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점 없는 드맑은 하늘입니다. 거리에는 사람의 발길도 뚝 끊긴 듯 한산하고 도시의 텅빈 공간을 거침없는 바람만 내달립니다. 가을에서 겨울 쪽으로 한 발 더 다가선 듯한 만추의 햇살이 으스스한 도시에 한 줌 온기를 더하는 오후,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를 읽었습니다. 거실창으로 비껴드는 부드러운 햇살에 책은 몇 쪽 넘어가기도 전에 까무룩 잠에 빠져들고, 잠에 취해 나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이다 어느 순간 퍼뜩 잠에서 깨어서는 몇 번 머리를 흔들어 봅니다. 한 번 달라붙은 잠은 좀체 떨어질 줄 모릅니다.

 

밖은 벌써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있습니다. 내 손을 벗어나 소파에서 뒹굴고 있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와 다음에 읽으려고 티테이블에 올려놓았던 <소설, 여행이 되다>와 <칼과 혀>는 나와 함께 가을 햇살만 쐰 채 저녁을 맞고 있습니다. 내게 한 약속이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요. 생각해 보면 나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는 되는데 너는 왜 못하느냐는 식의 비난이나 비아냥이 주가 되기도 했었던, 타인의 입장에서 나는 성질머리가 고약한 사람으로 비쳤을지도 모르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영혼의 성장이란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열린 마음으로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나만의 기준, 아집, 편견에 사로잡혔을 때는 진심어린 충고나 귀중한 교훈도 그저 바람소리인 양 스쳐갈 뿐이죠. 약간의 게으름이 하루의 당연한 일상인 양 이해되는 요즘, 저는 이제야 비로소 배울 준비가 된 듯합니다. 저에게는 배움의 시작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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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지금은 사라졌나 모르지만 내가 군에 입대했던 시절, 고참이 된 군인들은 흔히 후임 병사들을 향해 '본전 생각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곤 했다. 이 말인 즉 자신이 신병이었을 때는 지금보다 군기도 세고 고참들의 괴롭힘도 훨씬 심했는데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으니 자신의 군대 생활은 뭔가 밑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의미였다. 이 말과 함께 '(군기가) 빠졌다'는 말도 흔히 들었다. 고참들이 후임 병사를 편하게 대해주는 바람에 병사들의 군기가 예전보다 흐트러졌다는 의미로 쓰이던 말이다. 군대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주된 이유는 이 두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었다. 자신이 받은 고충을 누군가에게 똑같은 크기로, 또는 더 크게 되갚아야만 속이 후련하지 그렇지 못했을 때는 큰 손해를 본 듯 느껴지는 그릇된 심성, 그것이 갓 입대한 신병들에게 대물림 되듯 전해졌다.

 

페미니즘 소설 <현남 오빠에게>를 읽으며 나는 문득 오래전의 군 생활을 떠올렸다.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이어지는 시집 문화가 군대 문화와 어쩜 그렇게 닮아 있는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하나 다른 게 있다면 군대에서는 상급 부대에서 파견된 사람이 예하 부대의 사병들에게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부당한 대우를 조사하기 위해 이따금 '소원 수리'라는 걸 받지만 며느리에게는 시아버지나 시조부모로부터 행해지는 '소원 수리'가 일체 없다는 점일 것이다. 게다가 군대는 복무 기간만 지나면 제대를 할 수 있지만 며느리는 복무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니...

 

"유진의 할아버지는 효자였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내를 자기 집안, 자기 어머니의 사노비 보듯 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아빠는 자랐다. 아빠에게 본인의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존재였다. 그는 자기 어머니에게 보상을 해줄 여자를 구했다. 어머니의 모든 짐을 대신 짊어져줄 여자,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의 모든 궂은일을 맡아 해줄 여자, 친구 하나 없는 어머니의 말벗이 되어주며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어머니의 생일상을 새벽부터 일어나 차려줄 여자,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낳고 현명하게 키워낼 수 있는 여자, 아빠는 고액 연봉을 받는 파일럿이었고, 그런 여자를 얻을 자격이 있었다." (p.55 '당신의 평화' 중에서)

 

표제작인 조남주 작가의 <현남 오빠에게>를 비롯하여 최은영 작가의 <당신의 평화>, 김이설 작가의 <경년更年>, 최정화 작가의 <모든 것을 제자리에>, 손보미 작가의 <이방인>, 구병모 작가의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김성중 작가의 <화성의 아이>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작가 7인의 작품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 남자인 나로서는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표지의 글귀가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거북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말이다.

 

<현남 오빠에게>는 무려 십년 동안을 현남 오빠의 여자친구로 지냈던 여자가 그로부터 청혼을 받고 고민하다가 만나기로 했던 단골 카페에서 청혼 거절의 편지를 쓰는 내용이다. 시골에서 상경하여 낯선 도시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 여자가 우연히 만난 현남 오빠로부터 다방면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랑을 키워간다. 그러나 친구 지은의 조언과 현남 오빠와의 부딪힘을 통하여 잃었던 자아를 찾아가게 된다. 매번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현남 오빠에게 자신은 그저 의지하고 길들여지고 있었을 뿐 기실 그를 사랑하는 게 아니었음을 아프게 깨닫는 동시에 이별을 결심한다.

 

"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어요. 오빠가 헤어지자고 할까봐 겁이 났거든요. 오빠의 도움 없이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내 일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 두려웠습니다. 게다가 저는 '강현남 여자친구'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으니까요. 아시잖아요. 캠퍼스커플이 헤어지면 어떤 소문이 도는지, 어떤 시선을 받아야 하는지요. 여자들은 특히 더하죠." (p.21 '현남 오빠에게' 중에서)

 

최은영 작가가 쓴 <당신의 평화>는 결혼을 약속한 남동생 준호가 아빠의 생일에 맞춰 여자친구 선영을 집으로 초대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준호의 누나 유진의 시각으로 그린 작품이다. 노예와 같은 시집살이를 대물림하듯 물려받은 엄마 정순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랐던 유진은 정순의 한탄과 불만을 군말 없이 들어주며 정순의 편에서 딸처럼, 친구처럼 지내왔다. 그러나 예비며느리 선영에게도 자신이 살아온 삶을 고집하려 드는 정순의 모습에 실망한 유진은 모진 소리를 하고 집을 떠난다. 정순은 옳고 그름은 물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고백한다.

 

김이설 작가가 쓴 <경년更年>은 다소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중학교 2학년인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둔 '나'는 이제 막 갱년기를 겪고 있다. 아들 세훈은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다. 학부모 모임에 나갔던 어느날 '나'는 아들 세훈이 같은 학교 여자애들 여럿과 관계를 맺었고, 그것을 통하여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문을 듣게 된다. 도무지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나'는 아들이 관계했다는 여자애들 연락처를 윤서 엄마를 통하여 받는다. '나'는 그애들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남편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여자애들이 문제가 많은 애들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나'는 초경을 한 딸을 품에 안고 아들과 관계했던 여자애들을 생각한다.

 

"네가 여자여서, 세상의 온갖 부당함과 불편함을 이제 어린 너와도 나눠 갖게 된 것이 서글프기 때문이라는 걸 말할 수는 없었다. 영문을 모르는 채 내 등을 쓰다듬던 딸아이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는 생리대를 혼자 붙여보겠다고 끙끙댔다. 그렇게 어린애였다." (p.119)

 

'페미니즘 소설집'을 표방하는 이 책은 그 외에도 리얼리즘 소설이 아닌 다른 기법, 이를테면 느와르나 SF, 추리소설 기법 등으로 쓰인 여러 작품들이 실려 있다. 독이 있는 연못에서 태어난 물고기는 독의 존재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유해한지 알 수 없다.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한 유교 문화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남자들 또한 부지불식간에 저지르는 자신의 잘못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그것이 이 나라에 사는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도...

 

세상의 모든 편견은 사실을 사실로서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오늘은 옷깃을 여밀 만큼 날이 차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듯 어둡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 날씨를 두고 '을씨년스럽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나라에 사는 여성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고, 지금도 그러하여 슬프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사실인 것이다.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우긴다면 자신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만다. 단풍나무가 유난히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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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던 하루였습니다. 휴대전화에 뜬 재난문자는 규모 5.5의 지진이 포항에서 발생했다는 내용이었고, 재난문자를 받고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많은 문자가 오갔으니까 말이죠. 속수무책의 이런 재난을 겪을 때마다 인간은 자연 앞에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문득, 하느님을 노하게 하는 어떤 일을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저질렀던 건 아닌지 급 반성 모드로 돌아서게 되지요. 서울의 규모가 큰 어느 교회의 목사가 자신의 아들에게 담임 목사 자리를 세습하는 바람에 하느님이 대로하신 건 아닌지, 각종 부정부패로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지난 정권의 잘못 때문은 아닌지, 그런 잘못에도 불구하고 '나는 죄가 없다' 뻗대며 정치보복으로 몰고가는 소망교회의 어느 장로 때문은 아닌지 별의별 생각이 스쳐갑니다.

 

오늘 아침, 제가 운동을 나서는 새벽 5시 30분만 하더라도 바람 한 점 없이 참으로 고요했습니다. 고즈넉한 산길을 1시간 넘게 걸으며 내려오는 길에는 사진도 한컷 찍었더랬습니다. 엷게 구름이 낀 하늘 위로 붉은 햇살이 번지는 장면이었지요. 언제나 그렇듯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더없이 평화로운 하루가 보장될 줄 알았었지요. 다른 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교회도, 기업도 오직 규모만 강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익이나 욕심을 추구하는 기업의 행태를 신성해야 할 종교가 쫓아간다는 게 얼핏 말이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오직 대한민국에서는 예외인 듯합니다. 자유주의 시장원리를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지난 정부의 소망교회 어느 장로는 교회마저도 신자유주의 이론을 채택하도록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수능을 하루 앞둔 오늘, 스산한 바람이 불고 기온마저 뚝 떨어져 으스스한데, 남녘에서 들려온 지진 소식이 마음을 더 무겁게 합니다.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누군가는 자신의 아들에게 다스를 물려주려 한다는데 저는 '스타워즈'를 좋아하는 아들에게 다스베이더 피규어라도 물려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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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여행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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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사람은 여행에서의 자유를 잃게 된다. 여행이 곧 빡빡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인 도시내기들에게 기실 여행은 자유와 진배없음에도 우리는 종종 자유는 마치 여행에서 거저 주어지는 덤인 양 생각한다. 그러나 여행에서의 자유는 덤이 아니라 여행의 전부였음을 뒤늦게 깨닫곤 한다. 자유가 없는 여행은 그야말로 '앙꼬없는 찐빵'이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 떠나는 여행의 스케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빈 시간'이 핵심이라는 건 모순이 되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지난주에는 연예계 쪽에 몸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이 내가 평일에 머무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고 갔다. 마침 내가 사는 지역으로 출장을 왔다가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겸사겸사 찾아왔던 것인데 어쩌다 보니 시간도 늦고 하여 내게 하룻밤 신세를 진 것이다. 전작이 있었던지 친구는 자신이 사온 소주 몇 잔에 벌써 혀 꼬부라진 소리를 했다. 헝클어진 눈빛과 풀어진 옷매무새의 친구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연예계 뒷얘기며 대중이 알지 못하는 그쪽 분야 사람들의 고충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TV를 보지 않는 나로서는 그닥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인지라 대꾸도 없이 그저 간간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나마 관심이 있었던 건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온갖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야만 하는 그들도 관계에서 오는 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즐기기는커녕 그것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까닭에 제 스스로 관계를 아예 차단하거나 마음에 드는 몇몇 사람만으로 관계를 축소하는 연예인이 점차 늘고 있다고 친구는 말했다.

 

만남이 일상이자 직업인 그들도 관계맺기를 두려워한다면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이야 오죽하랴 싶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소통의 창구나 속도는 과거에 비해 획기적으로 늘었지만 만남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만 호소한다면 과학의 발달이 시나브로 고독을 유발하는 셈이지 않은가. 자발적으로 고독을 선택하고 또 한편으로는 견디기 힘든 외로움을 호소하게 되는 딜레마. 만남 자체를 즐겼던 게 그리 오래 전의 일도 아닌데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괜스레 울적해졌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매일이, 여행>을 읽었던 오늘, 불콰해진 얼굴로 횡설수설 이야기를 이어가던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작고 소소한 것에서 자신이 발견한 보석 같은 깨달음을 담담한 필체로 써내려 간 이 책은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소중한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여행이란 참 묘한 것이다. 여행하는 동안은 저절로 자신의 몸 컨디션에 중점을 두게 된다. 일상 생활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개 정신에 중점을 둔다. 그만큼 긴장하고 날카롭게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와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을 보면 그런 육체적인 피로감이나 혹독한 날씨의 흔적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또 산들 부는 상쾌한 바람과 햇살의 감촉도 상실되어 있다. 그저 아름다운 경치가 소리 없이 거기 서 있을 뿐이다." (p.53)

 

작가는 자신이 방문했던 세계 여러 나라의 풍경과 일상으로 복귀해서 만나는 여행지의 추억을 소개하고 있다. 남미의 짙은 녹음과 강렬한 햇살을 되살리는 마테차, 서쪽을 향해 툭 떨어지는 나일 강의 낙조와 밤의 풍경 등 생각지도 않은 지점에서 툭툭 불거져 나오는 작가의 추억 한토막이 나로 하여금 새삼 추억에 젖게 했다. 추억이란 일상이 던져주는 우연과 같은 선물이라는 듯 말이다.

 

하나 신기할 것도 없는 작가의 글이 뭉근하게 가슴을 파고 들었던 이유는 따로 있는 듯했다. 우리가 일상에 치여 서서히 잊어가고 있는 것들, 예컨대 하늘에서 무수히 떨어지는 꽃잎 같은 도쿄의 눈을 질리도록 바라보았던 고요한 새벽이나 비 내리는 거리를 한없이 걸어 머나먼 곳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던 첫사랑의 추억 등이 겨울로 가는 시린 계절을 한결 따뜻하게 해주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의 6년간이라, 지금의 10년에 해당할 정도로 농밀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좋아한다는 감정이 흔들리지 않았으니 그 사람은 매력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p.220)

 

소설가가 된 후에도 웨이트리스 아르바이트를 했던 가게의 점장과 10여 년 동안 모임을 가졌던 추억과 암으로 세상을 떠난 점장을 추억하는 작가, 열두 살 나이에 작가와 이별한 사랑하는 개. 작가는 우리가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관계와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비 내리던 밤 개와 함께 마지막으로 산책을 했던 그 순간을 작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 비 내리던 날, 가장 슬펐던 날, 사랑하는 개의 영혼이 내게 작별을 고하려 왔다는 것을, 나는 분명하게 느꼈다고 생각한다. 그전까지는 앞으로 반년은 버텨 줬으면 좋겠다고 절실하게 기도했지만, 그날 '이제는 더 힘을 낼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 하지만 헤어지는 건 슬퍼.' 하는 것이, 말로서가 아니라 그냥 절절하게 전해졌다." (p278~p279)

 

어른이 된다는 건 마치 그 모든 고통을 담담히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정신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사는 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겨우 견딜 수 없는 것과 아무렇지도 않게 견딜수 있는 것을 간신히 구분할 수 있을 뿐인데 말이다. 안 되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는 걸 담담히 받아들일 나이가 되면 저 헐벗은 가로수 나목의 쓸쓸한 풍경도 그저 묵묵히 바라볼 수 있게 될까? 바람이 마른 가지를 크게 흔드는 살풍경한 오늘,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이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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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려앉은 새벽 숲길은 차라리 강(江)이다. 산길을 걷다 보면 강물 위로 뿌옇게 번지는 새벽 물안개처럼 생각의 운무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몸은 오롯이 어둠에 묻은 채 앞서 가는 시선만 간신히 플래시 불빛의 좁은 동심원 속에 우겨넣는다. 등 뒤의 어둠은 아주 어릴 적 동네 형들로부터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들을 한 보따리 메고 따라오면서 이따금씩 이야기 한 토막을 풀어놓곤 한다. 나는 어둠이 들려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에 오싹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옛 추억에 젖어 모든 걸 다 잊기도 한다. 등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머리털이 쭈뼛 서다가도 플래시 불빛에 놀란 꿩이 푸드덕 날아 오를 때마다 슬몃 미안해진다. 어둠을 배경 삼아 어룽어룽 달빛이 새긴 산길 그림을 밟으며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이 눈앞이다. 누군가 올려다 놓은 나무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산 아래 펼쳐진 도시의 야경. 저 멀리 보이는 주택가 불빛이 따사롭다.

 

부쩍 추워진 아침 기온 탓인지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인적이 끊긴 아침 산길은 괴괴하다. 취향이나 기호로 따질 문제는 아니지만 나는 겨울 산행을 더 좋아한다. 인적이 끊긴 산길을 걷다 보면 반가운 추억들을 만나게 된다.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기억들과 잊혀진 얼굴들. 무작위로 떠오르는 시 한토막.

 

물안개

              

-류시화-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세월은 온전하게 주위의 풍경을

단단하게 부여잡고 있었다.

섭섭하게도 변해버린 것은

내 주위에 없었다.

 

두리번거리는 모든것은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흘렀고

여전히 나는그 긴 벤치에 그대로였다.

 

이제 세월이 나에게 묻는다.

그럼 너는 무엇이 변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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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11-11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 님 글은 저 멀리 떠나가 있던 기억들을 불러냅니다. 그래서 여운이 길게 남아요.

꼼쥐 2017-11-14 17:09   좋아요 0 | URL
가을이 깊어지니 마음도 감상적으로 변하는가 보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