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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조금만 읽고 나머지는 내일 읽어야지.' 했던 게 그만 다 읽고 말았다. 책이 얇은 탓도 있지만 나와 생각이 비슷한 글을 읽을 때에는 중간에 끊고 내려놓는 게 쉽지 않다. 어디서 멈추어야 할지 가늠도 되지 않고 말이다. 게다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책 이야기는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쉬지 않고 들을 수 있을 듯도 하고, 내가 미처 읽어보지 못한 책의 소개나 아스라한 과거에 읽었던 희미한 기억 속의 책을 다룬 글은 밤을 새워서라도 읽을 수 있을 듯하지 않은가.
"사실 저는 닥치는 대로, 무턱대고, 끌리는 대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책을 그렇게 읽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읽다 보면 어느새 좋은 책을 잘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죠." (p.75)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진행자이자 애서가로도 유명한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신작 <이동진 독서법-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를 후루룩 읽었다. 그야말로 국수 한 젓가락을 후루룩 삼키듯 그렇게 읽어버린 느낌이다. 1부 '생각-그럼에도 불구하고', 2부 '대화-읽었고, 읽고, 읽을 것이다', 3부 '목록-이동진 추천도서 500'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독서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에 견주어 편안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책을 선택하는 방법이며, 가장 좋아하는 독서 장소며, 여러 권의 책을 한 번에 읽는 법 등 우리가 궁금해할 만한 여러 이야기를 1부에 실었고, 2부에서는 '씨네21'의 이다혜 기자와의 대화를 실었다.
"욕조에서 책을 읽으면 저는, 비유하자면 자궁에 들어 앉아 있는 태아의 느낌이 들어요. 물을 적당한 온도로 맞춰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책을 읽으면 굉장히 편해져요. 짧으면 두 시간, 길게 있으면 일고여덟 시간까지 욕조에서 책을 읽어요. 이렇게 책을 읽는 건, 저한테는 일종의 사치인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긴 시간을 내기가 힘드니까요." (p.45)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저마다의 선호하는 장소가 있게 마련이다. 집중이 잘되는 곳, 이를테면 화장실일 수도 있고, 대형서점 내의 커피숍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오가는 지하철역 벤치일 수도 있다. 나는 잠자기 전의 잠깐 동안이 꿀맛 같은 독서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독서하기에 좋은 시간을 특정하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눈코 뜰 쌔 없이 바쁜 와중에 잠깐 짬을 내어 읽는 독서맛이 더없이 달콤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일단 책에 빠져들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것인데 선약이 있거나 다른 볼일이 있을 때는 조심해야만 한다. 책으로 인해 실없는 사람으로 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책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인데 이게 또 쉽지 않다. 그 유혹에 기꺼이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나름의 비법을 한두 가지 마련해 놓고는 있지만 이따금 그마저도 효력이 없어서 쓴웃음을 짓게 만드니 말이다.
저자가 권하는 독서에 관한 여러 팁 중에는 책에 밑줄을 긋거나 낙서를 하거나 하는 식으로 책을 '함부로 대하라'는 내용이 있다. 나는 사실 책을 신줏단지 모시는 듯한 경향이 있어서 책을 함부로 대하는 것에 일종의 공포심을 갖고 있는데 저자의 말을 들어보니 차츰 바꿔볼 필요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부에서는 이다혜 기자의 질문을 통하여 독서에 관련된 저자의 어린 시절 경험이나 학창시절 독서클럽을 조직했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전작주의에 대한 저자의 견해와 '빨간책방'에 소개될 책의 선정 기준 등 책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 무엇보다도 책에 관해서라면 할 이야기가 많은 두 사람이다 보니 대화의 내용이나 폭이 넓고도 깊다.
"독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쌓는 독서와 허무는 독서라고 할 수 있겠죠. 쌓는 독서라고 하면 내가 내 세계를 만들어가는, 내 관심사에 맞는 책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읽을 것 같고요. 허무는 독서는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거나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는 경우일 텐데요. 쌓는 독서를 게을리하면 '내 것'이 안 생기고, 허무는 독서를 안 하면 내 세계가 좁아지거든요." (p.151)
이제부터 책과 좀 친해졌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나 자신의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유익한 책이 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늘 곁에 두고 살았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이거 뭐야? 별것도 없잖아."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쉽게 쓰였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3부에 실린 추천도서 목록은 참고할 만하다. 지름신이 강림하는 걸 막을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