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 신은 혼자서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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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 듯한 순한 햇살이다. 계절을 건너온 노곤한 햇살이 기신기신 창을 넘는 나른한 오후, 윌리엄 폴 영의 신작 소설『이브』 를 마저 읽었다. 소설의 주제가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를 띤 영적인 치유와 깨달음에 있다는 걸 제외하면 윌리엄 폴 영의 여성적인 문체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전개 방식으로 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게다가 종교적인 성향의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성경의 창세기편을 소재로 한 것이니만큼 대중성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 듯 보인다.

 

소설은 미지의 섬인 피난처에서 시작된다. 위치도, 연도도 알 수 없는 섬의 해변에서 열두 명의 시체가 담긴 컨테이너가 발견된다. 컨테이너는 그 섬에서 유일한 '수집하는 자' 존에게 인계된다. 존은 그 섬에서 백 년째 살고 있다. 컨테이너에서는 중년 남자 한 명과 열한 명의 소녀들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컨테이너에서 서류철을 살펴보던 존은 한 명의 소녀가 더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냉각기 옆의 작은 공간 안에서 완전히 부서진 소녀 한 명을 추가로 발견한다. 그가 발견한 소녀는 살아있었다. 치유하는 자들이 구한 소녀의 이름은 릴리였다. 릴리는 환상 속에서 '마더 이브'를 만나 태초의 현장을 목격하는 증인이 된다.

 

"내 딸아, 이리 와. 와서 창조의 증인이, 너의 부서진 몸과 깨진 영혼을 치유할 완벽한 증인이 되어줘." (p.26)

 

소설은 세 개의 공간에서 펼쳐진다. 릴리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지구,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피난처, 우주의 탄생과 아담과 이브가 등장하는 에덴 동산이 그것이다. 마약중독자인 릴리의 엄마는 릴리가 6살이 막 지났을 무렵, 약값 대신 그녀를 팔았고 그때 이후로 사람들은 그녀가 이용 가치가 없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팔아넘겼고, 그녀는 결국 영원히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만신창이의 몸으로 사고까지 당하여 혼수상태에 빠진다. 섬의 수호자였던 '존'은 이브가 예고한 '태초의 증인'이 그 소녀라는 것을 직감하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릴리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자 릴리의 생존에서 의미를 찾기 위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그들 중에는 아주 먼 곳에서 온 학자들인 제럴드, 아니타, 사이먼도 있었다.

 

"그녀는 창조의 절정에서 증인이 되려고 여기 소환되었다. 이브는 인간 안에서 탄생될 것이기에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그녀는 그들의 탄생의 증인이 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p.266)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만 여겼던 릴리는 아내를 잃고 '그림자 병'에 걸린 사이먼의 꾐에 빠져 모든 희망을 잃고 정신적 위기 상황으로 내몰린다. 사이먼이 선물한 '진실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내면 모습을 비춰본 릴리는 사악한 괴물과 같은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완전히 잃고 만다. 릴리가 뱀의 공격을 받은 후 존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다밑 피난처인 '볼트'로 이동한다. 그곳에는 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서재와 증인으로서 릴리가 본 것을 기록하는 기록실과 식당과 휴식 공간 등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사이먼은 다시 한 번 릴리를 유혹한다. 아담에게 배신을 당한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하도록 막을 수만 있다면 이브는 영원히 에덴에 남을 것이고 인류의 역사는 바뀔 것이라고 하면서 태초의 증인인 릴리가 그 현장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에게는 수치심과 자기혐오야말로 가장 오래된 친구였다. 그런 감정들은 은혜나 축복과는 반대에 있는 것으로 그녀가 무가치하다고 입증하는 것들이었다.'실망'이라는 단어조차 그녀를 바닥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존은 그녀에게 그런 감정들에 저항하라고, 자신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더 큰 진실이라는 걸 부탁하고 있었다." (p.272~p.273)

 

여러번 위험에 빠진 릴리의 곁에는 언제나 사이먼이 있었다는 걸 눈여겨 보고 있었던 존은 위기의 상황에서 릴리를 구하고 릴리로부터 사이먼을 분리시키는 데 성공한다. 릴리는 환상 속에서 마더 이브와 재회하고 그곳에서 마리아를 만난다. 그동안 진실을 외면한 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기만 했던 릴리는 그곳에서 비로소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아담이 '영원한 이'로부터 돌아섬으로써 앓게 되었던 '그림자 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제 릴리는 존의 헌신적인 노력과 진실한 사랑을 신뢰할 수 있었다.

 

"신뢰란 일생에 단 한 번 내리는 선택이 아니고, 매순간 강물이 흐르듯 선택하는 거야. 우리를 둘러싼 선물에 감사하고, 또 그 선물을 보내고, 혹여 한 번 잃더라도 어느 것도 잊히지 않았다는 걸 신뢰하는 거야."(p.409~p.410)

 

"진정한 사랑은 펼쳐진 두 손을 필요로 하지. 거절할 힘이 없다면 사랑은 절대로 실재가 되지 못하고 환상에 불과하단다."(p.373)

 

그러나 그들 앞에는 피할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존과도, 부부인 아니타와 제럴드와도... 소설은 이제 마지막 반전을 향해 달려가고 독자들은 아담을 유혹한 이브에 대한 인식도,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인식도 서서히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늘 하느님을 향해 있던 아담이 태초에 그로부터 '돌아섬'으로써 생긴 하느님과의 단절, 하느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는 안개의 장막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슬픔은 참 기이한 거야.기쁨과 똑같이 갑작스레 찾아오거든. 옆으로 툭 하고 말이야. 그건 그냥 우리 삶의 리듬이고 충분히 인간적인 일이야."(p.328)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오늘, 봄빛 완연한 날씨에 나는 온종일 춘곤증에 시달렸고, 윌리엄 폴 영의 소설 <이브>를 읽고 소설 속 주인공 릴리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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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걷히기도 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운동을 나서는데 때마침 눈이 내렸다. 가로등 불빛을 배경으로 푸슬푸슬 부서지는 눈발을 보자 한겨울에도 없던 오슬한 추위가 사무치도록 느껴졌다. 하루쯤 눈을 핑계로 아침운동을 거른들 건강에 큰 이상이 올 것도 아닌데, 하는 얄팍한 유혹이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표표히 날리는 눈발과 모자른 잠을 채우고 싶다는 달콤한 유혹. 꼭 무슨 영화 제목처럼 강렬하다.

나는 끝내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삶과 시간의 채색은 늘 그런 식이다. 당위를 무시한 채 아무리 약한 척 어리광을 부려도 거기에 대한 응답도 결국 나의 몫이며, 행위에 대한 나의 변명에 대해 세상은 한참이나 늦게 응답하거나 모르는 척 무시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외로워 말지니. 세상을 일깨우기에는 나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가냘프고 어깨를 맞댄 나의 이웃에게 이제 겨우 알려졌을 뿐이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보다도 한참이나 넓어서 적어도 내가 바라는 그 넓이의 사람들에게 끝내 이를 수 없는 나의 목소리.

 

지난 주말, 경찰 차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두 집단의 시위. 소위 탄핵을 반대하는 친박 집회와 탁핵 인용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는 집회 참가자들 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모든 국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을 듯하다. '같음'이나 '같아짐'을 바라는 대다수 국민들의 소망과는 달리 그로부터 한참이나 어긋난 '다름'을 보았을 때,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태도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끝내 시인할 수밖에 없는 2017년의 우매함은 세월의 뭇매를 맞은 먼 훗날에 우리가 떠안을 후회의 무게. 평의를 마친 헌재 재판관들은 선고 기일 발표를 8일 이후로 연기했다. 오늘 아침에 날리던 눈발처럼 계절의 고개를 넘는 시간은 참으로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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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 - 조달청장 정양호의 직장별곡
정양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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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의 책을 읽고 그에 대한 리뷰를 쓴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지나치게 솔직하자니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자니 그것 또한 양심에 찔려 개운치 않은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입장에 처할 바에는 차라리 리뷰를 안 쓰면 되지 않느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도 못할 짓이다. 책이 출간된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리뷰를 쓰지 않는다는 건 책이 재미가 없어 읽어보지도 않았구나 하는 의심을 살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아무튼 나는 책을 다 읽고도 어지간히 뜸을 들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기왕 리뷰를 쓰기로 작정했으니 책에 대한 소회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써 보기로 한다.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의 저자인 조달청장 정양호 님과의 인연은 사실 별게 아니다. 수년간 블로그 생활을 하면서 좋은 글벗으로 지냈다는 게 인연의 전부이다. 내가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저자로부터 정영희 작가의 책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선물로 받았었다. 저자가 직접 쓴 편지와 함께 말이다. 그 바람에 나는 저자에 대하여 더 각별히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저자의 직업도, 얼굴도, 사는 곳도 알지 못하면서 그저 가까운 사람이려니 생각했었다.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는 32년째 공직 생활을 한 저자가 한 사람의 직장 대선배로서 자신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하는 '직장 생활 지침서'라고 말하는 게 옳을 듯하다. 물론 사기업에서의 직장 생활과 공직 생활은 직장의 분위기나 추구하는 목표 등에서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2008년부터 블로거로 활동하며 1,300여 권의 북 리뷰를 올렸던 저자의 이력을 감안하면 이 책이 단순히 직장 생활을 오래 한 한 직장인의 서툰 창작물만은 아니라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책에서 다루는 범위는 우리의 직장생활 전반에서 겪게 되는 일상이다. 시기적으로 공직에 첫 입문한 때부터 최고위직 관리자가 되기까지의 경험을 망라했다. 업무 관련 사항과 함께 직장 내에서의 처세 문제, 자기계발 문제까지 다양한 측면을 조망했다. 필자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공직자들이 가장 많이 공감하겠지만, 공공 기관이나 일반 민간기업 직장인들도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p.324)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에는 Chapter 1. 직장생활의 기본 갖추기(업무 편) Chapter 2. 당신이 거울입니다(처세 편) Chapter 3. 천리길도한 걸음부터(자기계발 편) Chapter 4. 직장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정양호의 책꽂이)의 4개의 장에 80여 꼭지가 넘는 글이 실려 있다. 나는 예전부터 블로그에 올라오는 저자의 글을 읽어왔지만 그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그의 글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는 것이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수십 년간의 직장 생활 동안 저자가 쓰고 고쳤을 수많은 보고서와 기획안으로도 그의 글쓰기 내공은 충분히 다져졌을 터, 게다가 웬만한 작가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그때마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많은 리뷰는 나와 같은 게으른 블로거와는 비길 바가 아니었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양적이고 얕은 독서를 주로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책이다. 직장인으로 온전히 책 읽기에만 전념할 수 없는 입장이라 온전히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독서를 바탕으로 이젠 울림이 있는 독서를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 평가도 해본다. 앞으로의 독서가 다독보다는 정독을, 지식의 습득보다는 감수성을 깨치는 방향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p.283)

 

'당신의 친구에 대해서 내게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말해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가 한 말이다. 그런가 하면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는 말도 있다.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아 사바랭이 한 말이다. 이와 비슷한 의미의 말이 더 있는 것으로 안다. 두 말에서 나는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환경에 적당히 적응하고 쉽게 안주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직장 생활도 다르지 않다. 낯설고 어색한 시간은 순간에 그치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어느 한 곳에 매몰된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아가기는 쉽지만 그곳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책의 제목을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고 정한 이유도 적당한 선에서 안주하고 타협하려는 대다수 직장인의 나태함을 경계하고자 쓴 말이 아닐까 싶다. 저자도 물론 퇴근한 후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기까지 수없이 많은 말로 자신을 채찍질했을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길을 찾지 않으면 우물 밖으로 향하는 길은 영원히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나의 어설픈 조언으로 짧은 리뷰를 마무리해야겠다. 보고서나 기획안처럼 장황한 이야기를 짧게 요약하는 글만 잘 쓰는 직장인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문학적 글쓰기를 연습하는 직장인은 드물다. 직장인으로서 작가에 도전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서툰 솜씨라고 할지라도 문학적인 글쓰기를 멈추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공감의 능력, 소통의 능력은 정서가 메마른 상태에서는 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이 나 한 사람의 욕심과 이기심을 키우는 장으로 전락하는 걸 나는 많이도 보아왔기에 하는 말이다. 은퇴 후에 남는 것은 결국 돈이 아닌 사람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독서에 있어서도 자기개발과 어학 등 실용서 위주의 독서에서 이따금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열 중 셋 정도는 문학책을 읽어야 한다. 무엇이든 편중되면 좋지 않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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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동씨입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리뷰대회 수상자를 발표합니다. ^^

 

#이벤트 다시 보기: http://cafe.naver.com/mhdn/122130

1등
다비랑 님 _ 위안이자 희망 그리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준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http://blog.yes24.com/document/9300455

2등

cyrus 님 _ 책으로 살찌운 영혼
http://blog.aladin.co.kr/haesung/9146201


빌더무트 님 _ 현대의 백과전서파 다치바나 다카시의 종이책의 미래에 대한 이유 있는 낙관
http://blog.yes24.com/document/9300447

3등

티거루 님 _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걷다
http://blog.aladin.co.kr/788375142


랜디와일드 님 _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성장한다는 것
http://book.interpark.com/blog/rhoads82/4818194


꼼쥐 님 _ 비밀의 문
http://blog.aladin.co.kr/760404134/9147964

꿈의도서관 님 _'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http://blog.yes24.com/document/9256510


정말 많은 분들께서 참여를 해주셨는데요. ^^

수상하신 분들 모두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더불어,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상하신 분들께는 서점에 등록 된 회원정보를 통해 개별 연락 드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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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기쁨의 발견 - 달라이 라마와 투투 대주교의 마지막 깨달음
달라이 라마 외 지음, 이민영 외 옮김 / 예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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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자신의 책 <의식 혁명>에서 인간의 의식수준을 에너지 수준에 따라 분류해 놓았다. 우리에게 잠재돼 있는 내면의 힘을 수치화 하여 '0'에서부터 '1000'에 이르는 각각의 구간을 나누고 구간별로 인간의 의식 수준을 정리한 것이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수치심(에너지 수준20), 죄의식(에너지 수준 30), 무기력(에너지 수준 50), 슬픔(에너지 수준 75), 두려움(에너지 수준 100), 욕망(에너지 수준 125), 분노(에너지 수준 150), 자존심(에너지 수준 175), 용기(에너지 수준 200), 중용(에너지 수준 250), 자발성(에너지 수준 310), 포용(에너지 수준 350), 이성(에너지 수준 400), 사랑(에너지 수준 500), 기쁨(에너지 수준 540), 평화(에너지 수준 600), 깨달음(에너지 수준 700~1000)이고 200 이하의 에너지 수준에서는 '살아남기'의 삶의 태도를 유지하게 되고, 500이라는 수치에 이르면 다른 사람의 행복도 고려하게 되고, 600대에 이르면 인간의 선과 깨달음에 대한 추구가 삶의 기본적인 목표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700~1000의 수준에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한다.

 

달라이 라마와 투투 대주교가 나눈 일주일간의 대화를 기록한 <기쁨의 발견>을 읽다가 문득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 혁명>이 떠올랐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21세기를 대표하는 두 성인이 인도 다람살라에서 만났던 것은 달라이 라마의 80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함이었지만 슬픔과 고통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기쁨을 찾고 영속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한 각자의 깨달음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함 또한 그들 만남의 목적이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절망과 좌절에 빠진 인류가 다시 높은 수준의 에너지 수준을 회복하고, 서로를 걱정하고 사랑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적시한 기쁨의 비법서인 셈이다.

 

"한 주 동안 두 영적 스승은 슬픔 없이는 기쁨이 없으며, 고통과 고난이 있기에 기쁨을 느끼고 이에 감사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실제로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향해 다가갈수록 우리는 기쁨을 향해 더욱 나아가게 된다. 우리는 삶이 들려주는 음악을 듣기 위해 볼륨을 높이면서 그 둘 모두를 받아들이거나, 귀를 틀어막고 삶 자체에 등을 돌려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기쁨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또 보여주었다. 그들이 긴 삶을 통해서 일구어낸 것은 기쁨의 그와 같은 지속적인 속성이었다." (p.354)

 

역설적이게도 경제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과학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인류가 갖고 있는 선한 본성이 그에 따라 점진적으로 더욱 풍성하게 발현되는 게 아니라 좌절과 공포, 타인에 대한 질투와 분노, 외로움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만 강화된다. 그에 따라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살인과 끊이지 않는 테러 등으로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연출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쁨을 발견하고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유감이지만, 더 많은 기쁨을 발견하더라도 우리는 어려움과 슬픔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더 많이 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많이 웃게 되기도 하겠지요. 그저 조금 더 살아 있게 되는 것이랄까요. 하지만 더 많은 기쁨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고통을 마주할 때 원통함보다는 조금 더 고상한 자세를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움 앞에서 경직되지 않고, 슬픔 앞에서 부서지지 않겠지요." (p.25)

 

두 성인의 대화는 단순히 머리에서 나오는 '앎'의 수준이 아니었다. 심리학이나 뇌과학, 또는 명상이나 종교 서적을 뒤적여보면 우리는 이보다 더 근사하고 멋진 말을 수도 없이 많이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체화된 '앎'에서 비롯되는 깊은 울림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떠한 외부 환경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의지, 타인을 향한 지속적인 연민,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깊은 유대감, 그들 또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70억 명과 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두 성인의 겸손에서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낳습니다. 불신이죠. 두려움이 많으면 좌절하게 됩니다. 그리고 좌절은 분노를 불러오죠. 그것이 연쇄적인 반응을 만들어내는 마음의 체계이고, 감정의 심리학입니다.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갖는다면, 다른 이들과 멀어지고, 불신이 생기며, 그렇게 되면 불안하고, 두렵고, 걱정되고, 좌절하고, 분노하며, 폭력을 저지르게 됩니다." (p.98)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지만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까맣게 잊고 지내듯이 시련은 언제나 우리 삶으로부터 떠나지 않지만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잊고 지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 역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시련의 존재를 잊는 순간 우리는 기쁨의 오로라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자면 슬픔의 나락으로 빠지지 않는 정신의 면역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타인의 슬픔을 묵상하면 나 자신의 슬픔이 작아지는 것처럼 타인의 기쁨도 내 기쁨인양 즐거워할 수만 있다면 웃고 기뻐하지 않을 시간이 있을 수 있을까. 주중에 하루를 쉬었더니 일주일이 다른 주보다 빠르게 지나간 느낌이다. 3월의 첫 주말, 일상에서의 기쁨이 온 나라에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서나 체화된 기쁨을 하시라도 발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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