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도로에는 유난히 차가 많았다. 꽃구경을 나온 행락 차량이 대부분일 터였다. 사실 미세먼지만 아니라면 봄꽃이 만개한 요즘과 같은 좋은 시기에 아까운 휴일을 집에서만 보낸다는 게 어쩐지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교통체증을 아랑곳하지 않고 너도 나도 집으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했던 것이다. 가는 곳마다 차량과 사람들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루었지만 표정만큼은 다들 이해한다는 듯 여유로웠다.

 

대통령 선거일이 정말 코밑으로 다가왔다. 며칠 전에는 미국과 중국의 정상이 만나 회담을 갖기도 했었다. 정치와 경제 등 우리의 주변 상황은 급변하고 있는데 정부는 대통령 선거에만 코를 박고 있는지 나 몰라라 뒷짐만 지고 있는 듯하다. 자리를 비웠던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85일 만에 서울로 복귀하였다.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슬그머니 말이다. 그러고는 대뜸 대통령 권한대행과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했었다. 물밑 교섭도 없이 말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대한민국의 외교가 대외적으로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슬픈 자화상이었다. 그럼에도 김규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버선발로 나가 일본대사를 맞이했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다. 오늘 아침 고인이 된 탤런트 김영애의 소식이다. "오랜 시간 연기를 하고 있지만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나온 작품 모니터도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는 고인의 겸손함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목련 꽃잎의 슬픈 추락처럼. 탁한 공기에도 불구하고 꼬마전구를 밝힌 듯 환하게 피어난 벚꽃의 장한 모습을 나는 먼 발치에서 바라보았다. 벌과 나비는 없고 사람들만 북적이는 무거운 오후, 어느 한낮.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qualia 2017-04-10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탁한 공기에도 불구하고 꼬마전구를 밝힌 듯 환하게 피어난 벚꽃의 장한 모습을 나는 먼 발치에서 바라보았다. 벌과 나비는 없고 사람들만 북적이는 무거운 오후, 어느 한낮.

저 풍경을 마음 속에 그려봅니다.
시간은 멎은 듯 흘러가고
붕붕거리는 벌들, 사쁜사쁜 날개짓하는 나비들이
환청처럼 보이는 듯도 합니다.
붐빔과 북적임 속에 어떤 적막감이 감돌고
나들이객들 웃음처럼 흐드러진 벚꽃들을
깊은 사색에 빠진 채 응시하고 있는 어떤 한 분이 보이는 듯도 합니다.
작년 이맘때는 그래도 천변 벚꽃길에서
스마트폰 가지고 가서 사진도 찍고 그랬는데요.
올해는 벚꽃 구경 하나 못하고 있습니다.
늘 언제나 좋은 글 바랍니다~

꼼쥐 2017-04-11 16:56   좋아요 0 | URL
일 년 중 무척이나 짧은 벚꽃 개화기에 어떤 의무감으로 외출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다 보니 이맘때면 으레 벚꽃 사진을 올림으로써 ‘나는 벚꽃 구경을 다녀왔노라‘ 인증하는 셈이니 그런 추세에 동참하기도 하지 않기도 참 애매한 시대가 된 것이죠.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떤 소설은 한 권의 철학서처럼 읽어내야 한다는 걸 말이야. 때로는 그렇더군. 스토리의 전개와 논리의 개연성에 집중하면서 읽는 흔한 소설 독법으로는 뭔가 덜그덕거리는 이질감이 느껴져서 지금 읽고 있는 소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지레 들곤 하지.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래. 소설의 문장을 한 줄 한 줄 읽어갈 때마다 나는 마치 어떤 의식에 앞서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진행되는 절차에 집중하는 것처럼, 편견이 깃들지 않는 맑은 의식을 유지한 채 하나의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천천히 깨우쳐가는 재미에 빠져들게 돼. 우리가 소설에서 취하는 흔한 감동이나 교훈과는 거리가 있지. 그럴 때 스토리의 전개는그닥 중요하지 않거나 번외의 경기처럼 사소한 것으로 여겨질 뿐이야.

 

"사람은 행위가 아니라 행위 뒤에 숨어 있는 의도로 죄를 짓는 것일세. 내가 연구한 법질서, 종교의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거대한 옛 법질서는 그것을 알고 있고 또 알려주네. 배신, 비열한 행동, 심지어는 최악의 살인을 저지르고도 죄가 없을 수 있어. 행위는 진실이 아닐세. 그것은 언제나 결과에 지나지 않아." (p.145~p.146)

 

헝가리 출신의 대문호 산도르 마라이가 쓴 <열정>도 그와 같은 소설 중 한 권이지. 소설의 구조는 사실 말하기도 어색할 정도로 단순해. 어린 시절부터 24년 동안 쌍둥이처럼 붙어 지냈던 두 친구가 헤어진 지 41년 만에 만나 하룻밤 동안 그들이 주고 받은 대화를 쓴 게 소설의 전부야. 믿어지지 않겠지만 사실이야. 나는 차라리 한 인물에 내재된 상반된 성격의 페르소나로 해석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

 

"인간의 마음속에는 개인적인 흥분이나 이기심 저편에 우정의 법칙이 살고 있네. 그것은 절망적으로 갈구하면서 서로의 품안으로 뛰어드는 남녀의 정열보다 강하며, 실망이라는 것을 모르네. 상대방에게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지."    (p.181)

 

귀족 출신의 헨릭과 하급 관리 집안의 아들인 콘라드. 그들은 사관학교에서 열 살때 만나 서로 친구가 되었고 성인이 된 후 같은 부대에서 병영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헨릭 집안의 성에 수시로 드나들 정도로 가깝게 지냈어. 그러나 기질은 서로 크게 달랐지. 유쾌하고 관대하며 사교성 많은 헨릭과는 달리 예술적 기질이 강한 콘라드는 내성적이고 소심하며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어. 소설에서 헨릭도 말하고 있지만 콘라드는 군인이 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던 셈이야.

 

"그러나 자네 영혼의 밑바탕에는 갈등, 자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고 싶은 동경이 숨어 있었어. 인간에게 그것보다 더한 시련은 없네. 현재의 자기와는 달라지고 싶은 동경, 그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인간의 심장을 불태우는 동경은 없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 세상에서 차지하는 것하고 타협할 때에만 삶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일세."    (p.172)

 

콘라드가 한마디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리라고 헨릭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듯해. 그러나 콘라드는 그렇게 떠났고 남겨진 헨릭은 그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동기를 끝없이 생각하지. 떠나기 전 날, 사냥터에서 자신을 겨눴던 콘라드의 총구, 불륜을 의심하게 했던 헨릭의 부인 크리스티나의 수상한 행동들. 콘라드가 열대 지역으로 떠나고 8년 후 크리스티나는 병으로 죽고, 홀로 남은 헨릭은 고독 속에서 끝없이 생각하지. 삶의 진실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고독이라는 것도 참 묘하네. 그것도 정글처럼 이따금 위험과 놀람에 가득 차 있어. 나는 온갖 고독을 알고 있네. 삶의 질서를 아무리 엄격하게 좇아도 헤어날 길 없는 권태. 그 뒤를 잇는 갑작스러운 폭발. 고독도 정글처럼 불가사의하다네."    (p.133)

 

"세월이 흐르고, 내 주변의 삶이 황혼에 접어들었지. 책과 회상들이 쌓이면서 농축되었네. 책마다 한 알의 진실이 들어 있었고, 그것에 대해 회상은 인간 관계의 진실한 본성은 아무리 애써도 알 수 없고, 또 그런 것을 인식하더라도 더 현명해지지 않는다고 대답했어. 그 때문에 우리는 타인에게 조건 없는 성실과 신의를 요구할 권리가 없는 것일세. 여러 가지 사건들로 보아 이 친구가 신의 없었다는 것이 확실해도 마찬가지이지."    (p.144)

 

75세의 노인이 되어 다시 만난 헨릭과 콘라드. 소설은 사냥꾼으로부터 콘라드의 방문을 알리는 편지를 전해 받는 노장군 헨릭으로부터 시작하지. 죽음이 그들을 영원히 갈라놓기 전에 진실을 알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헨릭은 흥분된 듯 묘사돼. 커다란 성채에서 홀로 남았던 헨릭은 오랜 세월 동안 지난날을 회상하며 고독 속에서 보냈으니 그의 흥분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라.

 

"인간이란 원래 그렇다네. 자신의 행위가 치명적이라는 것을 처음 순간부터 알면서도 그만 두려 하지 않아. 인간과 운명, 이 둘은 서로 붙잡고 서로 불러내서 서로를 만들어간다네. 운명이 슬쩍 우리 삶으로 끼어든다는 말은 맞지 않아. 그게 아니라 우리가 열어놓은 문으로 운명이 들어오고, 또 우리가 운명에게 더 가까이 오라고 청하는 걸세. 근본 심성이나 성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불행을 행동이나 말로 막아낼 수 있을 만큼 현명하거나 강한 사람은 없네."    (p.219~p.220)

 

인용이 너무 많았지? 하지만 산도르 마라이의 작품에 열광하는 나로서는 소설 한 권을 다 옮겨 적는다 해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꼈을지도 몰라. 1948년 공산주의 체제의 조국 헝가리를 떠나 이탈리아, 스위스, 미국을 전전하던 작가는 41년이라는 긴 망명행활을 뒤로한 채 1989년 2월 89세의 나이로 망명지 캘리포니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 "지나치게 오래 사는 것은 분별없는 짓이다"라고 일지에 썼다고도 전해져. 주인공 헨릭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었어. "중요한 문제들은 결국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고. 암튼 나는 지금도 여전히 하고픈 말이 많아. 서둘러 마치지 않으면 어쩌면 밤을 샐지도 몰라. 밖에는 유난히 달이 밝아. 전날 내린 봄비로 대기가 맑아져서 그렇겠지. 삶의 부조리를 인식하는 뜻깊은 밤이 되길 바래. 잘 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후가 되자 날씨는 빠르게 변했다. 마치 급한 볼일이 있어 서둘러 자리를 뜨는 사람처럼 말이다. 희끄무레하던 하늘이 문득 밝아지고 먼산의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가 싶더니 어느새 구름 사이로 말간 해가 얼굴을 드러냈다. 요즘은 쓰지 않는 우리말 중에 '빗밑이 재다'라는 말이 있다. '빗밑'은 오던 비가 그치어 날이 개는 속도를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재다'는 '동작이 재빠르다'의 뜻이니 '빗밑이 재다'고 하면 비가 그치어 날이 개는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 된다. '빗밑이 가볍다'라고도 쓰는데 어제부터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날이 가볍게 개이는 걸 보니 문득 생각이 났다. 잘난 채하려고 쓴 말은 아닌데 결과적으로 그런 꼴이 되고 말았다, 암튼.

 

대통령 선거를 한 달여 남겨둔 요즘, 사람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한 모습이다. 보수 후보의 몰락이 가져온 결과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보수 후보와 진보 후보가 팽팽한 세 싸움을 벌여 누가 이길지 예측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정치에 가 있겠지만 작금의 상황은 진보 후보 중 조금이라도 맘에 드는 후보를 뽑아야 하는 격이니 도무지 흥이 나지 않을 밖에...

 

오늘 낮에 점심을 먹는데 사람들은 대선 이야기로 후끈 달아올랐었다. 출마한 후보 중 누구를 뽑아야 할지, 그렇다면 가장 가능성이 많은 후보는 누구인지, 대통령으로서 가장 적합한 인물은 누구인지 각자의 의견이 분분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들의 판단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것 하나만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 정치는 마치 고도의 이성적 행동인 듯 보이지만 실은 감정에 의한 진흙탕 싸움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선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만은 언제나 이성적 판단에 의해 후보를 선택해 왔고 앞으로 그럴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그 면면을 살펴보면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막연히 누가 싫어서, 또는 주는 것 없이 그가 무작정 예뻐 보여서 그냥 선택했을 뿐이다. 막장도 그런 막장이 없다. 인정할 건 깨끗이 인정하는 게 낫다. 나도 그렇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인 류시화가 우리 사회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실체적인 진실을 시인 스스로가 증명해 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남들에게는 '구도자'나 '기인'쯤으로 보이는 그이지만 나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충실한 삶을 살고 있고, 그 모든 게 타인에 의한 수동적 선택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결정에 따른 자기주도적 삶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일체의 사회적 통념을 거부한 채 시인은 오직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바라는 삶의 방향을 따라 충만한 삶을 살아 왔다는 것을 그의 작품을 한두 권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겠지만 말이다.

 

"마음이 담긴 길을 걷는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나란히 걷는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에서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의 뒤를 좇는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담긴 길을 걷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누구이든 어디에 있든 가고 싶은 길을 가라, 그것이 마음이 담긴 길이라면. 마음이 담긴 길을 갈 때 자아가 빛난다." (p.46)

 

자신은 비록 그렇게 살지는 못했지만 다음 세대를 향해 '너희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라' 라고 말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진심이 담긴 조언이나 충고를 수없이 들어 왔고, 그게 옳다는 믿음 한 가닥은 머릿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자신도 하지 못한 것을 인생의 말년에 넋두리 삼아 말하는 것과 자신의 방식 대로 살아 온 사람이 '나처럼 살아도 괜찮다'고 하는 것은 말의 무게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정작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삶의 방향을 탐구하는 방법이 아니라 마음 속 두려움을 제거할 수 있는 확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실로 삶 자체를 두려워하는 세살배기 어린애에 불과하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내리는 결정들의 80퍼센트는 두려움에 바탕을 둔 것이다. 가슴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결정을 내리고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인생의 비전을 차단시킨다. 안전한 길은 큰 기쁨을 주지 못한다." (p.88)

 

류시화의 신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는 삶과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51편의 산문이 담겨 있다. '마음이 담긴 길',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는 이유'. '운디드 힐러'. '두 번째 화살 피하기'. '수도승과 전갈', '우연한 선물' 등 작가가 써내려 간 글에는 자신의 체험에서 비롯된 진실의 힘이 묻어난다. 내가 특히 놀라워 했던 건 작가도 어린 시절에 급성 신장염으로 병원으로부터 치료 불가의 사형 판정을 받은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병으로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나로서는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시름시름 앓는 사이 겨울이 지나갔다. 남향집이라서 창호지 문으로 햇살이 비쳐 들었다. 기어 나가 방문을 열었더니 정말로 마당 가득 봄이 와 있었다. 마지막 봄이라고 생각해선지 괜히 기분이 설레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마당 한쪽의 화단으로 가서 흙을 헤쳐 보니 화초 싹들이 파릇파릇 올라와 있었다. 내 몸과 마음에도 봄기운이 스몄다." (p.151)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는 이유'도 인상 깊은 글이었다. 그 글에는 메허 바바의 우화가 소개되어 있는데 스승이 제자들에게 "화가 나면 왜 소리를 지르는가?" 하고 묻는다. 제자들의 여러 대답을 들은 뒤 스승이 그 이유에 대해 말하기를 "사람들은 화가 나면 서로의 가슴이 멀어졌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 거리만큼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고 했다. 화가 난다는 건 상대방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진다는 것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게 된다는 명쾌한 논리가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나는 왜 여태 그런 간단한 이치를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부슬부슬 봄비가 내린다. 사는 게 손 안의 모래알처럼 실체도 없이 흩어지는 듯 느껴질 때면 이 책을 곁에 두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창밖으로 보이는 자목련의 자태가 유난히 곱다. 우리는 더러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목련을 보며 되묻게 된다. 계절을 알리는 저 꽃들의 개화가 가슴 저린 환희로 다가오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을 터이다. 사랑하기 좋은 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양한 봄꽃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어 피고 있는 요즘, 몸도 마음도 덩달아 다채로운 색깔로 물들게 됩니다. 오늘 아침 내가 올랐던 산에도 봄기운이 완연한 가운데 다소곳한 진달래가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해가 어찌나 길어졌는지 6시쯤이면 벌써 주위가 훤히 밝아오고 바지런한 청설모의 서커스 공연도 일찍부터 시작됩니다. 매일 보아도 질리지 않는 풍경입니다.

 

 

운동을 마치고 산을 내려올 때까지 내내 어둠이 걷히지 않았던 겨울 동안, 새들의 노랫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호젓한 산길을 걷는 것 또한 나쁘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해가  길어지는 요즘 나를 반기는 새들의 노랫소리는 산을 오르는 내내 이어집니다. "잘했어, 잘했어. 반가워, 반가워." 그들은 그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앙상했던 가지마다 연두빛 새순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머지 않은 봄날에 우리는 초록의 물결 속에서 감출 수 없는 푸른 웃음을 토해내겠지요. 그렇게 우리는 발목에만 겨우 차던 계절감을 가슴까지 밀어올린 채 부지런한 나날들을 정신없이 살아갈 것입니다. 허락된 삶에 감사하면서 말이지요. 피어나는 꽃과, 새들의 노래와, 청설모의 공연과, 부드러운 바람의 터치. 더없이 완벽한 자연의 조화처럼 나의 삶도 형형색색의 빛깔로 조화로웠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그대의 삶 모두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