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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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삶은 정확히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감이 오거나 어떤 근거나 데이터를 통해 예측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우리는 단지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협박용(?) 단어로서 혹은 비슷한 세대 간의 작업용(?) 멘트로서 '4차 산업혁명'을 입에 올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이렇게 자주 사용하다 보니 왠지 친근해진 느낌도 들고, '4차 산업혁명'이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온 듯한 느낌도 들긴 합니다.

 

공부는 하지 않고 종일 게임만 하는 아이들에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렇게 게임만 하면 너 거지되기 십상이다."라거나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있는데 우리도 잘 준비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공허한 말을 지인들과의 대화 중간에 슬쩍 끼워넣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정확한 의미도 모르는 채 이곳저곳에 갖다 붙이곤 하지요. 4차 산업혁명의 권위자이자 성균관대 교수이기도 한 최재붕 교수의 저서 <포노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던 건 아마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되었던 듯합니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권력이 소비자에게로 이동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산업 생태계의 지각 변동이 발생했고, 모든 기업의 흥망성쇠도 소비자의 선택이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결국 포노 사피엔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답'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야 좋은 인재가 되고, 사람을 잘 배려할 줄 알아야 성공하는 인재가 됩니다." (p.13 '프롤로그' 중에서)

 

2007년 스티브 잡스에 의해 출시된 스마트폰으로 인해 인류는 '혁명'에 버금가는 큰 변화를 맞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곤 하지요. 시장의 참여자가 미처 눈치를 채기도 전에 많은 변화가 이만큼 진전되는 것이죠. 저자는 이 책에서 1장 포노 사피엔스, 신인류의 탄생, 2장 새로운 문명, '열광'으로 향한다, 3장 온디맨드, 비즈니스를 갈아엎다, 4장 지금까지 없던 인류가 온다의 총 4장에 걸쳐 우리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롭고도 급격한 변화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던 지상파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검색 포털과 유튜브의 점유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는가 하면 은해의 지점 창구 처리 비중이 급격히 줄고 무인화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대형마트의 매출은 줄고 온라인 판매가 급증하는 추세이며 결제에 있어서도 현금보다는 스마트폰 결제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누가 시켜서 된 것이 아니라 '포노 사피엔스'라는 신인류의 자발적 선택이라는 데 저자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소우주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손안에 작은 지구 하나씩을 들고 살아가게 된 셈입니다.

 

"인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자발적으로 소비 행동을 바꿨습니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급격한 행동 변화는 연쇄적으로 시장 생태계 전반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변화가 원인이 되어 제조업까지 영향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슈밥이 언급한 4차 산업혁명입니다." (P.143)

 

구시대의 엄격한 질서 속에서 살아왔던 우리로서는 이와 같은 변화가 썩 달갑지는 않을 듯합니다. 게다가 스마트폰으로 인한 부작용은 곳곳에서 발견되는 까닭에 가뜩이나 부정적이던 시각이 더욱 부정적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화는 구성원 개개인이 거부하거나 과거로 되돌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변화에 대한 수용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변화에 대한 저항자의 입장에는 설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특징과 변화된 모습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장의 변화와 소비 트렌드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는 지금이 명확한 '혁명의 시대'임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새로운 문명을 공부해야 하고,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읽고자 노력해야 하고, 킬러 콘텐츠를 만드는 전문적인 기술도 익혀야 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노력들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사람'입니다. 혁명의 시대, 결국 답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로 이 책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P.332 '에필로그' 중에서)

 

오늘도 우리는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고 있습니다. 문명의 찌꺼기와 같은 미세먼지가 다른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처럼 스마트폰으로 인한 부작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결국 사람의 몫인 것처럼 스마트폰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고 건강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도 결국 우리의 몫입니다. 다행히 북서풍이 불어 한반도의 대기 상태를 잠시나마 좋아지게 한다니 그저 반가울 따름입니다. 문명의 발전은 이렇듯 명암이 공존하는가 봅니다. 언제나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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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인 경칩(驚蟄), 한자로는 놀랄 경(驚)에 숨을 칩(蟄)을 씀으로써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 뱀, 벌레 등이 따뜻해진 봄기운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는 의미를 지닌다.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속담처럼 이제 어지간한 추위는 다 갔지 싶다. 그러나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놀랄 일은 봄기운뿐이 아니다. 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미세먼지에 한 번, 그리고 1심에서 징역 15년형을 받은 중범죄자를 보석으로 석방했다는 소식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았을까. 아무리 전직 대통령이라 할지언정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야 하거늘...

 

지난 정권에서 있었던 사법농단 탓인지 나와는 그닥 관련도 없는 듯 여겨지는 판사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우게 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하여 권순일 대법관, 차한성 전 대법관,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 신광렬, 조의연, 성창호 등등. 가장 깨끗한 조직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법부가 가장 비열하고 썩어빠진 조직이었다는 사실에 분개하지 않을 국민이 없을 터, 이제는 정준영이라는 이름도 뇌리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가수 정준영이 아니라 판사 정준영이.

 

물론 정치권에 몸 담고 있는 인간쓰레기들, 이를테면 국회에서 '갠세이'니 '야지'니 하는 일본어를 서슴없이 내뱉는 인간들이나 '우리한테 개기면'과 같은 막말을 일삼는 언년이 등 입에 올리기도 싫은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는 지금 자욱한 미세먼지를 보면서 환경을 걱정하기에 앞서 썩어빠진 사법부와 정치인들을 몰아냄으로써 우리의 정치 환경부터 깨끗이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징역 15년형의 중범죄자를 돌연사 운운하며 풀어주었다는 소식에 잠에서 깬 개구리도 놀랐다는 오늘, 오늘은 경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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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소피 드 빌누아지 지음, 이원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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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가사와 반복적인 리듬의 후크송이 묘한 중독성을 유발하는 것처럼 동화와 같은 단순한 스토리 라인의 소설이 독자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말하자면 결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뻔한 구조의 스토리에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도 자신의 예측이 맞아떨어진 것에 내심 뿌듯해하기도 한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구조이지만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소설의 결말을 알아맞히기라도 한 것처럼.

 

프랑스의 기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소피 드 빌누아지의 신작 소설 <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도 그런 소설이다. 단출한 등장인물과 단순한 스토리 라인, 코믹하면서도 빠른 전개, 그리고 약간의 반전이 있는 행복한 결말 등으로 이 소설을 설명할 수 있다. 제목과는 다르게 유쾌하고 밝은 소설이라는 게 반전이라면 큰 반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의 시작은 그닥 유쾌하지 않다.

 

"'아버님께서 오늘 아침 숨을 거두셨습니다. 아버님은 떠나셨어요. 고통은 없었습니다.' 나는 이제 고아다. 마흔다섯 살짜리 고아는 정말이지 불쌍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세상에 피붙이가 아무도 없으니 고아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마흔다섯 살이나 먹은 나를 입양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나는 유통기한이 지났다. 이를테면 자식을 갖기에도, 한 남자를 갖기에도 기한이 지났으니까." (p.7)

 

아버지의 사망과 함께 45살에 고아가 된 실비 샤베르. 외동딸로 성장한 그녀에게는 이제 가족이라곤 아무도 없다. 기업 법무팀에서 일하는 그녀는 외롭고 지겨운 주말보다는 차라리 일을 하는 주중이 더 좋다. 어느 날 센 강 주변을 산책하던 실비는 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한 한 남자를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의식을 잃고 둥둥 떠내려가는 그 남자를 보며 실비는 묘한 평화를 느낀다. 이를 지켜보던 한 남자가 물에 뛰어들어 그 남자를 구하고 주변 사람들이 그 의인에게 박수를 치지만 실비는 오히려 물에 뛰어들 용기를 낸 그 남자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진정한 평화를 얻기 위해 자살을 결심한다. 디데이를 크리스마스로 정한 실비는 자신의 결심을 누군가에게 말하기 위해 심리치료사를 찾아간다.

 

근육질 몸매의 매력적인 남자 프랑크와 45세 노처녀 실비의 만남은 심리치료사와 의뢰인이라는 사무적인 관계를 떠나 마치 연인과 같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런 안배는 독자들이 달달한 결말을 예측하도록 하는 작가의 시선 유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노련한 독자는 이미 눈치를 챌 일이지만 어수룩한 독자는 프랑크와 실비의 해피엔딩을 기대하며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크리스마스에 자살을 감행하겠다는 실비를 프랑크는 말리지 않는다. 다만 이제껏 살면서 해보지 못했던 일을 일주일에 한 가지씩 해보라며 과제를 줄 뿐이다. 실비는 프랑크의 제안에 따라 브라질리언 왁싱을 시도하다 실신하여 병원에 실려가기도 하고, 마트에서 물건을 슬쩍하기도 하고, 처음 만난 남자와 진한 정사를 치르기도 한다. 자신의 평소 성격으로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일들이지만 자살을 핑계 삼아 용기를 냈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아주 친근했어요. 그러다 그 직후에 슬픔이 몰려오는 걸 느꼈는데 걷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놀라웠지만 그게 아주 좋은 영향을 준 거 같아요. 그 슬픔이 모든 걸 날려버렸거든요. 이제 내 안에 슬픔이나 미련 같은 건 없어요. 나는 각오가 됐어요. 날짜를 앞당기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p.125~p.126)

 

프랑크와 헤어져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기 위해 플랫폼에 들어섰을 때 실비는 맨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성 노숙자를 보게 된다. 지독한 냄새를 참아가며 실비는 자석에 이끌리듯 다가간다. 손을 내미는 노숙자의 손을 잡고 실비는 소방서에 전화를 건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듯 보이는 노숙자를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 구급대원이 도착했을 때 여성 노숙자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 구급대원으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실비는 심한 충격을 받고 구토를 한다. 도와줄 사람에게 연락을 하라는 구급대원의 조언에 따라 실비는 프랑크에게 전화를 하고...

 

"나는 거의 혼자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 저녁, 혼자 죽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나도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잇길 바란다. 지하철역 플랫폼이나 따뜻한 욕조 안이나 홀로 죽는 건 마찬가지다. 비참하고 고독한 건 마찬가지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p.138)

 

우리는 살면서 조금만 힘이 들어도 죽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한 번은 죽을 운명, 조금 일찍 가거나 조금 늦게 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겠다 싶겠지만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사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살고자 했던 모습은 살아 있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된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쉽게 포기해버린다면 그것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준다. 그리고 그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할 이유는 일차적으로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타인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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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적인 원초적 본능을 인식하면 할수록 삶은 더 허망해지게 마련이다. 인간 존재는 원초적이고 맹목적인 본능에 치중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소위 '위버멘쉬'를 지향하는 존재이기에 원초적 본능에만 몰두하는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면 볼수록 한심하고 딱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세월을 소진한다는 게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이렇듯 우리의 인식 체계에서 반복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이 심어지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에 대해서도 보수, 꼴통, 탄핵, 노인, 기독교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심해지고, 엄마 부대의 극성으로 인해 엄마에 대한 이미지마저 부정적으로 변하는가 하면, 어버이 연합으로 인해 어버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조차 마냥 조심스럽기만 하다. 뿐인가 태극기 부대가 시위를 할 때마다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를 들고 나오는 바람에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이미지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기성세대의 역할은 다음 세대가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데 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을 보면 그 반대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의 자신의 몸에 지속적으로 자해를 하고, 급기야는 삶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 기성세대가 얼마나 제 역할을 못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미세먼지 가득했던 삼일절에도 태극기 부대는 여전히 추한 모습을 보였고, 아이들에게 미세먼지보다 더한 독성 물질을 아이들의 영혼에 심어주고 있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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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2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05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제 너는 노땡큐 - 세상에 대들 용기 없는 사람이 뒤돌아 날리는 메롱
이윤용 지음 / 수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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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일정한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이나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러한 스트레스를 수용하는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단단하냐에 따라 관계에 대한 평가도 천차만별로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예컨대 아주 여리고 민감한 사람은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자신의 수첩에서 상대방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을 테고 둔하고 태평한 사람은 웬만한 스트레스에는 끄덕도 하지 않은 채 그러려니 받아 넘기지 않을까 싶다.

 

나도 한때는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억지로 만나고, 그렇게 만나서 매번 싸우고 헤어지느니 숫제 만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나와 다툼이 잦은 사람일수록 내 삶에 있어 비중이 큰 사람이거나 만남이 잦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가볍게 만나고 가볍게 헤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다. 일 년에 딱 한 번씩만 아주 짧게 만나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아무리 고약한 행동을 한다한들 참아 넘길 수 있을 테지만 매일 만나는 사람이 두어 달에 한 번씩 그런 행동을 해도 참기 힘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신의 수첩에서 누구를 지우고 누구를 남겨두어야 할지 명확해지지 않을까. 오랜 시간을 참고 지내야 한다는 게 아득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매사 둔감하지 못한 것도 일종의 핸디캡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까닭일까 일본의 정형외과 의사인 와타나베 준이치는 질책을 당해도 실패해도 굴하지 않는 평상심을 유지하는 능력, 즉 둔감력이 있어야 일에 성공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었다.

 

"사랑하기로 했고, 그래서 그 대상이 되어준 그에게 고마웠으며 그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리하여 그가 이민 가던 날, 어디로 가는지 모를 비행기를 보며 나는 그의 행복을 빌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건 뭐지? 그의 문자를 받는 순간, 뭐랄까, 아름답게 포장했던 나의 그 시절이 산산조각 깨지는 느낌이랄까.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게 느껴졌다. 나는 애써 너를 아름답게 기억하려 하는데, 너는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나를 또 너의 문어발 어장에 넣으려 하는구나. 그리하여 나는 그에게 짧은 답문을 보냈다. 만나고 싶지 않아.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였다. 네 폰에서 나 좀 삭제해줄래?" (p.40)

 

20년 동안 라디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윤용의 세 번째 에세이 <이제 너는 노땡큐>는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자신이 상대하기 싫은 사람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는 방법을 말하기도 하지만 억눌리거나 속상했던 감정을 말끔히 털어내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연애에서, 직장에서, 때로는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마냥 끌어안고 자학하거나 자책하면서 속을 끓일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에 상처로 남을 만한 사람과 감정을 삭제하고, 살아오면서 힘이 되어준 사람들과 용기가 되는 말들을 저장하자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생각을 버릴 수 있도록 연습시켜주는 자기계발서는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련하도록 방법을 제시하는 훈련서는 더욱 아.니.죠. 다만, 소심해서 세상에 지를 용기 없는 저 같은 사람이, 앞에서는 아무 말 못 해도 뒤돌아 혀를 내미는 메롱 같은 것. 상처 준 사람을 찾아가 따지지는 못해도 집에 와 조용히 그의 문자를 삭제하는 꼬물거림 같은 것. 그 작은 메롱과 꼬물거림으로 나를, 내 감정을, 보호하며 살고 싶습니다." ('Prologue' 중에서)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Part 1. 감정 끊는 법을 저장하시겠습니까?, Part 2. 유머를 잃지 않게 해주세요, Part 3. 마음을 내어주고 싶은 당신이 있어서, Part 4. 우리는 사람이지, 우렁이가 아니니까요'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소시민이 어떻게 하면 덜 상처 받고, 덜 괴로워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 작가 나름대로 터득한 노하우를 전하는 감정의 반창고인 셈이다.

 

"나는 받아본 사람이 줄 줄도 안다고 믿는다. 그러니 상황이 어려우면 고맙게 받자. 그러다 내 상황이 좋아지면 즐겁게 주자. 우리 삶이란 게, 상황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므로. 게다가 우리는 수신 불가의 쿠팡 문자가 아니라 마음까지 주고받는 '사람'이므로." (p.148)

 

대중의 마음을 잘 포착해야 하는 방송 작가의 글은 대개 대단히 감각적이고 세련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우리와 같은 소시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때로는 울리고 웃긴다. 글을 읽다 보면 통쾌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고마웠던 사람들을 떠올리게도 된다. 톡톡 터지는 꽃망울처럼 한 꼭지 한 꼭지의 글들이 독자의 마음을 붙잡는다. 싱그러운 봄에 잘 어울릴 듯한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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