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점 없는 드맑은 하늘입니다. 거리에는 사람의 발길도 뚝 끊긴 듯 한산하고 도시의 텅빈 공간을 거침없는 바람만 내달립니다. 가을에서 겨울 쪽으로 한 발 더 다가선 듯한 만추의 햇살이 으스스한 도시에 한 줌 온기를 더하는 오후,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를 읽었습니다. 거실창으로 비껴드는 부드러운 햇살에 책은 몇 쪽 넘어가기도 전에 까무룩 잠에 빠져들고, 잠에 취해 나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이다 어느 순간 퍼뜩 잠에서 깨어서는 몇 번 머리를 흔들어 봅니다. 한 번 달라붙은 잠은 좀체 떨어질 줄 모릅니다.

 

밖은 벌써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있습니다. 내 손을 벗어나 소파에서 뒹굴고 있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와 다음에 읽으려고 티테이블에 올려놓았던 <소설, 여행이 되다>와 <칼과 혀>는 나와 함께 가을 햇살만 쐰 채 저녁을 맞고 있습니다. 내게 한 약속이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요. 생각해 보면 나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는 되는데 너는 왜 못하느냐는 식의 비난이나 비아냥이 주가 되기도 했었던, 타인의 입장에서 나는 성질머리가 고약한 사람으로 비쳤을지도 모르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영혼의 성장이란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열린 마음으로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나만의 기준, 아집, 편견에 사로잡혔을 때는 진심어린 충고나 귀중한 교훈도 그저 바람소리인 양 스쳐갈 뿐이죠. 약간의 게으름이 하루의 당연한 일상인 양 이해되는 요즘, 저는 이제야 비로소 배울 준비가 된 듯합니다. 저에게는 배움의 시작인 셈이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