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척이나 더웠죠? 아닌 척, 짐짓 무덤덤한 척 해보지만 표정을 숨기기는 어렵네요. 오전 내내 끄느름하던 하늘이 오후가 되자 뜨거운 햇살을 마구 쏟아냅니다. 습도도 높고 바람마저 없는 전형적인 여름 한낮입니다. 나는 지금 더위를 피해 도서관에 와 있습니다. 여름 피서지 치고는 이만한 데가 없는 듯합니다. 적당한 냉방과 조용한 분위기, 낡은 책장에서 풍기는 퀴퀴한 곰팡내, 사람들의 숨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 이 모든 게 하나의 풍경으로 잡힙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오가는 공공장소에서는 으레 이런저런 말썽이 있게 마련이지요. 작든 크든 말이지요. 나는 사실 도서관과 같은 엄숙한 분위기에서는 잘 집중을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번잡한 생활소음이 상존하는 대형서점의 한 모퉁이에서 집중을 더 잘하는 편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종이지요. 사실 도서관은 그저 책을 읽거나 책을 빌리는 것 이상의 쏠쏠한 재미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며, 표정이며, 걸친 옷이며 악세사리며,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다 흥미롭습니다. 때로는 아이들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이는 어느 엄마의 소곤거림도 무척이나 감미롭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런 평화로운 풍경이 순식간에 돌변할 때도 없진 않습니다.

 

열람실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습니다. 맞은편 좌석에는 일흔은 족히 넘으셨을 듯한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있었고, 할아버지의 오른쪽 좌석에는 중년의 여인 한 분이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책을 읽기 위한 목적보다는 더위를 피할 목적이 더 큰 듯 보였습니다. 주머니에서 이따금 사탕을 꺼내 드셨으니까요. 사탕의 껍질을 벗기는 소리가 꽤나 크게 들렸던가 봅니다. 옆에서 책을 읽던 아주머니가 대뜸 할아버지에게 큰 소리로 항의했던 걸 보면 말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쏠렸던 건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조용하더 도서관이 일순 술렁거렸으니까요. 도서관의 직원이 와서 두 사람의 갈등을 중재하였고, 소란이 잠잠해지자 사람들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제 할 일을 하였습니다.

 

머쓱해진 할아버지는 그 길로 도서관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처진 어깨가 안쓰러워 보였던 건 나만의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의 행동이 정당했다는 건 아닙니다. 잘못하셨지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반평생이 넘도록 공중도덕이라고는 모른 채 살아오셨을지도 모릅니다. 7,80년대만 하더라도 버스나 기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다반사였고, 영화관도 늘 담배연기로 자욱했었으니까요. 나이차로 보면 딸이나 진배없는 사람에게서 망신을 당했으니 할아버지에게는 오늘이 정말 운수 없는 날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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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9 22: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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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1 1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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