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더블 side B 더블 - 박민규 소설집 2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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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야당의 대표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툭 던진 한마디로 인해 야당을 지지했던 대다수 국민들이 슬램덩크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국회 당대표실에서 주한일본대사를 만난 그는 자신이 마치 최고권력자라도 된 듯 우쭐했었을 것이다. 그 바람에 그는 '위안부 협상 이행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는 말로 자신을 예방한 벳쇼 고로 대사에게 국보위스러운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 재협상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야당의 당론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그 말을 듣게 된 야당 의원들은 충격으로 인해 잠시 동안의 집단 실어증에 걸린 듯 계속되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아크로바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의 망언은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3.1절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가 간의 협상을 했기 때문에 그 결과를 가지고 저희가 현재로서는 고칠 수 있는 여건은 안 된다.'고 말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시민단체의 공분을 샀었다. 당의 대변인이 나서서 그의 말에 변명을 쏟아내기는 했지만 정작 망령기가 있는 그 노인네는 자신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는 듯 당당하기만 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뭔 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듯 미안한 기색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치매기가 있어서 정말로 기억나지 않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약간의 세월이 흐른 후 그가 했던 말에 대해 혹 묻기라도 한다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눈을 감으면 생각이 난다'고 말해야 하겠지만 천만에... 인공지능 '알파고'라면 모를까 요즘 사람들. 특히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은 어제 일어난 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인지라 그도 또한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할 공산이 크다. 정치인들은 예컨대 지난밤에 수십분 통화를 이어갔어도 그 다음날 "너 어제 나에게 전화했었니?" 물을라치면, "모르겠는걸.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미안허이." 하는 대답에, "미안하기는 그게 오히려 인공지능스럽지 않고 인간다운 일이지." 하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알파고 같으니라구!'라는 말은 그들에게 가장 참기 어려운 욕이 될런지도 모른다.

 

이런 와중에 박민규의 소설집 [더블 side B]를 읽는다는 건 멍한 기분으로 봄을 즐기는 것과 다름없지만 하긴 뭐, 이제 총선도 끝났고 그들에게 더는 기대할 일도 없으니... 아무튼. 얼마 전에 읽었던 [더블 side A]에 비하면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조금 더 정제된 느낌이었다. 부인과 사별한 후 모든 것을 정리하고 들어간 요양원에서 고등학교 시절의 첫사랑을 만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낮잠'을 비롯하여 '루디', '용용용용', '비치보이스', '아스피린',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별', '아치', 슬(膝)' 등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나른하고, 자꾸만 잠이 쏟아진다. 요새는 자꾸 낮잠이 온다. 오늘도 밤잠을 자긴 다 글렀군, 이선의 손등을 토닥거리며 나는 실없이 미소를 흘린다. 이선은 더욱 천진해졌고, 나도 조금은... 천진해졌다. 안 그런가 소년? 그런 목소리로 온몸을 쓰다듬는 듯한 봄볕이다. 나는 결국 눈을 감는다." ('낮잠'- 2권 p.46)

 

잔혹한 폭력의 모습을 미국을 배경으로 현장감 있게 그린 '루디'와 다소 '무협지'스럽지만 무협지 속의 과장과 낭만이 사라진 현실에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다시 태어난 '용용용용'의 주인공들은 현실과 동화되지 못한 채 이야기는 진행된다.

 

"혹시 컴퓨터도 써보셨습니까? 물론, 四룡 중 아마 내가 유일할 거외다. 천마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감옥을 나와 처음 컴퓨터를 배울 때 말입니다. 어느날 이런 메시지가 뜨는 것이었습니다. 예외정보: 개별 참조가 개체의 인스턴스로 설정되지 않았습니다. 그걸 처음 봤을 때의 기분... 그러니까 작금의 세계를 살아가는 제 기분이 딱 그런 것이었습니다." ('용용용용'- 2권 p.109)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네 명의 청년이 입대를 앞두고 해변으로 놀러간 이야기를 다룬 '비치보이스'와 납작한 원통 모양의 거대한 아스피린이 도심 한가운데에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의 현장을 오직 작가의 유머와 상상력으로 그린 '아스피린', 계약직 영업사원으로 밀려났을 뿐만 아니라 부부관계마저 소원해진 중년의 한 남자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명품에 빠진 여자를 사귀는 바람에 공금을 횡령하여 감옥에까지 가게 된 남자가 출소 후 대리운전을 하다가 그 여자를 다시 만난다는 줄거리의 '별', 아치에 올라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단속하는 어느 경찰관의 이야기를 다룬 '아치' 그리고 BC 17000년의 원시시대를 배경으로 쓰여진 '슬(膝)' 등 어느 것 하나 빅민규스럽지 않은 작품이 없었다, 아무튼.

 

제1야당의 대표가 망언을 이어가고 어버이 연합의 알바 논쟁이 뜨거운 요즘, 세금으로 구조조정에 나서겠다는 정부 발표나 양적완화로 경기를 살리겠다는 그들의 선동 등 세상은 온통 '국보위'스러운데 이처럼 한가하게 박민규의 소설을 읽는다는 게 왠지 죄스럽거나, 미안하거나, '양적완화'스러웠다. 공기업 부채비율이 6905%라는 보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해 암울함을 한 바가지 퍼부은 느낌이다. 한쪽 어깨에 또 다른 고민이 한 근 내려 앉은 듯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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