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 권 독서법 - 하루 한 권 3년, 내 삶을 바꾸는 독서의 기적
전안나 지음 / 다산4.0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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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제나 저제나 하며 간절히 기다려왔을 긴 연휴가 시작되었다. 중간에 추석이라는 명절이 끼어 있기는 하지만 회사에서의 빡빡한 일정과는 사뭇 다른, 어느 정도의 융통성이 보장되는 시간이기에 나름 기대도 크고, 하고 싶은 일도 마냥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연휴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연휴 계획을 짰다. 그렇게 작성된 연휴 계획표를 볼라치면 이건 뭐 직장에서의 스케줄 뺨칠 정도로 일정이 촘촘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렇게 빡빡한 일정을 과연 소화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메모에 기록되는 계획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계획은 그저 계획으로 그칠 뿐, 예정된 계획은 연휴 첫날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깡패라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나의 못다한 계획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연휴가 훌쩍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연휴 후유증만 가득 안은 채, 어쩔 수 없이 다음 연휴를 기약하는 가련한 처지의 자신을 만나게 된다.

 

황금연휴가 시작되는 오늘, 사람들의 계획 속에 독서 계획을 세운 이는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보았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닥 많지는 않을 듯하다. 독서는 오직 혼자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을 뒤로 한 채 독서를 위한 자신만의 시간을 낸다는 게 남들 보기에 자칫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쳐질 수 있는 까닭에 자신의 일정표에 독서를 선뜻 넣기가 왠지 꺼려지는 것이다. 이렇듯 독서를 미루는 직장인의 핑계는 다양하다. 그러나 핑계 없는 무덤이 없는 것처럼 직장인에게 독서는 마냥 미루고 적당히 핑계를 댈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전안나의 <1천권 독서법>을 읽고 문득 들었던 생각이다.

 

"나는 하루 한 권 읽기를 목표로 삼았지만, 책 한 권을 다 읽지 못한 날도 있고, 아예 펼쳐보지 않은 날도 있다. 심지어 책 권태기가 와서 20일 동안 책 근처에 가지 않은 날도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는 않았다. 잠시 쉬었다 간다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했다. 만약 그때 에라이~ 하고 무너졌다면 지금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p.163)

 

저자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14년째 한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워킹맘이라고 했다. 직장 생활 10년 만에 모든 에너지가 바닥나고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졌던 저자는 가중되는 열등감과 나쁜 엄마라는 죄책감으로 인해 계속되는 불면의 밤을 보내게 되었다고 했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심각한 체중저하...그러던 어느 날 직무 교육의 일환으로 우연히 듣게 된 독서 강연.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 시작된 '1천 권 읽기'의 목표. 저자는 3년 10개월의 대장정을 통해 그 목표를 달성했다고 한다.

 

"매일 책을 읽는다는 건 뇌에 주름을 하나씩 새기는 일이다. 오랜 세월 인류가 축적해온 지식을 새기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감정을 새기고, 선인들이 깨달았던 진리를 새기는 일이다. 그렇게 주름이 쌓이고 쌓여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을 만든다." (p.149)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결연했던 저자의 의지를 엿보게 한다. 에너지가 소진된 10년차 직장인, 대학원에 7번이나 떨어진 여자의 절망적인 상황을 담은 1부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읽기 시작했다', 하루 한 권의 책 읽기를 실천했던 2부 '읽으면 삶이 바뀐다', 지속 가능한 독서 습관을 알려주는 3부 '평생 지속 가능한 독서 습관 만들기', 책 선택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4부 '좋은 책, 필요한 책, 끌리는 책', 효율적인 독서 생활의 팁을 전하는 5부 '독서 능률 두 배로 끌어올리기', 독서의장점을 말하는 6부 '거인의 어깨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다'로 구성된 이 책은 그야말로 '독서 대장정'의 결과물인 듯 보인다.

 

연휴 첫날의 풍경은 그저 평온하다.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하면 인생이 바뀐다."와 같은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삶을 가정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고 인생이 바뀐다는 말 또한 허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누구나 1천 권의 책을 읽으면 거짓말처럼 인생이 바뀐다!'는 말은 완전한 허구이다. 자신의 인생을 두 번 살아볼 수 없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전과 달라진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게 독서 덕분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 그것도 아니면 단순한 우연이었을 뿐인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을 전혀 읽지 않고 그 시간에 세계여행을 했더라면 더 좋은 인생이 펼쳐졌을지 누가 알겠는가 말이다. 다만 책을 많이 읽었더니 ~~한 점은 좋더라, 하는 말은 가능하겠다.

 

"이 책은 독서를 통해 우울증을 치료하고 삶의 희망을 발견한 어느 워킹맘의 솔직한 고백이다. 직장인으로서, 엄마로서, 또 여자로서 느꼈던 한국 사회의 절망을 한 치의 숨김도 없이 드러내고, 그 대안으로 하루 한 권 책 읽기를 제안하는 책이다. 하루 한 권 책 독서가 부담스럽다면 자신의 수준에 맞게 목표를 조절해도 좋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펼친다는 것이다." (p.253)

 

초등학교 2학년 큰아이와 여섯 살 둘째를 둔 엄마이자, 어느 집의 며느리이기도 한 저자가 올 추석 연휴를 어찌 보내고 있을지 새삼 궁금해진다. 나는 저자와는 생면부지의 평범한 독자에 불과하지만 '2천 권 읽기'에 도전중인 그녀의 추석 풍경이 몹시도 궁금한 것이다. 식구들의 밥을 챙기며 짬이 날 때마다 틈틈이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려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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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만 하루를 생각할 뿐이다. '겨우'라고 말할 수도 있으려나. 사는 게 칙칙하다거나 어둡다거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잘도 색을 입히지만 나는 그마저도 귀찮거나 따분하거나 떨떠름할 뿐이다. 그저 하루가 가고 습관처럼 계절이 오가는 어느 순간에 하늘 한 번 올려다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나른한 오후다. 쌀쌀했던 아침 기온이 무색해지는.

 

오래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고 있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나 '남방우편기', '어린왕자'를 읽었고,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읽는 중이다. 적어도 한두 번, 때로는 족히 서너 번은 읽었을 책들인데 지금 내 기억에 남은 것은 많지 않다. 새삼스럽다. 사람의 기억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걸 재차 확인하면서도 나는 또 번번이 속는다. 그야말로 무의미의 축제다. 별 의미도 없는 짓을 또다시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하다 또다시 잊기도 하고...

 

다시 읽는 책의 줄거리는 도외시한 채 낱낱의 문장에만 집중하다 보면 작가 개개인의 노력에 감탄하게 된다. 사는 게 이만큼 힘들었구나, 하는 대견한 생각도 하게 되고. 누군가의 노력을 곁에서 지켜보거나 세세히 음미하지 않은 채 그 결과만을 놓고 보면 세상에는 그닥 감탄할 일이 많지 않다. 한 톨의 쌀을 생산하기 위해 여름내 애썼을 어느 농부의 노력이나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수 년 혹은 평생을 보냈을 어느 작가의 불면. 다시 읽는 책의 면면에서 내가 새로이 얻은 게 있다면 그들의 땀냄새이다.

 

긴 연휴를 맞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쩌면 저리 어두울까. 아직 오지도 않은 일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고민하고 나름 우울을 가장하는 걸 보면 삶은 결국 맹목적인 행위의 총합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도 아무튼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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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울 수 있을 때 울고 싶을 뿐이다
강정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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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두 번째 시집의 발문을 썼던 함성호 시인은 강정 시인에 대해 천성적으로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먼저 화제를 꺼내는 경우도 없고 누군가 먼저 화제를 꺼낼라치면 듣고, 여러 번 생각한 후에 누군가의 의견에 대해 말하는데 부연할 때는 '그러니까'를 반복하고, 전혀 다르면 '아니'를 반복하며, 내 말이 그 말이다 할 때는 '그니까, 그니까' 하며 뒤를 짧게 끊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썩 유쾌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함성호 시인은 말했다. 왜냐하면 강정 시인이 서두를 반복하거나 거기에 맞춰 전신을 앞뒤, 양옆으로 미세하게 떠는 습관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게 함성호 시인의 눈에는 평범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강정 시인은 그만큼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서 낯설고 외진 사람이다. 그의 시처럼.

 

강정 시인의 에세이 <그-저 울 수 있을 때 울고 싶을 뿐이다>를 읽었다. 시인의 에세이는 대개 파격적이거나 생경하다. 시를 쓰는 것도 아닌데 일반 산문에서 드러나는 시인의 오래된 습관, 이를테면 '낯설게 보이기'라든가 하는 것들이 산문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게다가 시인의 개성이 두드러지면 질수록 그의 언어 또한 파격적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비유와 낭만이 넘치는 미사여구의 친절한 산문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성적이고 새침하면서도 튀기 좋아하고 입바른 소리(시인 이영주는 내 말버릇에 대해 돌직구 투척 정도가 아니라 숫제 돌로 찍어 누른다고 표현한 적 있다. 뜨끔했다) 잘하고 한 번 아니면 죽어도 아닌 외곬 기질 탓에 여태까지의 삶이 그다지 안온한 편은 아니다. 구설도 많고 사고도 적잖았으며 관계에서 주고받은 상처도 얼추 초소 이탈한 탈영해병 수준이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돌이 날아오기도 하고 오해로 점철된 소문 속의 악한으로 변질돼 나 스스로도 그게 누구지? 이럴 때가 있다." (p.31)

 

이르다면 이른 나이인 스물두 살에 데뷔했던 강정 시인은 이 책에서 자신의 유년시절부터 데뷔 시절, 시인으로 살아온 시간에 대한 성찰들, 2014년 세월호 사건의 기억과 최근 소설가 박상륭 선생을 떠나보낸 심정을 담은 일화 등을 담았다. 유년시절 하도 울어 별명이 '짬보'였다는 시인은 시를 쓰기로 결심했던 열일곱의 어느 해와 등단 소식을 전해들은 스물두 살의 젊은 날을 이야기한다. 일견 시인의 자서전처럼 읽히는 이 책은 시인 자신의 사색이나 일화, 여행 당시의 고독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그러나 이야기를 이루는 기본 정서는 내재된 울음이다.

 

"다시, 울음소리를 듣는다. 아기이든 고양이든 살려고 내는 소리. 뭔가 두렵고 안타까워 자신을 봐달라는 소리. 파동은 가늘고 지속시간 또한 짧지만 그 어떤 음악보다 몸에 더 바짝 붙어 비슷한 하모니라도 넣어달라는 듯한 소리.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건 소리가 지워지고 난 다음의 투명한 침묵이다. 소리란 결국 이 세계가 침묵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일종의 반동작용일 따름이다. 울음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p.139)

 

나는 이따금 시인이란 결국 어느 사막에 불시착한 어린왕자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그들은 처음 보는 낯선 풍경에 놀란 토끼눈을 하고 하나하나의 사물에 기꺼이 감탄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주민과는 확연히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늘 새로움을 발견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머무는 땅에서는 일치와 통일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하나의 사물을 보더라도 열이면 열, 각자가 다른 시선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강정 시인은 이 책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록음악과 영화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 또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천편일률적인 그런 것들이 아니다. 시인의 독특한 시선과 느낌이 살아나는 이야기들이다. 생각해 보면 일치와 통일을 강요했던 지난 9년간의 보수정권하에서 문화 예술인들은 아마 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미 경험했듯이 일치와 통일을 강요하면 할수록 문화는 더욱 더 가난해진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 모두가 공무원을 꿈꾸는 사회, 그런 나라를 두고 건강한 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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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보니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는 속담도 있다지만 기온은 크게 떨어지지 않은 듯했다. 나는 우산에 듣는 빗소리를 박자로 세며 산을 올랐다. 이따금 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을 따라 등산로의 낙엽이 제 몸을 뒤채며 저 멀리 달아났다. 가을은 기억의 출구를 무채색의 우울로 채색하는 계절이다. 낮게 드리운 하늘과 갈잎의 흩어짐이 허무와 한숨으로 치환되는...

 

점심을 먹고 가볍게 산책을 했다. 공원의 은행나무 아래서 떨어진 은행을 주워 담는 노인. 은행이 담긴 바구니에선 고약한 냄새가 났다. 노인은 공원 한켠의 수돗가에서 은행을 씻었다. 장갑을 낀 노인의 팔뚝은 가냘펐다. 허리가 굽은 노인이 폐지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지나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사는 게 뭔지...' 생각했었다. 노인은 은행의 과육이 모두 벗겨질 때까지 여러번 치대고 헹구었다.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내가 그리워했던 것들, 그러니까 분명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던 것들은 사실 모두가 사물의 뒤에 숨겨져 있었던 것일세. 그렇지만 조금만 노력을 하면 그게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고 알게 되어, 마침내 그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런데 나는 밝은 세상으로 끝내 끌어내지 못하는 이 그리운 존재 때문에 마음은 우울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떠나게 되네그려."

 

생텍쥐페리의 소설 <남방우편기>에 나오는 문장이다. 생텍쥐페리의 저작은 대개 가을과 어울리는 것들이 많다. 사랑과, 관계와, 삶과, 시간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그의 책을 읽는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추억에 빠져들곤 한다. 추억이 아름다운 건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절망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의 기억이란 과거를 향해 우리가 쏘아보낸 시간의 화살이 절망의 벽에 튕겨져 되돌아 온 시간의 파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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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천재가 된 홍 팀장 - 품격을 키우는 리더의 사람 공부
조윤제 지음 / 다산라이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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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는 자세도, 그 느낌도 사람마다 다 다르지 않을까요?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은 일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소중할 수도 있고, 또 어느 누군가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일 수도 있겠지요. 하루에 주어지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각자가 체감하는 시간의 경과는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일상이 소중한 사람에게는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흘러갈 테고 일상이 지겨운 사람에게는 시간의 흐름이 그만큼 더디고 지루한 것일 테지요.

 

새벽 5시 30분에 집에서 나와 근처의 산을 오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나는 그날 그날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곤 합니다. 계절의 변화는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갑니다. 나는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산길을 걸으며 영속하는 자연의 순환 속에 있는 인간 존재에 대해 이따금 생각하곤 합니다. 기껏해야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의 삶은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한 게 아닌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에 이를 때면 나는 무척이나 겸손해집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늘 지금이 전부이고, 우리가 만나는 귀인은 늘 눈앞에 있는 사람이지.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미래를 변화시키는 기본이라고 생각해." (p.224)

 

조윤제의 <논어 천재가 된 홍 팀장>을 꽤나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20대의 젊은 시절이라면 결코 읽지 않았을 듯한 책입니다. 젊은 시절의 나는 현란한 수사와 정곡을 찌르는 말에 늘 현혹되곤 했습니다.『논어』와 같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밋밋한 문장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논어』는 그야말로 인간의 삶 속에서 건져낸 지혜의 정수이자 삶의 정화라는 걸 미처 몰랐기 때문입니다. 장미의 화려함에만 눈길이 갈 뿐 국화의 소박함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나 진정한 아름다움과 변하지 않는 진리는 평범함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는 요즘, 논어의 문장 하나하나는 음미할수록 향기가 더해집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논어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길'을 가르쳐주는 책이야." (p.48)

 

'품격을 키우는 리더의 사람 공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조직의 초보 리더가 된 사람들을 위해서 쓰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초보 리더에게 필요한 것으로 '사람과 상황에 대한 통찰력과 그것을 얻기 위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꼽고 있습니다.『논어』는 이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최적의 책이라는 것이지요.

 

"협조하되 창의적인 개성을 존중하고(화이부동, 和而不同), 공부하는 조직을 만들고(유교무류, 有敎無類), 내면의 실력뿐 아니라 멋진 표현력도 갖추고(문질빈빈, 文質彬彬),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중용의 정신으로(과유불급, 過猶不及), 스스로를 성찰하고 상대를 배려하며(극기복례, 克己復禮), 말보다 실천을 앞세워 신뢰를 얻고(눌언민행, 訥言敏行), 곁가지가 아닌 일의 핵심을 아는 능력(본립도생, 本立道生), 바로 조직이 원하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다." (p.9)

 

1부 '변화', 2부 '사람', 3부 '말', 4부 '마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유통기획팀의 홍 팀장이 좌천이나 다름없는 악성채권관리팀으로 발령이 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홍 팀장의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간 상태였습니다.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한 홍 팀장을 구한 사람은 공 부장이었습니다. 공 부장은 홍 팀장에게『논어』를 권합니다. 자신을 악성채권관리팀으로 보낸 이 부장에 대한 원망과 현실에 대한 좌절감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 홍 팀장도『논어』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공 부장과 나누면서 서서히 변해갑니다.

 

"큰 위기의 순간에 읽는 책은 운명적 만남과 같다고 생각해. 이미 읽었던 책이라도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거든. 책의 글자가 살아서 튀어나온다고나 할까, 실제로 나는 그런 일을 몇 번이나 경험했어. 심지어 꿈에서 공자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니까 말이야." (p.113)

 

이상한 일이지요. 나이가 들수록 평범한 말에 숨은 깊은 의미를 깨달을 때가 새로운 지식을 얻을 때보다 더 기분이 좋아지니 말입니다. 그것은 대개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잇는 유명인이 했던 말은 아닙니다. 예컨대 속담이나 격언, 어렸을 적 고향 어르신으로부터 들었던 투박한 말 등 생활 속에서 늘 들어왔던 평범하기 그지없는 말들입니다. 나는 『논어』를 원전으로 읽었던 적은 없습니다. 몇 번 시도를 해본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포기하고 말았지요.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메우는 것이 바로 변화이고, 메울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공부거든. 『논어』에서 가르쳐주는 것 또한 그거야. 평범한 사람도 노력하면 이상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철학이 바로『논어』야." (P.135)

 

KBS와 MBC의 파업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 국정원과 전 정권의 언론장악 문건이 속속 발견되고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여러 문화 예술인, 언론인 등의 증언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인간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극한을 넘어선 행위들을 서슴지 않고 저질러왔던 것입니다. 그것이 마치 정의인 양 행동하기도 했지요. 그런 자들의 편에 서서 자신의 이익을 취한 자들도 많았습니다. 몇 달째 월급도 없이 파업을 강행하던 동료들을 배신하고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기꺼이 악의 편에 섰던 배현진 아나운서나 김성주 아나운서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논어』 '헌문' 편에 나오는 말이지요. '완성된 인간은 어떤 사람'인지 묻는 자로에게 공자가 대답합니다. "見利思義 見危授命" '이익이 될 일을 보면 의로운지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운 것을 보면 목숨을 바치라는 뜻이지요. 나도 또한 미숙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사사로운 이익에 눈과 귀를 막는 비열한 인간은 아닌 듯합니다. 금수만도 못한 인간에게 공자의 말은 '쇠귀에 경 읽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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