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 1
김재식 지음, 정마린 그림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2015년의 대한민국에는 멘토가 넘쳐났다. 넘치는 건 멘토뿐만 아니라 필요로 하는 정보는 무엇이건 차고 넘쳤다. 그러나 정보가 늘어날수록 비례하여 두려움도 증가하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불과 이십 몇 년 전, 넉넉 잡아 삼십 년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정보는 접근 가능한 몇몇 사람들만의 전유물로만 존재했었다. 그러므로 그 시절의 사람들 대부분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삶에 돌진했었고, 사전 지식도 없이 오직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로 지식을 쌓아나갔다. 삶은 모험이었고, 지식은 모험으로부터 얻어지는 값진 수확물이었다. 2015년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지식이나 정보는 고작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떠도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아무도 그 흔하디 흔한 정보를 제 주머니에 넣어 보관하려 들지 않았다.

 

외식을 하러 나갈 때도, 버스 시간을 알고자 할 때도, 심지어 퇴근 후 자신의 집으로 향할 때도 정보를 찾는 일은 빼놓지 않았다. 비록 한 번 쓰이고 버려질 정보였지만 사람들은 공을 들여 검색을 하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줄여보려는 듯 찾을 수 있는 정보란 정보는 모조리 뒤져보곤 하였다. 사는 데 드는 시간보다 오히려 살아가기 위한 올바른 방법이나 편히 살기 위한 사전 지식을 얻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다. 말하자면 사는 것보다 살기 위한 준비 작업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었다. 경쟁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럼에도 자신이 검색한 지식의 양이 항상 부족한 듯 느껴졌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이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이제는 양으로서의 지식 그 자체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동전 수집을 하듯 비슷비슷한 지식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는 건 대한민국 국민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중학교에 입학할 때도,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대학교에 입학할 때도, 연인과 사랑할 때도, 결혼할 때도, 아이를 낳을 때도, 부모가 되고 늙어갈 때도, 심지어 죽어갈 때에도 자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를 찾아 사람들은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썩은 고기를 향해 돌진하는 하이에나처럼 말이다. 실수를 줄여보겠다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직 검색을 위한 정보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자신이 가진 정보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획득한 새로운 정보만을 세상에 자랑스럽게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정보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정보 획득에 뒤쳐졌다는 공포가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정작 삶을 살아보기도 전에 '삶은 두렵다'는 정보부터 배워야만 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사람들 모두는 머릿속 정보는 하등 필요없는 것으로만 여겼다. 삶은 부딪쳐 깨닫는 것이지 미리 알고 이것저것 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겁날 것 없이 돌진하는 장갑차처럼 사람들은 삶을 향해 무모한 도전을 계속했다. 삶은 제 몸뚱아리 하나를 불사르겠다는 의욕 충만한 젊은이들의 전쟁터였다. 사랑이나 결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배우자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심지어 사지가 멀쩡한지 그렇지 않은지조차 알지 못한 채 두 사람은 만났고 평생을 함께 살았다. 짝이 정해진 순간부터 사람들은 '인물 뜯어먹고 살 것도 아닌데 잘 생겨서 뭐해'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김재식의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을 읽으며 내게 들었던 생각들이다. 책을 다 읽은 후 저자의 면면을 살펴 보니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대표 커뮤니티인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의 운영자로서 그는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2004년에 시작된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은 사랑의 슬픔과 기쁨과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전하는 ‘사랑 멘토’로 성장해, 현재 200만 명에게 위안을 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한 정보를 찾다 보면 정작 '사랑을 잘 해보겠다'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사랑에 대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정보 찾기에만 열중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때로는 사랑에 관한 좋은 글귀를, 또는 짧은 체험담을, 혹은 시의 형식을 띤 짧은 사유를 담은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정보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어지간히 인기를 끌 만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사랑은 직접 체험하는 것이지 생각에서 머무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할 때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대담함뿐이다. 사랑을 하면서 우리가 겪는 갖가지 실수들, 이를테면 오해와 갈등 심지어 이별까지도 하나하나 겪고 헤쳐나가겠다는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 이것저것 재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면 자신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아는 게 없다는 두려움이다. 지식에 비례하여 삶이 풍요로워지는 건 절대 아니다. 허술한 여행이 더 기억에 남는 것처럼 무모한 사랑이 더 많은 추억을 남겨주는 법이다. 인생에 그보다 더 귀한 선물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5기 활동 마감 페이퍼를 작성해 주세요!

세월의 감지는 손에 만져지는 게 아니라서 선뜻 알아차리기 어렵다. 6개월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이 소요되는  알라딘 신간평가단(주로 에세이 분야) 활동을 몇 번 하면서 나는 그때마다 '아! 벌써 6개월이 흐른 거야?' 되묻곤 했다. 반 년이라는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흐른 셈이다. 월초마다 신간 페이퍼를 작성하고, 그 페이퍼에 의해 선정된 책을 받고, 책을 읽고, 리뷰를 작성하는, 어찌 보면 단순하고도 정형화된 시간들이 속도도 감지되지 않은 채 조용히 흘러갔을 뿐이다. 나는 방금 잠에서 깬 듯 '뭐야, 벌써 6개월이 흐른 거야?' 깜짝 놀란다.

 

1.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

   <조지프 앤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가 출간되었던 과거의 어느 시점에 시 하나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의 소식이 뇌리에 잔상처럼 남아 있었는데 마침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마치 그 시절로 되돌아가 시간을 두 번 산 듯한 느낌을 받았다.

 

2.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1)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2) 나는 왜 쓰는가

   3)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4) 금요일엔 돌아오렴

   5)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얼추 장마가 끝나가나 봅니다. 이제 다음 계절까지는 더운 일만 남았겠지요. 그렇게 무더위를 견디다 보면 조만간 아침 저녁으로 소슬한 바람이 불고, 나도 모르게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날이 오고야 말겠지요. 오늘도 날씨가 참 무덥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과연 신이 존재할까? 라거나 '너는 신이 있다고 믿어?'하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철학자나 종교학자가 아닌 나와 같은 일반인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 나올 때는 그 사람이 정말로 신의 존재가 궁금해서 하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호기심 왕성한 어린애도 아니고 말이다. 아마도 그의 속내는 '만약에 신이 있다면 나의 이런 불행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이거나 '신이 나의 불행을 빨리 끝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줘.' 정도가 될 것이다.

 

적어도 그에게는 질문을 하기 바로 직전이나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 생각지도 않았던 불행이 찾아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이 있다고 믿느냐? 의 질문 속에는 내 불행을 깨끗이 씻어내기 위해서는 지금 시점에서 신의 은총이 간절히 필요하다는 자신의 속내를 에둘러 표현한 말일 게다. 혹은 나를 위해서 신의 은총을 빌어달라는 의미이거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신이 인간에게 매정하리만치 무관심할 때 신의 존재를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 무슨 말인고 하면 신의 사랑은 당연히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나눠져야 한다고 믿는 까닭에 누구를 더 편애하거나 누구를 더 미워하는 식으로 행동하는 신의 존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만일 그런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인간을 닮은, 인간과 아주 흡사한, 신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신답게 처신을 하려면 그런 일은 절대로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누구의 불행이 더 커 보여서, 누구의 처지가 더 딱해서, 누구는 신을 향하여 간절히 빌었기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불행을 면제해주는 신이 있다면 그것은 신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다는 뜻이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하게 공평해질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오직 신의 영역일 뿐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신은 인간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린 채 무관심할 수밖에 도리가 없는 셈이다. 어떤 기도에도 눈 하나 꿈적하지 않고, 아무리 큰 불행에도 표정하나 바뀌지 않아야만 모든 인간에게 공평할 수 있다. 결국 하느님(또는 신)의 가장 큰 사랑은 인간을 향한 완전한 무관심이다.

 

날씨가 무덥다. 더위를 먹었는지 한 친구가 내게 '신의 존재를 믿느냐?'는 뜬금없는 문자를 보냈다. 목사의 아들이었던 니체도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게 언제 적 얘긴데 아직도 이런 철없는 질문을 하는 친구가 있다니...쯧쯧.  나잇값 좀 하시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반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어보셨는지. 가슴이 아려 차마 더 읽지 못하고 책을 덮었던 적이 나는 몇 번 있습니다.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던 고독한 천재화가의 지독한 불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편지가 주는 감동 때문이었습니다. 삶과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은 편지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화가의 글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탄에 감탄을 더한 적도 여러번이었습니다. 지난헤 봄이었나 봅니다. 서경식과 타와다 요오꼬의 편지를 엮어 만든 <경계에서 춤추다>를 우연히 읽고 나는 두 지성인의 아름다움에 다시 한번 흠뻑 취했었습니다.(http://blog.aladin.co.kr/760404134/6970969) 그것은 고흐의 편지에서 느낄 수 있었던 예술가의 뜨거운 열정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축적된 지식과 절제된 감정을 통하여 두 지성인이 보여준 삶의 균형미였습니다.

 

이번에 내가 읽은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온 삶을 아이들과 함께  살았던 이오덕 <강아지똥>과 <몽실 언니>의 작가 권정생. 1973년 1월에 만나 2003년 이오덕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년을 함께했던 두 분의 우정은 편지 속에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일념으로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였고, 문학가로서 서로를 존경했던 두 사람의 편지에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이토록 맑고 투명해질 수 있을까 감탄하게 됩니다.

 

"여기는 어제 아침에 된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꽤나 얼었습니다. 그 허술한 방에 무더운 여름을 지나게 하고, 또 겨울을 보내도록 해서 참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사람 같지 않게 살고 있는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워집니다. 선생님의 새 동화집을 모든 아이들이 읽을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하고 빌 뿐입니다."    (p.229)

 

권정생의 편지에서 찢어지게 가난했던 형편 속에서도 누구보다 성실한 생활인으로서 살고자 했고, 작가로서 스스로에게 너무나도 엄격했던 그의 인간적 면모가 가감없이 드러납니다. 또한 교사로 아동문학가로 우리 말 운동가로 평생을 아이들과 함께 하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권정생의 약값과 연탄값을 걱정하고, 아동문학을 논하며, 세상을 안타까워하고 더 나아지기를 꿈꿨던 이오덕의 마음 씀씀이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서로를 시기하고 욕심내고 탐하는 작금의 우리네 삶을 아프게 돌아보도록 합니다.

 

"생활에서 도피한다는 것, 저는 찬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생활이 없이 어떻게 글을 씁니까? 제 동화가 무척 어둡다고들 직접 말해 오는 분이 있습니다만, 저는 결코, 제가 겪어 보지 못한 꿈 같은 얘기는 쓸 수가 없습니다. 쓰려고 노력하지도 않겠습니다. 팔 병신은 팔 병신다웁게 몸을 움직이고, 다리병신은 다리병신다웁게 절뚝거리는 것이 정상이라 봅니다. 잘못된 교육은 인간의 결함을 숨기려는 데서 비인간화시켜 버린다고 봅니다."    (p.159)

 

3년 전 이맘때 <빌뱅이 언덕>을 읽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이 책에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동화작가로서의 권정생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나는 사실 그의 삶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습니다. 지난했던 그의 삶에 대해, 자신의 결핵으로 인해 동생의 결혼에 방해가 될까봐 집을 나갔던 것조차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평생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등짐처럼 병을 안고 살았던 것도 그때 알게 되었었지요.

 

가까운 사람 사이에 오고 간 편지만큼 그 사람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는 것은 아마 없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편지가 다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겠지요.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편지는 오직 그 사람의 품성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읽고 감동을 받았던 편지글의 책들은 하나같이 힘든 삶을 사셨던 분들이었습니다. 반 고흐도, 서경식 교수도, 권정생 작가도 우리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힘든 삶을 살았었지요. 역경 속에서 자신을 지켜낸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요. 생각해 보면 편지 속에 드러난 권정생 작가의 모습은 들꽃 같은 것이었습니다. 뽐내며 나서는 것은 아니지만 들꽃처럼 아름다운 삶이었고, 이오덕과의 어울림으로 인해 세파에 몸을 맡긴 채 흘러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 눈으로 산책 - 고양이 스토커의 사뿐사뿐 도쿄 산책
아사오 하루밍 지음, 이수미 옮김 / 북노마드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5시 55분에 맞춰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깼다기보다 그때까지 푹 자지 못했다는 게 옳다. 내가 일어난 시각은 아마도 4시경이었을 게다. 간헐적으로 들리던 빗소리와 높아진 습도 때문에 밤새 뒤척였었다. 잔뜩 흐린 하늘. 여느 날처럼 일찍 집을 나섰다. 빗줄기는 많이 약해져 있었다. 접이 우산을 펼쳐 들고 아파트를 빠르게 벗어났다. 산을 오르는 초입에는 폐침목으로 만들어진 계단이 있다. 물기 머금은 계단을 오르자 층계참에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빗물이 물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모든 게 새롭다. 빗길을 걷는 게 얼마만인지... 산의 능선에 이르렀을 즈음 빗줄기가 갑자기 굵어졌다. 뽀얗게 물보라가 일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내 노래는 마치 칭얼대며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반경 2~3미터를 벗어나지 않은 채 주변을 겨우 맴돌다가 빗소리에 묻혀 이내 스러진다.

 

등산로 한켠에서 고양이를 만났다. 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고양이였다. 하얀색에 엷은 갈색이 드문드문 섞인 고양이는 나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이내 자리를 떴다. 지난 번에 만났을 때는 털에 땟국물이 감돌긴 했으나 그나마 보송했는데 오늘은 털이 빗물에 젖어 착 달라붙은 꼴이 영락없는 새앙쥐다. 온통 비에 젖은 숲에서 제 한 몸을 누일 마른 곳을 찾기도 쉽지 않을 텐데 어디로 달아난 것인지...

 

아사오 하루밍의 <고양이 눈으로 산책>을 읽었다. 아침에 만난 고양이를 떠올리면 가엾고 불쌍하다는 생각부터 들지만 아사오 하루밍이 생각하는 고양이는 더할 나위 없이 똑똑하고 사랑스럽다. 물론 작가가 말하는 '내 안의 고양이'는 실물이 아닌 작가의 상상 속에서 지어낸 고양이이지만 말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에세이스트인 저자는 혼자, 또는 지인들과 함께 했던 도쿄 산책을 고양이의 시선으로 세세히 기록하고 있다. 작품 속에는 실제로 '내 안의 고양이'가 이따금 등장하여 작가의 행동을 일일이 간섭하고, 생각을 바로잡고, 고양이의 느낌을 전달함으로써 작품에 재미를 더한다.

 

"내 안의 고양이는 요즘 내 안에서 반만 있다. 매일 옷집 호랑고양이를 만나러 가느라 바쁘다. 옷집 현관 매트에 엎드려 졸고 있는 그 호랑이에게 매일같이 풍뎅이를 잡아 선물하는 모양이었다. 내 안의 고양이는 서로 코를 비비는 고양이식 인사를 하고 싶은데, 호랑이는 풍뎅이를 흘끗 쳐다보기만 하고 다시 잠들어버렸다. 그래도 내 안의 고양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풍뎅이를 잡아 톡 떨어뜨린다." (p.152)

 

사람의 시선으로 도시 산책에 나설라치면 크고 화려한 곳,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 가급적이면 도로에 인접한 곳 위주로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다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사람이 긴요한 볼일이 없다면 절대로 들어가지 않을 듯한, 벽과 벽 사이의 좁은 골목길도 주저 없이 드나든다. 오히려 그런 곳이 고양이의 주 통로가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고양이는 도시의 한 귀퉁이에 터를 잡고 산 지 단 며칠만 지나도 그곳 지리를 훤히 꿰뚫게 되지만 사람은 도시에 이사온 지 몇십 년이 지나도 뒷골목의 지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서울 촌놈'이라는 말도 있듯이. 일부러 나다니지 않으면 동국대학교에서 남산을 오르는 남산 산책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미처 알지 못한다.

 

작가는 '내 안의 고양이'와 함께 도시의 고샅고샅을 누비고, 식사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고양이도 만난다. 소소한 일상 속에 도시의 낯섦이 파고든 것인지, 낯선 도시의 뒷골목에서 소소한 일상을 맞는 것인지 헷갈리지만 우리가 어떤 목적지를 향해 차를 타고 휭하니 갔을 때는 결코 보지 못했을 풍경들을 작가는 고양이의 시선으로 감탄하며 기쁘게 기록하고 있다. 이따금 작가는 인간의 감성으로 진지하게 말하기도 한다.

 

"평소에 우리는 땅 위의 사물에만 관심을 두고 지면에 대해선 잊고 산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 바꿔 요시와라가 지니는 많은 요소 중 우선 '단'을 염두에 두고 마을을 바라보면 천 년 전 이 땅에 살았던 할아버지가 구름 위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마을 어딘가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들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 또한 땅 위에서 생활하는 일원으로서, 요시와라에 흥미를 가지는 마흔 넘은 여자로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반성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으며, 그냥 생각나는 대로 살고 있다." (p.192)

 

이제 비는 완전히 멎었다.내가 만났던 숲속의 고양이는 배가 불룩한 게 새끼를 밴 듯했다. 사람을 경계하는 차가운 눈매와 공격에 대비하는 낮은 자세로 인해 나는 그 고양이에게 마음을 열고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안하무인의 도시는 오직 사람들의 북적임과 떠들썩함으로 영역표시를 하고, 도시에 터를 잡고 살던 다른 동물들에게는 그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행세깨나 하는 양 사람들은 도시를 온전히 자신들의 영역으로 착각하게 되고, 도시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게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고양이의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면 모든 게 새롭고, 모든 게 경이로울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선물처럼 한아름 쏟아질런지도 모르고 말이다. 내가 매일 아침 산을 오르면서도 우연히 만난 고양이의 거처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