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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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를 대략 30년으로 칠 때, 그 세대를 대표하는 출생연도는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G(Global) 세대를 대표하는 게 서울 올림픽이 있었던 1988년에 출생한 사람들이라거나, X 세대를 대표하는 1971년생처럼 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회자되는 건 아마도 '58년 개띠'가 아닐까 싶다. 그것은 단순히 1958년 출생자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넘어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온 베이비 부머 세대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58년 개띠'는 미처 말도 떼기 전에 4. 19를 겪고, 이후 5.16, 10.26, 5. 18, 6. 10 등 격변하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중심에 있었다. 개인의 출생마저 본인 스스로가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복도 지지리 없는 세대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베이비 부머 세대의 자녀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에코 세대'(1979 ~ 1992년 출생자를 일컫는 말)는 행복했을까?

 

소설가 조남주는 자신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통하여 '에코 세대'의 고충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소설이라기보다 르포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이 소설은 베이비 부머 세대가 겪었던 가난, 이를테면 모두가 가난했던 시대에 절대적인 경험으로서의 가난과는 또 다른 가난, 이를테면 상대적인 가난과 인지하는 과정에서의 성 차별을 겪으면서 성장했고,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핵가족화 된 독립 세대의 고립과 홀로서기를 가감없이, 그리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김지영'이나 '지영이'가 아니고 '김지영 씨'가 되어야만 했다. '에코 세대'를 대표하는 상징적이고 보편적인 인물, 그러면서도 여성으로서의 차별은 여전히 겪어내야 했던 '김지영 씨'에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82년생 '김지영 씨'가 겪었던 경험들이 바로 책을 읽는 우리 자신의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 끝을 꾹 밟고 선 작지만 굳건한 돌덩이. 김지영 씨는 그런 돌덩이가 된 기분이었고 왠지 슬펐다. 어머니는 김지영 씨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너저분하게 흐트러진 딸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다정하게 넘겨주었다." (p.37)

 

그렇다면 이 소설의 인기는 도대체 무엇에서 비롯되었을까? 주인공의 화려한 성공담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인공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이야기도 아닌데 말이다. 위로는 공부 잘 하는 언니가 한 명 있고, 밑으로는 남동생이 한 명 있는 집안에 공무원으로 명예퇴직한 아버지와 배운 건 없지만 이재에 능한 어머니 밑에서 그럭저럭 공부하여 수도권의 대학에 입학하고, 빚지지 않고 대학을 졸업했고, 산악 동아리에서 만난 남자 친구를 군대에 보내기도 한다. 말하자면 할 것 다 해본 것이다. 지방의 그렇고 그런 대학에 입학하여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 알바를 전전하지도 않는다.

 

"김지영 씨는 가슴속에 눈송이들이 설기게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충만한데 헛헛하고 포근한데 서늘하다. 남자 친구의 말처럼 덜 힘들고, 덜 속상하고, 덜 지치면서, 어머니의 말처럼 막 나대면서 잘 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p.109)

 

김지영 씨는 대학을 졸업한 후 중견 홍보대행사에 입사한다. 회사에서 나름 인정도 받고 직장 동료들과의 사이도 무난하다. 모나지 않은 성격의 정대현 씨와 결혼도 한다.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둔다. 전업주부가 된 김지영 씨의 모든 이력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그게 다였다.

 

"첫 직장이었다. 첫발을 내딛은 세상이었다. 사회는 정글이고, 학교 졸업 후 만난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니라고들 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합리보다 불합리가 많고, 한 일에 비하면 보상도 부족한 회사였지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개인이 되고 보니 든든한 방패막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p.145)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낱낱은 매우 사실적이고, 문장은 마치 범죄 사실을 기록하는 형사의 경찰 조서처럼 건조하게 이어진다. 때로는 각주를 달아 페이지의 하단에 참고도서를 명기하기도 한다. 김지영 씨는 이제 일주일에 두 번, 45분씩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 김지영 씨를 맡은 의사는 김지영 씨가 산후 우울증에 육아 우울증이 더해진 결과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의사는 자신의 진단이 성급했음을 고백한다.

 

"내가 평범한 40대 남자였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 동기이자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욕심도 많던 안과 전문의 아내가 교수를 포기하고, 페이닥터가 되었다가, 결국 일을 그만두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특히 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사실 출산과 육아의 주체가 아닌 남자들은 나 같은 특별한 경험이나 계기가 없는 한 모르는 게 당연하다." (p.170)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한순간에 덧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전체에서, 삶의 궤적 모두에서 수없이 부서지고 찢기면서 조금 치료되는 듯하다가 다시 상처를 입으면서 진행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김지영 씨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 세대나 이 시대의 남자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을 작은 상처들, 예컨대 버스나 지하철에서 임산부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들의 불편만 호소하는 것이라든가, 무심코 내뱉는 성희롱성 농담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가슴에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 작가 조남주의 담담한 고백이 우레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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