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울 수 있을 때 울고 싶을 뿐이다
강정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정의 두 번째 시집의 발문을 썼던 함성호 시인은 강정 시인에 대해 천성적으로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먼저 화제를 꺼내는 경우도 없고 누군가 먼저 화제를 꺼낼라치면 듣고, 여러 번 생각한 후에 누군가의 의견에 대해 말하는데 부연할 때는 '그러니까'를 반복하고, 전혀 다르면 '아니'를 반복하며, 내 말이 그 말이다 할 때는 '그니까, 그니까' 하며 뒤를 짧게 끊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썩 유쾌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함성호 시인은 말했다. 왜냐하면 강정 시인이 서두를 반복하거나 거기에 맞춰 전신을 앞뒤, 양옆으로 미세하게 떠는 습관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게 함성호 시인의 눈에는 평범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강정 시인은 그만큼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서 낯설고 외진 사람이다. 그의 시처럼.

 

강정 시인의 에세이 <그-저 울 수 있을 때 울고 싶을 뿐이다>를 읽었다. 시인의 에세이는 대개 파격적이거나 생경하다. 시를 쓰는 것도 아닌데 일반 산문에서 드러나는 시인의 오래된 습관, 이를테면 '낯설게 보이기'라든가 하는 것들이 산문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게다가 시인의 개성이 두드러지면 질수록 그의 언어 또한 파격적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비유와 낭만이 넘치는 미사여구의 친절한 산문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성적이고 새침하면서도 튀기 좋아하고 입바른 소리(시인 이영주는 내 말버릇에 대해 돌직구 투척 정도가 아니라 숫제 돌로 찍어 누른다고 표현한 적 있다. 뜨끔했다) 잘하고 한 번 아니면 죽어도 아닌 외곬 기질 탓에 여태까지의 삶이 그다지 안온한 편은 아니다. 구설도 많고 사고도 적잖았으며 관계에서 주고받은 상처도 얼추 초소 이탈한 탈영해병 수준이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돌이 날아오기도 하고 오해로 점철된 소문 속의 악한으로 변질돼 나 스스로도 그게 누구지? 이럴 때가 있다." (p.31)

 

이르다면 이른 나이인 스물두 살에 데뷔했던 강정 시인은 이 책에서 자신의 유년시절부터 데뷔 시절, 시인으로 살아온 시간에 대한 성찰들, 2014년 세월호 사건의 기억과 최근 소설가 박상륭 선생을 떠나보낸 심정을 담은 일화 등을 담았다. 유년시절 하도 울어 별명이 '짬보'였다는 시인은 시를 쓰기로 결심했던 열일곱의 어느 해와 등단 소식을 전해들은 스물두 살의 젊은 날을 이야기한다. 일견 시인의 자서전처럼 읽히는 이 책은 시인 자신의 사색이나 일화, 여행 당시의 고독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그러나 이야기를 이루는 기본 정서는 내재된 울음이다.

 

"다시, 울음소리를 듣는다. 아기이든 고양이든 살려고 내는 소리. 뭔가 두렵고 안타까워 자신을 봐달라는 소리. 파동은 가늘고 지속시간 또한 짧지만 그 어떤 음악보다 몸에 더 바짝 붙어 비슷한 하모니라도 넣어달라는 듯한 소리.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건 소리가 지워지고 난 다음의 투명한 침묵이다. 소리란 결국 이 세계가 침묵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일종의 반동작용일 따름이다. 울음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p.139)

 

나는 이따금 시인이란 결국 어느 사막에 불시착한 어린왕자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그들은 처음 보는 낯선 풍경에 놀란 토끼눈을 하고 하나하나의 사물에 기꺼이 감탄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주민과는 확연히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늘 새로움을 발견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머무는 땅에서는 일치와 통일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하나의 사물을 보더라도 열이면 열, 각자가 다른 시선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강정 시인은 이 책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록음악과 영화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 또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천편일률적인 그런 것들이 아니다. 시인의 독특한 시선과 느낌이 살아나는 이야기들이다. 생각해 보면 일치와 통일을 강요했던 지난 9년간의 보수정권하에서 문화 예술인들은 아마 설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미 경험했듯이 일치와 통일을 강요하면 할수록 문화는 더욱 더 가난해진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 모두가 공무원을 꿈꾸는 사회, 그런 나라를 두고 건강한 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