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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 ㅣ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 1
김재식 지음, 정마린 그림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2015년의 대한민국에는 멘토가 넘쳐났다. 넘치는 건 멘토뿐만 아니라 필요로 하는 정보는 무엇이건 차고 넘쳤다. 그러나 정보가 늘어날수록 비례하여 두려움도 증가하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불과 이십 몇 년 전, 넉넉 잡아 삼십 년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정보는 접근 가능한 몇몇 사람들만의 전유물로만 존재했었다. 그러므로 그 시절의 사람들 대부분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삶에 돌진했었고, 사전 지식도 없이 오직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로 지식을 쌓아나갔다. 삶은 모험이었고, 지식은 모험으로부터 얻어지는 값진 수확물이었다. 2015년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지식이나 정보는 고작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떠도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아무도 그 흔하디 흔한 정보를 제 주머니에 넣어 보관하려 들지 않았다.
외식을 하러 나갈 때도, 버스 시간을 알고자 할 때도, 심지어 퇴근 후 자신의 집으로 향할 때도 정보를 찾는 일은 빼놓지 않았다. 비록 한 번 쓰이고 버려질 정보였지만 사람들은 공을 들여 검색을 하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줄여보려는 듯 찾을 수 있는 정보란 정보는 모조리 뒤져보곤 하였다. 사는 데 드는 시간보다 오히려 살아가기 위한 올바른 방법이나 편히 살기 위한 사전 지식을 얻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다. 말하자면 사는 것보다 살기 위한 준비 작업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었다. 경쟁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럼에도 자신이 검색한 지식의 양이 항상 부족한 듯 느껴졌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이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이제는 양으로서의 지식 그 자체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동전 수집을 하듯 비슷비슷한 지식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는 건 대한민국 국민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중학교에 입학할 때도,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대학교에 입학할 때도, 연인과 사랑할 때도, 결혼할 때도, 아이를 낳을 때도, 부모가 되고 늙어갈 때도, 심지어 죽어갈 때에도 자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를 찾아 사람들은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썩은 고기를 향해 돌진하는 하이에나처럼 말이다. 실수를 줄여보겠다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직 검색을 위한 정보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자신이 가진 정보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획득한 새로운 정보만을 세상에 자랑스럽게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정보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정보 획득에 뒤쳐졌다는 공포가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정작 삶을 살아보기도 전에 '삶은 두렵다'는 정보부터 배워야만 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사람들 모두는 머릿속 정보는 하등 필요없는 것으로만 여겼다. 삶은 부딪쳐 깨닫는 것이지 미리 알고 이것저것 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겁날 것 없이 돌진하는 장갑차처럼 사람들은 삶을 향해 무모한 도전을 계속했다. 삶은 제 몸뚱아리 하나를 불사르겠다는 의욕 충만한 젊은이들의 전쟁터였다. 사랑이나 결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배우자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심지어 사지가 멀쩡한지 그렇지 않은지조차 알지 못한 채 두 사람은 만났고 평생을 함께 살았다. 짝이 정해진 순간부터 사람들은 '인물 뜯어먹고 살 것도 아닌데 잘 생겨서 뭐해'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김재식의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을 읽으며 내게 들었던 생각들이다. 책을 다 읽은 후 저자의 면면을 살펴 보니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대표 커뮤니티인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의 운영자로서 그는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2004년에 시작된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은 사랑의 슬픔과 기쁨과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전하는 ‘사랑 멘토’로 성장해, 현재 200만 명에게 위안을 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한 정보를 찾다 보면 정작 '사랑을 잘 해보겠다'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사랑에 대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정보 찾기에만 열중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때로는 사랑에 관한 좋은 글귀를, 또는 짧은 체험담을, 혹은 시의 형식을 띤 짧은 사유를 담은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정보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어지간히 인기를 끌 만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사랑은 직접 체험하는 것이지 생각에서 머무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할 때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대담함뿐이다. 사랑을 하면서 우리가 겪는 갖가지 실수들, 이를테면 오해와 갈등 심지어 이별까지도 하나하나 겪고 헤쳐나가겠다는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 이것저것 재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면 자신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아는 게 없다는 두려움이다. 지식에 비례하여 삶이 풍요로워지는 건 절대 아니다. 허술한 여행이 더 기억에 남는 것처럼 무모한 사랑이 더 많은 추억을 남겨주는 법이다. 인생에 그보다 더 귀한 선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