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걷히기도 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운동을 나서는데 때마침 눈이 내렸다. 가로등 불빛을 배경으로 푸슬푸슬 부서지는 눈발을 보자 한겨울에도 없던 오슬한 추위가 사무치도록 느껴졌다. 하루쯤 눈을 핑계로 아침운동을 거른들 건강에 큰 이상이 올 것도 아닌데, 하는 얄팍한 유혹이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표표히 날리는 눈발과 모자른 잠을 채우고 싶다는 달콤한 유혹. 꼭 무슨 영화 제목처럼 강렬하다.
나는 끝내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삶과 시간의 채색은 늘 그런 식이다. 당위를 무시한 채 아무리 약한 척 어리광을 부려도 거기에 대한 응답도 결국 나의 몫이며, 행위에 대한 나의 변명에 대해 세상은 한참이나 늦게 응답하거나 모르는 척 무시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외로워 말지니. 세상을 일깨우기에는 나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가냘프고 어깨를 맞댄 나의 이웃에게 이제 겨우 알려졌을 뿐이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보다도 한참이나 넓어서 적어도 내가 바라는 그 넓이의 사람들에게 끝내 이를 수 없는 나의 목소리.
지난 주말, 경찰 차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두 집단의 시위. 소위 탄핵을 반대하는 친박 집회와 탁핵 인용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는 집회 참가자들 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모든 국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을 듯하다. '같음'이나 '같아짐'을 바라는 대다수 국민들의 소망과는 달리 그로부터 한참이나 어긋난 '다름'을 보았을 때,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태도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끝내 시인할 수밖에 없는 2017년의 우매함은 세월의 뭇매를 맞은 먼 훗날에 우리가 떠안을 후회의 무게. 평의를 마친 헌재 재판관들은 선고 기일 발표를 8일 이후로 연기했다. 오늘 아침에 날리던 눈발처럼 계절의 고개를 넘는 시간은 참으로 힘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