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을 하려고 할 때는 오히려 신중을 기하는 게 좋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그런 일일수록 한 번으로 그칠 수 없는, 이를테면 반복을 요하는 일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직장인인 남편이 전업주부인 아내를 대신하여 저녁 설거지를 하게 되는 경우라거나, 신입사원이 다른 직원보다 일찍 출근하여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거나 정수기 물통을 갈아 끼우는 일 등과 같이 한 번으로 그친다면 누구나 크게 힘 들이지 않고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일들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도 두어 번 반복하게 되면 슬슬 꾀가 나거나 '왜 나만 해야 해?' 하는 반감이 스멀스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크게 표시도 나지 않는 이런 일들은 대개 늘 하던 사람이 그 일을 하지 않았을 때는 그 빈자리가 크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비난이 이어지는 것도 다반사죠. '어이, OOO 씨, 오늘 아침 환기 안시켰어? 그게 뭐 힘든 일이라고...'와 같은 말들. 그동안에 들인 노고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그저 오늘 안 햇다는 사실만 부각되는 순간입니다. 집안일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전업주부라면 이런 상황이 너무도 익숙할지 모르겠습니다.

 

"'베아티투도beatitudo라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행복'을 뜻하는 단어인데 '베오beo'라는 동사와 '아티투도attitudo'라는 명사의 합성어입니다. 여기에서 '베오'는 '복되게 하다, 행복하게 하다'라는의미이고 '아티투도'는 '태도나 자세,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즉 '베아티투도'라는 단어는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복을 가져올 수 있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p.128)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은 작고 사소한 일이 대부분일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은 대개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그런 일들은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에 의해서 실행에 옮겨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큰일일수록 운명에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결혼이나, 아이를 갖는 것이나, 죽음과 같은 그런 일들 말이지요.

 

"어쩌면 삶이란 자기 자신의 자아실현만을 위해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준비 속에서 좀 더 완성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서 자아실현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요? '도 우트 데스.' 이 시간이 짧은 말 속에 담긴 많은 의미들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p.122)

 

입사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신입사원이 회사의 중대사를 잘못 처리하였다고 해서 욕을 먹거나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는 아마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보다 더 높은 직급에 있는,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을 찾아 문책을 하겠지요. 그러나 작고 사소한 일은 얘기가 다릅니다. 그 일을 한다고 해서 직원들이 모두 할 때마다 고마워한다거나 기뻐하지는 않지만 하지 않았을 때는 그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큰일은 대개 실행에 앞서 어떤 직관이나 참고할 만한 자료 검토를 통하여 할지 말지가 결정되지만 작은 일은 전적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나 봉사정신, 또는 사랑에 의해 실행의 가부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출간된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저자도 강조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어렵다고 정평이 나 있는 라틴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을 그냥 해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마치 태도 나지 않는 작은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구도자와 같은 인내와 성실한 자세가 요구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매일 출근해 일하는 노동자처럼, 공부하는 노동자는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차곡차곡 몸이 그것을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매일 같은 시간에 책상에 앉고 일정한 시간을 공부해줘야 합니다. 머리로만 공부하면 몰아서 해도 반짝 하고 끝나지만 몸으로 공부하면 습관이 생깁니다. '하비투스'라는 말처럼 매일의 습관으로 쌓인 공부가 그 사람의 미래가 됩니다." (p.88)

 

우스갯소리입니다만 결혼 전의 남자들은 대개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벤트에 목을 매곤 합니다. 사귀고 있는 여성분이 원해서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벤트에 목을 매는 남자들의 심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하는 이벤트 속에는 일회성의 크고 화려한 행사를 통하여 상대방 여성의 눈을 속이고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쉽게 달성하려는 조급함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작고 사소한 일은 꾸준함과 인내가 필요하지만 이벤트는 그런 게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이벤트가 아닌 소소한 일상으로 꾸려진다는 사실을 결혼 전의 여성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이런 훈련은 나아가 인간관계에서 나의 태도, 나의 대화법 등 인생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타인의 방법이 아니라 나의 방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남다른 비결이나 왕도가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그렇기에 묵묵히 해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p.242)

 

회사에서는 신입사원의 일상을 매의 눈으로 살피는 상사가 있게 마련입니다. 상사가 주목하는 것은 신입사원이 큰일을 성취했느냐 아니냐를 보는 게 아닙니다. 태가 나지 않는 작은 일이지만 규칙적으로 꾸준히 하고 있는가를 살피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곧 그 사람의 성품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위한 배려, 인내심, 성실함 등 개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이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그렇겠지요. 정작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벤트의 화려함이 아니라 일상의 지속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벤트의 화려함에 눈과 귀가 멀곤 합니다. 그게 인간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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