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송맨송한 기분이 영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낮에 딱히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도 아니고, 며칠째 말 못할 고민으로 전전긍긍 시달려 온 것도 아닌데 오늘 밤은 왠지 똘망똘망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이다. 나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지 않은가. 그런 예감이 드는 날에는 나는 사소한 것에 괜한 만용을 부리느니 맨송맨송한 기분을 잠재울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곤 한다. 새가슴이라고 놀려도 어쩔 수 없다.(정말 그렇게 놀린다면 물론 곤란하겠지만)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어젯저녁도 나는 그런 께름칙한 기분에 휩싸여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술 한잔 하자고 꼬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사람이 서넛 있지만 술을 못하는 나는 그 방법을 써먹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 저녁에 차나 한 잔 할까?" 넌지시 말을 건네면 나에게 다른 뜻이 있구나, 의심할 게 너무도 뻔했다. 그런데 웬걸, 내가 말도 꺼내기 전에 친구 한 명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대뜸 저녁에 선약이 있느냐 묻더니만 미처 대답도 끝나기 전에 차나 한 잔 하자고 했다. 미리 생각을 해두었던지 약속장소까지 일사천리로 말해버렸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은 사람처럼 기운이 없어보였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 탓에 나는 흑기사 한 명을 대동해야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고민이 있을 때 이따금 전화를 거는 분에게 연락을 했더니 마침 시간이 된다고 했다. 나에게 전화를 했던 친구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친구는 지난해에 아내와 이혼을 하고 그의 부모님댁에 들어가 고등학생인 딸과 함께 살고 있는 까닭에 말 못할 고민도, 털어놓고 싶은 문제도 많을 터였다.

 

친구의 하소연은 길게 이어졌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나의 흑기사는 "자네만 인생 두 번 사는 게 아닌데 뭘 그렇게 징징거리나. 세상을 산다는 건 누구나 자네만큼 힘든 법일세. 다만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라고 말했다. 그분을 잘 모르는 타인이 들었더라면 야멸찬 사람이구나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와 친구는 그분의 성정을 잘 아는 터라 그분이 진심으로 친구의 사정을 아파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와 헤어져 댁으로 돌아가서도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겉으로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어깨가 축 늘어진 채 귀가했던 나는 더위도 잊고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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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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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조금만 읽고 나머지는 내일 읽어야지.' 했던 게 그만 다 읽고 말았다. 책이 얇은 탓도 있지만 나와 생각이 비슷한 글을 읽을 때에는 중간에 끊고 내려놓는 게 쉽지 않다. 어디서 멈추어야 할지 가늠도 되지 않고 말이다. 게다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책 이야기는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쉬지 않고 들을 수 있을 듯도 하고, 내가 미처 읽어보지 못한 책의 소개나 아스라한 과거에 읽었던 희미한 기억 속의 책을 다룬 글은 밤을 새워서라도 읽을 수 있을 듯하지 않은가.

 

"사실 저는 닥치는 대로, 무턱대고, 끌리는 대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책을 그렇게 읽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읽다 보면 어느새 좋은 책을 잘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죠." (p.75)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진행자이자 애서가로도 유명한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신작 <이동진 독서법-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를 후루룩 읽었다. 그야말로 국수 한 젓가락을 후루룩 삼키듯 그렇게 읽어버린 느낌이다. 1부 '생각-그럼에도 불구하고', 2부 '대화-읽었고, 읽고, 읽을 것이다', 3부 '목록-이동진 추천도서 500'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독서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에 견주어 편안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책을 선택하는 방법이며, 가장 좋아하는 독서 장소며, 여러 권의 책을 한 번에 읽는 법 등 우리가 궁금해할 만한 여러 이야기를 1부에 실었고, 2부에서는 '씨네21'의 이다혜 기자와의 대화를 실었다.

 

"욕조에서 책을 읽으면 저는, 비유하자면 자궁에 들어 앉아 있는 태아의 느낌이 들어요. 물을 적당한 온도로 맞춰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책을 읽으면 굉장히 편해져요. 짧으면 두 시간, 길게 있으면 일고여덟 시간까지 욕조에서 책을 읽어요. 이렇게 책을 읽는 건, 저한테는 일종의 사치인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긴 시간을 내기가 힘드니까요." (p.45)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저마다의 선호하는 장소가 있게 마련이다. 집중이 잘되는 곳, 이를테면 화장실일 수도 있고, 대형서점 내의 커피숍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오가는 지하철역 벤치일 수도 있다. 나는 잠자기 전의 잠깐 동안이 꿀맛 같은 독서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독서하기에 좋은 시간을 특정하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눈코 뜰 쌔 없이 바쁜 와중에 잠깐 짬을 내어 읽는 독서맛이 더없이 달콤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일단 책에 빠져들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것인데 선약이 있거나 다른 볼일이 있을 때는 조심해야만 한다. 책으로 인해 실없는 사람으로 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책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인데 이게 또 쉽지 않다. 그 유혹에 기꺼이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나름의 비법을 한두 가지 마련해 놓고는 있지만 이따금 그마저도 효력이 없어서 쓴웃음을 짓게 만드니 말이다.

 

저자가 권하는 독서에 관한 여러 팁 중에는 책에 밑줄을 긋거나 낙서를 하거나 하는 식으로 책을 '함부로 대하라'는 내용이 있다. 나는 사실 책을 신줏단지 모시는 듯한 경향이 있어서 책을 함부로 대하는 것에 일종의 공포심을 갖고 있는데 저자의 말을 들어보니 차츰 바꿔볼 필요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부에서는 이다혜 기자의 질문을 통하여 독서에 관련된 저자의 어린 시절 경험이나 학창시절 독서클럽을 조직했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전작주의에 대한 저자의 견해와 '빨간책방'에 소개될 책의 선정 기준 등 책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 무엇보다도 책에 관해서라면 할 이야기가 많은 두 사람이다 보니 대화의 내용이나 폭이 넓고도 깊다.

 

"독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쌓는 독서와 허무는 독서라고 할 수 있겠죠. 쌓는 독서라고 하면 내가 내 세계를 만들어가는, 내 관심사에 맞는 책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읽을 것 같고요. 허무는 독서는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거나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는 경우일 텐데요. 쌓는 독서를 게을리하면 '내 것'이 안 생기고, 허무는 독서를 안 하면 내 세계가 좁아지거든요." (p.151)

 

이제부터 책과 좀 친해졌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나 자신의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유익한 책이 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늘 곁에 두고 살았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이거 뭐야? 별것도 없잖아."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쉽게 쓰였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3부에 실린 추천도서 목록은 참고할 만하다. 지름신이 강림하는 걸 막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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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관병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뜨거웠던 적이 또 있을까 싶다. 사실 군복무를 하지 않은 여성들에게 공관병이라는 직책은 생소하기만 할 텐데 말이다. 박찬주 제2작전사령관의 부인이 공관병에게 갑질을 했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실시간 검색어에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보면 언론의 힘이 무섭구나, 싶다.

 

내가 군생활을 했던 과거에는 공관병이나 당번병, 1호차 운전병 등을 주로 '따까리'라고 불렀다. 일종의 비서인 셈이다. 사정을 모르는 사병들은 그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머리도 기르고 사복을 입고 생활했으니까 말이다. 다른 것보다도 훈련이나 야간 보초를 서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부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남의 떡이 커보이는' 격이랄까.

 

뉴스에서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박 대장과 그의 부인이 했던 짓은 로마시대의 노예를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게 어제 오늘의 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과거에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왜 이제서야 알려지게 된 것일까? 서열과 위계를 중시하는 이전 보수당(새누리당이나 자유당 등) 정권 시절에는 만약 일개 사병이 이런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고 하더라도 장성이 처벌받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사병이 영창에 보내질 확률이 훨씬 높았으리라. 그런 위험성을 뻔히 알고 있는데 계란으로 바위를 치겠다고 만용을 부릴 사람은 없었을 줄로 안다.

 

뉴스 보도를 보면서 '아, 세상이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둘 보도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지금은 숨죽이고 있다가 때가 되면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드는 게 기득권을 누려본 사람들의 행태이니까. 가장 무서운 적폐는 지금 알려진 현실이 아니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래일지도 모른다. 정의를 세운다는 건 일회성의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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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긴하기 귀찮아 2017-08-02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는 정말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이 남자들이 어째서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제대하고 나면 그것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걸까 하는 부분입니다. 자기 다음에 올 병사들을 위해서 또는 자신의 모욕감에 대한 보상이라도, 현역일때는 하지 못했던 어떤 사안들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민간에서는 별일 아닌것을 가지고도 보복을 하거나 사소한 일로도 찾아가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 없지 않은데 너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제대후에라도 보복 차원의 어떤 사건들이 많이 벌어졌다면 좀 조심하지않았을까요? 비단 노예병사의 문제만이 아니고요.

2017-08-02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꼼쥐 2017-08-03 18:46   좋아요 0 | URL
남자들은 대개 군에서 있엇던 일을 하루라도 빨리 잊고 싶은 게 공통심리인 것 같습니다. 멀쩡한 몸으로 제대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생각하는 것이죠. 제대한 후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유도 그게 세상에 알려지고 부대내에서의 불법행위가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 병사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군대는 사회와 철저히 격리되어왔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지요. 군대의 비리를 알고 잇는 군인권센터조차도 증거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니 말입니다.
 
기사단장 죽이기 1 - 현현하는 이데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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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삼복더위가 한창인 요즘, 더위 얘기를 다시 또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더위를 즐기라고까지 한다면 시원하기는커녕 더 더워지려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사는 많은 날들 중에 더위라는 달갑지 않은 짐이 여름 내내 얹혀진다고 느끼는 것과 내가 사는 많은 날들 중에 단지 더운 하루하루를 체험하면서 여름이라는 계절을 보낸다고 느끼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예컨대 새로운 하루를 체험하려고 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더운 날씨네, 라고 생각하면 더위는 한층 가볍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습하고 더운 하루일지언정 제법 소중한 시간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말이다.

 

하루의 날씨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드는 것처럼 소설을 읽을 때도 나는 작가의 성향을 살펴보곤 한다.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이러이러하게 생각하고 계획함으로써 이러이러한 인생을 살았다고 쓰는, 다소 관념에 치우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주인공이 하루하루를 이러이러하게 살았더니 이러이러한 인생이 되었다고 쓰는, 체험을 중시하는 작가가 있게 마련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체험을 중시하는 작가가 눈에 띄게 좋아진다. 인생은 결국 계획하여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면 남은 건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의 문제만 남는다. 인생 전체가 어떤 모습으로 완결되는가 하는 문제는 관심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을 쓰는 작가가 어떤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보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듯 보인다. 주인공의 일상을 작가가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처럼 주인공의 하루하루를 꼼꼼히 기록하다 보니 결국 이런 소설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소설의 구성과 테마를 미리 계획하고 그에 따라서 주인공의 세부 일정을 기록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결과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벌려 놓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체험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최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도 작가의 기존 성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자니 주인공인 '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냄새를 맡으며,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음식을 먹느냐의 문제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나'의 시선에 들어온 상대방의 표정이나 입고 있는 옷, 그(또는 그녀)가 타고 온 자동차, 신발 등 겉으로 드러나는 하나하나의 것들이 모두 중요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이런 식으로 써나가다 보면 소설은 무한대로 길어질 수도 있지만 작가에 의해 적당한 선에서 멈춰진다. 그것은 곧 주인공의 체험인 동시에 작가의 체험이기도 하다. 나아가서 책을 읽는 독자의 경험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독자 또한 주인공의 체험을 고스란히 전달받고 있기 때문이다. 관념을 중시하는 독자나 비평가의 눈에 비친 하루키의 소설은 가볍거나 경박하고, 대중적이거나 상업적이며, 때로는 지루할 수도 있다. 매일매일 바뀌는 디테일한 일상에 주목하지 않으면 그날이 그날 같은 반복되는 일상으로 여겨질 테니까 말이다.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믿을 수 없이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쉼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치에 맞는지 아닌지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드러난다." (p.94~p.95)

 

당연한 일이지만 하루키 소설에서 주인공의 모든 감각은 생생히 살아 있다. 경험의 축적은 결국 감각으로 인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입었던 상대방의 옷은 밋밋한 면바지가 아니라 연녹색 치노 바지이거나 크림색 티셔츠여야 하고, 그가 마시는 술은 싱글몰트 위스키처럼 구체적이어야 하며, 그가 타는 차는 은색 재규어처럼 특정한 차여야 하고, 아침은 토스트 세 쪽과 계란 두 개를 먹어야 하며, 연인과의 정사 순간처럼 느낌 하나하나가 생생히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작가가 쓰는 소설은 살아 있는 장면 하나하나의 결합일 뿐이다. 소설이 주는 메시지나 소설의 구성 등 소설 전체를 갖고 평한다는 게 잘못된 일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저 순간순간의 경험으로 소설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에게 누군가의 1년 치 일기를 읽고 주제를 말해보라면 그처럼 난감한 일이 또 있을까.

 

"숲의 정적 속에는 시간이 지나고 인생이 흘러가는 소리마저 들려올 것 같았다. 한 사람이 가고 다른 사람이 온다. 한 생각이 가고 다른 생각이 온다. 한 형상이 가고 다른 형상이 온다. 나 자신조차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 조금씩 무너졌다가 재생된다. 무엇 하나 같은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은 상실된다. 시간은 내 등뒤에서 조금씩 죽은 모래가 되어 무너지고 사라진다. 나는 그 구덩이 앞에 앉아 시간이 죽어가는 소리에 마냥 귀를 기울였다." (p.369)

 

<기사단장 죽이기> 또한 스토리는 별게 없다. 30대 중반의 초상화가인 '나'는 아내에게 갑자기 결별을 통보받는다. 어떤 이유나 사전 통고도 없이 벌어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나'는 아내의 결정이 부당하다면서 따지거나 화를 내거나 아내가 자신을 두고 바람을 피운 구체적인 이유를 캐묻지 않는다. '나'는 무언가를 납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세상을 살기 위한 열원(熱源)이나 반짝이는 의지 같은 게 부족한 사람이다. '나'는 간단한 생활용품을 챙겨서 집을 나온다. 차를 몰고 정처 없이 떠돌던 '나'는 대학 동기인 아마다 마사히코의 권유로 화가였던 그의 아버지의 거처에 정착한다. 그의 아버지 아마다 도모히코는 일본화로 명성이 자자한 유명화가였지만 나이가 들고 치매가 심해져 요양원에 입원중이다. 도모히코의 거처이자 작업실이었던 그 집에서 '나'는 우연한 기회로 고가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고, 초상화의 의뢰인이었던 멘시키와 얽혀들게 되면서 다양한 경험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즉 우리 인생에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왕왕 있다는 말이죠. 그 경계선은 꼭 쉬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날 기분에 따라 멋대로 이동하는 국경선처럼요. 그 움직임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자신이 지금 어느 쪽에 있는지 알 수 없어지니까요. 아까 제가 더이상 구덩이에 머무르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했던 건 그런 뜻입니다." (p.340)

 

소설은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관념을 오가며 진행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 소설은 감각이나 체험을 위주로 쓴 소설이다. 그러므로 갑자기 혼자가 된 삼십대 중반의 남자가 가장 관심있어 할 대상 또한 자신의 성적 욕망을 해결하기 위한 여성일 것이라고 작가는 단정한다. 자주 있었던 것은 아닐지라도 주인공인 '나'의 성적 체험이 자주 언급되는 것도 그 당시의 '나'에게 그때의 체험이 머릿속에 깊이 남아서일 테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화가인 '나'에게 있어 무엇보다 시각이 중요하겠지만 보여지는 어떤 것들은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곤 하지만 흔한 풍경처럼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루키 문학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음식이나 음악 또한 이 소설의 스토리 전개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생학하면서 읽는 것도 재미있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내 길인 줄 알고 별생각 없이 걸어왔던 길이 갑자기 발밑에서 쑥 사라져버리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허허벌판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런 느낌이야." (p.556)

 

이 소설은 1권과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의 리뷰에서 스토리나 인물을 다루지 않았던 까닭도 그런 이유이다. 소설의 인물이나 구성, 스토리 등을 논하기에는 섣부른 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2권까지 다 읽은 상황이지만 글의 분량도 나눌 필요가 있고, 내용도 구분할 필요가 있기에 1권의 리뷰에 있어서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구성, 글의 전개 등에 대해서는 가급적 쓰지 않을 작정이다. 2권의 리뷰를 위해 남겨두는 측면도 있다. 오늘도 꽤나 더운 하루였다. 작가가 1권에서 던진 한마디의 말을 화두 삼아 곰곰 생각해보는 저녁이 되길 바라는 의미에서 주인공이 했던 말을 인용해 본다. '진실이 때때로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고독을 가져오는지.' 무엇인가 깊은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한참 동안 집중하다 보면 더위도 잊고 스르르 잠이 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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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척이나 더웠죠? 아닌 척, 짐짓 무덤덤한 척 해보지만 표정을 숨기기는 어렵네요. 오전 내내 끄느름하던 하늘이 오후가 되자 뜨거운 햇살을 마구 쏟아냅니다. 습도도 높고 바람마저 없는 전형적인 여름 한낮입니다. 나는 지금 더위를 피해 도서관에 와 있습니다. 여름 피서지 치고는 이만한 데가 없는 듯합니다. 적당한 냉방과 조용한 분위기, 낡은 책장에서 풍기는 퀴퀴한 곰팡내, 사람들의 숨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 이 모든 게 하나의 풍경으로 잡힙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오가는 공공장소에서는 으레 이런저런 말썽이 있게 마련이지요. 작든 크든 말이지요. 나는 사실 도서관과 같은 엄숙한 분위기에서는 잘 집중을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번잡한 생활소음이 상존하는 대형서점의 한 모퉁이에서 집중을 더 잘하는 편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종이지요. 사실 도서관은 그저 책을 읽거나 책을 빌리는 것 이상의 쏠쏠한 재미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며, 표정이며, 걸친 옷이며 악세사리며,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다 흥미롭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이는 어느 엄마의 소곤거림도 무척이나 감미롭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런 평화로운 풍경이 순식간에 돌변할 때도 없진 않습니다.

 

열람실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습니다. 맞은편 좌석에는 일흔은 족히 넘으셨을 듯한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있었고, 할아버지의 오른쪽 좌석에는 중년의 여인 한 분이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책을 읽기 위한 목적보다는 더위를 피할 목적이 더 큰 듯 보였습니다. 주머니에서 이따금 사탕을 꺼내 드셨으니까요. 사탕의 껍질을 벗기는 소리가 꽤나 크게 들렸던가 봅니다. 옆에서 책을 읽던 아주머니가 대뜸 할아버지에게 큰 소리로 항의했던 걸 보면 말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쏠렸던 건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조용하더 도서관이 일순 술렁거렸으니까요. 도서관의 직원이 와서 두 사람의 갈등을 중재하였고, 소란이 잠잠해지자 사람들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제 할 일을 하였습니다.

 

머쓱해진 할아버지는 그 길로 도서관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처진 어깨가 안쓰러워 보였던 건 나만의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의 행동이 정당했다는 건 아닙니다. 잘못하셨지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반평생이 넘도록 공중도덕이라고는 모른 채 살아오셨을지도 모릅니다. 7,80년대만 하더라도 버스나 기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다반사였고, 영화관도 늘 담배연기로 자욱했었으니까요. 나이차로 보면 딸이나 진배없는 사람에게서 망신을 당했으니 할아버지에게는 오늘이 정말 운수 없는 날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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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9 22: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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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1 1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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