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영화 한 편 씹어먹어 봤니? - 학력도 스펙도 나이도 필요없는 신왕국의 코어소리영어
신왕국 지음 / 다산4.0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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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스티븐스(Michael Stevens)를 아시는지. 서굿(Thurgood)을 제작한 영화감독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Vsauce라는 인기 YouTube 채널을 만든 사람이라고 하면 혹시 아실지도 모르겠군요. 2010년 여름에 만들어진 Vsauce 채널은 원래 비디오 게임 관련 채널로 출발하였으나 세상의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의 영상을 제작하여 인터넷에 올리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바람에 지금은 Vsauce, Vsauce2, Vsauce3의 3개 채널을 운영하는 유명 YouTube 채널이 되었죠. 세상(기술, 예술, 과학 등등)에 대한 질문들을 답해주는 Vsauce, 세상의 과학적 발견을 다루는 Vsauce2, 픽션의 세상을 다루는 Vsauce3는 각각 마이클 스티븐스(Michael Stevens), 케빈 리버(Kevin Lieber), 제이크 로퍼(Jake Roper)가 담당하고 있지요. 3개 채널의 구독자가 1500만 명을 상회한다고 하니 정말 놀랍죠? 재작년에는 세계 72억 명을 한 곳에 쌓아올린 CG를 제작하여 온라인 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나는 짬이 날 때마다 아들과 함께 Vsauce 영상을 감상하곤 합니다. 다양한 주제의 영상들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반복해서 보아도 질리지 않더군요. 아이들로 하여금 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영상들도 다수 있으니 아이들과 함께 한번쯤 같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컨대 '무한을 넘어 세는 법(How to Count Past Infinity)'과 같은 영상은 조금 어렵기는 해도 수힉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도 하죠. 아주 재미있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군요. Vsauce에 대한 소개의 글을 쓰려던 게 아닌데 말입니다. 신왕국 저자의 <근데, 영화 한 편 씹어먹어 봤니?>에 대한 리뷰를 쓰기에 앞서 문득 생각이 났을 뿐입니다. 지나가는 말로 짧게 쓰려던 게 조금 길어지고 말았지만.

 

부모님을 따라 이사를 자주 다녔던 저자는 친구를 사귀기도 어려웠고, 전학생을 무시하는 듯한 동급생들의 텃세에 대한 반감으로 복싱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학교 짱과의 싸움에 휘말린 저자는 결국 고교 자퇴생이 되고 말았고, 그에게 남겨진 것은 프로 복서 자격증뿐이었다고 합니다. 힘들게 생활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공부를 결심했던 저자가 처음 꺼내든 게 영어였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영어를 가장 못하는 아이로 정평이 나 있던 저자는 자신을 무시했던 영어 선생님에 대한 오기로 영어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좋다는 영어 학습법을 이것저것 안 해본 게 없었지만 그닥 소득이 없었던 저자를 180도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은 건 다름 아닌 애니메이션 <라푼젤>이었다고 합니다. <라푼젤>의 대사를 들릴 때까지 반복해서 듣고 따라하기를 6개월, 신기하게도 영어가 한국어처럼 들리기 시작했고, 1년 만에 원어민도 인정할 만큼 자유롭게 영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 저는 하루에 열 시간씩 영화 씹어먹기를 했습니다. 이렇게 매일 하니까 영화 한 편을 다 씹어먹는 데 영화 대사량에 따라 한두 달 정도가 걸리더군요. 하지만 이 훈련이 계속될수록 영화 한 편 씹어먹기를 완성하는 시간도 차츰 줄어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 <라푼젤>을 처음 보았을 때는 두 달이 걸렸다가 다음 애니메이션들을 볼 때는 한 달이 좀 안 될 정도로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p.131)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저자는 명문 UC버클리에도 합격했다고 합니다. 재학 시절, 듣기와 말하기가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한국인 유학생들을 도와주다가 주변의 권유로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고, 그것을 계기로 온라인 카페도 개설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영어로부터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세계적 명문대 학생이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뛰어난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 바로 이것이 영어가 제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입니다. 저는 여러분도 그 선물을 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그랬듯이 영화 씹어먹기를 통해서라면, 여러분도 영어가 주는 선물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p.232)

 

저자의 영어 학습법은 여러 번 듣고 여러 번 따라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아기가 자신의 모국어를 배우듯이 말입니다. 지금 중학교 2학년인 제 아들이 그랬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아들은 리틀팍스(www.littlefox.co.kr)에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또 보았고 눈이 나빠질까 걱정이 되었던 아내는 컴퓨터 모니터 속으로 빠져들 듯한 아들을 뜯어 말리기에 바빴습니다. 면 년 후 나는 아들의 영어 실력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섰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영어로 듣고 말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쓰는 것에도 막힘이 없었습니다. 이따금 일부 단어의 철자가 틀리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Rick Riordan, Stuart Gibbs, Isaac Asimov)의 책을 원서로 읽곤 합니다. 학창 시절, 무식하게 외우고 단어와 문법에만 치중했던 나의 영어 학습법에 비하면 아들은 정말 너무도 재미있게 영어를 배운 듯합니다.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영어로부터 아들이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지식의 지평을 넓혀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가끔 컴퓨터 모니터 앞에 나란히 앉아 유튜브 Vsauce 채널의 동영상을 틀어놓고 깔깔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영어가 우리 부자에게 제공한 또 하나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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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날씨와 계절의 변화가 그저 눈과 피부로만 감지되는 피상적인 현상이 아니라 몸뚱어리 전체로 체감하는 실제적인 것으로 변해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내가 자연에 스며들거나 자연화되는 느낌인 것이죠. 믈론 사람도 태어날 때부터 자연의 일부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젊은 시절에는 대개 그런 사실을 잊고 살지요. 그러다가 한여름의 더위나 한겨울의 추위를 견디는 게 점점 힘에 부침을 느끼는 나이가 되면 계절에 앞서 몸이 먼저 변하게도 되지요. 예컨대 봄과 가을의 건조한 날씨가 시작되기도 전에 몸의 각질이 일거나 겨울 추위에 잠시만 노출되어도 빨갛게 변하는 피부를 보고 있노라면 어릴 적 비가 오기도 전에 무릎 관절을 두드리며 "무릎이 쑤시고 아픈 걸 보니 비가 오려나?" 하시던 할머니 생각이 나곤 합니다. 서서히 단풍이 들듯 내 몸과 마음도 서서히 자연에 동화되다 보면 마침내 생명이 다하는 날 나는 자연과 완전한 동화를 이루겠지요. 그게 자연의 순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동안 시와 거리를 둔 채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나는 요 며칠 전부터 내내 시만 읽고 있습니다. 미세먼지로 하늘이 온통 뿌옇게 변하자 마음마저 무겁게 가라앉았던 것이죠. 기분전환을 하는 데 시만큼 좋은 게 다시 없는 듯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 '별 헤는 밤'을 읽고 있노라면 내내 신경이 쓰이는 미세먼지도,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도 다 잊은 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을 듯합니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서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떨어진 낙엽의 서걱거림이 이별의 말처럼 안타깝게 들립니다. 일요일 낮부터 찬 바람이 강해져서 다음주 월요일 아침부터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지요? 가을도 깊어가고 있습니다. 기분 탓인지 10월도 다 가기 전에 성큼 겨울이 올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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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호칭 (마리몬드 리커버 한정판) 문학동네 시인선 18
이은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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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을이면 무작정 '시'를 읽어야 한다. 마음에 빨강, 노랑, 갈색으로 단풍이 들 때까지 우리 언어의 묵은 때를 '시'라는 목욕 타올로 한 꺼풀 각질을 벗겨내듯 씻어내면 개벽을 하듯 새로운 세상이 짠 하고 우리 앞에 펼쳐지지 않을까? '시'는 타락한 언어, 생명이 다한 일상 언어의 가장 민감한 겨드랑이를 한참이나 간지른다.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새로운 언어로 웃는다. '시'가 안내하는 축제의 현장에서 사람들은 가벼운 미소와 침묵으로 소통한다. 외침이 오히려 고요가 되는 세계. 오직 '시'를 읽음으로써 다다를 수 있는 그곳을 향해 가을엔 무작정 '시'를 읽어야 한다.

 

이은규 시인의 시집 <다정한 호칭>은 가을을 위한 '시'로 가득하다. '그때의 바람은 어디에 있나/생의 무늬를 남기지 않은 채/이제는 없는, 당신이라는 바람의 행방을 묻는다.'('바람의 지문' 중에서)는 시인의 고백은 차라리 처연하다. 그리움은 바람을 닮은 투명한 울림이 되고, 울림은 순식간에 '나'와 '현실'을 지운다. 삶이 그저 허허로운 바람이 되고, 회오리의 거센 격랑도 그저 담담하다. '다가올 문장들이 기록된 문장들의 주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시인은 말한다.

 

제 삶을 오롯이 사는 사람이 태어나서 한번쯤 시인이지 않았던 적이 있을까마는 시인이었던 과거가 아득한 과거의 일인 양 골방 깊숙이 숨겨두었던 그리움의 한 쪽, 어린 시절의 망막. 일상의 켜켜이 쌓인 먼지는 시인이었던 '나'를 잊게 한다. 시인은 '희망이 가장 나중에 죽는다는 말을 의심해보기로 한다'며 '나'의 의지를 묻는다. 사랑이 죽고, 희망이 죽고, '죽음보다 더 나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의심하게 되는 지금은 가을, 부인할 수 없는 계절.

 

역방향으로 흐르는 책

 

바람은 종종 없을 대답을 휘게 한다

모든 게 순리라는 순간의 뒷말을 믿어, 믿지 마

치장된 위로 앞에서 방향을 잃는 것들

 

방향에 대한 구름의 감각을 오래 부러워한 종족이 있다

 

역방향의 기차는

거꾸로 읽기 시작한 책 속의 문장처럼 낯설게 좋다

독법에 의해 내용이 달라지는

 

왜 당신의 책을 거꾸로 읽고 싶었을까

마지막 장에 찍힌 쉼표

마침표 대신 쉼표 쪽으로 휘어져 있음을 알겠다

끝 문장으로 첫 문장을 되묻는

 

이번 생도 도돌이표의 구름이 되어 오래 흐르겠다

 

기차는 두 방향으로 충실하고

순방향이 먼저 보고 놓아버린 구름들을

역방향의 얼굴이 거둔다

방향 없이 구름은 다만 흐를 뿐

속도에 찢긴 한 점, 꽃의 붉음이 허공에 덧발라진다

 

먼저 부를 수 없는 허공을 가진 꽃처럼

먼저 부를 수 없는 당신의 시는 거꾸로 읽기 알맞다

즐거운 난독에 시달리다 잠시 책을 덮는 오후

바람만이 무릎 위의 문장들을 읽다 간다

 

구름에게 묻는 정착지의 기후는 어떨까

목적지는 다만 정착의 한순간일 뿐

모든 게 순리라는 위로와 결별하기 좋은 오후

 

끝 문장의 쉼표는 첫 문장 마침표의 도돌이표

 

언제 벗겨질지 기약도 없는 미세먼지의 습격에 속수무책으로 널부러졌던 오늘. 희뿌연 먼지 사이로 붉고, 노랗고, 푸르른 계절이 멀찍이서 서성였다. 내가 부르는 '다정한 호칭'. "아, 가을!" 가을에는 무작정 '시'를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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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반성문 - 전교 일등 남매 고교 자퇴 후 코칭 전문가 된 교장 선생님의 고백
이유남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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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교사 부부가 있다. 남편은 모 중학교의 체육 선생님이고 아내는 학교는 다르지만 중학교 기술 가정 교과를 맡고 있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는데 모두 장성하여 지금은 대학을 다니고 있다. 집안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부럽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들도 다 컸고 두 분 다 선생님이니 노후 걱정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 있다. 자식 문제다.

 

부모가 시키는 일이라면 죽는 시늉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큰아들과 부모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는 작은애는 외모와 성격 면에서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 배에서 난 형제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큰애는 부모의 과도한 관심 속에서 자랐다. 학원의 선택이며 학습 계획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부모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듯 보였다. 반면에 작은애는 부모가 시키는 일은 뭐든 반대부터 하고 들었다. 학원은 말할 것도 없고, 옷이나 학용품 구매에 있어서도 뭐든 제 손으로 사야 직성이 풀렸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학원 수업과 과외로 쉴 틈이 없었던 큰애는 지방의 작은 국립대에 간신히 합격을 하였고, 학원은커녕 이종격투기 도장만 열심히 다녔던 작은애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집을 뛰쳐 나가 알바와 여행을 전전하다가 지난해에 비로소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정년을 몇 년 남기지 않은 그들 부부는 아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을 인사말처럼 하고 다닌다.

 

그런가 하면 아들 문제로 고등학교 3년 내내 학교와 경찰서를 오갔던 교회 목사님도 알고 있다. 두 집 모두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건만 정작 제 자식의 교육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한다고 하여 자신의 아이들마저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어찌 보면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보편적 원칙을 주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원칙에 문제가 있거나 원칙이 사회상규에 벗어난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삶을 살아가는 데 이로운 지식과 원칙이 가르치는 이의 강요에 의해 자유를 억압하는 사슬로 변질된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교육은 피교육자의 개성과 인격의 발전과 향상에 목적이 있는 건 확실하지만 그 방법이 강제적이라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저 역시 단 한 번도 아이들에게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수학 성적이 떨어지면 수학 학원으로, 미술 수행평가 점수가 필요하다 생각되면 미술 학원으로, 피아노는 기본이니 피아노 학원으로, 이렇게 저는 제가 보내고 싶은 학원으로 아이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배운 피아노는 돈과 시간, 심지어 부모와의 관계까지 버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p.102)

 

이유남 교장의 <엄마 반성문>은 부모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전교회장에 전교 1, 2등을 다투던 저자의 고3 아들이 어느 봄날, 자퇴를 선언한다. 아들이 자퇴서에 도장을 찍자마자 고2 딸도 학교를 그만두고, 자퇴생 남매는 그렇게 방에 틀어박혀 부모와의 대화마저 거부한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의 회사마저 부도가 난 상황에서 채권자들이 집과 교회와 학교에 나타나기도 하고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로 저자 또한 여러 번의 교통사고로 수술을 받기도 한다.

 

절망의 끝에서 저자가 만난 것이 코칭이었다. '우선 아이들을 살리고 봐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부모 교육, 소통 관련 교육을 받기 시작한 저자는 한국코치협회 인증 자격 외에 각종 자격증 20여 개를 땄고, 지금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다니며 속죄하는 마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부모 및 교사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제가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수많은 코칭 자격증과 전문 코치 자격증을 받고 절망 끝에서 얻은 깨달음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최고의 코칭 기본은 내려놓음이고, 가장 훌륭한 코칭 스킬은 믿음과 기다림이다.' 우리 두 아이는 세상눈으로 보면 지금 크게 성공하지도, 크게 보여줄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믿고 기다려준다면 성장해서 공유하며 많은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멋지고 행복한 국제 지도자로 살아갈 것을 확신합니다." (p304)

 

교육자로서의 경험이 곧바로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능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일방적인 지시와 강제에 재미를 붙이면 집에 있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같은 방법을 쓰게 된다. 그러나 학교의 선생님은 1년마다 바뀌지만 부모는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시간이 문제일 뿐이지 결국 사달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아들의 의견을 항상 묻곤 했다. 필요한 학원을 알아보고 등록하기에 앞서 아들의 의견을 묻는 일은 필수적이었다. 등록을 마친 학원도 아들이 다니기 싫다고 하면 과감히 끊었다. 책을 읽는 것도 다르지 않았다. 주말에 집 근처의 대형서점에 나가 함께 책을 읽곤 했는데 아들이 어떤 책을 선택하건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들은 제 스스로 모든 일을 잘 해나갔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이따금 컴퓨터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미래만 걱정할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함께 염려하여야 하지 않을까. 오지 않은 미래를 지나치게 걱정하는 바람에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망친 사례를 우리는 너무도 흔하게 목격한다. 그 모든 게 '사랑'이라는 명목의 허울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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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태풍 '란'(미국에서 제출한 이름으로 마셜군도 원주민어로 '폭풍'을 의미하는 말이지 한글의 식물 '란'이 아님)의 영향인지 오후가 되자 바람이 제법 세게 붑니다. 창밖의 바람 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이죠. 바람이 거센 날일수록 창문을 꼭꼭 닫은 채 가벼운 이불을 덮고 누워 있노라면 아무리 헐렁한 집일지라도 안온한 느낌이 절로 들고 달콤한 낮잠에 까무룩 빠져들게 마련이지요.

 

이유남 선생님의 <엄마 반성문>을 읽고 있습니다. 한 아이의 부모로서 진지한 반성을 불러일으키는 책입니다. 주관적인 생각입니다만 가급적 삼가해야 한다고 믿는 철칙이 하나 있습니다. 타인에게 하는 충고입니다. 상대방이 저의 견해를 묻거나 청해오지 않는 한 충고의 말을 먼저 꺼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사실 손윗사람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물어오는 경우도 종종 있는 까닭에 상대방이 설령 충고를 부탁한다고 할지라도 선뜻 꺼내서는 안 되는 게 충고의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의 이러한 주관 때문인지 "내가 너와 친해서 하는 말인데..." 라거나 "너를 아껴서 하는 말이지만..."과 같은 전제가 깔린 말은 들을 필요도 없고 들어서 살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충고라는 게 너는 이러이러한 단점이 있고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살아가는 데 장애가 된다는 요지가 아니던가. 세상에 자신의 단점을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나의 충고를 듣고 그 사람의 삶이 변화하기는커녕 단지 기분만 나빠진다면 굳이 나서서 상대방의 단점을 지적할 이유 또한 없겠지요. 칭찬만 하고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게 우리의 인생인데 말이죠.

 

<엄마 반성문>을 읽고 급반성을 하는 건 아니지만 혹시 나도 모르게 하나뿐인 아들에게 지적질을 했었던 적은 없었는지 곰곰 생각해보는 하루였습니다. "그랬다면 아들아, 정말 미안하구나. 미운 사람에게도 하지 않는 지적질을 사랑하는 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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