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함'이라는 말 속에는 '3할의 게으름'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저는 '최선을 다하자.'는 말을 무척이나 싫어하는데요, 그 속에는 비정한 욕심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사람의 건강이나 안녕이 그닥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 그런 말 속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끼어들 수 없습니다. 오직 목표만이 중요할 뿐이죠.

 

어제 JTBC 뉴스에서 보도한 어느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을 보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어쩌면 저럴 수가 있나' 손이 벌벌 떨려왔습니다. 시간에 쫓기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건을 적재한 채 지게차를 운전할 수밖에 없었고, 그 지게차에 사람이 치여 피를 흘리고 있는데 출동한 119 구급차를 돌려 보내다니요?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짓을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 사람은 그렇게 방치되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지요?

 

참으로 어이없는 세상입니다. 경쟁만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목숨을 허무하게 버려야 고쳐질런지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다르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라구요? 그러다 죽습니다. 사람의 몸은 적어도 3할의 힘을 남겨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탈이 없습니다. 온 몸의 힘을 다 소모하면 외부의 작은 공격에도 버텨낼 재간이 없습니다. 잔병치레가 떠날 날이 없는 아이를 볼라치면 그 부모의 얼굴부터 보게 됩니다. '적당히 해라'라는 말 속에는 '3할의 게으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배려, 인간에 대한 사랑의 표현일 뿐 우리가 지양해야 할 '게으름'이 결코 아님을 이번 기회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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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킹 플라이트 - 전쟁고아에서 스타발레리나로 날아오르다!
미켈라 드프린스.일레인 드프린스 지음, 장미란 옮김 / 김영사on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불행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곳으로 무참히 끌고 갈 때가 있다. 나는 그런 일들이 생각날 때마다 그게 아무리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일이었다고 할지라도 한번쯤은 '가기 싫어!', 버팅겨 볼 수는 없었을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혹은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번쯤 같이 울어줄 사람 한 명쯤 곁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랬더라면 내 불행의 속도는 일 킬로미터쯤 더 느려지지 않았으려나. 그것이 비록 앵도라진 운명에 하릴없이 돌팔매질을 하는 것일지언정 마음 속 응어리가 영영 풀리지 않는 그런 시기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네 인생은 의외로 긴 것이어서 그런 시기는 누구에게나 온다.

 

길고 긴 불행의 터널을 벗어나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던 꿈을 마침내 이룬 사람들을 종종 보거나 듣게 된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그들의 이야기는 뭇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짜릿한 감동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가치가 있는 이유는 그들의 이야기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의 용기를 한껏 북돋운다는 데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무언의 격려가 되기도 하고, 까마득히 높은 곳에 위치하여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꿈의 높이를 10미터쯤 낮추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가능성은 그들이 사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미켈라 드프린스의 인생 역정을 담은 <테이킹 플라이트> 또한 그런 책이다.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시에라리온 출신의 그녀가 사랑하는 부모를 잃고 미국의 한 가정에 입양되어 자신의 꿈을 이루기까지의 전 과정을 담은 이 책은 생각만으로도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책이다.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을 안고 사는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마는 시에라리온의 내전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의 체험담에는 뭔가 특별한 아픔이 있다. 이스마엘 베아가 쓴 <집으로 가는 길>도 그랬다. 그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이스마엘 베아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요즈음 나는 세 개의 세계에서 산다. 나의 꿈, 새로운 삶과 경험, 그리고 그 삶이 과거로부터 불러오는 기억들."

 

"시에라리온을 탈출하면서 수백 구의 시체를 보았다. 데빌들은 날이 넓적하고 긴 칼 마체테를 휘두르고 다녔지만 정작 죽은 이들을 보면 심지어 어린아이들조차 머리에 총을 맞은 상태였다. 시신들은 공포에 질려 눈과 입을 벌린 채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썩은 내가 나는 정도와 시체 위를 기어다니는 벌레들을 보면, 죽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p.74)

 

반군들에게 부모를 잃고 큰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고아원에 보내진 흑인 소녀는 어느 잡지책에 실린 발레리나의 사진에 홀딱 반하여 언젠가 자신도 토슈즈를 신고 무대 위를 날아오르는 꿈을 꾼다. 그러나 백반증으로 온 몸이 얼룩덜룩한 흑인 소녀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고아를 입양하고 싶어 했던 미국의 양부모들조차도. 고아원 식구들과 함께 시에라리온을 간신히 탈출하여 기니에서 다시 가나로 간다. 가나에는 미국의 양부모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나에서 그녀는 고아원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 미아와 함께 같은 집으로 입양된다.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양부모와 함께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의 그 기나긴 여정은 아이들에게는 고되고 힘들었다. 그러나 그 고된 여정이 미아와 미켈라를 친자매로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내전으로 고아가 된 마빈틴 방구라(지금은 미켈라 드프린스)의 삶이 미국에서 무사히 뿌리를 내림으로써 모든 게 술술 풀려나갔던 것은 아니었다. 양부모의 아들이었던 테디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로 인한 깊은 슬픔, 그 슬픔을 잊기 위한 이사, 발레의 세계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인종 차별 등 그녀가 헤쳐나가야 할 고난은 많았었다. 네살배기 전쟁 고아가 미국이라는 낯선 나라에 정착하여 그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가족의 사랑이 무엇보다 큰 역할을 했다.

 

"필라델피아에 가까워질 무렵 나는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내가 어떤 희생을 감내하는지 생각했다. 어린아이였을 때는 발레가 너무 좋아서 발레수업에 빠지지 않으려고 생일파티 초대도 거절했다. 수영도 포기하고 공립학교도 포기했다. 그리고 지금은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하고 있었다." (p.228)

 

그녀를 주인공으로 삼아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퍼스트 포지션>이 2011년에 개봉된 후 그녀는 이제 유명인이 되었다고 했다. 방송 출연과 인터뷰 요청, 표지모델 섭외 등 유명세를 치르는 동안 그녀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탈출했던 아프리카를 두려움 속에 다시 방문한다. 비록 그녀의 모국이 아닌 남아공이었고, 초청 발레리나의 자격이었지만 말이다.

 

"삶은 발레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잊지 말라는 뜻인지 두 가지 아주 특별한 초청이 들어왔다. 전쟁의 고통을 겪은 어린이들을 위한 대변인으로서 유엔 자원봉사자로 초청 받았고, 운 좋게도 링컨센터 코흐 극장에서 열리는 2013년 세계 여성회의에 초대받았다. 한 인터뷰를 촬영했는데, 거기서 전쟁 때문에 고통받은 어린이로서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p.268)

 

그녀의 양부모님은 그녀와 자매들을 왜 입양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축복을 받았고, 축복과 함께 책임이 온 것뿐'이라고. 맞는 말이다. 우리네 인생에는 언제나 축복이 오면 책임도 함께 따르는 법이다. 간혹 그 책임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당당하게 책임을 떠안는 사람도 우리 주변에는 많다. 이 책 <테이킹 플라이트>도 그렇게 나온 책이다. 고통과 위험 속에서 희망 하나로 살았던 자신의 경험을 이제는 그들에게 전해줄 때가 된 것이다. 그 희망으로 다른 누군가가 역경을 극복하고 그 경험은 다시 살아 있는 희망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끊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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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따금 '머리 샤워'를 한다. '머리 샤워'가 뭐냐고? 이걸 어쩐다. 가르쳐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 부끄러워서 말이다. 언젠가 나는 블로그에 올린 포스팅에 '책잠'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드는 걸 길게 쓰고 싶지 않아서 '책잠'이라고 짧게 명명했던 것인데 그때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예쁜 말이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들었었다. 그런데 이 말은 왠지 그게 뭐냐고 타박을 들을 것만 같다.

 

'머리 샤워'라니... 머리감기도 아니고. 그렇다. 머리감기는 분명 아니다. 학창시절의 나는 문학서적보다는 철학책에 반쯤 미쳐있었지만 요즘은 그와 정반대로 되어 이따금 철학이나 사상서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마음에 드는 철학서를 읽곤 하는데 그럴라치면 왠지 모르게 머리가 맑아지고 뜨거운 여름철에 찬물을 들이켠 것처럼 뒤죽박죽이던 머릿속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나는 아직까지 이것을 명명할 만한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상태이고 어쩔 수 없이 '머리 샤워'라는 말로 대체하여 쓰고 있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거는 경우가 있다. 나야 열혈독서가의 발치에도 이르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못된 것만 먼저 배운 까닭인지 이따금 엉뚱한 일에 시간을 쓰곤 한다. 하등의 직업 연관성도 없으면서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괜한 시간을 소비한다거나 책을 읽다가도 이 문장은 이렇게 고쳤으면 어땠을까, 한참을 궁리하기도 한다. 병명도 없는 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중증으로. 갑작스러운 임시 공휴일 지정으로 마음만 바쁜 오후가 그렇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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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중독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창해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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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앞에 나서서 일일이 간섭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옆에서 그냥 말없이 지켜보기에는 가슴이 너무 답답하여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할 일도 다 못하는 처지이긴 하지만 만약 나같은 사람이라도 간섭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 곁에는 금방이라도 이불 보따리보다 더 큰 불행 덩어리가 '쿵'하고 떨어질 것만 같고, 상황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던 나도 괘씸죄에 걸려 옷 보따리만 한 불행을 선물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저절로 들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 한둘쯤은 곁에 있게 마련이다. 인생이란 자고로 속이 터지는 일이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너무 꽉 잡는다. 상대가 아파하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러니 이제 두 번 다시 누구의 손도 잡지 말자. 체념하기로 정한 것은 깨끗하게 체념하자.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과는 정말로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자. 내가 나를 배신하는 짓은 하지 말자. 타인을 사랑할 바에는 차라리 나 자신을 사랑하자." (p.32)

 

나오키 상 수상 작가 야마모토 후미오의 출세작인 <연애 중독>에 나오는 주인공은 정말 속이 터지는 인물이다. 나보다 한 열 살쯤 연배라고 할지라도 서슴없이 "당신, 인생 그렇게 살지마라." 충고 한 마디를 나도 모르게 던지게 될 그런 사람이다. 오죽 답답한 인물이면 내가 그렇게 혀를 찰까 싶겠지만 다른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물론 그런 생각이 들었던 까닭에 손에서 쉽사리 책을 내려 놓지 못하고 한나절 책에 빠져들었었지만 말이다. 이구치는 전에 사귀던 여자 때문에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조그만 출판사로 회사를 옮기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생일날 새 직장인 출판사로 다짜고짜 찾아오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인 미나즈키가 그런 이구치를 위기에서 구해주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베일에 싸인 미나즈키의 인생이 펼쳐지는 것이다.

 

30대 초반의 미나즈키는 후지타니와의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간간이 번역일을 하면서 낮에는 도시락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어느 날 그녀가 일하는 도시락집에 어렸을 때부터 그녀가 좋아해 마지 않았던 방송인 겸 작가인 이츠지 고지로가 우연히 들른 걸 보게 되었고, 유명인답지 않은 그의 태도에 그만 홀딱 반하고 만다. 결국 사적인 만남은 육체적 관계로까지 이어지고 미나즈키는 도시락집의 일자리를 헌신짝처럼 집어던진 후 이츠지 고지로의 사무실로 출근하게 된다.

 

"우리의 공통점은 이츠지 고지로였던 것이다. 그 당연한 사실을 똑똑하게 자각해야 했다. 그를 독점하지 말 것, 결코 그와의 정사를 은근히 과시하지 말 것, 대결 의식을 감추고 오히려 그를 공통의 적으로 씹으면서 비로소 우리는 친해졌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직장 분위기를 위해서는 중요한 일이었다." (p.112)

 

50대의 이츠지 고지로에게는 이혼한 후 다시 얻은 젊은 부인 외에도 십대 소녀 치카, 미나즈키와 비슷한 연령대의 요코, 이츠지 고지로와 비슷한 나이의 미요코 등 수시로 관계를 갖는 여자가 즐비했었다. 한 마디로 그는 바람둥이였던 셈이다. 그에게 여자는 그가 돌보아야만 하는 '새끼 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츠지 고지로는 여자가 요구하는 대로 월급을 주었음은 물론 마음이 내킬 때마다 선물을 사서 안겼다. 그럼으로써 그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여자들을 대했다.

 

"저렇게 제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그리고 머릿속에 있는 그대로 입밖에 다 내놓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빈혈은 그를 만나 허둥지둥 따라오는 동안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려서 결과적으로 내가 크게 도움을 받은 셈이었다." (p.123)

 

미나즈키는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이츠지 고지로의 기사 겸 비서인 동시에 연인으로서 바쁜 나날을 보낸다. 이츠지 고지로의 집 근처에 살았던 미나즈키는 그의 젊은 부인과도 우연히 조우하게 된다.

 

"이 여자는 자신을 제1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전에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일부다처제 국가에서 본처는 남편에게 제2부인이 생기는 것을 질투하기는커녕 뛸듯이 기뻐한단다. 본처에게 제2부인이란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이고 친구이며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고 자존심을 높일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질투심이라고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p.275)

 

미나즈키의 고민은 이츠지 고지로의 사랑을 독차지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전 남편의 소식을 몹시 궁금해 했다. 다행인지 이츠지 고지로의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하나둘 그를 떠나기 시작한다. 나이가 많은 미요코가 결혼을 하고, 나이 어린 치카가 다른 기획사 사무실로 떠났고, 요코가 이츠지 고지로의 사무실에 새로 출근하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게다가 딸과 함께 외국에서 사는 이츠지 고지로의 첫번째 부인이 재혼을 결심하면서 딸 나나를 일본으로 보내는 바람에 그의 부인마저 영국으로 떠난다. 미나즈키의 연적이 모두 제거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반전이 시작된다. 생각도 못한 반전이.

 

작가가 이혼을 하고 힘들어 하던 시기에 썼다는 이 소설은 역설적이게도 '연애 중독'에 빠진 한 여인의 속 터지는 삶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연애는 심리학적으로 중독이 맞다. 그러므로 연애 중독에 빠진 주인공은 제정신의 독자들이 보기에 속이 터진다. 딸을 가진 아빠의 입장이라면 아마도 책장을 뚫고 소설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아무 상관도 없는 미나즈키를 소설 밖으로 끄집어 내어 자신의 곁에 앉혀 놓고서 따끔한 훈계 한마디를 잊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나처럼 주인공의 삶이 속 터진다 생각했다면 작가는 정말 독자를 깜박 속여 먹을 정도로 글을 잘 썼다는 얘기다. 글쎄, 어느 쪽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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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도 아닌 일로 대통령의 하나뿐인 여동생이 이슈가 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광복절이 멀지 않은 시점에서 그녀가 했던 인터뷰 내용이 빌미가 된 모양입니다. 일본의 동영상 사이트 니코니코에 방영된 인터뷰에서 그녀는 "우리가 위안부 여사님들을 더 잘 챙기지 않고 자꾸 일본만 타박하는 뉴스만 나간 것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지요.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해 문제 삼는 것에 대해 "내정간섭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며 일왕을 지칭하면서도 '천황폐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 논란의 골자입니다.

 

저는 그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온 국민의 공분을 살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제 설명을 들어보면 저를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다 아시는 것처럼 그녀의 선친인 다까끼 마사오(박정희)는 일왕에게 혈서를 써서 충성맹세를 했던 사람입니다. 당시 만주군관학교의 생도였던 다까끼 마사오는 손가락을 잘라 다음과 같은 여덟 글자를 써서 충성 맹세를 합니다.

 

"盡忠報國 滅私奉公"

 

어쩌면 그녀는 선친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 자신의 패륜을 막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선친이 없었기에 일왕에게 충성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선친의 유지를 받들지 않으면 패륜이 되고, 선친의 유지를 받들면 국가의 반역자가 될 처지인데 그녀는 전자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국가 반역자의 죄는 대통령인 그녀의 언니가 알아서 잘 돌봐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우 현명한 선택이지요? 어쩌면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녀는 선친의 유지만

생각하며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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