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따금 '머리 샤워'를 한다. '머리 샤워'가 뭐냐고? 이걸 어쩐다. 가르쳐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 부끄러워서 말이다. 언젠가 나는 블로그에 올린 포스팅에 '책잠'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드는 걸 길게 쓰고 싶지 않아서 '책잠'이라고 짧게 명명했던 것인데 그때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예쁜 말이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들었었다. 그런데 이 말은 왠지 그게 뭐냐고 타박을 들을 것만 같다.

 

'머리 샤워'라니... 머리감기도 아니고. 그렇다. 머리감기는 분명 아니다. 학창시절의 나는 문학서적보다는 철학책에 반쯤 미쳐있었지만 요즘은 그와 정반대로 되어 이따금 철학이나 사상서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마음에 드는 철학서를 읽곤 하는데 그럴라치면 왠지 모르게 머리가 맑아지고 뜨거운 여름철에 찬물을 들이켠 것처럼 뒤죽박죽이던 머릿속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나는 아직까지 이것을 명명할 만한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상태이고 어쩔 수 없이 '머리 샤워'라는 말로 대체하여 쓰고 있는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거는 경우가 있다. 나야 열혈독서가의 발치에도 이르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못된 것만 먼저 배운 까닭인지 이따금 엉뚱한 일에 시간을 쓰곤 한다. 하등의 직업 연관성도 없으면서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괜한 시간을 소비한다거나 책을 읽다가도 이 문장은 이렇게 고쳤으면 어땠을까, 한참을 궁리하기도 한다. 병명도 없는 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중증으로. 갑작스러운 임시 공휴일 지정으로 마음만 바쁜 오후가 그렇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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