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엉뚱한 곳에서 뜻밖의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예컨대 창의력이라고 하면 예술 분야나 과학 등 특정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특별한 능력쯤으로 생각될 뿐 법과 증거에 의거하여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에게는 그닥 필요하지도 않고 그럴 만한 능력도 없다는 게 보편적인 시각이 아닐까. 물론 작가보다 더 작가 같은 문유석 판사와 같은 특별한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며칠 전, 창의력이라면 내가 문유석 판사보다 한 수 위라고 주장하는 판사 한 명이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마치 판사계에서 창의력 짱은 나라고 선언이라도 하려는 듯.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고 했던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처럼 그도 역시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성. 창.호.! 뭔가 아우라가 풍기지 않는가. 그는 김경수 지사의 재판에 있어 전례가 없는 창의적인 재판을 했다. 법과 원칙, 그리고 법관의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한다는 일반인들의 상식을 뒤집고 그는 오직 추측과 상상력, 자신의 이념에 따라 전무후무한 판결을 내렸다. 이보다 더 창의적인 재판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그의 판결문에는 개인적인 추측과 예단을 나타내는 말 '~로 보인다'는 말이 무려 81번이나 등장한다. 소설을 업으로 하는 소설가도 이와 같은 짧은 글에 그만한 상상력을 발휘하기는 힘들 듯하다. 그는 어쩌면 판사라는 직업보다는 소설가에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증거도 없이 오직 자신이 쓴 한 편의 소설을 근거로 김경수 지사를 재판했으니 말이다. 그의 능력으로 볼 때 판사를 사임하는 순간 신춘문예에 응모만 하면 작가로 등단하는 건 떼놓은 당상이 아닐까. 적극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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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학창 시절 학생들이 하는 가장 많은 불평불만은 취약한 과목의 학습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아니었을까. 예컨대 "난 커서 장사나 할 건데 돈 계산이나 할 줄 알면 되지 미적분은 도대체 왜 배우는 거야?"라거나 "소크라테스니 니체니 하는 개똥철학을 배워서 도대체 어디다 써먹겠다는 거야?"라는 식의 불만에 찬 말들은 누구나 한 번쯤 내뱉었음직한 불평이었을 것이다. 물론 학생들의 선호나 관심에 따라 불평의 대상이 되는 과목은 각자 달랐겠지만 말이다. 누구에게는 수학이, 누구에게는 과학이, 또 누구에게는 윤리나 철학이, 때로는 사회나 국어가...

 

일본의 유명한 컨설턴트인 야마구치 슈의 저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는 독자라면 먼저 자신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철학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던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러나 이 책은 서양 철학을 시간 순서로 요약한 철학 입문서는 아니다. 자신이 속한 모임에 나가 자신의 학식을 부풀리기 위한 목적으로 달달 외우게 되는 그런 책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를테면 "니체 하면 '신은 죽었다'라는 말이 떠오른다'는 둥 어떻게든 자신의 얕은 지식을 들키지 않기 위한 방안으로서 철학을 공부했던 사람들이 생각하는 철학의 효용은 이 책에서 논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철학이라면 으레 자신의 무식을 가리기 위한 치장으로서 생각했던 까닭에 철학은 실용적인 학문이라기보다는 항상 현실과는 동떨어진, 학문으로서의 학문으로만 존재하는 듯하다.

 

"철학 등의 교양이 소홀히 다뤄진 원인 중에는 철학 연구자들의 태만도 있다. 원래 철학은 무기로서, 혹은 도구로서 상당히 유용한데도 그 쓸모에 대해 계몽이나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그들이 해 온 일을 들여다보면 철학에 관해 작성한 문헌은 고작 자신들의 철학과 사상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독선적으로 주장하는 전단지 광고에 불과하거나, 그도 아니면 전문가들에게만 통하는 설계도 해설 아니면 자기네들끼리 나누는 고생담이 대부분이었다." (p.34)

 

책의 목차를 보면 책의 내용을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철학을 배우는 새로운 방법과 왜 철학 앞에서 좌절하는가? 를 설명한 1부 '무기가 되는 철학'에 이어 이 책의 본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2부 '지적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50가지 철학·사상'에서는 1장 '사람'에 관한 핵심 콘셉트, 왜 이 사람은 이렇게 행동할까?, 2장 '조직'에 관한 핵심 콘셉트, 왜 이조직은 바뀌지 않을까?, 3장 '사회'에 관한 핵심 콘셉트,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4장 '사고'에 관한 핵심 콘셉트, 어떻게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의 순서로 쓰여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철학 이론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철학을 쉽게 접목할 수 있을까를 연구한 실용서로서의 철학이다.

 

"우리는 외부의 현실과 자신을 각각 별개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를 부정했다. 외부의 현실은 우리가 어떤 시도를 하느냐에 따라, 혹은 하지 않느냐에 따라 '그러한 현실'이 된 것이므로 외부의 현실은 곧 '나의 일부'이고 나는 '외부 현실의 일부'다. 즉 외부의 현실과 나는 결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현실을 자신의 일로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태도, 즉 앙가주망이 중요하다." (p.96)

 

우리는 종종 자신이 속한 조직을 등한시하거나 조직의 문제는 자신의 책임과는 무관한 어떤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한 경향은 직급이 낮을수록 강화된다. 어쩌면 우리는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임원을 비롯한 소수의 몇몇 사람만 가능한 일이라고 단정하거나 그렇게 믿는 까닭에 자신은 그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파편화된 부속품쯤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조직의 혁신이 어중간한 상태에서 흐지부지 좌절되고 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영자, 간부, 실무자를 나란히 놓고 보면 환경 변화의 전망을 바라보는 사정거리가 경영자, 간부, 실무자의 순서로 점점 짧아진다. 경영자는 적어도 10년 앞의 일을 내다보지만 간부는 기껏해야 5년, 실무자는 1년 후의 일만 내다볼 뿐이다. 그러니 10년 앞을 내다보는 경영자라면 머지않아 다가올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변혁의 필요성을 늘 의식하겠지만, 눈앞에 닥친 일에만 매진하는 간부나 현장 책임자는 자세한 설명 없이 이대로는 위험하니 방식과 방향을 바꾸라는 지적을 받으면 충분한 해동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바로 혼란기로 돌입하게 된다." (p.152)

 

오늘날 기업 경영의 가장 큰 화두는 '혁신'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우리는 복잡한 현상에 매몰되어 본질을 외면하거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이 없다. 우리가 본질을 파악하고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학문이 철학이며 과거 철학자들이 세상과 인간을 향해 던졌던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지금 눈앞에 닥친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생각의 틀을 배울 수 있다. 가뜩이나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가 보는 현상에만 휩쓸리면 해결책은커녕 문제의 본질마저 파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므로 경영 전반에 걸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마다 현실의 상황을 철학이나 심리학, 경제학 개념에 대입하여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철학 · 사상에 관한 용어가 바로 그러하다. 이들 용어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의 앞머리에서 언급한 대로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나 현상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길러 준다. 개념이 통찰력을 길러 줄 수 있는 것은, 개념이 바로 새로운 세계를 파악하는 관점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p.297)

 

철학이 때로는 우리의 무식을 가려주는 방어막이 되기도 한다.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철학을 하는 주된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철학의 효용이 너무 일방적으로 좁혀진 듯한 느낌이 들고, 우리가 철학의 다양한 효용을 미처 배워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라고 했던 앨런 케이의 말처럼 우리는 시시각각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한 변화의 조류 속에서 조금이라도 방심하거나 현상에만 현혹되면 우리는 금세 도태되고 만다. 본질을 파악하고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식, 혹은 방향을 안내하는 길잡이로서 철학보다 유용한 학문은 없다. 우리가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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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자들의 어수룩한 보도는 어제오늘 있었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 불거진 손혜원 의원에 대한 투기 논란과 인신공격성 보도를 보면서 느끼는 건 그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이 '기레기, 기레기' 했던 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이 끝없이 반복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원인을 알지 못해 시정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이유를 알면서도 방치하는 것인지 방송을 향유하는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하기만 하다. 참으로 한심한 작태를 그냥 두고 봐야 한다는 게 말이다.

 

오보의 역사를 따지자면 그 연원이 깊겠지만 나로서는 그 깊은 연원까지 캘 수는 없는 노릇이고 가깝게는 세월호 보도만 하더라도 사건의 중대성에 비해 사실검증은 전혀 없었거나 무척이나 가볍게 이뤄졌을 거라는 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눈으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렇다면 기자들로 하여금 오보를 일삼게 하는 방송 환경은 도대체 뭘까? 그게 꼭 장비나 인력 부족의 문제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번 사태를 보면 우리나라 기자들의 취재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한마디로 취재의 ABC도 모르는 사람들이 취재를 했고, 그것을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보도한 데서 이 사달이 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사태가 발발한 데는 장기간에 걸친 보수정권의 집권과 무관하지 않다. 이를테면 보도통제가 이루어지던 보수정권 집권기 동안 기자들은 하나의 사건을 취재도 없이 받아쓰거나(시쳇말로 '우라까이') 제목이나 문구만 바꾼 채 기사를 내보내곤 했었다. 관행처럼 말이다.(지금도 성행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관행을 부추겼던 건 인터넷의 발달이 한몫했다. 클릭 몇 번으로 그럴듯한 기사를 써낼 수 있으니 말이다.

 

소위 탐사보도는 증거에 기반한 사실 확인이 생명이다. 그럼에도 오보에 가까운 기사를 보도하고 국민들의 비난이 거세지자 비난을 무마하기 위한 인신공격성 보도로 프레임을 전환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보도 시간을 늘려 도배를 함으로써 전파를 낭비하는 등 소위 갑질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는 건 우리나라 언론의 심각한 자격미달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손혜원 의원을 향한 후원금이 답지했겠는가.

 

기자들이 자신의 신분을 내세우며 뻐기고 으스대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는 한 사람의 직업인일 뿐이다.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소임을 제대로 하란 얘기다. 자리에 앉아 헛발질만 하지 말고.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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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습관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 죽어야 고치는 습관, 살아서 바꾸자!
사사키 후미오 지음, 드로잉메리 그림, 정지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일상에서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 아닌가. 몇 마디의 대화에, 책 몇 줄 읽다가 '아, 이 사람 나와 비슷한 면이 있네.'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끌림일지도 모르고, 가까운 사람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나만의 비밀을 상대방도 공유한 듯해서 반갑기도 하고, 그동안 아무에게도 밝힐 수 없었던 엽기적인(?) 습관을 상대방도 갖고 있었다는 사실에 듣는 내가 더 당황하기도 하는 게 우리네 삶일 테니 말이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통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사키 후미오의 신간 <나는 습관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를 읽으면서 빠르게 들었던 생각은 '뭐야, 이 사람 알고 보니 나와 비슷한 과잖아.' 하는 거였다. 어린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한참 회자되던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 "척 보면 앱니다."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만큼 저자의 성향이 나와 비슷하다고 느껴졌던 것인데, 막상 책의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그와 같은 성향은 꼭 나나 저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네 보통 사람들 대다수에게서 나타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을 때는 그 다음에 실천해야 할 습관인 요가도, 명상도 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1장에서 말했듯이 일찍 일어나지 못해서 '자기부정'이 생기고 의지력을 잃은 것이다. 그러면 남은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내기도 한다." (p.123)

 

헤비 스모커였던 나는 담배를 끊은 지 올해로 꼭 4년이 되었다. 책의 리뷰를 쓰면서 나의 경험을 내세운다는 건 왠지 어색하고 어울릴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굳이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이 책을 읽기도 전에 나는 이미 저자가 생각했던 방식을 웬만큼 적용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규칙적으로 아침운동을 하는 건 2,30년도 더 되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이 책에서 저자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남들보다 의지가 강해서도 아니고 인내심이 강해서도 아니다.

 

내가 담배를 끊을 당시의 결심에 대해서 말해보면 이렇다. 나는 흡연에 있어서는 유독 관대했던 까닭에 금연을 이어가리라고는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대가 크지 않았다. 나는 그저 전날 한 개비의 담배도 피우지 않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상쾌한 기분을 단 한 번이라도 느껴보고 싶었을 뿐이다. 비록 그게 단 한 번으로 끝날지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참기 힘든 시간이었지만 하루 24시간 금연에 성공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생각해보니 다시 담배를 피운다면 그토록 힘들게 참았던 전날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그 수고와 노력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만 더 참아보자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전날의 수고와 노력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함 이런 것들로 인해 금연을 이어가는 날이 점점 늘어만 갔고, 급기야 과거의 나로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이르고야 말았다. 그렇게 나는 4년 넘게 금연을 이어오게 되었다. 물론 고비가 없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나 스스로를 격려하고 중간에 그만두지 않도록 다독였던 과정은 저자가 이 책에 쓰고 있는 '습관을 만드는 50단계'와 비슷했다.

 

저자 역시 '습관'에 대해 연구하면서 평생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금주, 5시 기상, 명상, 요가, 영어공부 등을 습관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나 역시 새해 결심을 작심삼일로 끝내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곤 한다. 아침운동을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뭐냐고 종종 묻곤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대답이 있다. '5분의 법칙'을 지켜라. 물론 그런 법칙은 세상에 없다. 오랜 세월 아침운동을 하고는 있지만 나 역시 시시때때로 게으름을 부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하는 까닭에 알람에 맞춰 눈을 뜨면 그 순간부터 5분 이상을 '나갈까 말까' 고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대개 5분 이상 고민하면 유혹에 넘어가게 마련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므로 5분 이상 생각하지 말자는 게 내가 원칙으로 지키는 '5분의 법칙'이다.

 

이 책 <나는 습관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는 심리학, 행동경제학, 뇌과학을 근거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은 습관을 들이고, 나쁜 습관을 제거할 수 있는지 아주 친절하게 차근차근 일러준다. 유명 인사의 다양한 사례와 저자의 경험담을 통해 나처럼 의지가 약한 사람도 좋은 습관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특급 비결을 알려주는 셈이다.

 

"지속만 한다면, 덧셈밖에 할 수 없는 센스라 해도 재능은 누적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센스 있는 사람이 어떤 일을 습득하는 속도를 보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바보 같다고 느끼고는 그만둔다. 재능이 없다기보다 단순히 지속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재능이 그곳에서 멈추었을 뿐이다." (P.279)

 

2019년이 시작된 지도 벌써 1달이 지나가고 있다. 새해 계획은 그저 계획으로만 세웠을 뿐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이 책을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2월에 있는 설에 맞춰 신년 계획을 다시 세워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실천만 하면 된다. 실천을 할 땐 명심하시길. '아하, 5분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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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제주 생활을 청산하고 '도시 생활자'로 복귀한 지인 한 분을 만났다. 제주도민이 되기로 결심했던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는 세상을 다 얻은 듯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그랬던 그가 '나는 도시인이다!'를 외치며 가족들과 함께 '짜잔' 하고 돌아왔다는 소식은 자연인을 소망하는 나에게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제주도로 떠날 때 그의 집이 팔리지 않아 세를 준 채 떠났었다는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그에게는 돌아올 집이 있었던 셈이었다집도 절도 없는 상태였다면 도시로 복귀한다는 게 손바닥 뒤집듯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를 서둘러 만났던 건 그가 도시로 복귀하게 된 데 대한 그의 거친 변명이라도 들어봐야겠다는 심산이었다.

 

그의 변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자신은 제주도의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관계에서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도 없이 호젓한 생활을 즐기려는 목적으로 제주도행을 결심했는데 막상 이사를 하고 보니 제주도는 서울 뺨치는 개발 붐과 함께 도시 곳곳이 파헤쳐지고, 무분별한 관광객과 이주민들로 인해 도시에 있을 때보다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실토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심을 피해 외곽으로 이사를 했더니 그를 따라 도심이 옮겨진 꼴이라고 했다. 도심이 복잡해지면 경제적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시의 외곽으로 이사를 가고 가난하고 갈 곳 없는 사람들만 도심에 남는 것처럼 제주도도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들이 종종 착각하는 게 있다. 자신이 사는 곳이 개발되면 땅값도 오르고 뭔가 큰 혜택이 올 것이라고 믿게 되지만 실은 이득을 보는 쪽은 건설회사와 세금을 걷는 지방자치단체뿐이고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멀지 않은 시기에 큰 불편을 겪게 된다는 사실이다. 반짝 올라갔던 건물 시세도 얼마 지나지 않아 뚝 떨어지게 마련이고. 만약 돈을 벌 요량이었다면 건설 붐이 일기 전에 이사를 했다가 건설이 완공되는 시점에 바로 빠져나와야 한다. 2의 고향으로 삼아 눌러앉을 생각이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개발은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로서는 큰 손해를 보지 않고 제주도를 벗어났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살다 보면 그런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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