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 - 조달청장 정양호의 직장별곡
정양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의 책을 읽고 그에 대한 리뷰를 쓴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지나치게 솔직하자니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자니 그것 또한 양심에 찔려 개운치 않은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입장에 처할 바에는 차라리 리뷰를 안 쓰면 되지 않느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도 못할 짓이다. 책이 출간된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리뷰를 쓰지 않는다는 건 책이 재미가 없어 읽어보지도 않았구나 하는 의심을 살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아무튼 나는 책을 다 읽고도 어지간히 뜸을 들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기왕 리뷰를 쓰기로 작정했으니 책에 대한 소회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써 보기로 한다.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의 저자인 조달청장 정양호 님과의 인연은 사실 별게 아니다. 수년간 블로그 생활을 하면서 좋은 글벗으로 지냈다는 게 인연의 전부이다. 내가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저자로부터 정영희 작가의 책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선물로 받았었다. 저자가 직접 쓴 편지와 함께 말이다. 그 바람에 나는 저자에 대하여 더 각별히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저자의 직업도, 얼굴도, 사는 곳도 알지 못하면서 그저 가까운 사람이려니 생각했었다.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는 32년째 공직 생활을 한 저자가 한 사람의 직장 대선배로서 자신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하는 '직장 생활 지침서'라고 말하는 게 옳을 듯하다. 물론 사기업에서의 직장 생활과 공직 생활은 직장의 분위기나 추구하는 목표 등에서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2008년부터 블로거로 활동하며 1,300여 권의 북 리뷰를 올렸던 저자의 이력을 감안하면 이 책이 단순히 직장 생활을 오래 한 한 직장인의 서툰 창작물만은 아니라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책에서 다루는 범위는 우리의 직장생활 전반에서 겪게 되는 일상이다. 시기적으로 공직에 첫 입문한 때부터 최고위직 관리자가 되기까지의 경험을 망라했다. 업무 관련 사항과 함께 직장 내에서의 처세 문제, 자기계발 문제까지 다양한 측면을 조망했다. 필자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공직자들이 가장 많이 공감하겠지만, 공공 기관이나 일반 민간기업 직장인들도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p.324)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에는 Chapter 1. 직장생활의 기본 갖추기(업무 편) Chapter 2. 당신이 거울입니다(처세 편) Chapter 3. 천리길도한 걸음부터(자기계발 편) Chapter 4. 직장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정양호의 책꽂이)의 4개의 장에 80여 꼭지가 넘는 글이 실려 있다. 나는 예전부터 블로그에 올라오는 저자의 글을 읽어왔지만 그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그의 글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는 것이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수십 년간의 직장 생활 동안 저자가 쓰고 고쳤을 수많은 보고서와 기획안으로도 그의 글쓰기 내공은 충분히 다져졌을 터, 게다가 웬만한 작가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그때마다 블로그에 올라오는 많은 리뷰는 나와 같은 게으른 블로거와는 비길 바가 아니었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양적이고 얕은 독서를 주로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책이다. 직장인으로 온전히 책 읽기에만 전념할 수 없는 입장이라 온전히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독서를 바탕으로 이젠 울림이 있는 독서를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 평가도 해본다. 앞으로의 독서가 다독보다는 정독을, 지식의 습득보다는 감수성을 깨치는 방향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p.283)

 

'당신의 친구에 대해서 내게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말해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가 한 말이다. 그런가 하면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는 말도 있다.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아 사바랭이 한 말이다. 이와 비슷한 의미의 말이 더 있는 것으로 안다. 두 말에서 나는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환경에 적당히 적응하고 쉽게 안주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직장 생활도 다르지 않다. 낯설고 어색한 시간은 순간에 그치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어느 한 곳에 매몰된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아가기는 쉽지만 그곳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책의 제목을 <때로는 길이 아닌 길을 가라>고 정한 이유도 적당한 선에서 안주하고 타협하려는 대다수 직장인의 나태함을 경계하고자 쓴 말이 아닐까 싶다. 저자도 물론 퇴근한 후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기까지 수없이 많은 말로 자신을 채찍질했을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길을 찾지 않으면 우물 밖으로 향하는 길은 영원히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나의 어설픈 조언으로 짧은 리뷰를 마무리해야겠다. 보고서나 기획안처럼 장황한 이야기를 짧게 요약하는 글만 잘 쓰는 직장인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문학적 글쓰기를 연습하는 직장인은 드물다. 직장인으로서 작가에 도전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서툰 솜씨라고 할지라도 문학적인 글쓰기를 멈추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공감의 능력, 소통의 능력은 정서가 메마른 상태에서는 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이 나 한 사람의 욕심과 이기심을 키우는 장으로 전락하는 걸 나는 많이도 보아왔기에 하는 말이다. 은퇴 후에 남는 것은 결국 돈이 아닌 사람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독서에 있어서도 자기개발과 어학 등 실용서 위주의 독서에서 이따금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열 중 셋 정도는 문학책을 읽어야 한다. 무엇이든 편중되면 좋지 않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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