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함'이라는 말 속에는 '3할의 게으름'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저는 '최선을 다하자.'는 말을 무척이나 싫어하는데요, 그 속에는 비정한 욕심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사람의 건강이나 안녕이 그닥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 그런 말 속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끼어들 수 없습니다. 오직 목표만이 중요할 뿐이죠.

 

어제 JTBC 뉴스에서 보도한 어느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을 보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어쩌면 저럴 수가 있나' 손이 벌벌 떨려왔습니다. 시간에 쫓기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건을 적재한 채 지게차를 운전할 수밖에 없었고, 그 지게차에 사람이 치여 피를 흘리고 있는데 출동한 119 구급차를 돌려 보내다니요?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짓을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 사람은 그렇게 방치되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지요?

 

참으로 어이없는 세상입니다. 경쟁만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목숨을 허무하게 버려야 고쳐질런지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다르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라구요? 그러다 죽습니다. 사람의 몸은 적어도 3할의 힘을 남겨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탈이 없습니다. 온 몸의 힘을 다 소모하면 외부의 작은 공격에도 버텨낼 재간이 없습니다. 잔병치레가 떠날 날이 없는 아이를 볼라치면 그 부모의 얼굴부터 보게 됩니다. '적당히 해라'라는 말 속에는 '3할의 게으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배려, 인간에 대한 사랑의 표현일 뿐 우리가 지양해야 할 '게으름'이 결코 아님을 이번 기회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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