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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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놓고 볼 때 인생은 밍밍하거나 슴슴하다. 이렇다 할 특색이 없는 것이다. 물론 개개인의 인생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각기 다른 수많은 사건들을 겪고 헤쳐나가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느끼는 게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도 크게 보면 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어 죽는 최소한의 범주를 구성하는 작은 알갱이들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낱낱의 그 작은 사건들에 울고 웃고, 때로는 인생 전체에 타격을 줄 정도로 휘청거리게도 된다.

 

"우리는 익숙한 공간, 한정된 시간, 지금까지 '나다운 것'이라 믿어 왔던 세계의 매트릭스에서 단 며칠만이라도 벗어나봐야 한다. 가능하다면 정기적으로 '자기로부터의 탈주'를 꿈꾸는 시간을 짧게라도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거대한 조직사회나 자본의 톱니바퀴가 굴리는 대로 굴러가거나, 가족이라는 블랙홀에 빠져 진정한 '나'를 찾을 길이 없어지게 된다." (p.263)

 

문학평론가 정여울이 쓴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주 작은 일에도 천당과 지옥을 수시로 오가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일희일비 하느라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이 겪은 개별적인 사건의 모든 정황을 문학을 통해 확인하고,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그 인과관계를 규명해보자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는 단순히 괜찮다며 덮는 것으로 치유되는 게 아니라 그 아픔의 근원을 찾아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리학적 도구를 이용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심리학의 눈으로 문학을 바라보는 훈련을 통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상처와 천천히 작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이토록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도, 그 첫 번째 동기는 '내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그저 '아름다운 작품'이라고만 생각했던 소설이 심리학의 눈으로 보면 '우리의 무의식을 이해하는 데 특별한 관점을 제공하는 작품'이 된다." (p.36)

 

작가가 소개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다양한 트라우마의 유형을 보여준다. 서로 극과 극의 이질적인 성격으로 공통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 엘리너와 매리앤 자매가 각자 고통을 겪은 후 서로에 대해 공감하게 되는 과정에서의 심리학적 설명, 관계 맺기에 실패한 '연인'의 백인 소녀, 고향에서 자신의 거짓된 페르소나를 벗고 진정한 자신의 그림자와 만나는 '무진기행'의 윤희중,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끝없이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릿,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한 사회에 내재하는 집단적 죄의식을 인식해가는 '책 읽어주는 남자'의 미하엘과 한나 등을 통해 작가는 감동과 교훈이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던 문학작품 속 인물의 행동에 대해 심리학적 관점에서의 분석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각자의 내면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토록 우리네 인생을 닮았을까? 우리 자신을 보호하려는 그 모든 방어기제들, 즉 자존심과 명예욕과 질투심과 자기연민이야말로 우리에게서 용기를 빼앗아 가는 '내 안의 적들' 아닌가? 우리는 그들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관계의 허무를, 무의식의 반격을 성찰할 수 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가슴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자기 안의 스칼릿'을 잘 다독이고 설득하며, 때로는 눈물을 쏙 빼도록 혼구멍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 (p.110)

 

작가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 세 딸을 낳아 기른 어머니 밑에서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맏딸'로 자라며 갖게 된 트라우마가 있다고 고백한다. 그런 까닭에 엘리너처럼 모범적으로 살기를 강요받았지만 실은 매리앤의 자유분방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라는 걸 심리학 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심리학의 관점에서 "결국 우리가 평생 고통받는 상처의 기원이 대부분 부모를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의 상처에서 연원"하는 까닭에 이와 같은 상처와 결핍,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를 그대로 놔둔다면 자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트라우마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나'는 과거 속의 '나'와 대면하고, 그것을 통하여 영원히 자라지 않는 자신의 내면아이를 다독이고,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쳤던 상처를 돌보고 치유해야만 한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실은 말하기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말하기가 싫어서 글쓰기로 도피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선 처리는 물론 목소리 강약을 조절하는 것도 어려웠기에, 나는 무대공포증을 피해 조용히 글 쓰는 삶을 선택했다." (p.172)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과 그들이 보여주는 여러 행동이나 심리는 사실 우리들 모두에게 내재된 인생 속 한 단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 인생에 깊이 공감하고 울고 웃게 되는 것이다.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차적인 행위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각자가 울고 웃는 까닭을 문학작품이 나서서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심리학이라는 다른 도구를 동원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문학작품을 읽는다 해도 자신의 내면아이와 대면할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잃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은 일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 큰 틀에서 보면 올 한해도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고, 인생은 그저 밍밍하거나 슴슴한 것이지만 생명이 붙어 있는 우리는 시간 앞에서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까닭에 문학을 읽고 심리학을 공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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