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덮인 인도를 조심스레 걷고 있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보고 있는 내가 더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손에선 땀이 쥐어진다. 마음의 불안이 그들의 육체를 지면으로부터 반보쯤 밀어올린 듯 내딛는 발걸음에 자신의 체중을 온전히 싣지 못하고 마치 허공을 휘적휘적 걷고 있는 듯 보인다. 보고 있는 나로서도 아슬아슬 불안하기만 하다. 이렇듯 불안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면에 또는 현실에 안착하지 못하도록 한다.
지면으로부터, 현실로부터 멀어진다는 건 불안이 그만큼 가중된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길이 아무리 미끄러울지언정, 현실이 아무리 팍팍할지언정 가슴을 펴고 자신있게 걸어야 한다. 자신을 쓰러트리는 건 미끄러운 길도, 팍팍한 현실도 아니다. 오히려 지레 겁을 먹었던 자신의 불안 때문에 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세월은 불안의 깊이를 점점 키워만 간다. 노년의 삶이란 결국 현실로부터 멀어진 불안의 시기를 힘겹게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주는 아니지만 현실과 멀어졌다고 느낄 때마다 들춰보게 되는 책이 있다. 김소연의 <마음사전>이다. '외롭다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룻밤을 꼬박 새워본 적이 있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이 책은 작가가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거짓말을 가장 확실하게 실천하는 관계는 가족과 연인이다. '사랑'이라고 하는 매개체를 통하여 굳게 맺어진 이 관계는, 사랑한다고 믿는 사람을 향하여, 사랑한다고 말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 가장 많은 약속을 하면서 영위되고 있다. 약속은 범람하면 할수록 지켜질 수가 없다. 그래서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약속마저 하게 된다. 약속은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일종의 '노을'이고, 그 약속을 마치 다 지켜줄 사람으로 착시하는 것이 바로 '사랑'인 셈이다. 그 착시를 통하여 관계는 강인하게 매수되고 단련된다. (김소연의 '마음사전' 중에서)
연예인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다가왔던 2017년의 세모. 불안이라는 막다른 골목은 마치 블랙홀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당신의 그늘엔 여전히 어제 내린 눈이 소복할지라도 2018년 새해에는 희망의 햇살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파스빈더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말했지만, 영혼을 잠식당하면서도 가보고 싶은 곳이란, 사람에게는 있는 법이다. 영혼을 담보하여 큰 대가를 치를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이 세상엔 있다. 어쩌면 이 세상 바깥에 더 많을지도 모른다. (김소연의 '마음사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