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날씨와 계절의 변화가 그저 눈과 피부로만 감지되는 피상적인 현상이 아니라 몸뚱어리 전체로 체감하는 실제적인 것으로 변해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내가 자연에 스며들거나 자연화되는 느낌인 것이죠. 믈론 사람도 태어날 때부터 자연의 일부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젊은 시절에는 대개 그런 사실을 잊고 살지요. 그러다가 한여름의 더위나 한겨울의 추위를 견디는 게 점점 힘에 부침을 느끼는 나이가 되면 계절에 앞서 몸이 먼저 변하게도 되지요. 예컨대 봄과 가을의 건조한 날씨가 시작되기도 전에 몸의 각질이 일거나 겨울 추위에 잠시만 노출되어도 빨갛게 변하는 피부를 보고 있노라면 어릴 적 비가 오기도 전에 무릎 관절을 두드리며 "무릎이 쑤시고 아픈 걸 보니 비가 오려나?" 하시던 할머니 생각이 나곤 합니다. 서서히 단풍이 들듯 내 몸과 마음도 서서히 자연에 동화되다 보면 마침내 생명이 다하는 날 나는 자연과 완전한 동화를 이루겠지요. 그게 자연의 순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동안 시와 거리를 둔 채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나는 요 며칠 전부터 내내 시만 읽고 있습니다. 미세먼지로 하늘이 온통 뿌옇게 변하자 마음마저 무겁게 가라앉았던 것이죠. 기분전환을 하는 데 시만큼 좋은 게 다시 없는 듯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 '별 헤는 밤'을 읽고 있노라면 내내 신경이 쓰이는 미세먼지도,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도 다 잊은 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을 듯합니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서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떨어진 낙엽의 서걱거림이 이별의 말처럼 안타깝게 들립니다. 일요일 낮부터 찬 바람이 강해져서 다음주 월요일 아침부터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지요? 가을도 깊어가고 있습니다. 기분 탓인지 10월도 다 가기 전에 성큼 겨울이 올 듯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