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감력 수업 - 신경 쓰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
우에니시 아키라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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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준이치의 <둔감력>을 읽었던 건 몇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이야 비슷한 제목의 책이 몇 권 더 출간되는 바람에 '둔감력'이라는 단어가 그리 낯설지 않지만 와타나베 준이치가 책을 출간했을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대개 '둔감한 것도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나?' 하면서 의아해했었다. 그러나 그의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하,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둔감한 것보다 예민한 게 능력이라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책.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둔감한 게 능력인 시대에 살고 있다. 언제부터였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것만은 확실하다. 육체노동이 주가 되지 않는 시대에 사람들은 육체적 질병보다는 정신적 질병을 더 두려워하게 되었고, 둔감하다는 건 육체적 내성에 버금가는 정신적 내성의 큰 축으로 작용한다는 걸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세균으로부터 육체를 보호하기 위해 페니실린이 필요한 것처럼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둔감력이 요구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내 떠나지 않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그래, 그것까지는 알겠어. 작은 일에도 파르르 화를 내거나 흔한 질책에도 세상 다 잃은 것처럼 의기소침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말이지. 그렇다면 타고난 천성이 예민한 사람은 도대체 어쩌란 말이야?' 하는 생각. 본성을 바꾸어 다시 태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둔감해지자' 하고 어느 날 갑자기 결심한다고 해서 무 자르듯 뚝딱 바뀌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심리학 박사이자 현직 카운슬러이기도 한 우에니시 아키라는 자신의 책 <둔감력 수업>에서 다른 사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힘, 즉 '둔감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에게 완벽함을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지 말아야 하죠. 모든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다른 사람에게 완벽함을 바라던 마음도 조금씩 사라집니다. 동료가 실수를 저질러도,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어도 둔감하게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다른 사람에게 완벽함을 바라지 않으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고민이 사라집니다." (p.59)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힐 수 잇는 여러 상황을 각각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제1장 '예민한 마음에 삶이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제2장 '주변에 함께하기 불편한 사람이 생겼다면?', 제3장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면?', 제4장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면?', 제5장 '예상하지 못한 위기에 처했다면?', 제6장 '얼굴 빨개지는 일을 마주했다면?', 제7장 '분노라는 감정을 이겨내기 힘들다면?', 제8장 '욕심이라는 빠져나오기 힘든 함정에 빠졌다면?', 제9장 '인생의 방향에 의문이 생겼다면?'으로 장을 나누고는 있지만 생각해보면 우리의 감정은 위에 나열한 하나의 원인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두 개 이상의 복합적인 원인으로 고로워하는 게 아닐까.

 

"심리학에서 말하는 분리화, 즉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면 '상황을 글로 쓰는 방법'이 효과적입니다. 특히 욱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 효과가 큽니다. 노트를 갖고 다니며 일상에서 화가 나거나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그 상황을 글로 적습니다." (p.167)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분노의 근원도, 경제적 상황이나 인간관계의 악화로 인한 고민의 근원도 결국은 '나'의 마음에 달린 문제일 뿐이다. 둔감력은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고 욕심과 분노에 휘둘리지 않게 해주는 '유연한 마음의 힘'이다. 그러므로 최악의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여유는 둔감력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둔감력을 기르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일과 관계, 감정의 중심에 항상 '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른 누군가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길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들 각자가 다 다른 사람이구나 하고 감탄하곤 하는 것이다. 이제껏 몰랐던 걸 처음으로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 모두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그리고 각자의 다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나의 기준으로 그들을 재단하려 했음을 깨닫게 된다. 나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나의 기준에 끼워 맞추기 위해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내고, 나도 다른 누군가의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과도한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결국 '다름'을 인정하면 모든 게 편안해질 텐데 순간순간 그 사실을 잊곤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따금 그 사실을 놓지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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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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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집 <공주님>의 표제작이기도 한 '공주님'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도발적인 소설의 첫 문장에 꽤나 당혹스러워했거나 조금쯤 놀라지 않았을까. '목을 매단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내가 겨우 다섯 살이었다는 게 다행이다.'라니.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도, 그때 나는 겨우 다섯 살이었다는 사실도, 그리고 다섯 살짜리 꼬마가 어머니의 죽은 모습을 발견했다는 사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커튼레일에 매달려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간식을 먹는다고 서술한다. 나와 같은 순진한 독자들로서는 가히 충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충격적이라기보다 엽기적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편으로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녀는 죽음으로써 나에게 그 후의 삶에 지침과 같은 걸 마련해주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리면 죽을 자유조차 가질 수 없다는 걸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필요로 하게 되면 그 사람의 자유를 빼앗게 된다는 것도. 나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쉽다고 생각하고 싶다. 기억은 쌓여가지만 그 기억 속에 어떤 불순물도 섞이게 하고 싶지 않다." (p.19~p.20)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인 '나'(도키노리)의 성격 형성이 그 장면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나'는 어머니가 죽은 후 외삼촌의 집에서 성장한다. 외삼촌 집에는 4살 위인 사촌 형 세이이치와 여동생 세이코가 있었다. 외숙모와 외삼촌은 '나'를  무척이나 배려해주었고, 세이이치 역시 '나'에게 잘 대해주었다. 그러나 여동생 세이코는 '나'와 성격이 비슷해서 반항적이고 거침이 없었다. 세이코는 '나'를 이성의 감정으로 '나'를 좋아하는 까닭에 '나'의 방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나'의 사생활을 감시한다. 대학생이 된 '나'는 선머슴 같은 동기생 여사친 '아사코'를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관심이 없으면서도 자신의 속내를 부담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어찌 보면 동성의 친구보다도 더 허물없는 사이였다.

 

"나와 아사코의 기본은 닮은 듯하면서 전혀 다르다. 그녀의 기본은 갈망하는 것을 선택했고, 나는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에게 부족한 걸 항상 갖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채워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기본을 가르쳐줄 세이이치와 같은 남자를." (p.64)

 

아사코와 나는 연인이 아닌 친구로서 늘 붙어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연극을 보는 도중에 속이 좋지 않았던 '나'는 그만 토하게 되고, 걱정이 되었던 아사코가 '나'와 함께 집으로 간다. 그런 인연으로 아사코는 결국 사촌 형의 애인이 된다. 세이이치의 연인이 된 아사코는 조금씩 변해간다. 가장 친한 남동생 같았던 아사코의 돌변이 달갑지 않았던 '나'. 사촌 여동생 세이코가 고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완강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 '나'는 세이코의 보호자로서 여행에 동반한다. 세이코는 '나'를 자극이라도 하려는 듯 급조한 남자 친구를 대동하지만, '나'와 세이코의 다정한 모습을 오해한 그는 결국 달아나고 만다. 세이코의 남자 친구인 다케시는 세이코가 피자 배달을 시키면서 만난 피자 배달부였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세이코와 잤다.

 

"수면에 반사되는 햇빛이 눈부셨다. 태양 아래에 있으면 밤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달빛 아래에 있으면 날이 밝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 순간에 없는 걸 갖고 싶어 한 적이 없다. 낮에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원하지 않으며 밤에 푸른 하늘을 동경하지도 않는다. 그 순간에 존재하는 것만이 내 세계의 전부다. 그걸 전부 먹는다. 씹어 삼켜 포식하고 눈을 감았을 때 세계는 마침내 끝난다. 그런 느낌이 든다." (p.56)

 

세이이치는 아사코의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아사코는 세이이치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지만 세이이치는 결혼을 결정한 후 처음으로 아사코의 집을 방문한다. 아사코는 부모님이 이혼한 후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은근히 소심했던 세이이치는 쑥스러웠던지 '나'를 대동한다. 아사코가 만든 요리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지만 나는 마시지 않았다. 아버지가 먼저 자리를 털고 잠자리에 들자 술에 취한 세이이치마저 술에 취해 쓰러지고 만다. '나'는 싫다고 거부하는 아사코를 범하게 된다.

 

세이이치는 아사코가 임신하는 바람에 결혼을 서두르게 되고, 결혼식장에 참석하기 전 세이코는 '나'에게 학교를 졸업하면 집을 나가 함께 살자고 제의한다. 양복을 입고 결혼식에 참석했던 '나'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집에 들른다. 집 앞에서 '나'는 세이코가 양복 주머니에 넣어 준 쪽지를 읽고 집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다케시와 그가 데려온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데...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와 함께 일본의 3대 여류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야마다 에이미는 여자 '무라카미 류'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성애를 전면에서 다룬다. 그러나 그의 소설이 외설적이라거나 난잡하다고 비판받지 않는 까닭은 솔직하고 간결한 문체 때문인 듯하다. 그럼에도 인간의 연애 심리를 잘 포착하고 있다. 소위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여성이라면 이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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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시답잖고 너저분한 이야기를 깔끔하게 요약하거나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분명한 어조로 정확히 전달해 줄 자신은 없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얘기를 주로 말한다. 어디서 주워 들었거나 먼발치에서 우연히 보았던, 그런 이야기들.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나의 시답잖은 일상에 더해지다 보니 일상은 더욱더 시답잖아지고, 더 시답잖아진 이야기들이 또다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그렇게 전해진 이야기들이 돌고 돌아 언젠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또다시 내게도 전해지고 그렇잖아도 시답잖았던 나의 일상은 더더욱 시답잖게 변해간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 주로 하는 방식이지만 이렇듯 시답잖은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소식이 있다면 가짜 뉴스여도 좋으니 분노와 악담을 마구 쏟아내는 일이다. 예컨대 강원도에 있었던 대형 산불에 대해서도 자유당의 민경욱 의원은 "대형 산불 발생 4시간 후에야 총력 대응 긴급 지시한 문 대통령. 북으로 번지면 북과 협의해 진화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빨갱이 맞다. 주어는 있다."는 글을 공유했다가 네티즌의 물매를 맞고 삭제하는가 하면 같은 당의 김형남 의원은 "문재인 정권 속초·고성 산불이 속초 시내까지 번져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 같다."며 "정말 이 정부의 재앙의 끝은 어디냐"고 비난했다. 박근혜 정권의 대변인이었던 민경욱 의원은 세월호 사건을 브리핑하면서도 활짝 웃었던 인간이기도 하다. 타인의 불행에 공감할 수 없는, 말하자면 사이코패스가 아닌지 의심이 되는 인간들.

 

자신의 시답잖고 너저분한 일상을 가리기 위해 잘 하고 있는 타인을 향해 비난과 악담을 쏟아낸다는 건 의도만 불손한 게 아니라 자신의 찌질한 인성마저 온 세상에 선전하는 일이다. 시답잖은 일상에 자신의 찌질한 인성마저 덧입히는 스킬. 이보다 더 찌질할 수는 없다는 이언주 의원의 비난은 바른당 손학규 대표에게 할 것이 아니라 자유당 의원들에게 할 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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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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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시인답게 하는 것은 일상에서 삶의 진폭을 남들보다 한층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감각의 촉수를 다방면에 걸쳐 놓은 채 한시도 방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평생을 시인으로 산다는 건 고달픈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그러하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벚꽃 만개한 이 계절을 그냥 넘기기 아쉬워서 고른 책이었다. 시를 즐기거나 시를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위치도 불문명한 먼 이국의 언어인 양 한동안 그렇게 읽어나가다가 어느 순간 내 가슴에 기척도 없이 툭 하고 내던져지는 문장이 있다면 '아, 나는 제대로 읽고 있구나' 자평하면서 혼자 우쭐해하는 것이다. 보이는 모든 것이 과거라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머리보다는 가슴에서 먼저 깨닫게 되는 것도 시집을 읽을 때였으니 나는 어느 종교의 경전을 읽는 것처럼 두 손 가득 공손히 시집을 펼쳐 든 채 깨달음의 순간만 시시각각 기다리는 것이다.

 

"아프다가// 담 밑에서/ 하얀 돌을 보았다// 오래 때가 묻은/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아직 다 둥글어지지 않은 돌// 좋겠다 너는,/ 생명이 없어서// 아무리 들여다봐도/ 마주 보는 눈이 없다// 어둑어둑 피 흘린 해가/ 네 환한 언저리를 에워싸고// 나는 손을 뻗지 않았다/ 무엇에게도// 아프다가// 돌아오다가// 지워지는 길 위에/ 쪼그려 앉았다가// 손을 뻗지 않았다" (조용한 날들)

 

다른 것 다 몰라도 이 한 문장. '좋겠다 너는, 생명이 없어서'. 그렇게 나는 '없음'이 영원성'과 동의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벼락이 치듯 한 순간에, 불현듯. 시인의 삶 속에는 생명이 없는 돌들이 파랗고, 하얗고, 때로는 붉게 살았다는 것과 죽음, 해골, 피, 생명, 심장, 입술, 맥박, 눈, 혀 등 생명이 손을 맞잡았거나 등을 맞댄 단어들이 제 딴에는 맥락도 없이 '어둠이 주섬주섬 얇은 남루들을 껴입고', '유난히 커다란 눈송이 하나가/ 검은 웅덩이의 살얼음에 내려앉는 걸 지켜보는' 동안 '어떤 꿈은 양심처럼/ 무슨 숙제처럼/ 명치 끝에 걸려 있었다'. 산다는 건 어쩌면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이/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을 들여다보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독백처럼 되뇌었다.

 

1993년 등단한 뒤 20년 만에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펴낸 한강은 '저녁의 뒷면으로/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무엇을 건너온 것일까'라고 묻는다.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한께였다는 것을 알겠어,/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서시)

 

시는 읽히는 게 아니라 만져지는 것이며, 그 만져지는 단어의 알갱이들이 쉽사리 부서지거나 약한 바람에도 휙 하니 날라가버리는 까닭에 손 안에 온전히 남는 시구는 많지 않은 게 어쩌면 당연한 일. 바람에 떨어지는 벚꽃잎처럼 시인 한강의 마음 한 점이 내게 떨어졌다. '서랍에 넣어 둔 저녁'처럼 또는 '모든 것이 남은 천지에/ 남은 것은 없었던 그해 늦봄'처럼, 어두운 내 마음을 우련하게 밝히던 시인의 시구. 그리고 어느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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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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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매일을 삽니다. 하루라도 건너뛸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 수많은 날들을 살아내면서 우리는 자신의 머릿속에 하나하나의 기억들을 차곡차곡 쌓아갑니다. 결국 우리의 기억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징표인 동시에 소중한 누군가에게 전해줄 값진 유물인 셈이지요. 그런 까닭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남기기도 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다음 세대를 살아갈 누군가에게 마치 먼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인 양 가만가만 들려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젊었던 시절의 우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동안 소중하게 쌓아오던 자신의 기억들을 하나둘 꺼내놓기도 합니다. 마치 자신이 간직하던 애착인형을 보여주듯 말이지요. 그러므로 사랑이 깊어진다는 건 상대방의 기억을 허구가 아닌 실재했던 진실로 믿게 된다는 것이며, 타인의 기억을 나의 기억으로 치환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가 김경욱이 쓴 <위험한 독서>는 이와 같은 과정을 잘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독서치료사가 주인공인 이 소설에는 7년간 사귄 남자 친구와 헤어지기 위해 찾아온 30세 구립도서관 사서이자 제빵 기술자를 꿈꾸는 여성이 피상담자로 등장합니다.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던 피상담자는 바람을 피운 남자 친구를 정리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 망설이고만 있습니다. 그렇다고 독서치료사인 주인공에게 자신의 상태를 과감하게 드러내지도 못합니다. 예컨대 첫 만남에서부터 여자는 "선생님 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에요. 밥벌레에요."라고 하더니 책에 대한 감상을 물었을 때에도 "저 같은 게 뭘 알겠어요."라고 말합니다. 여자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감지한 주인공은 여자에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그의 또 다른 책 <사양>을 권합니다. 여자는 주인공이 권한 책을 읽으며 서서히 변해갑니다.

 

"당신은 나에게 어떤 책이었을까. 당신이라는 책은 알베르 카뮈의『이방인』처럼 첫 문장부터 독자를 긴장하게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호사스런 장정으로 독자를 압도하거나 자극적인 삽화로 독자를 현혹하는 책도 아니었다. 별다른 기대도 이렇다 할 사전정보도 없이 무심코 읽기 시작한 책일 뿐이었다. 더구나 당신이라는 책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몇 번이고 책장을 덮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지 않았던가." (P.25)

 

딸만 셋이던 집안에 넷째로 태어난 여자는 자신의 불우했던 과거를 자신 있게 바라볼 용기가 없었던 것이지요.  여자는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통해 용기를 얻게 되고, 주인공은 자신의 독서치료에 반응을 보인 피상담자의 변화를 축하하는 의미로 구두를 선물합니다. 상담이 거듭되면서 여자는 급격하게 변해갑니다. '표정은 밝아지고 풍부해졌으며 상대의 시선을 외면하며 말하는 버릇도 사라졌'고,  검정 일색이던 옷차림도 다채롭게 변하는 등 자신감 넘치고 화사해집니다. 최신형 휴대폰을 새로 구입하고, 개인홈페이지를 오픈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빵학원에 등록하면서 꿈을 향해 나아갑니다.

 

"당신이 그만 오겠다고 했을 때 불안의 근거는 분명해졌다. 당신을 그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당신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들이 나에게는 아직 많았다. 끝이라니. 당신의 진면목을 읽어가는 나의 본격적인 독서는 비로소 시작될 참인데." (P.31)

 

사실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기 위해 읽을 수도 있고, 나를 찾기 위해 읽을 수도 있고, 단순히 재미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읽을 수도 있겠지요. 인격 수양을 위해 읽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최상의 화두로 떠오른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책을 읽기도 합니다.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에서 여자는 책을 통해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하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갑니다. 나는 요즘 나를 잊기 위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 수시로 떠오르는 그 많은 기억을 안고 살기에는 나 자신이 힘에 부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그 시간 동안 나는 무수한 기억의 공격으로부터 잠시나마 피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나는 지금 김경욱 작가와는 다른 의미의 '위험한 독서'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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