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는 노땡큐 - 세상에 대들 용기 없는 사람이 뒤돌아 날리는 메롱
이윤용 지음 / 수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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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일정한 사람을 만나는 사람들이나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러한 스트레스를 수용하는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단단하냐에 따라 관계에 대한 평가도 천차만별로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예컨대 아주 여리고 민감한 사람은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자신의 수첩에서 상대방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을 테고 둔하고 태평한 사람은 웬만한 스트레스에는 끄덕도 하지 않은 채 그러려니 받아 넘기지 않을까 싶다.

 

나도 한때는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억지로 만나고, 그렇게 만나서 매번 싸우고 헤어지느니 숫제 만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나와 다툼이 잦은 사람일수록 내 삶에 있어 비중이 큰 사람이거나 만남이 잦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가볍게 만나고 가볍게 헤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다. 일 년에 딱 한 번씩만 아주 짧게 만나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아무리 고약한 행동을 한다한들 참아 넘길 수 있을 테지만 매일 만나는 사람이 두어 달에 한 번씩 그런 행동을 해도 참기 힘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신의 수첩에서 누구를 지우고 누구를 남겨두어야 할지 명확해지지 않을까. 오랜 시간을 참고 지내야 한다는 게 아득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매사 둔감하지 못한 것도 일종의 핸디캡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까닭일까 일본의 정형외과 의사인 와타나베 준이치는 질책을 당해도 실패해도 굴하지 않는 평상심을 유지하는 능력, 즉 둔감력이 있어야 일에 성공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었다.

 

"사랑하기로 했고, 그래서 그 대상이 되어준 그에게 고마웠으며 그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리하여 그가 이민 가던 날, 어디로 가는지 모를 비행기를 보며 나는 그의 행복을 빌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건 뭐지? 그의 문자를 받는 순간, 뭐랄까, 아름답게 포장했던 나의 그 시절이 산산조각 깨지는 느낌이랄까.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게 느껴졌다. 나는 애써 너를 아름답게 기억하려 하는데, 너는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나를 또 너의 문어발 어장에 넣으려 하는구나. 그리하여 나는 그에게 짧은 답문을 보냈다. 만나고 싶지 않아.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였다. 네 폰에서 나 좀 삭제해줄래?" (p.40)

 

20년 동안 라디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윤용의 세 번째 에세이 <이제 너는 노땡큐>는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자신이 상대하기 싫은 사람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는 방법을 말하기도 하지만 억눌리거나 속상했던 감정을 말끔히 털어내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연애에서, 직장에서, 때로는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마냥 끌어안고 자학하거나 자책하면서 속을 끓일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에 상처로 남을 만한 사람과 감정을 삭제하고, 살아오면서 힘이 되어준 사람들과 용기가 되는 말들을 저장하자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생각을 버릴 수 있도록 연습시켜주는 자기계발서는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련하도록 방법을 제시하는 훈련서는 더욱 아.니.죠. 다만, 소심해서 세상에 지를 용기 없는 저 같은 사람이, 앞에서는 아무 말 못 해도 뒤돌아 혀를 내미는 메롱 같은 것. 상처 준 사람을 찾아가 따지지는 못해도 집에 와 조용히 그의 문자를 삭제하는 꼬물거림 같은 것. 그 작은 메롱과 꼬물거림으로 나를, 내 감정을, 보호하며 살고 싶습니다." ('Prologue' 중에서)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Part 1. 감정 끊는 법을 저장하시겠습니까?, Part 2. 유머를 잃지 않게 해주세요, Part 3. 마음을 내어주고 싶은 당신이 있어서, Part 4. 우리는 사람이지, 우렁이가 아니니까요'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소시민이 어떻게 하면 덜 상처 받고, 덜 괴로워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 작가 나름대로 터득한 노하우를 전하는 감정의 반창고인 셈이다.

 

"나는 받아본 사람이 줄 줄도 안다고 믿는다. 그러니 상황이 어려우면 고맙게 받자. 그러다 내 상황이 좋아지면 즐겁게 주자. 우리 삶이란 게, 상황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므로. 게다가 우리는 수신 불가의 쿠팡 문자가 아니라 마음까지 주고받는 '사람'이므로." (p.148)

 

대중의 마음을 잘 포착해야 하는 방송 작가의 글은 대개 대단히 감각적이고 세련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우리와 같은 소시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때로는 울리고 웃긴다. 글을 읽다 보면 통쾌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고마웠던 사람들을 떠올리게도 된다. 톡톡 터지는 꽃망울처럼 한 꼭지 한 꼭지의 글들이 독자의 마음을 붙잡는다. 싱그러운 봄에 잘 어울릴 듯한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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