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감력 수업 - 신경 쓰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
우에니시 아키라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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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준이치의 <둔감력>을 읽었던 건 몇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이야 비슷한 제목의 책이 몇 권 더 출간되는 바람에 '둔감력'이라는 단어가 그리 낯설지 않지만 와타나베 준이치가 책을 출간했을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대개 '둔감한 것도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나?' 하면서 의아해했었다. 그러나 그의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하,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둔감한 것보다 예민한 게 능력이라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책.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둔감한 게 능력인 시대에 살고 있다. 언제부터였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것만은 확실하다. 육체노동이 주가 되지 않는 시대에 사람들은 육체적 질병보다는 정신적 질병을 더 두려워하게 되었고, 둔감하다는 건 육체적 내성에 버금가는 정신적 내성의 큰 축으로 작용한다는 걸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세균으로부터 육체를 보호하기 위해 페니실린이 필요한 것처럼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둔감력이 요구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내 떠나지 않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그래, 그것까지는 알겠어. 작은 일에도 파르르 화를 내거나 흔한 질책에도 세상 다 잃은 것처럼 의기소침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말이지. 그렇다면 타고난 천성이 예민한 사람은 도대체 어쩌란 말이야?' 하는 생각. 본성을 바꾸어 다시 태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둔감해지자' 하고 어느 날 갑자기 결심한다고 해서 무 자르듯 뚝딱 바뀌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심리학 박사이자 현직 카운슬러이기도 한 우에니시 아키라는 자신의 책 <둔감력 수업>에서 다른 사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힘, 즉 '둔감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에게 완벽함을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완벽함을 요구하지 말아야 하죠. 모든 일을 빈틈없이 처리하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다른 사람에게 완벽함을 바라던 마음도 조금씩 사라집니다. 동료가 실수를 저질러도,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어도 둔감하게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다른 사람에게 완벽함을 바라지 않으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고민이 사라집니다." (p.59)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힐 수 잇는 여러 상황을 각각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제1장 '예민한 마음에 삶이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제2장 '주변에 함께하기 불편한 사람이 생겼다면?', 제3장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면?', 제4장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면?', 제5장 '예상하지 못한 위기에 처했다면?', 제6장 '얼굴 빨개지는 일을 마주했다면?', 제7장 '분노라는 감정을 이겨내기 힘들다면?', 제8장 '욕심이라는 빠져나오기 힘든 함정에 빠졌다면?', 제9장 '인생의 방향에 의문이 생겼다면?'으로 장을 나누고는 있지만 생각해보면 우리의 감정은 위에 나열한 하나의 원인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두 개 이상의 복합적인 원인으로 고로워하는 게 아닐까.

 

"심리학에서 말하는 분리화, 즉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면 '상황을 글로 쓰는 방법'이 효과적입니다. 특히 욱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 효과가 큽니다. 노트를 갖고 다니며 일상에서 화가 나거나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그 상황을 글로 적습니다." (p.167)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분노의 근원도, 경제적 상황이나 인간관계의 악화로 인한 고민의 근원도 결국은 '나'의 마음에 달린 문제일 뿐이다. 둔감력은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고 욕심과 분노에 휘둘리지 않게 해주는 '유연한 마음의 힘'이다. 그러므로 최악의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여유는 둔감력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둔감력을 기르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일과 관계, 감정의 중심에 항상 '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른 누군가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길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들 각자가 다 다른 사람이구나 하고 감탄하곤 하는 것이다. 이제껏 몰랐던 걸 처음으로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 모두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그리고 각자의 다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나의 기준으로 그들을 재단하려 했음을 깨닫게 된다. 나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나의 기준에 끼워 맞추기 위해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내고, 나도 다른 누군가의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과도한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결국 '다름'을 인정하면 모든 게 편안해질 텐데 순간순간 그 사실을 잊곤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따금 그 사실을 놓지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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