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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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을 하려고 할 때는 오히려 신중을 기하는 게 좋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그런 일일수록 한 번으로 그칠 수 없는, 이를테면 반복을 요하는 일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직장인인 남편이 전업주부인 아내를 대신하여 저녁 설거지를 하게 되는 경우라거나, 신입사원이 다른 직원보다 일찍 출근하여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거나 정수기 물통을 갈아 끼우는 일 등과 같이 한 번으로 그친다면 누구나 크게 힘 들이지 않고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일들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도 두어 번 반복하게 되면 슬슬 꾀가 나거나 '왜 나만 해야 해?' 하는 반감이 스멀스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크게 표시도 나지 않는 이런 일들은 대개 늘 하던 사람이 그 일을 하지 않았을 때는 그 빈자리가 크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비난이 이어지는 것도 다반사죠. '어이, OOO 씨, 오늘 아침 환기 안시켰어? 그게 뭐 힘든 일이라고...'와 같은 말들. 그동안에 들인 노고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그저 오늘 안 햇다는 사실만 부각되는 순간입니다. 집안일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전업주부라면 이런 상황이 너무도 익숙할지 모르겠습니다.

 

"'베아티투도beatitudo라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행복'을 뜻하는 단어인데 '베오beo'라는 동사와 '아티투도attitudo'라는 명사의 합성어입니다. 여기에서 '베오'는 '복되게 하다, 행복하게 하다'라는의미이고 '아티투도'는 '태도나 자세,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즉 '베아티투도'라는 단어는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복을 가져올 수 있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p.128)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은 작고 사소한 일이 대부분일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은 대개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그런 일들은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에 의해서 실행에 옮겨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큰일일수록 운명에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결혼이나, 아이를 갖는 것이나, 죽음과 같은 그런 일들 말이지요.

 

"어쩌면 삶이란 자기 자신의 자아실현만을 위해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준비 속에서 좀 더 완성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서 자아실현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요? '도 우트 데스.' 이 시간이 짧은 말 속에 담긴 많은 의미들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p.122)

 

입사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신입사원이 회사의 중대사를 잘못 처리하였다고 해서 욕을 먹거나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는 아마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보다 더 높은 직급에 있는,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을 찾아 문책을 하겠지요. 그러나 작고 사소한 일은 얘기가 다릅니다. 그 일을 한다고 해서 직원들이 모두 할 때마다 고마워한다거나 기뻐하지는 않지만 하지 않았을 때는 그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큰일은 대개 실행에 앞서 어떤 직관이나 참고할 만한 자료 검토를 통하여 할지 말지가 결정되지만 작은 일은 전적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나 봉사정신, 또는 사랑에 의해 실행의 가부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출간된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저자도 강조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어렵다고 정평이 나 있는 라틴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을 그냥 해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마치 태도 나지 않는 작은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구도자와 같은 인내와 성실한 자세가 요구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매일 출근해 일하는 노동자처럼, 공부하는 노동자는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차곡차곡 몸이 그것을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책상에 앉고 일정한 시간을 공부해줘야 합니다. 머리로만 공부하면 몰아서 해도 반짝 하고 끝나지만 몸으로 공부하면 습관이 생깁니다. '하비투스'라는 말처럼 매일의 습관으로 쌓인 공부가 그 사람의 미래가 됩니다." (p.88)

 

우스갯소리입니다만 결혼 전의 남자들은 대개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벤트에 목을 매곤 합니다. 사귀고 있는 여성분이 원해서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벤트에 목을 매는 남자들의 심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하는 이벤트 속에는 일회성의 크고 화려한 행사를 통하여 상대방 여성의 눈을 속이고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쉽게 달성하려는 조급함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작고 사소한 일은 꾸준함과 인내가 필요하지만 이벤트는 그런 게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이벤트가 아닌 소소한 일상으로 꾸려진다는 사실을 결혼 전의 여성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이런 훈련은 나아가 인간관계에서 나의 태도, 나의 대화법 등 인생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타인의 방법이 아니라 나의 방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남다른 비결이나 왕도가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렇기에 묵묵히 해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p.242)

 

회사에서는 신입사원의 일상을 매의 눈으로 살피는 상사가 있게 마련입니다. 상사가 주목하는 것은 신입사원이 큰일을 성취했느냐 아니냐를 보는 게 아닙니다. 태가 나지 않는 작은 일이지만 규칙적으로 꾸준히 하고 있는가를 살피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곧 그 사람의 성품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위한 배려, 인내심, 성실함 등 개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이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그렇겠지요. 정작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벤트의 화려함이 아니라 일상의 지속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벤트의 화려함에 눈과 귀가 멀곤 합니다. 그게 인간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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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지 않았나요? 그래서인지 나는 오늘 지난주 내내 생각했던 결심을 끝내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주말의 한가한 시간을 골라 그동안 미뤄두었던 리뷰를 한꺼번에 몰아 써보자 생각했던 것이죠. 그야말로 폭풍 리뷰를 쓰려고 결심했던 것인데 처음에는 아주 미약했던 유혹의 목소리가 조금씩 조금씩 커지더니 나중에는 폭풍 리뷰를 쓰자는 목소리를 압도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만 날은 아니잖아.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고... 쇠털같이 많은 날, 꼭 오늘 하라는 법도 없잖아?' 하는 미약한 목소리가 어제만 하더라도 아주 멀리서 들리는 듯 미약하기만 하더니 일요일 오후가 되자 그 말은 내게 아주 논리정연하고 지당한 말처럼 들렸던 것입니다.

 

베란다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 탓이엇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일렁이도록 했었지요. 손등을 스치는 바람결이 마치 엄마의 손길처럼 부드러웠습니다. 금방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만 같았지요. 실제로 나는 점심을 먹고 까무룩 낮잠에 빠져들기도 했었습니다. 마음 한편에서는 '아, 리뷰를 써야 하는데...'하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카피라이터 김하나의 <힘 빼기의 기술>, 소설가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수업>이 내가 써야 할 리뷰 목록입니다. 아무때나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의 기억력이 문제입니다. 하루만 지나도 쓰고자 했던 내용의 절반쯤을 잊어먹게 되니까 말이죠. 리뷰를 쓰기 위해서는 책을 다시 읽어야만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게 영 귀찮다 싶으면 숫제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고요. 실천에 앞서 내가 지어낸 유혹의 말이지만 나는 왜 매번 그 유혹의 말에 못 이기는 척 지고 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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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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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살거리는 햇살이 마냥 좋았던 오늘, 나는 벌써 힘겨웠던 여름을 저만치 떠나보낸 듯 가슴 한켠이 설레었습니다. 시나브로 변해가는 날씨에 이렇듯 들뜨고 기꺼워하는 까닭은 그날이 그날 같은 고만고만한 일상에 적이나 지치고 무력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뒤돌아보면 바람 같은 인생입니다. 수십 번의 여름을 지나왔건만 나는 그 중 절반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나는 오매불망 가을을 기다리고 여름의 기억을 차례로 잊어갑니다. 그러나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여름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여름이 한두 해쯤은 있을 테지요. 살다 보면 말입니다.

 

"뿌리 뽑힌 채 이식된 것 같은 낯설고 삭막한 서울에서의 삶, 철저하게 '기브 앤드 테이크'로 일관하는 듯한 도시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 붙일 곳 없어 서성대던 나였다. 그런 내게 언니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다.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오랜만에 햇볕을 쪼인 화초처럼 쑥쑥 자랐다."    (p.53)

 

서명숙의 <영초언니>를 읽었던 건 열흘쯤 전이었습니다. 그길로 내처 리뷰를 썼더라면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쓸 수가 없었습니다. 작가가 40여 년만에 불러낸 천영초에 대한 기억이 80년대 후반의 잊혀지지 않는 어느 여름으로 나를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격변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사람들에겐 시간이 아로새긴 삶의 무늬가 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강력한 레이저 불빛으로도 결코 지울 수 없는 그 기억의 문신들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내게 고통도, 실망도 안겨주었지만 찬란한 청춘의 봄날을 함께했던 내 인생의 첫 멘토 영초언니, 풀각시처럼 영롱했던 그녀가 서서히 부서지고 망가져가는 걸 눈뜨고 지켜보기가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터. 그녀가 떠나는 날 공항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부디 새로운 땅에서 새롭게 출발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p.263)

 

고려대학교 학보사 기자였던 교육학과 76학번 서명숙과 신문방송학과 72학번 천영초가 만났던 건 어쩌면 예정된 운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977년 11월 3일 고대신문 창간기념일 뒤풀이 자리에서 만난 천영초는 고대신문사 역사상 가장 뛰어난 미모에 훌륭한 문장가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제주도 매일시장 내 '서명숙상회'집 딸 서명숙과 신문사의 전설 천영초는 그렇게 만나 친해졌고 급기야 그해 겨울방학 서명숙은 천영초의 자취방으로 거처를 옮기게 됩니다. 그들의 자취방은 자연스레 고대 여자 선후배들의 사랑방이 되었고 자주 모이던 열 명은 '고려대 내에 읽고 생각하고 떠드는 모임'인 '가라열'을 조직하기에 이릅니다.

 

"1977년 그해 겨울, 기록적인 한파가 한반도를 덮쳤다. 그러나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각자 섬처럼 외로웠던 여자들끼리 모여서 추운 날 서로 깃털을 부비는 작은 새들처럼 체온을 함께 나누었기에, 우리는 정신적으로 따뜻했다. 유신체제하의 대한민국은 '겨울공화국'처럼 점점 얼어붙어가고 있었지만, 우리는 가라열을 통해 어둠이 짙은 만큼 새벽도 머지않았다는 강력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뜨거운 청춘, 아름다운 젊은 날이었다."    (p.59)

 

1978년 학보사 기자 시절 마음에 두고 있던 엄주웅의 권유로 구로동에서 야학을 시작한 서명숙은 영초언니와 종로에서 처음으로 가투(가두투쟁)를 경험하고, 가라열의 선배 혜자언니가 데모를 주도하여 연행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성금을 모아 구속자들에게 영치금을 전달하던 중 마침내 엄주웅마저 구속되는 참담한 시절을 겪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영초언니의 주도로 유인물을 작성하여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다만 감옥에 있는 엄주웅과의 관계가 부쩍 가까워졌던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습니다.

 

1979년 2월 영초언니의 자취방을 나와 학교 앞으로 이사를 했던 서명숙은 그해 봄 자신의 모교인 제주도의 신성여고에서 교생실습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생실습을 시작하기도 전에 서명숙은 서울로 연행됩니다. 영초언니의 주도로 유인물을 제작했던 게 빌미가 되어 긴급조치 위반 혐의가 적용된 것이지요. 경찰의 협박과 회유, 고문이 있었고, 길고 힘들었던 수감생활이 이어졌습니다.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석방시켰습니다. 236일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6월항쟁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굵지굵직한 사건들이 펼쳐집니다. 민주화 운동의 동지였던 정문화와 결혼을 했던 영초언니, 극심한 생활고와 아들의 탄생, 이혼과 캐나다로의 이민 등 굴곡진 삶이 계속됩니다. 엄주웅과 어렵사리 결혼했던 서명숙의 삶도 마냥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렇게 그들의 삶은 방향이 엇갈린 채 진행되었고 2002년 이국땅 캐나다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한 영초언니는 시력을 잃고 뇌의 6,70 퍼센트가 손상된 채 영구귀국했습니다. 23년간 언론계에 몸담았던 서명숙도 2007년 귀향을 하였습니다.

 

책에서도 야학교사로 잠깐 등장하는 유시민 작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각자 세대가 짊어지는 십자가는 다르며, 그 십자가들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건 옳지 않다.'고 그는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말했습니다. '6.25전쟁 때 배고팠던 이야기와 지금의 청년실업 문제를 비교하는 건 맞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지요. 과연 서명숙과 영초언니 등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의 선택에 모든 누명을 덧씌운다는 것은 뭔가 억울하고 불공정한 느낌이 든다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요?  혹은 실체도 없는 '세대의 십자가'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알 수 없습니다.

 

이제 나는 80년대 후반의 나의 기억을 말해야 할 듯합니다. 꾹꾹 눌러두었던 그 시절의 기억이 이 책 <영초언니>로 인해 내 의식의 수면 위로 스프링처럼 튀어올랐다고 말한다면 억지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1989년 6월 30일, 평양축전 시국대회가 한창이었습니다. 시험 거부로 맞섰던 학생들은 비장한 결의에 차 제가 다니던 학교로 모여들었습니다. 모든 출입로는 전경들로 인해 봉쇄된 상태였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시험을 강행했던 교수님 한 분이 있었고 나는 무사히 시험을 치른 후 학교를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최루탄이 곳곳에서 발사되었고 교정은 순식간에 최루탄 연기로 가득찼습니다. 마치 연막탄을 뿌린 듯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동시다발의 강력한 공격이었습니다. 가방을 든 채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화장실에는 최루탄을 피해 몰려든 사람들이 나 말고도 여덟 명이나 더 있었습니다. 수위 아저씨와 남학생 한 명, 그 외에는 모두 여학생이었습니다. 그 순간 흰 헬멧에 청카바를 입은 백골단의 무리가 뛰어들었고, 무자비한 공격이 이어졌습니다. 그들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의해 한 여학생이 머리를 맞고 쓰러졌습니다. 선연한 피가 화장실 벽면으로 번졌고, 이를 본 다른 여학생이 놀라 몸이 굳은 채 거품을 물고 쓰러졌습니다. 전쟁과 같은 아수라 난장이었던 그날 학교 주변의 모든 대학생들을 잡아들였고, 심지어 하숙집에서 한가하게 바둑을 두던 학생들까지 모두 연행되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서울 시내 전체의 유치장이 부족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조사를 받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풀려나기는 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그해 여름 그 순간에서 정지된 채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어느 여학생이 흘린 선연한 핏자국으로 말이지요. <영초언니>는 아마도 내가 목격했던 어느 여학생의 피흘림처럼 시대에 영합하지 않았던 젊은 몸짓, 그 시대의 십자가를 두 어깨에 짊어진 숭고한 희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지워지지 않는 여름이 한두 해쯤은 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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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운동을 나서는데 후둑후둑 비가 내렸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장마철도 아닌데 연일 비가 내리는 바람에 비가 오는 풍경은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우산을 들고 산에 올랐다. 한 달새 밤이 부쩍 길어진 느낌이다. 집을 나서는 시각은 5시 30분.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새벽이라고 말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주변이 훤했는데 이제는 어둠의 끝자락을 밟고 있는 듯 어색하기만 하다.

 

등산로는 미처 잦아들지 않은 빗물로 흥건했다. 빗물이 괸 물웅덩이가 여기저기 보이고 겉으로 드러난 나무뿌리가 여간 미끄럽지가 않았다. 참매미가 큰 소리로 울다가 '맴 맴 맴 매~~애, 읍'하면서 서둘러 입을 닫았다. 내 발소리에 놀라 제 위치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겠지. 능선의 체육공원에서 간단히 몸을 풀고 본격적인 산행을 하려는데 빗방울이 제법 굵어졌다. 나보다 앞서 산행길에 나섰던 사람들이 다들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가던 길을 멈추고 중간에서 돌아섰다. 산행을 다 마치지 못한 날은 늘 뒷맛이 개운치 않다. 봄철에는 그렇게 오래도록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더니 한 번 시작된 비는 푸지게도 내린다. 인간의 편의에 맞춰 자연이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야속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산을 벗어날 때 비가 그쳤다.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을 때는 쨍한 햇살마저 비쳤다. 흐린 하늘에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듯 마는 듯했다. 인간 존재를 육체로만 따져보면 땅에 괸 빗물과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내리는 동안에는 아무튼 그 존재를 뽐내다가도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추면 형체도 없이 쉽게 사라지는 것처럼. 젊은 시절에는 알맞은 수분으로 얼굴에 윤기가 나다가도 나이가 들면 햇살에 스러지는 물웅덩이처럼 푸석하게 말라 거칠어지니 말이다. 시간이 하는 일을 인력으로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아무리 물을 뿌리고 틈 날 때마다 물을 마셔도 거스를 수 없는 게 자연의 이치 아니던가. 그렇게 메말라가는 육체는 볼품없고 추하다. 인도 북부의 라다크 지역 사람들은 늙어 보인다는 말이 칭찬이라는데 나는 그 정도로 관대할 수는 없다. 물은 곧 생명력, 생명력을 잃고 메말라가는 모습은 추레하기 그지없다. 바람이 불고 잊을 만하면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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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 남에겐 친절하고 나에겐 불친절한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우르술라 누버 지음, 손희주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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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위범(不作爲犯)'을 아시는지. 우리나라 형법에 등장하는 법률용어입니다. 형법 제18조에 보면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 행위로 인해 위험이 발생했는데도 그것을 방지하지 않았을 경우 그 결과에 대해 처벌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적극적인 행위를 한 건 아니지만 위험을 방지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단순히 방치만 했다고 하더라도 부작위범으로 처벌받는다는 뜻입니다.

 

갑자기 웬 어려운 법률용어를 꺼내들어 모르는 사람의 기를 죽이느냐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일 최고의 심리상담사로 잘 알려진 우르술라 누버의 저서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라도 '부작위범'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라면, 또는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연인 관계에 있는 남자라면 '부작위범'의 혐의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방치한 것은 아니지만 여자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었기 때문이라는 변명만으로 그 혐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런지는 의문이지만 말입니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남자라면 자신의 그러한 범죄 혐의에 대해 적어도 도덕적 반성은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남에겐 친절하고 나에겐 불친절한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여자보다는 오히려 남자들을 위한 필독서라고 하는 게 옳을 듯합니다. 저자는 남자와 여자의 사회화 과정으로부터 촉발된 남자와 여자의 특성과 여성이 우울증 발병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저자 자신이 상담했던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회로부터 자율성과 독립성을 요구받는 남성과는 달리 관계를 중요시하고 공감과 배려를 통하여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계속하여 유지하려고 하는 여성을 비교할 때 여성에게 우울증은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까도 싶습니다. 게다가 우울증을 악화시킬 수 있는 환경, 예컨대 경제적 상황의 악화나 남편의 외면 등은 여성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러나 관계를 중시하는 여성은 '타인을 잃어버리지 않고자 하는 소망 때문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마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앞서 소개한 브리기테처럼 여자들은 대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만두고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들어준다. 그후에 찾아오는 상심과 우울이 상대방의 태도나 흐름 때문이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차단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실망했으며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울한 여자에게 진실은 결코 밝혀져서는 안 되는 두려운 무엇이다." (p.69~p.70)

 

그동안 나는 우울증에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읽어왔으나 그것들은 대개 단순한 지식의 차원에서만 읽었을 뿐, 지금처럼 가슴으로 공감하며 읽었던 적은 아마 없었지 싶습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아내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아내에게 나란 인간이 얼마나 모질고 냉혹한 인간으로 비쳤을까 생각할 때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들고 죄책감과 후회의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남녀의 삶을 각각 관찰해보면 특정 상황에서 여성을 우울증으로 내모는 관계장애가 남자의 '냉정함'과 '몰인정', 그리고 여성의 '욕구'와 '의존' 때문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파악할 수 있다. 이렇듯 남자가 여자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듯 보여도 사실 이 둘은 한 배에 올라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다." (p.201~p.202)

 

관계와 배려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여성이 어느 날 절망에 빠져 모든 것을 내려 놓는 상황이 되면 어느 집이건 그 상황을 수습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듯합니다. 우울증을 앓는 당사자가 제일 힘들겠지만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도 당혹스러움에 우왕좌왕하는 것은 물론 이로 인하여 가정 전체가 무너지는 것도 시간 문제일 테지요. 그렇다면 우울증은 꼭 나쁘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요? 저자도 이 점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회복을 전제로 하는 말일 테지만 말입니다.

 

"우울은 여성을 헛된 노력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신호이다. 우울한 여성은 자신의 정신상태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병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우울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위한 준비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때까지 몰랐던 우울의 원인을 찾아내고 특정한 행동방식과 목표가 과연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p.261)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여성들은 대개 '다른 이들의 욕구와 바람을 충족시키기 위해 불가능한 과제들을 너무 많이 떠맡고, 본인의 진정한 감정은 숨긴 채 불행한 관계를 이어나가는' 듯합니다. 그렇게 과제들을 떠맡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반드시 한계 상황에 봉착하게 되고,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과제들을 보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먼저 자신의 무능을 탓한다는 것입니다. 가족이나 다른 누군가를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헌신했음에도 말이지요.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어느 한 페이지 허투루 넘겼던 적이 없었던 듯합니다. 시중에는 남성과 여성을 비교하는 책도 많고, 우울증의 발병 원인과 처방에 대해 쓴 책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책들이 지식의 측면에서는 유용할지 몰라도 남성과 여성이 상대방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하도록 만들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남성과 여성이 사춘기의 서로 다른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가 공감하는 부분이 점차 줄어드는 상태로 성장하는 바람에 남자인 나로서는 아내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입니다. 그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테지요. 그런 까닭에 나는 서두에서 꺼낸 '부작위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내의 원망에 대해 지금으로서는 여자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궁색한 변명을 할 수밖에 없겠지만 앞으로의 삶에서는 조금쯤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어도 '부작위범'이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 참고로 저자가 제안하는 여성이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5가지 방법을 적어둔다.

1.내 우울의 정체를 파악하라.

2.일단 몸을 움직이면서 적극적인 인간으로 변신할 준비를 하라.

3.주위에 S.O.S 타전을 보내라.

4.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날 위해줄 것인가.(자기 공감: 1.자기 자신에 친절하기. 2.다른 사람과 연대하기. 3.지금 내 상황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인식하기.)

5.(항상 착하고 완벽하며 친절하게 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만인에게 친절한 나는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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