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운동을 나서는데 후둑후둑 비가 내렸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장마철도 아닌데 연일 비가 내리는 바람에 비가 오는 풍경은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 된 지 오래였다. 우산을 들고 산에 올랐다. 한 달새 밤이 부쩍 길어진 느낌이다. 집을 나서는 시각은 5시 30분.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새벽이라고 말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주변이 훤했는데 이제는 어둠의 끝자락을 밟고 있는 듯 어색하기만 하다.

 

등산로는 미처 잦아들지 않은 빗물로 흥건했다. 빗물이 괸 물웅덩이가 여기저기 보이고 겉으로 드러난 나무뿌리가 여간 미끄럽지가 않았다. 참매미가 큰 소리로 울다가 '맴 맴 맴 매~~애, 읍'하면서 서둘러 입을 닫았다. 내 발소리에 놀라 제 위치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겠지. 능선의 체육공원에서 간단히 몸을 풀고 본격적인 산행을 하려는데 빗방울이 제법 굵어졌다. 나보다 앞서 산행길에 나섰던 사람들이 다들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가던 길을 멈추고 중간에서 돌아섰다. 산행을 다 마치지 못한 날은 늘 뒷맛이 개운치 않다. 봄철에는 그렇게 오래도록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더니 한 번 시작된 비는 푸지게도 내린다. 인간의 편의에 맞춰 자연이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야속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산을 벗어날 때 비가 그쳤다.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을 때는 쨍한 햇살마저 비쳤다. 흐린 하늘에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듯 마는 듯했다. 인간 존재를 육체로만 따져보면 땅에 괸 빗물과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내리는 동안에는 아무튼 그 존재를 뽐내다가도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추면 형체도 없이 쉽게 사라지는 것처럼. 젊은 시절에는 알맞은 수분으로 얼굴에 윤기가 나다가도 나이가 들면 햇살에 스러지는 물웅덩이처럼 푸석하게 말라 거칠어지니 말이다. 시간이 하는 일을 인력으로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아무리 물을 뿌리고 틈 날 때마다 물을 마셔도 거스를 수 없는 게 자연의 이치 아니던가. 그렇게 메말라가는 육체는 볼품없고 추하다. 인도 북부의 라다크 지역 사람들은 늙어 보인다는 말이 칭찬이라는데 나는 그 정도로 관대할 수는 없다. 물은 곧 생명력, 생명력을 잃고 메말라가는 모습은 추레하기 그지없다. 바람이 불고 잊을 만하면 비가 내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