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와이다 준이치 사진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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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매개로 한 작가와 독자의 인연이라고 해서 마냥 허투루 생각할 것만도 아니다. 길거리에서 만났더라면 말 한마디 섞기도 어려웠을 듯한,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일지라도 그가 쓴 책을 통해서는 얼마든지 가까워질 수 있으니 말이다.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일본 작가를 알게 된 건 법정 스님의 추천도서 목록에서 시작되었다. 50권으로 추려진 법정스님의 추천도서 목록의 맨 마지막에는 생뚱맞게도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가 차지하고 있었다. 스님의 사상적, 철학적 기반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어찌 보면 전혀 다른 맥락의 책인 듯 느껴져서 처음에는 나 또한 의아했었다. 그게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나는 그것을 계기로 다치바나 다카시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나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취향이나 관심분야에서도 어디 하나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라고 여겼었는데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읽은 후 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매력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매력'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에 대한 궁금증이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그후 나는 <청춘 표류>,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 <<읽기의 힘 듣기의 힘>, <사색기행>, <임사체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 등 국내에 소개된 그의 저서 대부분을 읽었다. 그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한 인간에 의한 성취가 이렇게도 방대할 수 있구나, 놀라게 될 뿐만 아니라 그의 치열한 삶의 태도에 압도되었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 저자가 했던 말을 나는 지금도 가슴에 새기고 있다. '아마도 끊임없는 삶의 연속선상에서 보는 것, 생각하는 것, 행하는 것, 이 세 가지를 반복하고 피드백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어느 날 정신적인 비상을 이루는 때가 찾아와 모든 것을 직관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야말로 나의 생활을 지탱해 준 기대이자 신념이었다.'

 

최근에 출간된 그의 저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내가 읽게 된 것도 그런 일련의 과정에 비추어 볼 때 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양이 빌딩'으로도 잘 알려진 그의 서재는 규모 면에서나 소장도서의 권수를 보나 한 사람의 소유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준다. 저자는 그곳에 비치된 20만 권의 책을 소개하며 그가 이룩한 지식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저자의 설명은 1층에서부터 시작된다. 안락사나 존엄사, 죽음이나 뇌사, 의학이나 생물학 등의 서적이 보관된 1층은 오래전에 정리된 후 비교적 변화가 적은 곳이라고 했다. 죽음에 대해 설명하던 그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저서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말한다. 자신의 서재를 설명하는 저자나 저자로 인해 영향을 받아왔던 나 역시 추억에 젖지 않을 수 없다. 저자로 인해 나도 역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저서를 읽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생의 수레바퀴', '인생수업'을 읽었던 게 까마득히 먼 과거의 일인 양 아스라하다.

저자의 설명은 종교서적과 수상쩍은(말하자면 증명할 수 없는)책들이 보관된 2층으로 이어진다. 3층에는 여러 문명의 발달 과정과 철학, 과학과 관련된 책들이 있다. 저자는 각각의 문명을 이해하기 위해 히브리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등 각종 언어를 배우게 된 과정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의 지적 호기심이 '지(知)의 거장'으로 불리게 된 오늘날의 저자를 만들었음을 실감하게 한다. 저자의 설명은 이제 각종 취재 자료가 보관된 지하 1, 2층을 지나 계단과 옥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고양이 빌딩'에 이어 그의 또 다른 서고인 산초메(三丁目) 그리고 릿쿄(立敎)대 연구실 서가에 대한 설명이 계속된다.

 

"책이라는 것은 텍스트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좋은 책일수록 텍스트나 콘텐츠 이상의 요소가 의미를 갖게 되고, 그 요소들이 모두 독자적인 자기표현을 하는 종합 미디어가 됩니다. 그런 책의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을 가장 많이 사서 읽습니다. 책의 세계를 경제적으로도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이지요. 이 구조가 계속되는 한, 종이책의 세계가 끝나는 날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p.218)

 

'인간의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한다. 책이란 인간의 삶과 연관된 각종 지식을 일정한 거리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만드는 유용한 도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책을 읽지 않고 오직 자신의 체험만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은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평생을 아등바등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으로부터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저자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는 문학, 신학, 철학, 인류학, 미술사, 물리학, 생물학, 등을 넘나들며 책과 학문 세계 전체를 조망하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과 결부되어 저자의 관심이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지 알려 주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성과를 그저 부러워하거나 감탄과 경의의 눈으로만 바라본다면 이 책은 한낱 눈요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으로 인해 닫혀 있던 지적 호기심을 열어젖히고, 지적 열망에 불을 지필 수만 있다면 이 책은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한 사람의 삶을 희극으로 인도하는 물꼬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의 바람도 그와 같을 것이다. 저만치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는 자신의 삶, 어쩌면 이 책은 그 길로 통하는 '비밀의 문'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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