서도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 말을 순순히 믿고 좋아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만큼 성품이 좋은 것도 아니고 순정파도 아니다. 그럴 용기도 자신감도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부담을 지거나 상처를 입을 만한 위험이 있다 싶으면 미리부터 피하는 기술에만 숙달된다." (p.227)
장년에 이른 미쓰구의 생각이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여인을 애인으로 두고 있는 그는 아내와 고등학생 딸을 둔 평범한 직장인이다. 권태로운 일상과 정년 이후의 불안, 외로움 등에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오십 대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왜 나는, 나일까>에서 장남 미쓰구의 모습은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이 시대의 중년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은퇴 이후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과거 자신 안에 있었던 그 폭발적인 에너지는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가령 증발한 물이 돌고 돌아 비로 내리듯, 지금이라도 잘하면 되살릴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새삼스레 그런 에너지가 되살아난다 한들 벅차기만 할 듯한 기분도 든다. 그토록 절박했던 방황과 후회와 나중에 생각해보면 자의식의 이면에 불과했던 격렬한 자기혐오, 그런 모든 것을 감당할 만한 힘이 지금의 내게는 이미 없다. 쥐어짜 내도 나올 것이 없다." (p.243~p.244)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진실할수록 위험해지는 관계에 놓인 아키라와 사에, 미키와 미쓰구. 다만 사랑의 모습은 서로 제각각이다. 아직은 어린 막내 여동생 미키의 대책없는 사랑과 열정이 식은 미쓰구의 사랑이 대비된다.
표제작인 <별을 담은 배>는 이 소설의 마지막 이야기이다. 아버지 시게유키의 이야기로, 미즈시마 가(家)의 비밀스런 사건과 갈등, 고통의 출발점이자 그것들이 마무리되는 종착점이기도 하다. 일제의 침략 전쟁에 징집되어 전쟁의 공포와 잔인성, 인간의 광기와 상실감을 직접 겪은 그는 전쟁이 남긴 고통스러운 기억과 상처로 인해 고집스럽고 폭력적인 사람으로 변하였다. 자신으로 인해 가족이 해체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통해 전후세대와의 화해를 도모한다. 그것은 어쩌면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사랑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둘째 아들 아키라의 말이 인상적이다.
"시게유키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 안 나세요? 그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셨어요. '아픔은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한 번도 위험에 부닥치지 않고 어떻게 위험하다는 것을 알겠느냐'고 말이죠." 목소리는 낮고 볼은 일그러져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명랑한 투였다. "그 말, 지금도 아버지 일생일대의 명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묘를 바라보면서 아키라는 말했다." (p.449)
키르케고르의 분류에 따르면 문학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랑은 제1단계인 심미적 단계가 주류를 이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사랑, 즉 종교적 단계의 사랑은 찾기 어렵다. 현상으로서의 사랑, 보여지는 사랑은 끝없이 흔들린다. 사랑을 하는 그 남자와 그여자를 통하여 사랑은 순간순간 '다시 발명되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랭보의 시구처럼 말이다. 사랑은 다시 발명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