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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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학창 시절 학생들이 하는 가장 많은 불평불만은 취약한 과목의 학습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아니었을까. 예컨대 "난 커서 장사나 할 건데 돈 계산이나 할 줄 알면 되지 미적분은 도대체 왜 배우는 거야?"라거나 "소크라테스니 니체니 하는 개똥철학을 배워서 도대체 어디다 써먹겠다는 거야?"라는 식의 불만에 찬 말들은 누구나 한 번쯤 내뱉었음직한 불평이었을 것이다. 물론 학생들의 선호나 관심에 따라 불평의 대상이 되는 과목은 각자 달랐겠지만 말이다. 누구에게는 수학이, 누구에게는 과학이, 또 누구에게는 윤리나 철학이, 때로는 사회나 국어가...

 

일본의 유명한 컨설턴트인 야마구치 슈의 저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는 독자라면 먼저 자신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철학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던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러나 이 책은 서양 철학을 시간 순서로 요약한 철학 입문서는 아니다. 자신이 속한 모임에 나가 자신의 학식을 부풀리기 위한 목적으로 달달 외우게 되는 그런 책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를테면 "니체 하면 '신은 죽었다'라는 말이 떠오른다'는 둥 어떻게든 자신의 얕은 지식을 들키지 않기 위한 방안으로서 철학을 공부했던 사람들이 생각하는 철학의 효용은 이 책에서 논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철학이라면 으레 자신의 무식을 가리기 위한 치장으로서 생각했던 까닭에 철학은 실용적인 학문이라기보다는 항상 현실과는 동떨어진, 학문으로서의 학문으로만 존재하는 듯하다.

 

"철학 등의 교양이 소홀히 다뤄진 원인 중에는 철학 연구자들의 태만도 있다. 원래 철학은 무기로서, 혹은 도구로서 상당히 유용한데도 그 쓸모에 대해 계몽이나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그들이 해 온 일을 들여다보면 철학에 관해 작성한 문헌은 고작 자신들의 철학과 사상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독선적으로 주장하는 전단지 광고에 불과하거나, 그도 아니면 전문가들에게만 통하는 설계도 해설 아니면 자기네들끼리 나누는 고생담이 대부분이었다." (p.34)

 

책의 목차를 보면 책의 내용을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철학을 배우는 새로운 방법과 왜 철학 앞에서 좌절하는가? 를 설명한 1부 '무기가 되는 철학'에 이어 이 책의 본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2부 '지적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50가지 철학·사상'에서는 1장 '사람'에 관한 핵심 콘셉트, 왜 이 사람은 이렇게 행동할까?, 2장 '조직'에 관한 핵심 콘셉트, 왜 이조직은 바뀌지 않을까?, 3장 '사회'에 관한 핵심 콘셉트,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4장 '사고'에 관한 핵심 콘셉트, 어떻게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의 순서로 쓰여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철학 이론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철학을 쉽게 접목할 수 있을까를 연구한 실용서로서의 철학이다.

 

"우리는 외부의 현실과 자신을 각각 별개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를 부정했다. 외부의 현실은 우리가 어떤 시도를 하느냐에 따라, 혹은 하지 않느냐에 따라 '그러한 현실'이 된 것이므로 외부의 현실은 곧 '나의 일부'이고 나는 '외부 현실의 일부'다. 즉 외부의 현실과 나는 결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현실을 자신의 일로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태도, 즉 앙가주망이 중요하다." (p.96)

 

우리는 종종 자신이 속한 조직을 등한시하거나 조직의 문제는 자신의 책임과는 무관한 어떤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한 경향은 직급이 낮을수록 강화된다. 어쩌면 우리는 조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임원을 비롯한 소수의 몇몇 사람만 가능한 일이라고 단정하거나 그렇게 믿는 까닭에 자신은 그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파편화된 부속품쯤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조직의 혁신이 어중간한 상태에서 흐지부지 좌절되고 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영자, 간부, 실무자를 나란히 놓고 보면 환경 변화의 전망을 바라보는 사정거리가 경영자, 간부, 실무자의 순서로 점점 짧아진다. 경영자는 적어도 10년 앞의 일을 내다보지만 간부는 기껏해야 5년, 실무자는 1년 후의 일만 내다볼 뿐이다. 그러니 10년 앞을 내다보는 경영자라면 머지않아 다가올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변혁의 필요성을 늘 의식하겠지만, 눈앞에 닥친 일에만 매진하는 간부나 현장 책임자는 자세한 설명 없이 이대로는 위험하니 방식과 방향을 바꾸라는 지적을 받으면 충분한 해동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바로 혼란기로 돌입하게 된다." (p.152)

 

오늘날 기업 경영의 가장 큰 화두는 '혁신'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우리는 복잡한 현상에 매몰되어 본질을 외면하거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이 없다. 우리가 본질을 파악하고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학문이 철학이며 과거 철학자들이 세상과 인간을 향해 던졌던 질문을 통해 우리는 지금 눈앞에 닥친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생각의 틀을 배울 수 있다. 가뜩이나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가 보는 현상에만 휩쓸리면 해결책은커녕 문제의 본질마저 파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므로 경영 전반에 걸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마다 현실의 상황을 철학이나 심리학, 경제학 개념에 대입하여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철학 · 사상에 관한 용어가 바로 그러하다. 이들 용어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의 앞머리에서 언급한 대로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나 현상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길러 준다. 개념이 통찰력을 길러 줄 수 있는 것은, 개념이 바로 새로운 세계를 파악하는 관점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p.297)

 

철학이 때로는 우리의 무식을 가려주는 방어막이 되기도 한다.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철학을 하는 주된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철학의 효용이 너무 일방적으로 좁혀진 듯한 느낌이 들고, 우리가 철학의 다양한 효용을 미처 배워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라고 했던 앨런 케이의 말처럼 우리는 시시각각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한 변화의 조류 속에서 조금이라도 방심하거나 현상에만 현혹되면 우리는 금세 도태되고 만다. 본질을 파악하고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식, 혹은 방향을 안내하는 길잡이로서 철학보다 유용한 학문은 없다. 우리가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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