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 몸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주제인데 어찌된 일인지 내게도 인생 상담을 청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럴 때 나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단호하게 거절을 하지 못한다. 우유부단한 성격 탓이다. 사람마다 성격도, 처한 환경도, 앞으로의 바람이나 희망도 제각각인데 누군가에게 나의 지난 경험을 말해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초한 약속에 어쩔 수 없이 응할라치면 쭈볏쭈볏 주눅이 들곤 한다. 혹시 실수나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보다는 별 도움도 되지 않는 말을 중언부언 늘어놓는 바람에 상대방을 크게 실망시키지나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더구나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이렇게 해라, 말한다는 건 너무나 무책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까닭에.

 

어제도 그와 같은 약속이 한 건 있었다. 30대 초반의 그 친구는 내가 알지 못하는 동행 한 명을 대동하고 나보다 먼저 약속 장소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민망할 정도로 격식을 차리는 바람에 적잖이 당황했다. 음식을 주문하여 늦은 저녁을 먹는 동안 우리는 다들 말이 없었다. 미리 따라 놓은 소주를 한 잔 가볍게 들이켠 후 발그레한 얼굴로 그 친구가 내게 털어놓은 말은 여자친구에 대한 문제였다. 사내 연애를 한다는 건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지만 본인 입을 통하여 듣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친구 왈 연애를 시작한 지 반년이 넘었는데 도무지 진전이 없어 속이 탄다는 거였다. 데이트를 할 때는 즐겁고 유쾌하게 시간을 보내지만 헤어지고 나면 뭔가 허전하고 괜스레 시간만 허비한 게 아닌가 하는 후회도 이따금 든다는 게 그 친구 말의 요지였다.

 

예의 바르고 밝은 성격의 그는 누가 보더라도 일등 신랑감이었다. 그런 까닭에 연애 경험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랬던 그도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상대를 만나고 보니 좀처럼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허튼 농담이나 방송가 루머, 연예인 이야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소득 없이 헤어지는 일이 일상처럼 반복되다 보니 그도, 그녀도 조금씩 지쳐가는 느낌이 든다는 거였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우리의 삶도 기쁘고 유쾌한 일로만 채워진다면 삶의 의미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단조로운 일상에 금세 싫증이 날 테고 말이다.

 

이따금 자신의 고민이나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가족사 등 상대방도 긴장하며 들을 수밖에 없는 진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관계는 늘 겉돌게 마련이다. 시쳇말로 남사친, 여사친의 관계라고나 할까? 만나면 즐겁고 헤어져 돌아올 때는 뭔가 허전한... 시험을 앞둔 학생이 신나게 게임을 하고 나서 느끼는 후회의 감정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농담이나 가벼운 대화는 관계의 시작에서 더없이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관계를 깊어지게 하지는 않는다. 서로의 관계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는 말도 날씨의 변화처럼 달라져야 하는 게 당연할 터 그 친구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말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겼다.

 

어제 뉴스에 보도되었던 자유당 서울시당위원장의 막말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공식 석상에서 그런 막말을 내뱉는다는 건 자신과 당의 체신만 깎아내릴 뿐이다. 대통령을 향해 '깡패 같은 놈'이라고 하면서 '이런 놈을 상대해서 점잖게 나가다가는 나라 꼴이 안 된다'고 했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렇게 막말을 일삼는 사람은 국민과 대통령이 점잖게 대해서는 안 된다. 본때를 보여서 그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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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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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건 아니지만 책의 제목이 주는 은유가 소설 작품 전체를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시대의 분위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 보인다. 1980년대 후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가 문학사상사에서 출간되었을 때 그 시대의 우울과 책의 제목이 절묘하게 결합돼 독자들을 홀리듯 서점으로 유인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왜?" 라는 질문은 처음부터 알지 못했던 사람들처럼 서점의 한쪽 서가에서 말없이 책을 뽑아들고, 계산대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은 차례로 값을 치른 뒤 조용히 사라졌던 것이다. 그리고 암울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향수처럼 퍼지는 쓸쓸한 가을밤에 권력의 부당함에 맞섰던 어느 예술가를 떠올렸었지, 아마도.

 

줄리언 반스의 소설 <시대의 소음(The noise of Time)>은 우리의 기억보다 더 먼 과거로 독자를 안내한다. 우리가 태어나지도 않았던 스탈린 시대의 러시아로, 그것도 문학이 아닌 음악을 주제로 작가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는 낯선 풍경에 처음부터 길을 잃는다. 그렇다. 이 소설은 러시아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다루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한 인물의 삶을 전기가 아닌 소설로 극화한다는 것은 어쩌면 작가의 상상력만으로 인물을 창조하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소설의 보편적 기법보다 훨씬 더 힘든 작업일지도 모른다. 독자는 익히 알고 있는 서사에 주목하기보다는 작가가 써내려가는 매 순간의 문장에 시선을 멈춘 채 역사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주인공의 감정이나 대사 등 오직 작가의 상상력에서 복원되는 소설 속의 상황이 얼마나 잘 현실감 있게 표현되고 있는지 매의 눈으로 지켜볼 테니 말이다.

         

"어쩌면 그의 예술적 조숙함은 그가 평범하게 성장하는 데 필요한 그 세월들을 피해왔음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되었건, 그는 삶의 현실적인 면에는 젬병이었고, 물론 가슴의 현실성도 여기 포함되었다. 그래서 사랑의 기쁨과 섹스의 아찔한 자기만족과 함께, 아나파에서 그는 자신이 전혀 새로운 세계, 원치 않는 침묵과 잘못 해석된 암시들과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계획들로 가득한 세계로 들어서고 있음을 깨달았다."    (p.50)

 

유명한 예술가들 치고 단 한 사람도 평탄한 삶을 살았던 적 없지만 쇼스타코비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제1장 '층계참에서', 제2장 '비행기에서', 제3장 '차 안에서'의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각 윤년마다(12년마다) 삶의 극적인 변화를 겪었던 쇼스타코비치의 생애를 상징적으로 나누고 있다. 19세에 졸업작품으로 작곡했던 1번 교향곡을 통하여 세계 무대에 당당히 등장했던 그가 스탈린 앞에서 했던 단 한 번의 연주 실수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까지 몰렸던 1장, 소련 대표단의 일원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던 그가 냉전시대에 자신이 쓰지도 않은 연설문을 읽는 등 체제 선전에 앞장서는가 하면 우상이었던 스트라빈스키마저 배신했던 2장, 스탈린의 부름을 받고 명예를 회복한 그가 공산당 가입을 요청받게 되는 3장.

 

"이론들은 깔끔하고 설득력 있으며 이해하기 쉬웠다. 삶은 혼돈이고 허튼소리로 가득했다. 그는 자유연애 이론을 첫 번째로 타냐와, 그다음에는 니타와 실천에 옮겼다. 실은 둘 다와 동시에 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의 가슴에 겹쳐졌고, 때로는 지금도 여전히 그랬다. 사랑의 이론이 삶의 현실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깨달음은 느리고도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p.81)

 

작가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부당한 권력 앞에서 음악적 소신마저 적당히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쇼스타코비치의 내적 갈등을 철학적 명제들로 되살리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는 작가가 제시하는 명철한 문장을 통해 삶에 대한 깊은 사색에 빠져들게 된다. 작가가 발표했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보여주었던 기록의 역사와 드러나지 않는 한 개인의 삶의 흔적과의 대비는 이 소설에서 시대를 장악하는 권력과 시대에 따라 형태를 달리 하는 여러 부조리,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민중의 목소리들로 대체된다. 인간의 삶은 결국 자신의 운명과의 한 판 승부인지도 모른다.

 

"예술은 귀족과 후원자의 것이 아니듯, 이제는 인민과 당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 예술은 예술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인민이고, 누가 그들을 정의하는가? 그는 항상 자신의 예술이 반귀족적이라고 생각했다."    (p.135)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두 가지 자료를 참조했다고 쓰고 있다. 엘리자베스 윌슨이 쓴 <쇼스타코비치: 기억되는 삶>과 솔로몬 볼코프가 엮은 <증언: 쇼스타코비치의 회상록>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유용한 자료도 있었지만 작가가 이 소설을 집필함에 있어 무엇보다도 엘리자베스 윌슨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1953년 프로코피예프의 사망 이후 명실상부 러시아 최고의 음악가가 된 쇼스타코비치는 실제로 정치 회의에도 참가한 공산주의자였으나 작곡가로서 그는 당국의 정치적 이념을 자신의 음악에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았다. 엄혹한 시대에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타협을 하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끝가지 포기하지 않았던 쇼스타코비치가 작가 줄리언 반스의 눈에는 매력적인 인물로 비쳤을 것이다.

 

"그가 바랐던 것은 죽음이 그의 음악을 해방시켜주는 것, 그의 삶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 것이고, 음악학자들이 논쟁을 계속한다 해도 그의 음악은 자기 힘으로 서기 시작할 것이다. 전기뿐 아니라 역사도 희미해져갈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는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교과서 속의 말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에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면 - 여전히 들어줄 귀가 있다면 - 그의 음악은…… 그냥 음악이 될 것이다.작곡가가 바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p.257)

 

이 소설은 자신의 운명 앞에 누구나 느끼는 공포에도 불구하고 삶을 끝까지 움켜쥔 채 작곡가로서의 의무를 다하려 했던 어느 위대한 예술가에 대한 작가 줄리언 반스의 찬사의 글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작가는 쇼스타코비치의 삶이라는 형식을 빌려 음악과 삶, 권력과 체제, 예술과 진실을 그 형식의 내용으로 담아내려 했는지도 모른다. 독자가 읽는 이 소설은 줄리언 반스가 창조한 시대 뒤편의 진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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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는 낮과 밤의 기온차가 어찌나 심한지 주변에서 감기 환자를 심심치 않게 보곤 한다. 여름 감기는 개도 걸리지 않는다는데 말이다. 나는 감기에 자주 걸리는 건 아니지만 수 년에 한 번씩 살이 쏙 빠질 정도로 심하게 앓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감기 환자와의 접촉이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가뜩이나 요즘처럼 감기 환자가 늘어날 때에는 더더욱 신경이 쓰인다. 수시로 손을 씻고는 있지만 그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내리 쬐는 한낮의 햇살은 금방이라도 살갗을 뚫고 들어올 듯 뜨겁고 자외선 또한 강하지만 해만 떨어지면 살갗에 닿는 바람 때문에 제법 아쓱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습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바람이 담벼락에 부딪쳐 금세라도 푸슬푸슬 부서질 듯하고, 며칠만 지나면 우수수 낙엽이 질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한다.

 

취임 한 달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여전히 뜨거운 듯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조사에 따르면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89.4%라고 하니 말이다. 이와 같은 긍정적 평가의 주된 이유로 '국민과의 소통 및 공감'을 꼽았다고 하니 이전 정부의 소통 부재가 얼마나 한심했던가, 새삼 깨닫게도 된다. 정당 지지도의 결과는 더욱 놀랍다. 더불어민주당이 53.7%로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자유한국당이 8.8%로 2위, 그 뒤를 이어 정의당이 7.7%로 3위를 차지했으니 말이다. 국민의당이 6.7%, 바른정당 5.0%라고 하니 배배 꼬인 자유한국당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청문회 정국에서 국민들의 의사와는 상반되게 발목잡기를 계속함으로써 지지도 하락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은 이대로 계속 간다면 정당의 존폐 위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은 추경예산과 더불어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있었다. 행사장에서 두 번씩이나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연출했던 야당 원내대표나 각종 막말을 일삼던 그들이 새 정부의 장관 후보자들의 작은 흠결을 지적질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성경구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루카 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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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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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를 대략 30년으로 칠 때, 그 세대를 대표하는 출생연도는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G(Global) 세대를 대표하는 게 서울 올림픽이 있었던 1988년에 출생한 사람들이라거나, X 세대를 대표하는 1971년생처럼 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회자되는 건 아마도 '58년 개띠'가 아닐까 싶다. 그것은 단순히 1958년 출생자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넘어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베이비 부머 세대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58년 개띠'는 미처 말도 떼기 전에 4. 19를 겪고, 이후 5.16, 10.26, 5. 18, 6. 10 등 격변하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중심에 있었다. 개인의 출생마저 본인 스스로가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복도 지지리 없는 세대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베이비 부머 세대의 자녀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에코 세대'(1979 ~ 1992년 출생자를 일컫는 말)는 행복했을까?

 

소설가 조남주는 자신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통하여 '에코 세대'의 고충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소설이라기보다 르포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이 소설은 베이비 부머 세대가 겪었던 가난, 이를테면 모두가 가난했던 시대에 절대적인 경험으로서의 가난과는 또 다른 가난, 이를테면 상대적인 가난과 인지하는 과정에서의 성 차별을 겪으면서 성장했고,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핵가족화 된 독립 세대의 고립과 홀로서기를 가감없이, 그리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김지영'이나 '지영이'가 아니고 '김지영 씨'가 되어야만 했다. '에코 세대'를 대표하는 상징적이고 보편적인 인물, 그러면서도 여성으로서의 차별은 여전히 겪어내야 했던 '김지영 씨'에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82년생 '김지영 씨'가 겪었던 경험들이 바로 책을 읽는 우리 자신의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 끝을 꾹 밟고 선 작지만 굳건한 돌덩이. 김지영 씨는 그런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고 왠지 슬펐다. 어머니는 김지영 씨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너저분하게 흐트러진 딸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다정하게 넘겨주었다." (p.37)

 

그렇다면 이 소설의 인기는 도대체 무엇에서 비롯되었을까? 주인공의 화려한 성공담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인공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이야기도 아닌데 말이다. 위로는 공부 잘 하는 언니가 한 명 있고, 밑으로는 남동생이 한 명 있는 집안에 공무원으로 명예퇴직한 아버지와 배운 건 없지만 이재에 능한 어머니 밑에서 그럭저럭 공부하여 수도권의 대학에 입학하고, 빚지지 않고 대학을 졸업했고, 산악 동아리에서 만난 남자 친구를 군대에 보내기도 한다. 말하자면 할 것 다 해본 것이다. 지방의 그렇고 그런 대학에 입학하여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 알바를 전전하지도 않는다.

 

"김지영 씨는 가슴속에 눈송이들이 설기게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충만한데 헛헛하고 포근한데 서늘하다. 남자 친구의 말처럼 덜 힘들고, 덜 속상하고, 덜 지치면서, 어머니의 말처럼 막 나대면서 잘 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p.109)

 

김지영 씨는 대학을 졸업한 후 중견 홍보대행사에 입사한다. 회사에서 나름 인정도 받고 직장 동료들과의 사이도 무난하다. 모나지 않은 성격의 정대현 씨와 결혼도 한다.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둔다. 전업주부가 된 김지영 씨의 모든 이력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그게 다였다.

 

"첫 직장이었다. 첫발을 내딛은 세상이었다. 사회는 정글이고, 학교 졸업 후 만난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니라고들 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합리보다 불합리가 많고, 한 일에 비하면 보상도 부족한 회사였지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개인이 되고 보니 든든한 방패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p.145)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낱낱은 매우 사실적이고, 문장은 마치 범죄 사실을 기록하는 형사의 경찰 조서처럼 건조하게 이어진다. 때로는 각주를 달아 페이지의 하단에 참고도서를 명기하기도 한다. 김지영 씨는 이제 일주일에 두 번, 45분씩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 김지영 씨를 맡은 의사는 김지영 씨가 산후 우울증에 육아 우울증이 더해진 결과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의사는 자신의 진단이 성급했음을 고백한다.

 

"내가 평범한 40대 남자였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 동기이자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욕심도 많던 안과 전문의 아내가 교수를 포기하고, 페이닥터가 되었다가, 결국 일을 그만두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특히 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사실 출산과 육아의 주체가 아닌 남자들은 나 같은 특별한 경험이나 계기가 없는 한 모르는 게 당연하다." (p.170)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한순간에 덧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전체에서, 삶의 궤적 모두에서 수없이 부서지고 찢기면서 조금 치료되는 듯하다가 다시 상처를 입으면서 진행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김지영 씨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 세대나 이 시대의 남자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을 작은 상처들, 예컨대 버스나 지하철에서 임산부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들의 불편만 호소하는 것이라든가, 무심코 내뱉는 성희롱성 농담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가슴에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 작가 조남주의 담담한 고백이 우레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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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기척은 늘 느닷없고 갑작스러운 순간에 찾아오곤 한다. 반소매 셔츠를 입기 시작한 지가 한참이나 지났으면서도 여전히 조금 더운 봄날이려니 할 뿐, '아,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 것이다. 여름이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 하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척척 감겨오는 옷자락과 닦아도 닦아도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그칠 줄 모르고 흐르는 땀방울을 바라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져들고 '아,이제는 정말 여름이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겨울에 비하면 여름은 쉽게 넘길 수 있는 계절이었다. 지금에 비하면 사정없이 추웠던 날씨도 날씨려니와 부실한 입성으로 인해 겨울이면 언제나 동상을 달고 살았고, 추위와 고통을 동반하는 그 계절이, 한없이 길게만 느껴지던 겨울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여름은 쉽고 헐거운 계절이었다. 적이나 더울라치면 강에 나가 멱을 감으면 되고, 배가 고프면 피래미를 잡아 어죽을 끓여먹을 수도 있고, 밭두렁의 개똥참외를 따 먹을 수도 있으니 불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따뜻해진 겨울 날씨와 보온이 잘 되는 겨울옷, 단열이 잘 되는 주택 등으로 인해 겨울이라기보다 가을이 조금 길어진 느낌이 드는 반면, 여름은 예전에 없던 불볕 더위와 끈끈한 습기, 시도 때도 없는 미세먼지 등으로 인해 길어진 계절에 더해 우리가 견뎌야 할 고통지수가 몇십 배 증가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길어지는 가뭄과 일찍 시작된 더위로 인해 올 여름을 어찌 날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게다가 한여름에 조류독감이라니... 사람이나 동물이나 여름을 나는 게 점점 힘들어지는 요즘이다. 인간이 자연을 훼손한 데 대한 대가라면 대가이겠지만 여름이 이렇게 혹독한 계절로 변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오늘 아침에도 산을 내려오며 누군가 버린 쓰레기를 두 손 가득 주웠다. 자연에 대한 속죄인 양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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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6-10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일을 하시는군요. 버리는 사람 따로 줍는 사람 따로인 것도 문제지만,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부지기수인데 줍는 사람은 극소수인 것이 더 심각하지요.

꼼쥐 2017-06-10 17:30   좋아요 0 | URL
빈손으로 내려오기도 민망해서 매일 아침 쓰레기라도 줍자 생각했을 뿐입니다. 무거울 만큼 많은 양도 아니고, 힘든 일도 아니라서 습관처럼 하고 있습니다. ㅎ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죄의식 없이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