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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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놓고 볼 때 인생은 밍밍하거나 슴슴하다. 이렇다 할 특색이 없는 것이다. 물론 개개인의 인생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각기 다른 수많은 사건들을 겪고 헤쳐나가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느끼는 게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도 크게 보면 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어 죽는 최소한의 범주를 구성하는 작은 알갱이들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낱낱의 그 작은 사건들에 울고 웃고, 때로는 인생 전체에 타격을 줄 정도로 휘청거리게도 된다.

 

"우리는 익숙한 공간, 한정된 시간, 지금까지 '나다운 것'이라 믿어 왔던 세계의 매트릭스에서 단 며칠만이라도 벗어나봐야 한다. 가능하다면 정기적으로 '자기로부터의 탈주'를 꿈꾸는 시간을 짧게라도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거대한 조직사회나 자본의 톱니바퀴가 굴리는 대로 굴러가거나, 가족이라는 블랙홀에 빠져 진정한 '나'를 찾을 길이 없어지게 된다." (p.263)

 

문학평론가 정여울이 쓴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주 작은 일에도 천당과 지옥을 수시로 오가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일희일비 하느라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이 겪은 개별적인 사건의 모든 정황을 문학을 통해 확인하고,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그 인과관계를 규명해보자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는 단순히 괜찮다며 덮는 것으로 치유되는 게 아니라 그 아픔의 근원을 찾아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리학적 도구를 이용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심리학의 눈으로 문학을 바라보는 훈련을 통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상처와 천천히 작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이토록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그 첫 번째 동기는 '내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그저 '아름다운 작품'이라고만 생각했던 소설이 심리학의 눈으로 보면 '우리의 무의식을 이해하는 데 특별한 관점을 제공하는 작품'이 된다." (p.36)

 

작가가 소개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다양한 트라우마의 유형을 보여준다. 서로 극과 극의 이질적인 성격으로 공통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 엘리너와 매리앤 자매가 각자 고통을 겪은 후 서로에 대해 공감하게 되는 과정에서의 심리학적 설명, 관계 맺기에 실패한 '연인'의 백인 소녀, 고향에서 자신의 거짓된 페르소나를 벗고 진정한 자신의 그림자와 만나는 '무진기행'의 윤희중,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끝없이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릿,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한 사회에 내재하는 집단적 죄의식을 인식해가는 '책 읽어주는 남자'의 미하엘과 한나 등을 통해 작가는 감동과 교훈이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던 문학작품 속 인물의 행동에 대해 심리학적 관점에서의 분석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각자의 내면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토록 우리네 인생을 닮았을까? 우리 자신을 보호하려는 그 모든 방어기제들, 즉 자존심과 명예욕과 질투심과 자기연민이야말로 우리에게서 용기를 빼앗아 가는 '내 안의 적들' 아닌가? 우리는 그들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관계의 허무를, 무의식의 반격을 성찰할 수 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가슴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자기 안의 스칼릿'을 잘 다독이고 설득하며, 때로는 눈물을 쏙 빼도록 혼구멍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 (p.110)

 

작가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 세 딸을 낳아 기른 어머니 밑에서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맏딸'로 자라며 갖게 된 트라우마가 있다고 고백한다. 그런 까닭에 엘리너처럼 모범적으로 살기를 강요받았지만 실은 매리앤의 자유분방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라는 걸 심리학 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심리학의 관점에서 "결국 우리가 평생 고통받는 상처의 기원이 대부분 부모를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의 상처에서 연원"하는 까닭에 이와 같은 상처와 결핍,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를 그대로 놔둔다면 자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트라우마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나'는 과거 속의 '나'와 대면하고, 그것을 통하여 영원히 자라지 않는 자신의 내면아이를 다독이고,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쳤던 상처를 돌보고 치유해야만 한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실은 말하기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말하기가 싫어서 글쓰기로 도피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선 처리는 물론 목소리 강약을 조절하는 것도 어려웠기에, 나는 무대공포증을 피해 조용히 글 쓰는 삶을 선택했다." (p.172)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과 그들이 보여주는 여러 행동이나 심리는 사실 우리들 모두에게 내재된 인생 속 한 단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 인생에 깊이 공감하고 울고 웃게 되는 것이다.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차적인 행위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각자가 울고 웃는 까닭을 문학작품이 나서서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심리학이라는 다른 도구를 동원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문학작품을 읽는다 해도 자신의 내면아이와 대면할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잃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은 일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 큰 틀에서 보면 올 한해도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고, 인생은 그저 밍밍하거나 슴슴한 것이지만 생명이 붙어 있는 우리는 시간 앞에서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까닭에 문학을 읽고 심리학을 공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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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덮인 인도를 조심스레 걷고 있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보고 있는 내가 더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손에선 땀이 쥐어진다. 마음의 불안이 그들의 육체를 지면으로부터 반보쯤 밀어올린 듯 내딛는 발걸음에 자신의 체중을 온전히 싣지 못하고 마치 허공을 휘적휘적 걷고 있는 듯 보인다. 보고 있는 나로서도 아슬아슬 불안하기만 하다. 이렇듯 불안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면에 또는 현실에 안착하지 못하도록 한다.

 

지면으로부터, 현실로부터 멀어진다는 건 불안이 그만큼 가중된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길이 아무리 미끄러울지언정, 현실이 아무리 팍팍할지언정 가슴을 펴고 자신있게 걸어야 한다. 자신을 쓰러트리는 건 미끄러운 길도, 팍팍한 현실도 아니다. 오히려 지레 겁을 먹었던 자신의 불안 때문에 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세월은 불안의 깊이를 점점 키워만 간다. 노년의 삶이란 결국 현실로부터 멀어진 불안의 시기를 힘겹게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주는 아니지만 현실과 멀어졌다고 느낄 때마다 들춰보게 되는 책이 있다. 김소연의 <마음사전>이다. '외롭다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룻밤을 꼬박 새워본 적이 있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이 책은 작가가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거짓말을 가장 확실하게 실천하는 관계는 가족과 연인이다. '사랑'이라고 하는 매개체를 통하여 굳게 맺어진 이 관계는,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을 향하여, 사랑한다고 말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 가장 많은 약속을 하면서 영위되고 있다. 약속은 범람하면 할수록 지켜질 수가 없다. 그래서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약속마저 하게 된다. 약속은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일종의 '노을'이고, 그 약속을 마치 다 지켜줄 사람으로 착시하는 것이 바로 '사랑'인 셈이다. 그 착시를 통하여 관계는 강인하게 매수되고 단련된다. (김소연의 '마음사전' 중에서)

 

연예인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다가왔던 2017년의 세모. 불안이라는 막다른 골목은 마치 블랙홀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당신의 그늘엔 여전히 어제 내린 눈이 소복할지라도 2018년 새해에는 희망의 햇살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파스빈더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말했지만, 영혼을 잠식당하면서도 가보고 싶은 곳이란, 사람에게는 있는 법이다. 영혼을 담보하여 큰 대가를 치를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이 세상엔 있다. 어쩌면 이 세상 바깥에 더 많을지도 모른다. (김소연의 '마음사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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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22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2017년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꼼쥐 2017-12-23 16:2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님도 축하드립니다.
 
골목길 자본론 - 사람과 돈이 모이는 도시는 어떻게 디자인되는가
모종린 지음 / 다산3.0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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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의 매력은 그 지역의 풍경과 무관치 않다. 골목길을 따라 꼬불꼬불 오르다 보면 마을의 끄트머리 언덕배기의 작은 공터가 나오거나 아카시아 몇 그루가 다인 작은 녹지가 나온다. 공터는 동네 조무래기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밤이면 동네 언니 오빠들의 데이트 장소가 되기도 했다. 골목과 골목이 갈리는 교차점에는 밤이 이슥하도록 불이 훤하게 밝았던 구멍가게가 있었고, 신 김치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는 동네 아저씨들이 있었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골목길엔 집집마다 어른 어깨 높이의 작은 창들이 나 있었고, 창을 통과한 백열전구의 희끄무레한 불빛이 늦게 퇴근하는 어느 집 여식의 안전을 지켜주었다.

 

생각해 보면 아주 먼 옛날도 아니다. 얼큰하게 취한 남자와 당장의 생활비가 궁한 여자의 날선 목소리가 부딪히고, 아이를 나무라는 어느 집 젊은 엄마의 새된 음성과 걸음아 나 살려라 내달리는 꼬마의 발자국 소리, 그 왁자했던 골목길의 소음이 당장이라도 들려올 듯하다. 8,90년대만 하더라도 이런 풍경은 서울의 변두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그 시절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 세대는 신기한 눈으로,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은 아득한 그리움으로 골목길을 대하고 있다.

 

"건축가 유현준은 소비자들이 골목 안의 상업시설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골목길의 밀도와 우연성으로 설명한다. 인위적이고 정형화된 쇼핑센터와 달리 골목의 구조는 여러 형태의 가게를 품을 수 있다. 저마다의 취향대로 가게를 꾸밀 수 있고, 1층뿐 아니라 지하까지도 다양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골목길 구조의 다양성과 밀도로 인해 우리는 우연한 볼거리들과 마주하게 된다. 예측하지 못했던 곳에서 새로운 골목과 새로운 가게들이 열린다. 층별 입점 브랜드 안내서 한 장이면 모든 것이 한눈에 파악되는 쇼핑몰이나 백화점과 달리,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골목의 구석구석은 우리를 예상치 못한 즐거움의 세계로 안내한다."    (p.23~p.24)

 

모종린 교수의 <골목길 자본론>은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골목길의 잠재가치를 논하는 좋은 책이다.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경제학 서적의 면모는 크게 보이지 않고 경제학 관련 수필집쯤으로 읽힌다. 최근에 핫플레이스로 부상한 부산 보수동 헌책방거리, 대구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 서울 문래동 철강문화거리, 서울 이화동 벽화마을 등에 주목하면서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의 소중한 골목문화를 지켜내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1장 왜 골목길에 사람이 모이는가, 2장 사랑받는 도시에 없어서는 안 될 것, 3장 골목상권 경쟁력 확보를 위한 물리적 조건, 4장 골목을 골목답게 만드는 정체성과 문화, 5장 장인 정신과 기업가 정신, 6장 젠트리피케이션의 신화와 대안, 7장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골목길 정책 등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유독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C-READI 모델로 지칭되는 골목상권 활성화 정책이 그것이다. 문화자원(culture), 임대료(rent),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접근성(access), 도시 디자인(design), 정체성(identity)이 잘 갖추어져야만 골목상권이 성공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성공적으로 발전한 골목상권은 공통적으로 뛰어난 창업자(E)가 접근성(A)이 좋고 골목 자원(D)과 문화 자원(C)이 풍부하지만 임대료(R)가 싼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창업하고, 이를 본 다른 창업자가 주변에서 새로 가게를 열어 지역만의 정체성이 뚜렷한 하나의 상권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p.330)

 

내가 대학에 다니던 과거에 친하게 알고 지내던 외국인이 한 명 있었다. 그 당시 서울 중심부의 유명 외국어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그는 옥수동의 허름한 주택의 단칸방을 얻어 세 들어 살았다. 그의 한 달 수입을 생각할 때 무척이나 검소한 모습이었다. 어느 주말 저녁, 금호역 근처의 시장통에서 그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나는 그가 그곳에 사는 이유를 슬쩍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옥수동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면 건강에도 좋고 무엇보다도 서울 시내의 야경을 매일 밤 감상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사는 데 최적의 장소라고 할 수 있는데 그에 더하여 임대료까지 저렴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 그가 살던 옥수동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자 그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몹시 서운해 했었다. 가파른 계단과 올망졸망한 집들이 늘어선 정다운 풍경을 더는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그가 자신이 태어난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까지 옥수동의 낡은 집들과 오래된 계단은 주민들만 떠난 채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서울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옥수동의 아름다운 풍경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한들 다시 살 수 없을 텐데 왜 그렇게 모두 없애버리지 못해 안달을 하는지 한국인들의 생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그는 말했었다.

 

"이제 우리의 골목길은 미래 인재와 여행자를 두고 세계의 다른 골목길과 경쟁한다. 계속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골목문화의 생산자인 창조적인 문화예술인과 지역사업가를 불러 모아야 하고, 골목문화의 소비자인 여행자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p.387)

 

산업화를 거치면서 서울로, 서울로만 몰려들었던 까닭에 수도 서울의 주택 정책은 그야말로 개발 일변도의 정책을 지속해 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귀중한 자산이 될 수도 있었던 역사의 흔적들이 대부분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난개발과 투기 광풍의 회오리가 이제는 좀 잠잠해졌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우리의 지난 날을 반성하면서 미래의 청사진을 새로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골목뿐만 아니라 옛것에 대한 가치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시간의 가치보다 편리의 가치만 강조했던 우리의 무지가 조금쯤 부끄러워지는 오늘, 모종린 교수의 <골목길 자본론>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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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겨울 칼바람의 맹위가 대단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방한용품의 질이나 그런 것을 향유할 수 있는 소득 수준 등이 높아져서 겨울을 나는 일이 여름 더위를 이기는 것보다 더 수월해진 게 사실이죠. 어린 시절을 첩첩산중의 강원도 산골에서 보냈던 나로서는 여름보다는 겨울에 그 시절이 더 생각나곤 합니다. 모든 게 허술하기만 하던 때인지라 누이가 대바늘로 떠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장갑과 스웨터를 입고 학교에 다니는 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겨울이면 손과 발에 동상을 달고 살았고 등하굣길의 찬바람을 온 몸으로 맞받아야만 했었죠. 돌이켜 보면 아득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뉴스를 보니 며칠 전에 있었던 야당 대표의 부적절한 발언이 국민들의 공분을 사는 듯하더군요. 중국을 국빈 방문한 대통령에 대해 '알현, 조공외교' 등 듣기에도 민망한 말을 쏟아냈다죠? 그 사람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정치인은 미국 뒷골목의 쓰레기만도 못하다는 게 중론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자국의 대통령의 행보를 그런 식으로 비하한다는 건 상식 선을 크게 벗어난 듯 보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런 장면에 대해 일침을 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일국의 제1야당 대표라는 작자가 일본 총리의 꼬붕도 아니고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보수당의 행태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죠. 자위대 창립 기념일에 축하 사절로 참석하기도 하고, 대통령이었던 이모 씨는 일왕에게 머리를 숙이는 등 온갖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었죠.

 

 

야당의 행태를 보면 국가의 이익이나 위신은 관심도 없고 오직 여당을 흠집내어 자신들의 존재감을 높이려는 작태로만 보입니다. 그들에게 애국심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말이죠. 그래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자신들의 체면보다는 국격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임에도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런 꼬라지를 보였을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날씨가 추우니 국민들의 화를 돋우어서 국민 전체의 체온을 조금이나마 높여주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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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스러운 시간이 묵묵히 흘러가는 동안 나와 당신의 틈새를 메웠던 삶의 질료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따금 생각하곤 합니다. 말하자면 그런 것이지요. 조급하거나 성마른 성격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당신과의 관계를 무 자르듯 싹둑 단절하거나 데면데면 멀어지지 않고 그토록 오랜 세월을 한결같이 지켜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랄까 원천이랄까 뭐 그런 게 궁금했던 것이지요. 우정이나 공감 또는 배려와 같은 추상적인 언어로 대답을 갈음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뭔가 미진한 부분이 남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는 헤어지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쓴 것도 아니요, 남녀 간의 사랑과 같은 본능적 관계에 의지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나는 우르술라 누버가 쓴 책 <나는 ‘아직도’ 내가 제일 어렵다>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당신과 내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오랜 세월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며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작은 단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책 서문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만약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면 우리는 ‘발가벗은’ 채로 다른 사람과 마주해야 한다. 이마에 적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타인이 내 생각을 훤히 읽을 수 있다면, 우리의 감정이나 희망사항, 계획을 호기심 가득한 낯선 사람의 시선에서 지켜낼 수 없다. 비밀이 없다면 무방비 상태로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도, 희망, 욕구에 휘둘리기 쉽다. 즉 비밀은 우리 인생에 어떤 권한도 없는 사람이 우리 삶에 함부로 기웃거리지 못하게 막아주는 울타리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도 비밀은 윤활제 역할을 한다. 모든 것을 밝히고 드러내야 한다면 사회 공동체는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절대적 진실’만 존재하는 사회는 스스로를 감당하기 힘들다. 긍정적인 비밀에는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는 매력적인 사회적 가치가 있다.” (p.13)

 

그렇습니다. 나는 지금 당신과 나 사이에 존재했던 ‘비밀’에 대해 말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어떤 특별한 목적도 없이 서로의 비밀을 조금씩 공유해왔던 것입니다. 삶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어떤 순간에도 우리는 기회가 될 때면 언제나 자신이 간직해온 비밀을 조금씩 조금씩 상대방에게 주입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각자가 정한 삶의 테두리 속으로 상대방의 출입을 무시로 허락하게 되었고, 서로가 서로의 손을 맞잡지 않았어도 우리는 단단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내게 언제부터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어떤 계기로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진지하게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때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한 채 우물쭈물 얼버무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비밀’이 내 인생에 있어 하나의 전기로 작용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나 특정 시점을 명시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도 하나둘 비밀이 생겨나면서부터 책과 가까워졌다는 건 분명한 듯합니다. 독서란 결국 타인의 비밀을 공유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밝힐 수 없는 어떤 비밀을 끌어안게 된 어느 날,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누군가의 비밀도 궁금해지게 마련이지요. 타인의 ‘비밀’을 정당한 방법으로 엿보는 유일한 수단이 독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최은영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에도 ‘비밀’이 가득합니다. 소설에서 고등학생이던 ‘나’는 일본의 자매학교 교류로 한국을 찾은 일본인 친구 쇼코를 일주일간 집에서 재우게 되지요. 일제 강점기에 일본어를 배웠던 할아버지는 ‘나’보다 쇼코와 더 잘 지냅니다. 이후 쇼코는 할아버지에게는 일본어로, ‘나’에게는 영어로 편지를 꾸준히 써서 보내지요. 대학에 가고 바빠지면서 ‘나’와 쇼코는 연락도 끊기고 관계도 멀어집니다. 소설 속 주인공 ‘나’가 쇼코와 멀어지는 동안에도 할아버지와 쇼코는 자신의 비밀을 서로에게 내보이며 한동안 관계를 이어갑니다. <쇼코의 미소>에 실린 또 다른 단편 소설 ‘씬짜오, 씬짜오’에는 마음으로 공감할 수 없는 두 가족의 비밀이 소설 전반에 드러납니다. 말하자면 비밀을 공유할 수 없다는 건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지요.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p.89 '씬짜오, 씬짜오‘ 중에서)

 

 

<쇼코의 미소>에서 작가 최은영은 표제작인 ‘쇼코의 미소’를 비롯하여 7편의 이야기를 이 책에 싣고 있지만 결국 작가는 ‘비밀’이 들려주는 여러 변주를 독자들에게 말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애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도 가슴 아픈 ‘비밀’이 등장합니다. 어린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상실감으로 어찌할 바 모르던 부부는 찬바람이 부는 입동의 자정 무렵, 복분자의 붉은 물이 튄 벽에 도배를 다시 하기로 합니다. 어쩌면 부부에게 도배는 죽은 아들을 잊고 새 출발을 다짐하는 의미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도배를 하기 위해 가구를 치웠을 때 그 밑에서 아들의 삐뚤빼뚤한 낙서가 나옵니다. 말하자면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잊혔을지도 모르는 아들의 비밀 한 조각이 부부에게 드러난 셈이지요. 부부는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벽지를 마저 붙이지 못한 채 오열합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저릴 정도로 무고한 얼굴로 잤다. 신기한 건 그렇게 짧은 잠을 청하고도 눈뜨면 그사이 살이 오르고 인상이 변해 있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도 마찬가지였다.” (p.18 '입동‘ 중에서)

 

‘비밀’은 글로 쓰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말하여지기도 합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비밀’은 때로는 마음의 병이 되어 한 사람을 쓰러트리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비밀을 들어주고 그 아픔을 다른 누군가에게 토로하지 못한 채 자신의 가슴에만 담아야 하는 이도 있습니다. 정신과의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지요. 정신과의사 김진세가 쓴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는 정신과의사의 고충을 담고 있습니다. 김진세의 산티아고 순례기이기도 한 이 책은 개인이 만들어가는 ‘비밀’을 우리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삶은 음미하는 것이다. 급하게 보내면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리는 삶, 비록 지긋지긋한 삶이라도 그 고통에서 헤어나오고 싶은 것이지, 실제로 인생이 빨리 흘러가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인생을 즐기려면, 마치 음식을 천천히 씹으며 참맛을 느끼듯, 천천히 살아가야 한다.” (p.31)

 

 

지금 이 시간에도 나와 당신은 각자의 ‘비밀’을 짓고, 기억하고, 편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렇겠지요. 만들어진 ‘비밀’은 차후 당신과 나의 만남에서 서로 교환될 수도 있고, ‘비밀’로 숨겨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나는 당신의 비밀을 언제든 응원한다는 사실을 당신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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