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더블 side B 더블 - 박민규 소설집 2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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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의 대표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툭 던진 한마디로 인해 야당을 지지했던 대다수 국민들이 슬램덩크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국회 당대표실에서 주한일본대사를 만난 그는 자신이 마치 최고권력자라도 된 듯 우쭐했었을 것이다. 그 바람에 그는 '위안부 협상 이행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는 말로 자신을 예방한 벳쇼 고로 대사에게 국보위스러운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 재협상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야당의 당론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그 말을 듣게 된 야당 의원들은 충격으로 인해 잠시 동안의 집단 실어증에 걸린 듯 계속되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아크로바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의 망언은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3.1절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가 간의 협상을 했기 때문에 그 결과를 가지고 저희가 현재로서는 고칠 수 있는 여건은 안 된다.'고 말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시민단체의 공분을 샀었다. 당의 대변인이 나서서 그의 말에 변명을 쏟아내기는 했지만 정작 망령기가 있는 그 노인네는 자신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는 듯 당당하기만 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뭔 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듯 미안한 기색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치매기가 있어서 정말로 기억나지 않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약간의 세월이 흐른 후 그가 했던 말에 대해 혹 묻기라도 한다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눈을 감으면 생각이 난다'고 말해야 하겠지만 천만에... 인공지능 '알파고'라면 모를까 요즘 사람들. 특히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은 어제 일어난 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인지라 그도 또한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할 공산이 크다. 정치인들은 예컨대 지난밤에 수십분 통화를 이어갔어도 그 다음날 "너 어제 나에게 전화했었니?" 물을라치면, "모르겠는걸.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미안허이." 하는 대답에, "미안하기는 그게 오히려 인공지능스럽지 않고 인간다운 일이지." 하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알파고 같으니라구!'라는 말은 그들에게 가장 참기 어려운 욕이 될런지도 모른다.

 

이런 와중에 박민규의 소설집 [더블 side B]를 읽는다는 건 멍한 기분으로 봄을 즐기는 것과 다름없지만 하긴 뭐, 이제 총선도 끝났고 그들에게 더는 기대할 일도 없으니... 아무튼. 얼마 전에 읽었던 [더블 side A]에 비하면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조금 더 정제된 느낌이었다. 부인과 사별한 후 모든 것을 정리하고 들어간 요양원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첫사랑을 만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낮잠'을 비롯하여 '루디', '용용용용', '비치보이스', '아스피린',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별', '아치', 슬(膝)' 등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나른하고, 자꾸만 잠이 쏟아진다. 요새는 자꾸 낮잠이 온다. 오늘도 밤잠을 자긴 다 글렀군, 이선의 손등을 토닥거리며 나는 실없이 미소를 흘린다. 이선은 더욱 천진해졌고, 나도 조금은... 천진해졌다. 안 그런가 소년? 그런 목소리로 온몸을 쓰다듬는 듯한 봄볕이다. 나는 결국 눈을 감는다." ('낮잠'- 2권 p.46)

 

잔혹한 폭력의 모습을 미국을 배경으로 현장감 있게 그린 '루디'와 다소 '무협지'스럽지만 무협지 속의 과장과 낭만이 사라진 현실에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다시 태어난 '용용용용'의 주인공들은 현실과 동화되지 못한 채 이야기는 진행된다.

 

"혹시 컴퓨터도 써보셨습니까? 물론, 四룡 중 아마 내가 유일할 거외다. 천마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감옥을 나와 처음 컴퓨터를 배울 때 말입니다. 어느날 이런 메시지가 뜨는 것이었습니다. 예외정보: 개별 참조가 개체의 인스턴스로 설정되지 않았습니다. 그걸 처음 봤을 때의 기분... 그러니까 작금의 세계를 살아가는 제 기분이 딱 그런 것이었습니다." ('용용용용'- 2권 p.109)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네 명의 청년이 입대를 앞두고 해변으로 놀러간 이야기를 다룬 '비치보이스'와 납작한 원통 모양의 거대한 아스피린이 도심 한가운데에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의 현장을 오직 작가의 유머와 상상력으로 그린 '아스피린', 계약직 영업사원으로 밀려났을 뿐만 아니라 부부관계마저 소원해진 중년의 한 남자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명품에 빠진 여자를 사귀는 바람에 공금을 횡령하여 감옥에까지 가게 된 남자가 출소 후 대리운전을 하다가 그 여자를 다시 만난다는 줄거리의 '별', 아치에 올라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단속하는 어느 경찰관의 이야기를 다룬 '아치' 그리고 BC 17000년의 원시시대를 배경으로 쓰여진 '슬(膝)' 등 어느 것 하나 빅민규스럽지 않은 작품이 없었다, 아무튼.

 

제1야당의 대표가 망언을 이어가고 어버이 연합의 알바 논쟁이 뜨거운 요즘, 세금으로 구조조정에 나서겠다는 정부 발표나 양적완화로 경기를 살리겠다는 그들의 선동 등 세상은 온통 '국보위'스러운데 이처럼 한가하게 박민규의 소설을 읽는다는 게 왠지 죄스럽거나, 미안하거나, '양적완화'스러웠다. 공기업 부채비율이 6905%라는 보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해 암울함을 한 바가지 퍼부은 느낌이다. 한쪽 어깨에 또 다른 고민이 한 근 내려 앉은 듯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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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이라도 같이 하자는 친구의 전화를 받은 것은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딱히 정해진 선약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입맛이 없는 시기에 점심은 대충 때우면 될 일인데 점심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정해 친구와 만나고 또 메뉴를 고르느라 한참이나 머리를 쥐어짠다는 것이 괜한 정력을 소모하는 것도 같고 번잡스러운 느낌도 있어서 우물쭈물 망설이고 있었는데 친구는 다짜고짜 시간과 장소를 잡고는 꼭 나오라며 엄포 비슷한 투로 다짐을 받았다.

 

딱 맞게 도착하려던 것이 그만 조금 늦고 말았다. 친구는 언제 도착했는지 식당의 입구에서 잘 보이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멍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제 좋아하는 일을 찾아 종일 헤맬 듯한 놈이 오늘은 어쩐 일인지 어깨가 축 처지고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걸 보니 뭔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나 보다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나는 식당 사람들이 다 들을 듯한 큰 목소리로 뭔 맛있는 걸 사줄려고 가라 오라 하느냐 물었더니 어라 이게 웬 일, 왔어 하면서 조용히 눈만 마주치는 게 아닌가.

 

나는 한껏 걱정이 되어 "뭔 일 있냐?" 물었더니, "뭔 일은 뭔 일, 그런 거 없어. 그냥 사는 게 재미 없어서 그래." 하는 게 아닌가. 돈키호테가 갑자기 햄릿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어떠한 필터도 거치지 않고 바로 입으로 튀어나오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사는 게 재미없다는 표현은 영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었다.

 

냉면을 무겁게 건져올리며 어렵게 어렵게 꺼낸 그의 변은 이랬다. 자신은 매년 4월만 되면 프로 야구를 보는 재미로 사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프로 야구 때문에 살 맛이 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가 응원하는 팀은 올초까지만 하더라도 우승 후보로 낙점이 될 정도로 선수 보강을 많이 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연전연패를 거듭한다는 거였다. 게다가 얼마 전에 치러진 총선에서 자신이 평생 지지하던 당이 무참히 패배했다는 사실이 삶의 의욕마저 꺾어놓았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이런 미친 XX가 있나' 싶었지만 친구로 지내왔던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전에 없던 다정한 표정으로 "흠, 그런 일이 있었구먼."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친구 왈, "프로 야구 팀이야 감독을 바꾸면 되지만 여당의 수장은 대통령인데 지지율 상승을 위해 대통령을 바꿀 수도 없고..."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의 한숨이 지나간 자리가 10센티쯤 움푹 패인 듯했다. 얘기를 들어 보니 그가 응원하는 야구팀의 감독과 대통령의 공통점 또한 비슷해 보였다. 소통의 부족과 권위주의적 태도. 그럼 그렇지. 그런 사람을 믿고 따른다는 게 21세기에 가당키나 한 일인가. 반이나 남긴 친구의 냉면을 내가 다 먹고 말았다. 오늘 따라 밥맛이 더 댕겼다. 친구에게는 미안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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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7 1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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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8 15: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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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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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도 하지요? 어려서는 결코 믿지 않았던 운명에 대해 시나브로 '운명이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일이 하나, 둘 늘어만 가니 말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가능성의 영역은 줄고 처분만 기다리는 운명의 영역이 더 넓어지는 까닭도 있겠습니다만 그보다는 오히려 젊은 시절에는 까맣게 잊고 지내던 운명에 대해 조금씩 알게되었다거나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운명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것들을 하나, 둘 발견하게 되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곤 합니다. 그럴 때면 마치 누군가가 펼쳐 놓은 운명의 덫에 앞도 살피지 않고 무작정 돌진하던 내가 허망하게 걸려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거미줄에 걸린 한 마리 나비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이 모든 것들이 애초부터 운명으로 정해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그리고 한평생 끝끝내 오지 않을 희망과 해방의 기다림 속에서 살게 한 잔인한 운명의 장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p.98)

 

마이클 길모어의 <내 심장을 향해 쏴라>는 죽음과 운명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깊이 있는 어떤 철학책을 읽을 때보다 더 자주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곰곰 생각하였습니다.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불행한 운명을 살았던 한 가족의 가족사를 읽고 이토록 깊게 생각해본 건 처음인 듯합니다. 소설이 아닌 실화로서의 가치 또한 이 책이 갖는 또다른 의미일 것입니다. 두 명의 무고한 시민을 죽이고 스스로 사형에 처해달라고 주장하여 전 미국을 충격에 몰아넣었던 사형수 게리 길모어의 동생이기도 한 이 책의 작가 마이클 길모어는 자신의 형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운명과도 같았던 자신의 가족사에서 찾고 있습니다.

 

"게리는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렸어. 그는 죽음이 자신을 해방시켜주길 원하고 있어. 이게 그를 다시 만나러 가지 않은 이유야. 그가 진심으로 그걸 원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괴로웠지. 게리는 그저 죽음을 바란 정도가 아니야. 마치 휴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축제 기분에 젖어 있는 것 같았어. 게리는 자신을 해방시키려고 한 거야. 그에겐 탈출이었어," (p590~p.591)

 

1977년 게리 길모어의 사형이 집행된 후 노먼 메일러는 게리의 이야기를 담은 <사형집행인의 노래>를 써서 발표하였고, 그 책은 베스트 셀러에 올랐음은 물론 퓰리처 상까지 수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작가를 비롯한 살아 있는 그의 가족에게 꼭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고 그것은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였습니다. 가족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재창조하고 그것의 증인이 되는 일은 작가의 입장에서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상실의 고통을 계속해서 되새김질 하게 함으로써 그의 가족들로부터 망각의 권한을 앗아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몬의 혈통을 이어받은 집안에서 자라면서 그녀가 겪은 그 모든 것들, 그리고 열렬하고 경건한 종교적 신화 뒤에서 빛났던, 그러나 사실은 어쩌면 고집불통의 형편없는 작자들일 수도 있는 선조 개척자들을 기리는 집안에서 자라온 그녀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과묵한 프랭크 길모어의 태도는 오히려 장점으로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p.124)

 

작가는 모르몬의 혈통을 이어받은 외가의 역사부터 쓰고 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 베시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와의 만남,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형제들의 유년 시절. 그것은 어쩌면 대를 이어 지속되었던 폭력과 학대의 역사였고, 공포와 분노의 축적이었던 동시에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던 게리 길모어에 이르러 잠재되었던 분노의 표출로 나타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형 게리는 피로써 자신의 죄를 사죄하는 모르몬의 전통에 더하여 자신의 죽음으로써 혈통에 흐르는 폭력과 학대의 역사를 끝내려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게리가 죽은 후 큰형 프랭크와 함께 살던 어머니마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자 작가는 극심한 외로움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폭력과 공포 속에서 살아왔던 자신의 삶과 영원히 단절되기를 원했던 작가는 가족으로부터 끝없이 도망쳤었고, 어머니가 죽고 큰형 프랭크마저 연락이 되지 않았음에도 작가는 끝내 그를 찾지 않았습니다.

 

"여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야 했던 것, 그것은 그래도 우리의 인생은 계속된다는 진실이다. 우리는 고통을 삼키고, 과거를 돌아보고, 우리가 한 일들을 용서해야 한다. 그건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억해야 하는 진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로 우리의 인생이 '계속'되며, 인생에 있어서 죽음 말고는 종지부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완전히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죽음뿐이다. 막을 내린 인생을 평가하고, 그 플롯과 극을 분석하고, 또 그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죽음의 시간뿐이다."    (p.643)

 

가족과 단절된 채 음악 평론가로서, 작가로서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았던 그는 번번이 실패했던 결혼도 자신의 가족사와 무관치 않음을 깨닫습니다. 작가는 부랑아처럼 떠돌던 프랭크와 재회하여 유타를 다시 방문합니다. 어머니가 자라고, 부모님이 처음 만났고, 게리가 파멸을 불러왔던 곳을 다시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자신의 가족사와 그곳에서 살고 있는 친척들과의 화해였습니다. 작가는 사촌 누나 브렌다로부터 게리의 유골을 건네받았고, 어머니와 프랭크에 얽힌 충격적인 비사도 알게 됩니다.

 

"나는 나에게 이 세상에 영속시켜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는 것, 내가 죽은 후까지 남겨두어서는 안 될 그 무엇이 내 안에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나 자신과 나의 미래에 대한 그런 생각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p.655)

 

초여름처럼 더운 날씨였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심장이 옥죄는 듯한 욱신욱신한 통증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의 무차별적인 폭력과 그것을 견디며 삶을 지탱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에는 공포와 그것을 이기고도 남을 만한 분노를 키워왔던 나의 유년시절이 작가의 삶에 쉽게 투영되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자생하는 분노는 커지게 마련이고, 언젠가 자신이 키워온 분노가 자신마저 삼켜버릴 수 있음을 아프게 깨달았던 하루였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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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당신 - 위로가 필요한 모든 순간에 써내려간 문장들
이용현 지음 / 북라이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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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햇살 고픈 아이들이 양지쪽에 나란히 앉아 봄볕을 쪼이고 있다. 가슴에 쌓인 먼지를 봄햇살에 털어내는 아이들 표정이 어쩜 그리도 투명한지. 저 나이쯤에는 아마 가슴 한 켠이 시렸던 기억은 설마 없겠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햇살 고픈 날에 햇볕을 쬐듯 마음 시린 날엔 시(詩)를 쪼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온종일 햇볕을 쪼여도 시린 가슴이 더워지지 않는 날이 있다고. 그런 날에는 시집 한 권 곁에 두고 주저없이 시(詩)를 쪼이라고, 봄볕 담은 아이들 눈에 심어주고 싶었다. 조막만 한 아이들 손에 햇살 한 움큼 담아주고 싶은 것처럼.

 

이용현의 <울지마, 당신>은 저자가 낱말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는 책이다. 마음에 생긴 사소한 생채기쯤이야 그가 내민 한 줄 위로의 글로도 금방 나을 것만 같았다. 좋은 글은 머리로 이해되기 보다는 먼저 가슴으로 녹아드는 법이다.

 

울지마, 당신

잠시만 눈을 감고 있으면 사라진다.

고통으로 나를 이끌었던 시간의 궤적들이

사라져버린다.

행복의 싸움은 미래가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란 걸 잊지 말자고

희미해져가는 것들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 것들에

의미를 두지 말자.

오직 내 마음을 소중히 지켜내는 것에만

힘을 두자.

 

어제는 우렁 쌈밥을 먹자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나갔었다. 초록의 신선한 모둠 쌈과 우렁 쌈장이 입맛을 자극했다. 식사를 마칠 즈음 친구는 한탄조의 말을 한마디 툭 던졌었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은 건지..." 쓸쓸함이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삶은 어차피 상처와 치유의 반복일 뿐이고 그 과정의 고통을 고스란히 경험하는 일이야. 삶의 모양새가 어떠하든 그 고통을 견디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야. 그러니 별 탈 없이 이만큼 견뎠으면 오히려 기뻐할 일이지 슬퍼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정작 불쌍한 사람은 살 날이 한참이나 많이 남은 젊은 사람들이야." 했더니, "그런가?" 하면서 조금 밝아진 듯 보였다.

 

광고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지금은 이커머스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저자는 자신의 페이스북 '울지마, 당신'에 연재 중인 글과 직접 찍은 사진들 중 가장 사랑받고 공감을 얻었던 120여 편의 글과 사진을 엄선해서 이 책을 엮었다고 한다. 총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무엇을 해도 서툴기만 했던 젊은 날의 시련과 상처를 기록한 첫 장 '서둘러서 서툴러서',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번째 장 '슬픔이라 말하기엔 이른 시간', 그리고 책의 제목이기도 한 세 번째 장 '울지마, 당신'은 위로와 희망의 글로 채워져 있다.

 

마음을 비우며

 

상처받은 일만 생각하다 보면

상처 준 일은 잊게 되는 법이다.

 

이기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공원에서 봄볕을 쬐던 아이들은 어디론가 가고 없다. 유난히 봄비가 잦았던 요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오늘은 어릴 적 광목 이불 홑청에서 맡던 햇살 내음이 맡아질 것만 같다. 어쩌면 봄비를 맞는 식물처럼 봄볕을 받은 아이들도 이 봄이 지나고 나면 몸도 마음도 한 뼘 자라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사람도 하늘이 기르는 식물이다' 라고 노래했던 문태준 시인의 시구처럼 <울지마, 당신>을 읽은 내 영혼도 봄비를 맞은 저 나무처럼 우뚝 자라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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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나절 내내 비가 내렸다. 어젯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늘 오전까지 이어졌다. 어제는 24절기의 여섯째 절기이자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穀雨)였으니 이 비가 백곡(穀)을 기름지게 하였으리라. 가볍게 내리는 봄비를 뚫고 아침 운동을 나섰었다. 아침이면 늘 하는 운동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비 오는 날의 등산은 어쩐지 가볍게 설렌다. 매번 그렇다.

 

가볍게 내리는 비였다. 우산에 듣는 빗소리가 투닥투닥 정다웠다. 생명을 키우는 비는 언제나 가볍고 경쾌하다. 그것은 빗줄기의 가늘고 굵음이나 강수의 많고 적음에 기인하지 않는다. 생명의 젖줄과도 같은 봄비가 만물을 보듬어 깨우고 나날이 자라도록 북돋우는 것인데 어찌 무겁거나 우울할 수 있으랴. 하여, 봄에 내리는 빗줄기는 생기가 넘친다. 비가 내리는 날의 참나무 밑동에 고인 흰 거품과 반쪽만 젖은 소나무 몸통도 오늘따라 유난한 듯 도드라졌다.

 

반면 가을비는 무겁고 우울하다. 새봄이 되기 전에 떠나갈 생명에 대한 애도의 느낌 때문이다. 그러므로 잠깐 내리는 가을비에도 무거운 바위를 어깨에 짊어진 듯 허리가 꺾이곤 한다. 그 애잔함에 울컥 눈물이 솟기도 하고.

 

연둣빛 잎새가 점차 초록의 물이 들고 있는 요즘, 오늘은 생명을 키우는 가벼운 봄비가 땅속 깊이 스며들고 허공에는 포릉포릉 참새가 날았다. 다들 생명을 키우는 일에 저토록 열심인데 저마다의 삶이 어찌 가벼울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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