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내리는 일요일 한낮. 높아진 습도와 후끈한 열기로 바깥 공기는 후텁지근하다. 눅눅한 게으름이 휴일 도심을 뒤덮은 듯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마냥 무겁게만 보인다. 그렇게나 바라던 장마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장맛비에 대한 반가움도 잠시, 금세 높아진 습도 탓인지 변덕이 심한 도시인들의 환대는 오래 가지 못한다.

 

지독한 가뭄이었다. 비 한 방울이 아쉬웠던 메마른 대지와 지독한 갈증을 묵묵히 견뎌야만 했던 숲의 나무들을 보며 나는 그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불황기에는 기반이 튼튼하지 못한 젊은이들이나 흥청망청 손이 큰 사람들이 타격을 받는 것처럼 가뭄에는 활엽수의 어린 나무들이 가장 먼저 말라 죽는 걸 보았다. 가뭄이 지속되는 동안 숲은 그먀말로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이었다. 뿌리가 얕은 어린 나무들이 시름시름 말라 죽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가을도 아닌 한여름에 서글픈 낙엽이 지고 있었다.

 

큰 나무들이 우거진 숲일수록 어린 나무들은 더 빨리 말라 죽었다. 불황이 계속될 때 가난한 사람들이 쉽게 고사(枯死)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경기 불황이 어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새로 창업한 사업자가 122만 명이 넘었던 반면 폐업한 사업자가 91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종교인 과세에 대해 집단적인 반발 움직임을 보이니 말이다.

 

 

이를 보도하는 언론인들 또한 국민들을 우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종교인 과세' 간담회 착수..종교계 반발>과 같은 제목을 붙임으로써 종교인 전체가 과세에 반대하는 듯한 뉘앙스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미 세금을 내고 있는 신부님들이나 수녀님들로부터 이 제도가 잘못되었다거나, 종교인 과세가 부당하다는 말을 나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 불교계에서도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고 반대하는 건 오직 개신교 목사들뿐이다. 무당과 같은 사이비 종교인들은 혹 반대할런지도 모른다. 그들은 세금 몇 푼 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소득이 밝혀지는 게 두려운 것이다. 과도한 축재를 하면서도 신도들로부터 존경과 권위를 인정받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재산이 밝혀짐으로써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걸 그들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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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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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마다 '남다르게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지구가 생겨난 이후 완전히 똑같은 날씨는 단 하루도 없었다는 것처럼 깨알같이 많은 사람들이 살다가지만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닮은 삶을 살았던 사람은 결코 존재하지 않겠지요. 어제와 오늘의 날씨가 비슷해 보이고 나와 당신의 삶이 그닥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은 비록 남들이 볼 때는 평범해 보일지라도 우리들 삶이 우리를 기억하는 특별한 사람들에게 만큼은 특별한 의미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동화처럼 투명한 언어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잘 각색된 소설로 다시 읽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책에는 할머니를 먼저 떠나 보낸 후 혼자가 된 할아버지와 사랑하는 손자 노아, 할아버지의 아들이자 노아의 아빠인 테드, 인생의 절반을 함께 했던 과거 기억 속의 할머니가 등장합니다. 작가의 의도도 그러햇겠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특성은 그닥 중요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는 자신의 현재 상태와 언젠가 닥쳐올 이별의 순간을 위해 손자인 노아에게 삶에 필요한 여러 진실들을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이 책은 기억과 놓음에 대한 이야기다. 한 남자와 그의 손자, 한 아버지와 아들이 주고받는 연서이자 느린 작별 인사다. 솔직히 누군가에게 보일 목적으로 시작한 원고가 아니었다. 나는 글로 적어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그냥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하려고 했을 뿐이다." (p.7 작가의 말)

 

삶의 어느 한 순간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마저 점점 길어지고 있는 노인은 현실이 완전히 녹아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순간이 자신에게도 곧 닥쳐오리라는 걸 사랑하는 어린 손자에게 마치 한 편의 동화처럼 들려줍니다. 광장의 벤치에 앉은 할아버지와 노아는 할머니의 정원을 가득 채우던 히아신스의 달콤한 향기를 맡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노아 쪽으로 몸을 숙이고긴 잠 속으로 빠져들려는 사람처럼 숨을 뱉는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점점 자라고 한 사람은 점점 작아져서 몇 년이 지나면 중간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p.112)

 

수학을 좋아하는 두 사람은 그것 말고도 서로 통하는 게 많습니다. 글쓰기와 기타치기를 좋아했던 노아의 아빠 테드와는 달리 수학을 좋아하는 노아와 할아버지는 서로 한 몸인 양 느끼는 듯합니다. 그러므로 할아버지가 노아에게 하는 말은 어쩌면 자신이 노아만 했던 과거의 자신을 향해 던지는 혼잣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와 노아는 이따금 할머니와의 추억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할아버지는 우주의 나이가 130억 년이 넘는다고 노아에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야기한다. 할머니는 늘 중얼거렸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 우주를 쳐다보느라 바빠서 설거지를 할 시간도 없다 이거죠." 할머니는 노아에게 가끔 "바쁘게 사는 사람들은 항상 뭔가를 바쁘게 놓치면서 사는 거야."라고 속삭였지만 노아는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p.67)

 

이별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가슴 아픈 일일 테지요.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볼 수 없는 상실의 고통은 말해 뭐하겠습니까. '영원'이라는 말처럼 아득한 게 또 있을까요? 그러나 자연 속에서 평생을 사는 우리 역시 자연의 순리를 거역할 방법은 없습니다.

 

"아빠가 저녁에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데리러 오면 할머니는 작별 인사를 못 하게 했다. "하지 마라, 노아야. 내 앞에서 그 소리는 하지 마! 네가 떠나면 이 할미가 늙잖니. 내 얼굴에 새겨진 모든 주름이 너의 작별 인사야." 할머니는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p.75)

 

<오베라는 남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레드릭 배크만은 이 책에서 웃음기를 싹 뺀 진지한 언어로 생로병사의 피할 수 없는 변화를 우리가 어떻게 하면 두려움 없이 대할 수 있을지 차분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연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경험이지만 두껍지 않은 이 책을 반복하여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두려운 마음을 속으로만 갈무리한 채 마지막 이별의 순간에도 우리는 당황하거나 호들갑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담담히 수용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아에게도 마음의 굳은살이 꾸덕꾸덕 생겨나 이별의 순간에도 의연하게 대처하기를 바랐던 할아버지처럼 독자들도 그러하기를 작가는 원하고 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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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는 고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날선 아침을 맞는 이가 있다는 것도, 한여름의 진득한 어둠이 한가로이 내려앉는 밤, 내일을 위해 치열하게 잠들어야 하는 이가 있다는 것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은 더러 속절없이 울 일이 많아진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비단 타인을 향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젊거나 어렸던 과거의 나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우면산 서초약수터에서 만나 가볍게 등산을 한 후 점심이나 함께 하자는 취지였는데 나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그날 밤, 모임에 참석했던 한 친구가 단톡방에 올린 짧은 글로 인해 나는 조금 먹먹했었다. 고등학교 시절 주말 휴일이면 함께 모여 농구를 하고, 한 친구의 집으로 우르르 몰려가 라면을 끓여 먹던 추억, 대학 시절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던 한 친구, 사법고시 2차 시험에서 번번이 떨어졌던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그때마다 모여 쓴 소주를 마셨던 친구들... 친구의 글은 '그립다'는 말로 끝을 맺었지만 시간의 빈 공간으로 끝없이 빨려드는 느낌이었던 나는 스마트폰 액정을 한동안 넋 놓고 바라보았다.

 

우리는 다들 '언젠가'라는 말을 구실로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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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노블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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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결말부터 시작하는 소설은 대체로 비장한 느낌이 든다. 죽음이나 이별 등 암울한 결말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전개가 밝고 명랑하거나 로맨틱한 분위기로 펼쳐지더라도 부디 애잔한 느낌으로 읽어달라는 작가의 암묵적인 주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에서도 마음 놓고 웃을 수가 없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스미노 요루의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도 주인공의 여자친구인 사쿠라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느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소설의 세계에 파묻혀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과 그와는 정반대의 성격인 사쿠라. 명랑 쾌활한 성격의 사쿠라는 자신의 삶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소견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의 소중한 경험들을 '공병문고'라는 제목의 일기장에 기록하고 있다. 나서기 싫어하고 방관자의 삶을 고수하는 주인공은 맹장수술 치료를 위해 갔던 병원의 대기실에서 '공병문고'를 발견하였고, 책인 줄 알고 펼쳐보았던 사쿠라의 일기에서 그녀가 췌장의 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내용의 기록을 읽게 된다. 남겨진 삶을 평범한 일상으로 채우고 싶었던 사쿠라는 자신의 병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밝히지 않았었는데 같은 반의 친구인 주인공에게 우연찮게 들키고 만 셈이었다. 그 비밀을 매개로 주인공은 사쿠라와 조금씩 가까워진다.

 

"깨달았다. 모든 인간이 언젠가 죽을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나도, 범인에게 살해된 피해자도, 그녀도. 어제는 살아 있었다. 죽을 것 같은 모습 따위, 내보이지 않은 채 살아 있었다. 아, 그렇구나. 그게 바로 어떤 사람이든 오늘 하루의 가치는 모두 다 똑같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p.80)

 

주인공인 '나'와 사쿠라는 도서위원으로 함께 활동하는 것을 시작으로 여학생과 커플들만 우글거리는 '스위트 뷔페'에서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1박2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것은 사쿠라의 버킷 리스트이기도 했다. '남자친구와 여행하기', 돈코츠 라면을 본고장에 찾아가서 먹기' 등의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며 사쿠라는 이따금 '공병문고'를 기록하곤 했다.

 

"만일 그녀가 일 년 뒤에 죽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나는 그녀와 식사할 일도 여행할 일도, 집에 가서 어색한 상황을 만들 일도 없었다. 그녀의 죽음이 우리를 이어주었다. 하지만 죽음 따위,누구에게라도 찾아올 운명이다. 그러니까 나와 그녀가 만난 것은 우연일 뿐이다. 우리가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은 우연일 뿐이다. 의지나 감정에 따른 순수성이 나에게는 전혀 없었다." (p.191)

 

사쿠라와의 만남이 길어지면서 주인공인 '나'의 마음도 조금씩 바뀌어간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2주간의 보충수업이 끝나면 사쿠라의 절친인 교코와 함께 여행을 다녀오자고 약속을 한다. 교코는 사쿠라의 병을 알지 못했다. 교코는 사쿠라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병 때문에 서로의 행복한 일상을 깨고 싶지 않았던 사쿠라는 자신의 병을 일체 비밀로 유지했다. 그러나 보충수업이 시작되던 월요일,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쿠라가 병원에 입원했다. '나'는 이따금 병문안을 다녀오면서 사쿠라가 자신에게 무엇인가 숨기는 게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한다.

 

"그녀가 죽음이 아니라 삶을 응시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겁쟁이다. 알아버렸다. 나는, 아직 그녀가 죽는다는 것을 어디선가 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p.221)

 

자신의 병세를 체감한 탓인지 사쿠라는 주인공에게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드러낸다. 그녀의 죽음이 1년쯤 남았으려니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불안했던 '나'는 꽁꽁 닫혀 있던 가슴을 조금씩 열어보인다. 내가 병문안을 갔던 어느 날, 그녀와 갔던 1박2일 여행에서 했던 '진실 혹은 도전' 게임을 다시 하게 된다. 나는 게임에서 이겼고 그녀에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 혼자서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없어.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누군가는 싫어하는 나, 누군가와 함께하면 즐거운데 누군가와 함께하면 짜증난다고 생각하는 나, 그런 사람들과 나의 관계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산다는 것이라고 생각해. 내 마음이 있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있기 때문이고, 내 몸이 있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잡아주기 때문이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는 지금 살아있어. 아직 이곳에 살아있어. 그래서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어. 나 스스로 선택해서 나도 지금 이곳에 살아있는 것처럼." (p.222)

 

2주 동안 입원하기로 했던 사쿠라는 그 기간이 다시 연장되었고 방학이 끝날 무렵쯤 퇴원했다. 퇴원 후 그녀를 만나기로 했던 약속 장소에 그녀는 결국 나오지 않았다.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이 다음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어찌 보면 황순원의 <소나기>와도 비슷한 내용과 분위기인 이 소설은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비장의 카드를 소설의 후반부에 배치해 두고 있다. 공감력이 떨어지는 나조차도 울컥했을 정도이니 내 말을 100% 믿어도 좋을 것이다. 그 유명한 영화 '러브 스토리'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점점 감수성이 떨어지거나 심한 스트레스로 모든 게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는 멜로물 만한 게 없다. 체면이고 뭐고 다 내려놓은 채 적당히 감동하고, 적당히 훌쩍거리다 보면 세상은 다시 장밋빛으로 보이게 된다. 우리를 살게 하는 건 만족한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일 테니까.

 

(오탈자)왁왁거리는 교코과는 달리 그녀는 태연히 하품을 하고 있었다. -->왁왁거리는 교코와는 달리 그녀는 태연히 하품을 하고 있었다.(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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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한 번이 어렵지 어떤 일이든 한 번 물꼬를 트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한결 쉬워지나 봅니다. 그렇게도 오지 않던 비가 연일 오락가락 하니 말입니다. 가뭄 해갈에는 턱없이 부족한 강수량인지라 사람들은 다들 '찔끔'이라는 말로 애타는 속내를 에둘러 표현하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비를 이렇게 간절히 원했던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비가 이토록 귀하신 몸이 되고 보니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강수량 수치를 다르게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예컨대 1mm라든가 10mm라는 수치는 그 위대함에 비해 우리가 체감하는 건 극히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는 것입니다. 강남구 지역에 한 시간 동안 20mm가 내렸다면 일반인이 그 양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남들이 하듯 그저 '찔끔'이라는 말로 가치절하 하기 쉽다는 것이지요. 그보다는 오히려 강남구 지역에 한 시간 동안 내린 비의 양은 2리터 페트병 50만 개 정도의 분량이었다고 발표한다면 비록 흡족한 강우량은 아닐지라도 '아, 이렇게나 많은 비가 내렸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겠지요. 더불어 자연의 위대함을 한번쯤 되새길 테고 말이죠.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그동안 가뭄이 지속되는 내내 페트병에 물을 담아 양손에 들고서 산 위에 있는 밭을 힘겹게 오가던 어르신 한 분을 매일 아침 등산길에서 보아왔었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손바닥만 한 밭에 물을 대기 위해 기력이 쇠한 노인은 그 길을 몇 번이나 오갔을 것이며 가빠진 숨을 진정시키기 위해 얼마나 여러번 쉬어야 했을까. 그에 비하면 비록 적은 양일지라도 한 번의 소나기는 얼마나 위대한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노인 한 사람의 손으로 잠깐 내린 소나기의 양만큼 한 지역의 산천에 물을 퍼 나른다고 가정하면 어쩌면 평생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사는 현실의 이면에는 외면했던 또 다른 시선이 있나 봅니다.

 

비가 오락가락 하면서 낮았던 습도마저 높아지니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느낌입니다. 비오는 날 국물이 땡기는 것처럼 무더위가 시작되자 마자 밀어두었던 소설이 읽고 싶어집니다. 스미노 요루의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와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를 골랐습니다. 어쩌다 보니 두 권 다 일본소설이네요. 김영하의 소설집 <오직 두 사람>과 서명숙의 소설 <영초 언니>도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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