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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평점 :
일시품절


이상도 하지요? 어려서는 결코 믿지 않았던 운명에 대해 시나브로 '운명이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일이 하나, 둘 늘어만 가니 말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가능성의 영역은 줄고 처분만 기다리는 운명의 영역이 더 넓어지는 까닭도 있겠습니다만 그보다는 오히려 젊은 시절에는 까맣게 잊고 지내던 운명에 대해 조금씩 알게되었다거나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운명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것들을 하나, 둘 발견하게 되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곤 합니다. 그럴 때면 마치 누군가가 펼쳐 놓은 운명의 덫에 앞도 살피지 않고 무작정 돌진하던 내가 허망하게 걸려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거미줄에 걸린 한 마리 나비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이 모든 것들이 애초부터 운명으로 정해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그리고 한평생 끝끝내 오지 않을 희망과 해방의 기다림 속에서 살게 한 잔인한 운명의 장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p.98)

 

마이클 길모어의 <내 심장을 향해 쏴라>는 죽음과 운명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깊이 있는 어떤 철학책을 읽을 때보다 더 자주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곰곰 생각하였습니다.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불행한 운명을 살았던 한 가족의 가족사를 읽고 이토록 깊게 생각해본 건 처음인 듯합니다. 소설이 아닌 실화로서의 가치 또한 이 책이 갖는 또다른 의미일 것입니다. 두 명의 무고한 시민을 죽이고 스스로 사형에 처해달라고 주장하여 전 미국을 충격에 몰아넣었던 사형수 게리 길모어의 동생이기도 한 이 책의 작가 마이클 길모어는 자신의 형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운명과도 같았던 자신의 가족사에서 찾고 있습니다.

 

"게리는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렸어. 그는 죽음이 자신을 해방시켜주길 원하고 있어. 이게 그를 다시 만나러 가지 않은 이유야. 그가 진심으로 그걸 원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괴로웠지. 게리는 그저 죽음을 바란 정도가 아니야. 마치 휴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축제 기분에 젖어 있는 것 같았어. 게리는 자신을 해방시키려고 한 거야. 그에겐 탈출이었어," (p590~p.591)

 

1977년 게리 길모어의 사형이 집행된 후 노먼 메일러는 게리의 이야기를 담은 <사형집행인의 노래>를 써서 발표하였고, 그 책은 베스트 셀러에 올랐음은 물론 퓰리처 상까지 수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작가를 비롯한 살아 있는 그의 가족에게 꼭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고 그것은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였습니다. 가족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재창조하고 그것의 증인이 되는 일은 작가의 입장에서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상실의 고통을 계속해서 되새김질 하게 함으로써 그의 가족들로부터 망각의 권한을 앗아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몬의 혈통을 이어받은 집안에서 자라면서 그녀가 겪은 그 모든 것들, 그리고 열렬하고 경건한 종교적 신화 뒤에서 빛났던, 그러나 사실은 어쩌면 고집불통의 형편없는 작자들일 수도 있는 선조 개척자들을 기리는 집안에서 자라온 그녀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과묵한 프랭크 길모어의 태도는 오히려 장점으로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p.124)

 

작가는 모르몬의 혈통을 이어받은 외가의 역사부터 쓰고 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 베시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와의 만남,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형제들의 유년 시절. 그것은 어쩌면 대를 이어 지속되었던 폭력과 학대의 역사였고, 공포와 분노의 축적이었던 동시에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던 게리 길모어에 이르러 잠재되었던 분노의 표출로 나타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형 게리는 피로써 자신의 죄를 사죄하는 모르몬의 전통에 더하여 자신의 죽음으로써 혈통에 흐르는 폭력과 학대의 역사를 끝내려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게리가 죽은 후 큰형 프랭크와 함께 살던 어머니마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자 작가는 극심한 외로움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폭력과 공포 속에서 살아왔던 자신의 삶과 영원히 단절되기를 원했던 작가는 가족으로부터 끝없이 도망쳤었고, 어머니가 죽고 큰형 프랭크마저 연락이 되지 않았음에도 작가는 끝내 그를 찾지 않았습니다.

 

"여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야 했던 것, 그것은 그래도 우리의 인생은 계속된다는 진실이다. 우리는 고통을 삼키고, 과거를 돌아보고, 우리가 한 일들을 용서해야 한다. 그건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억해야 하는 진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로 우리의 인생이 '계속'되며, 인생에 있어서 죽음 말고는 종지부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완전히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죽음뿐이다. 막을 내린 인생을 평가하고, 그 플롯과 극을 분석하고, 또 그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죽음의 시간뿐이다."    (p.643)

 

가족과 단절된 채 음악 평론가로서, 작가로서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았던 그는 번번이 실패했던 결혼도 자신의 가족사와 무관치 않음을 깨닫습니다. 작가는 부랑아처럼 떠돌던 프랭크와 재회하여 유타를 다시 방문합니다. 어머니가 자라고, 부모님이 처음 만났고, 게리가 파멸을 불러왔던 곳을 다시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자신의 가족사와 그곳에서 살고 있는 친척들과의 화해였습니다. 작가는 사촌 누나 브렌다로부터 게리의 유골을 건네받았고, 어머니와 프랭크에 얽힌 충격적인 비사도 알게 됩니다.

 

"나는 나에게 이 세상에 영속시켜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는 것, 내가 죽은 후까지 남겨두어서는 안 될 그 무엇이 내 안에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나 자신과 나의 미래에 대한 그런 생각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p.655)

 

초여름처럼 더운 날씨였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심장이 옥죄는 듯한 욱신욱신한 통증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의 무차별적인 폭력과 그것을 견디며 삶을 지탱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에는 공포와 그것을 이기고도 남을 만한 분노를 키워왔던 나의 유년시절이 작가의 삶에 쉽게 투영되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자생하는 분노는 커지게 마련이고, 언젠가 자신이 키워온 분노가 자신마저 삼켜버릴 수 있음을 아프게 깨달았던 하루였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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