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소피 드 빌누아지 지음, 이원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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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가사와 반복적인 리듬의 후크송이 묘한 중독성을 유발하는 것처럼 동화와 같은 단순한 스토리 라인의 소설이 독자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말하자면 결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뻔한 구조의 스토리에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도 자신의 예측이 맞아떨어진 것에 내심 뿌듯해하기도 한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구조이지만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소설의 결말을 알아맞히기라도 한 것처럼.

 

프랑스의 기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소피 드 빌누아지의 신작 소설 <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도 그런 소설이다. 단출한 등장인물과 단순한 스토리 라인, 코믹하면서도 빠른 전개, 그리고 약간의 반전이 있는 행복한 결말 등으로 이 소설을 설명할 수 있다. 제목과는 다르게 유쾌하고 밝은 소설이라는 게 반전이라면 큰 반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의 시작은 그닥 유쾌하지 않다.

 

"'아버님께서 오늘 아침 숨을 거두셨습니다. 아버님은 떠나셨어요. 고통은 없었습니다.' 나는 이제 고아다. 마흔다섯 살짜리 고아는 정말이지 불쌍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세상에 피붙이가 아무도 없으니 고아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마흔다섯 살이나 먹은 나를 입양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나는 유통기한이 지났다. 이를테면 자식을 갖기에도, 한 남자를 갖기에도 기한이 지났으니까." (p.7)

 

아버지의 사망과 함께 45살에 고아가 된 실비 샤베르. 외동딸로 성장한 그녀에게는 이제 가족이라곤 아무도 없다. 기업 법무팀에서 일하는 그녀는 외롭고 지겨운 주말보다는 차라리 일을 하는 주중이 더 좋다. 어느 날 센 강 주변을 산책하던 실비는 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한 한 남자를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의식을 잃고 둥둥 떠내려가는 그 남자를 보며 실비는 묘한 평화를 느낀다. 이를 지켜보던 한 남자가 물에 뛰어들어 그 남자를 구하고 주변 사람들이 그 의인에게 박수를 치지만 실비는 오히려 물에 뛰어들 용기를 낸 그 남자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진정한 평화를 얻기 위해 자살을 결심한다. 디데이를 크리스마스로 정한 실비는 자신의 결심을 누군가에게 말하기 위해 심리치료사를 찾아간다.

 

근육질 몸매의 매력적인 남자 프랑크와 45세 노처녀 실비의 만남은 심리치료사와 의뢰인이라는 사무적인 관계를 떠나 마치 연인과 같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런 안배는 독자들이 달달한 결말을 예측하도록 하는 작가의 시선 유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노련한 독자는 이미 눈치를 챌 일이지만 어수룩한 독자는 프랑크와 실비의 해피엔딩을 기대하며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크리스마스에 자살을 감행하겠다는 실비를 프랑크는 말리지 않는다. 다만 이제껏 살면서 해보지 못했던 일을 일주일에 한 가지씩 해보라며 과제를 줄 뿐이다. 실비는 프랑크의 제안에 따라 브라질리언 왁싱을 시도하다 실신하여 병원에 실려가기도 하고, 마트에서 물건을 슬쩍하기도 하고, 처음 만난 남자와 진한 정사를 치르기도 한다. 자신의 평소 성격으로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일들이지만 자살을 핑계 삼아 용기를 냈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아주 친근했어요. 그러다 그 직후에 슬픔이 몰려오는 걸 느꼈는데 걷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놀라웠지만 그게 아주 좋은 영향을 준 거 같아요. 그 슬픔이 모든 걸 날려버렸거든요. 이제 내 안에 슬픔이나 미련 같은 건 없어요. 나는 각오가 됐어요. 날짜를 앞당기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p.125~p.126)

 

프랑크와 헤어져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기 위해 플랫폼에 들어섰을 때 실비는 맨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성 노숙자를 보게 된다. 지독한 냄새를 참아가며 실비는 자석에 이끌리듯 다가간다. 손을 내미는 노숙자의 손을 잡고 실비는 소방서에 전화를 건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듯 보이는 노숙자를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 구급대원이 도착했을 때 여성 노숙자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 구급대원으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실비는 심한 충격을 받고 구토를 한다. 도와줄 사람에게 연락을 하라는 구급대원의 조언에 따라 실비는 프랑크에게 전화를 하고...

 

"나는 거의 혼자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 저녁, 혼자 죽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나도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잇길 바란다. 지하철역 플랫폼이나 따뜻한 욕조 안이나 홀로 죽는 건 마찬가지다. 비참하고 고독한 건 마찬가지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p.138)

 

우리는 살면서 조금만 힘이 들어도 죽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한 번은 죽을 운명, 조금 일찍 가거나 조금 늦게 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겠다 싶겠지만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사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살고자 했던 모습은 살아 있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된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쉽게 포기해버린다면 그것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준다. 그리고 그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가 끝까지 살아남아야 할 이유는 일차적으로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타인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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